[보성/벌교읍]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하다. 부용산오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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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전라남도

2013. 3. 11.

구전가요, 세상에 나와 산책로가 되다.

'부용산오리길'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벌교의 절산에 자리한

'부용산 오리길'입니다.

구구절절 애절한 가사와

질리도록 슬픈선율이 어우러집니다.

실제 사연이 담긴 이유로 노래는 구슬픕니다.

이제 그 길은 낭만적인 완만한 산책로가 되었습니다.

 

 

 

 

 

'부용산'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는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벌교 부용산은 해발 192m의 벌교읍사무소 뒤편의 나즈막한 산입니다.

봉우리에는 1600년대 낙안군수 임경업 장군이 쌓았다는 '부용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길게는 두류산(해발 230m)의 '전동산성'까지 이어지는 낭만적인 산책로입니다. 등산로라고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완만한 산세를 가지고 있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 정도까지의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산입니다.

 

저 멀리 살고 있는 길손에게도 알려진 '부용산 오리길', 어떤 길일까요?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와 함께 벌교는 물론, 5, 60년대 호남지방에서 작자미상의 곡으로 흥얼흥얼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던 노래 '부용산'의 시작이 되는 곳입니다. 

 사실 길손은 '부용산'이라는 노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님중 댓글에 '부용산오리길'이 걸으면 참 좋다는 글을 보았고, 벌교를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시는 구슬프고 애절합니다. 알지 못하는 일이건만 무언가 가득 안은 슬픔이 전해집니다. 노래는 또 어떤지 아십니까? 아주 느립니다. 슬프도록 처절하게 느린 노래이지요.

'부용산 오리길' 기어이 찾아 나서 봅니다.

 

'부용산 오리길'은,

벌교읍사무소를 출발하여 나무데크로 잘 놓여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널찍한 잔디밭의 체육공원이며, 그 위로 '충혼탑(忠魂塔)'이 자리합니다. 오르는 동안의 내려다 보이는 벌교읍의 풍경은 고요합니다. 적적할 정도이다 싶을 정도로 고요합니다. 충혼탑을 지나 길을 꺽어 오르면 '항일민족음악가'이자 '한국 근대음악의 원형'으로 불리는 '채동선(蔡東鮮, 1901~1953)'선생의 묘소이며, 그 뒤로 '부용산'시비가 자리합니다. 바로 부용산 오리길을 만든 박기동시인의 시비인것이지요. 

시비를 지나 산책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부용정(芙蓉亭)', 좌측길로 그대로 나가면 '용연사(龍淵寺)'로 가는 길입니다. 

 

'부용산 오리길'이라고 이름된 약 2km정도의 부용산 산책길,

길손과 같은 객이라면 30분에서 50분정도의 산책을 즐기면 좋을 것이고, 벌교에 계시는 분들이라면 전동산성까지 다녀 올수 있는 약 2~3시간 정도의 트래킹으로도 좋은 곳입니다. 

 

 

 

 

 

'부용산 오리길'이 만들어 진것은 '제망매가(祭亡妹歌)'와 '애제자곡(哀弟子曲)'이 어우러진 노래 '부용산'입니다.

우선 노랫말인 시를 지은 분은 '박기동(1917~2004)'시인입니다.

박기동 선생은 여수 출신으로 3남2녀중의 장남입니다. 12살에 벌교로 이사를 오면서 벌교와의 인연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1947년 누이동생 '박영애(1923~1947)'가 폐결핵으로 순천도립병원에서 사망하였고, 절산(=부용산)에서 장사를 지내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 온 선생은 누이동생을 보낸 안타까움을 시로 쓰니 이것이 '제망매가(祭亡妹歌)' 입니다. 

 

이후 선생은 목포 향도여중(현, 목포여고)로 전근을 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음악교사 '안성현(192~2006)'선생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안성현 선생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 이기도 합니다. 또한 천재문학소녀 '김정희(1931~1948)'을 알게 되지요. 당시 중3이던 김정희는 문예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어 당시 학교에서는 그녀에게 국어를 가르칠 교사가 없어 박기동선생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해, 김정희는 자신의 누이와 같은 병인 폐결핵으로 죽고 맙니다. 

아끼던 제자의 죽음에 안선생이 가락을 만드니 '애제자곡(哀弟子曲)'입니다. 그리고 안성현 선생은 박기동선생의 시에 곡을 붙입니다. 이 노래는 같은반 학생이 처음 불렀고, 호남일대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로서 노래 '부용산'이 탄생하게 된것이지요.

 

그런데 왜 길손같은 이들은 이 노래를 모르고 있었을까요?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의 역사속에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안성현 선생이 처삼촌이었던 '안막(安漠, 1910~1958)', 그리고 그의 부인이자 안선생에게는 외숙모인 신무용의 창시자, 천재무용가로 칭하는 '최승희(崔承喜, 1911~1969)'선생과 함께 월북을 하게 됩니다. 이로서 이념이나 사상과는 무관한 노래였으나 작곡가의 월북과 함께 호남지방의 빨치산들이 즐겨부른다 하여 '금지곡'으로 묶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 후 60~80년대에는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작자미상의 구전가요로 명맥을 이어오게 됩니다. 그러던 1997년 가수 안치환이 '부용산'을 노래로 부름으로서 세상에 알려졌으며, 노래가 완성되던 당시 김정희의 친구이자 박기동선생의 제자 김효자교수(현 경기대 교수)가 노래 악보의 원본을 제보하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이동원, 한영애, 탈렌트 양희경등이 부용산을 부름으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요.

그리고 1999년, 묻히기엔는 너무도 아까운 노래임을 알게된 '연극가 김성옥(현, 목포시립극단 예술감독, 배우 손숙의 남편)'선생이 호주로 이민을 가 있던 박기동 선생을 찾았고, 52년만에 노래'부용산'은 2절이 작사되어 완성 됩니다.      

 

 

 

 

 

그러한 애절함을 담은 '부용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 놓은 노래는 뒤로 숨어 알음알음 전해지다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 중심에 자리한 '부용산'입니다. 사연과 달리 지금의 부용산 시원한 바람과 완만한 산책로를 갖춘 명실상부한 웰빙트래킹 코스로 사람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벌교읍내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조망과 탁 트인 시야속의 산세가 가벼운 산책로서는 더욱 없는 좋은 길입니다. 

벌교사람 뿐만이 아닌, 벌교를 찾는 사람들의 걸음까지 붙드는 '부용산 오리길',

작사와 작곡의 내력속에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오르는 '낭만의 길'이 되었습니다. 

 

 

 

 

 

 

충혼탑 

 

민족음악가 채동선 묘

 

'부용산'시비

2000년 10월 1일 세원진 시비입니다. 

 

 

 

 

부용정 

 

 

 

 

 

 

용연사 

 

 

 

 

 

 

by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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