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품의 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강릉 포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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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韓國記行]/길손의 한국기행

2021. 3. 9.

세상사 소란스러움이 미치지 못하는 그곳,

‘강릉 포구’

 

강릉문화답사 3> 강릉 포구기행

 

어부에게는 바다가 밭이다. 객에게 바다는 쉼이다.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산으로 가라했고, 묵은 마음 털어내고 싶다면 바다로 가라했다.

살아가는 일이 지루하고 답답하거나 혹은 잊혀 지지 않는 얼굴 때문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사람들은 바다를 찾는다. 바다, 그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애쓰지 않아도 마음은 벌써 평안해진다.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강릉의 바다다.

 

포구기행 여정

도직항 > (옥계항) > 심곡항 > 정동진항 > (안인진항)안인항 > (안목항)강릉항 >

사천진항 > 영진항 > 주문진항 > 오리진항 > 소돌항

 

수많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는 강릉이다.

길손이 사랑하는 ‘난설헌 허초희(許蘭雪軒, 1563~1589)’가 있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교산 허균(蛟山 許筠, 1569~1618)’이 그녀의 동생이다. 또한 율곡의 잘못을 탄핵하다가 귀양길에 올라 객사한 ‘하곡 허봉(荷谷 許篈, 1551~1588)’이 그녀의 오빠다. 이들은 모두 지금의 초당마을의 정신적 지주였던 ‘초당 허엽(草堂 許曄, 1517~1580)’의 자식들이다. 허씨 일가와 반대로 승승장구한 집안도 있으니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 이이와 그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1504~1551)’다.

오죽헌은 경포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허난설헌의 생가는 강문해변을 지척에 두고 있다. 오죽헌에서 율곡은 지혜와 지식을 키워냈을 것이며, 허씨 일가들은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욕심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한없이 넓은 마음을 키워 냈을 것이다.

 

바다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런 흔들림을 막고자 글 읽는 선비들은 바다를 찾지 않았다. 바다는 어부들의 바다다. 질퍽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었다. 강릉의 바다도 별나지 않아서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던 포구와 난전들이 해안가를 따라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해안선의 모습은 변화를 거듭했다.

바다는 세월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변한 것은 바다위의 흔적들이다. 사람들의 마음뿐이다. 변함없는 바다를 만나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난전의 삶이 존경스럽다. 묵은 체증을 풀어 놓고 나니 세상이 가볍다. 마음은 새털과 같다.

 

해안선의 길이만 160리다.

백두대간을 둔 덕에 포구의 자리에는 대부분 하천과 맞물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도 포구의 위나 아래다. 그러다 보니 어족자원은 바다나 민물이나 할 것 없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10여개의 포구가 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남아 있으나 제 기능을 잊은 포구가 있고, 있는지 없는지 조차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국가 무역항으로 지정된 옥계항과 모래사장으로 변한 안인진항은 스쳐 지났다.

 

도직항 :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 563-2

방파제만 남아있는 작은 포구 ‘도직항’은 아늑하다.

백두대간의 삿갓봉에서 발원하여 북동저수지를 이루고 물길은 낙풍천이 된다. 불산의 양옆을 스쳐 지나며 남양천과 주수천이 낙풍천과 만나 옥계역을 휘감아 돌면서 바다로 빠져 나가니 그 아래가 ‘옥계항’, 한라시멘트 국가무역항이다.

도직항은 그 보다 아래에 자리한다. 스치듯 지나가는 자리에 있어 숨은 듯 가린 듯 찾기도 쉽지 않다. 은둔한 포구가 주는 편함은 태공들의 쉼터가 된다. 한 때 어부들의 생활 터전이었으나 1975년 고속도로가 놓이면서 마을은 뒤로 숨어버렸다. 작은 포구마저 동해고속도로와 7번국도가 갈라놓은 은둔의 포구가 되었다. 그나마 바다로 나가기도 쉽지 않다.

지척에 대규모 어항 옥계항이 들어선 이유다.

 

도직항

1987년 5월, 항만에서 시멘트를 운송하는 항구로 허가되면서 한라시멘트에서 항만건설에 착공했다. 1991년 10월 무역항으로 지정되었고, 1997년 12월 시멘트 전용항으로 개항했다. 시멘트를 옮기는 대형 선박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통에 도직항은 더 이상의 포구 역할은 하지 못한다.

 

작은 포구의 우직함이 이래서 빛을 본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흐름을 도직항은 묵묵히 받아들인다. 소박하고 아늑한 공간을 가진 도직항은 평온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금진항 :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124-52

옥계항을 스쳐 오르면 ‘금진항’이다.

땅이 검어서 먹진, 흑진 이라 했다. 이 후 건남리가 통합되면서 금진이라 했다. 작지 않은 규모의 포구에 어부들이 살아가고 있다. 아침이면 잡아온 고기들을 입찰을 한다. 싱싱함과 피곤함을 맞바꾸는 순간이다. 길손들은 배삯을 내고 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금진항의 가자미 낚시가 좋다는 소문은 태공들의 사이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금진항

제법 큰 규모의 항구이지만 어민들의 부지런함으로 맑고 청정한 바다를 유지하고 있다. 기억 속에 있던, 오래전 사진첩에서 보아오던 포구의 풍경을 간직한 전형적인 강릉의 항구모습이다. 한참을 걸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 고마울 지경이다.

