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조안] 작은 절집이 가진 너른 풍경, '운길산 수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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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경기도

2019. 2. 26.


작은 절집이 가진 너른 풍경,

운길산 수종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433 / 031-576-8411

 

운길산(610m) 8부 능선에 자리한 절집,

절집의 모양새는 평범하다.

그러나 절집이 가진 풍경은 참으로 넓고 깊다.

북한강이 불어주는 남실바람이 시원스럽다.

 


운길산 수종사(雲吉山 水鐘寺),

서울에서 동으로 40km, 두물 머리에서 4km의 운길산 능선에 자리한 절집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으로, 이후 1890(고종27)에 만들어진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산으로 나온다. 절집은 조계종 25교구 봉선사의 말사로 북한강을 바라보는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흥망성쇠의 바람을 피하지 못한 절집으로 조선 초기에 세워진 절집이지만,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가 없고 1439(세종21)에 세워진 '정의옹주 부도'가 자리한 것으로 짐작하여 그 이전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수종사 일주문




1459(세조5),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양수리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어디선가 맑고 은은한 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곳에 종소리가 날만한 곳은 운길산 옛 절터밖에 없다하여 사람들을 모아 소리 나는 곳을 찾으니 운길산 8부 능선의 작은 동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바위굴 안에는 18나한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세조는 그 자리에 축대를 세우고 수종사(水鐘寺)라 하였다고 한다.


 


 

△ 수종사 불이문




절집은 중창을 거듭하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참담하게 변하였고,

1890(고종27)에 이르러서야 왕의 시주로 중창을 시작하여 절집의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각 가람들을 중창 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1975년에 대웅보전을 복원 하였고, 이후 선불장과 삼정헌등을 세웠다. 1981년 산신각과 종각 등을 중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도 많은 재난을 겪은 이유인지 수종사 내의 보물급 유물(청자, 금동구층탑, 금동불18구 등)들은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수종사에는 팔각오충석탑과 정의옹주부도만이 남아있다.


 


△ 선탈문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 이 작은문을 통과하면 절집의 마당이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절집의 풍세는 이제 제법 절집다워졌다.

북한강을 따라 달리다가 조안면 보건지소에 이르러 운길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1.8km의 언덕길을 힘겨이 올라서면 절집의 일주문에 닿는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바스락거리는 겨울 끄트머리의 흙길을 밟는 기분이 좋다. 살아있는 산중 바람의 들숨, 날숨이 더 없이 좋다. ‘불이문을 넘어서면 무질서한-그러나 자연에 거스르지 않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 서면 이내 절집의 마당이다.


단정한 가람과 산세에 기댄 가람의 배치가 넉넉하다.

마당 한 가운데 서면 가람의 전체가 한눈에 든다. 비좁은 터에 자리한 절집이지만 그저 작다고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마당에서 바라보는 북한강의 조망이 있는 이유다. 시원하게 펼쳐진 강의 풍경에 멀리 보이는 두물머리의 풍경이 한 눈에 들기 때문이다.





 

△ 수종사 팔각오층석탑(水鐘寺 八角五層石塔, 보물 제 1808호)

조선 초기 석탑으로 고려말의 형식을 이었다.

기단부는 '불산대좌, 탑신부는 목조형식으로 상륜부는 팔작지붕의 형태를 가졌다. 왕실발원의 석탑으로,

사각의 지대석 위에 팔각의 중대, 상대, 지붕돌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 정의옹주 부도(도유형문화재 제157호)

태종의 5번째 딸, 정의옹주의 부도로, 1439년(세종21)에 왕실발원으로 제작되었다. 218Cm의 원통형 탑신의 둘레에 두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움켜진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삼정헌 옆 마당의 공간에서 묵언하며 바라보는 풍경,

하늬바람의 남실댐은 그저 시원스런 평화로움이다. 답답했던 가슴을 스쳐 지나는 그러한 개운함이다. 그저 한없이 바라보는 풍경이다.

 

뒤로 대웅보전. 아래로 종각과 그 옆으로 세조가 심었다는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가 선다. 고목이 아래에서 바라보는 북한강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나무가 주는 그림에 더하여 강의 푸르름이 주는 풍경은 복선 없는 개운함이다.


 



돌아 나오는 시간,

시간의 촉박함에 삼정헌의 차 한 잔 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가 다산을 찾아와 차를 마셨다는 그 자리, 해오름과 해넘이가 운해를 만나 장관을 이루는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어느 날, 깊은 시름이 나를 찾을 때, 나는 수종사를 찾아야겠다. 삼정헌에 들어서 차 한 잔과 강물을 바라보며 그 시름을 잊고 싶다.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느린 시간으로, 그러한 걸음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절집, 수종사다. 작은 절집이 가진 너른 풍경을 그렇게 다시 만나고 싶다.

 


△ 수종사 대웅보전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석가 삼존불을 모시고 있으며, 특이하게 칠성불도 모시고 있다고 한다.


 


△ 경학당

수종사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추측된다.



△ 범종각



△ 은행나무 풍경

창건 당시 세조가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로 수령은 약 500년이다.

수고 35m, 수폭 6.5m로 북한강을 조망하고 서있다.





,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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