 

 

심곡항 :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157-22

드라이브로 알려진 헌화로를 따라 거슬러 오르면 ‘심곡항’이다.

육지로 파고 들 듯이 자리한 포구로 해안을 따르다가 급격한 산허리가 막아선다. 심곡이라는 명칭도 ‘깊은 계곡’을 뜻하듯 포구는 방파제가 해풍을 막아주고 거센 북풍을 산허리가 지켜낸다.

 

그만큼 심곡항은 포근하고 아늑하다. 더하지 않은 자연의 풍경을 오롯이 간직한 포구다.

 

심곡항

예서 바닷길을 따라 걸으면 정동진까지 이어지는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다. 2300만 년 전의 동해 탄생비경을 간직한 지각변동을 만나는 곳으로 해안단구 탐방로 2.86km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심곡항에서 여장을 풀고 나니 허기가 진다. 포구의 식당에서 저녁과 잠자리를 한 번에 해결하고 밤늦은 마실을 다녀본다. 바다 마을의 밤을 마음껏 들이쉰다. 철렁거리는 파도소리에 마음까지 철렁거린다.

 

심곡항 일출

거나하게 들이부은 소주가 제 역할을 하나보다.

희미해져가는 눈동자가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맑아진다. 어제의 썩은 동태 눈깔은 간데없고, 시원하고 또렷해진다. 포구의 아침은 그렇게 상쾌하다. 포구를 비추는 아침 해오름도 소박하다. 거창하게 요사를 부리지 않는다.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해오름 앞에서 긴 호흡을 하는 사람들은 살아가야하는 여유를 지녔다. 다시 길을 나선다.

 

 

정동진항 : 강릉시 강동명 정동진리 50-162

피래산 기마봉아래 정동진천이 모래시계공원을 휘돌며 바다로 나간다.

‘정동진항’은 대형호텔 썬크루즈 아래 숨어 있다. 과거 꽁치, 가자미, 전복 등으로 생활하던 어부들의 공간이었으나 이제 관광지가 되면서 삶의 모습이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포구의 생태계가 변해버린 곳이다.

 

정동진항은 강릉의 포구 중에서 제법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한때 포구의 일상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었으나, 정동진역과 모래시계공원이 객들을 맞이한다. 팔 걷어 부치고 저마다 객들을 상대로 살아간다. 어부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포구의 모습도 잘라졌다. 어업보다는 낚시배를 운영하며 역시 객들을 상대한다.

 

정동진항

그래서인가, 포구는 마치 호텔의 부대시설 같다. 진입로 역시 여유롭지 못하다. 호텔의 앞마당을 지나는 것을 빈정대는 것 같아 많이도 불편스럽다. 처음부터 있던 포구가 어느 순간 호텔의 영역 속에 들어가니 주객이 바뀐 것 같은 더부살이 모습이 안쓰럽다.

그나마 ‘ㅁ’字의 포구가 주는 안락함이 남아있다는 것이 위안이다. 포구로 드나드는 좁은 물길도 안락함에 한 몫을 거든다.

 

 

안인진항 :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314-2

관광지를 벗어나 오롯이 포구의 풍경을 만나러 간다. ‘안인항’이다.

안(安)은 편안하다, 인(仁)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강릉 동쪽의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다. 송담서원 계곡물이 흘러 군선천과 괘방산 자락을 끼고 흐르는 임곡천이 만나 바다로 흘러드는데 이곳에서 숭어가 많이 올라와 태공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안인진항

실제 포구는 10여척의 배만이 드나드는 작은 포구다.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이 질박한 곳으로 소박하기 그지없다. 포구는 소란스럽거나 북적이지 않는다. 경매가 진행되지도 않는다. 남편이 밤새 잡아온 고기들을 아낙들이 근처 식당이나 어시장이 직접 내다 판다. 작은 배 한척과 서로 도와주는 남편과 아낙이 있어 행복하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 하는 사람들의 삶이 안인항에 있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궁핍하지 않는 삶에 만족하는 소박한 향기가 머무는 공간이다.

 

안인항이야 말로 강릉의 포구다운 포구다.

 

 

강릉항 : 강릉시 견소동 286-4

‘강릉항’은 커피거리로 유명하며, 울릉도 가는 배편이 있는 곳으로 사실상 포구의 기능 보다는 여객의 기능에 더 가깝다. 한동안 ‘안목항’으로 불렸기에 커피거리도 안목 커피거리로 불리고 있다.

백두대간 대관령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오봉산에 만나 남대천이 되어 흐른다. 강릉항은 남대천 하류에 자리하고 있어 황어가 많아 낚시장소로도 유명하며, 연안에서는 오징어, 가자미, 문어등을 조업한다.

 

강릉항은 어촌어항 복합단지로서 다양한 어항의 개발로 본연의 포구보다는 관광경제에 더 치중하는 모습이다. 어민들의 소득원이 다양해지고 풍족해진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강릉항

상당한 규모의 강릉항의 모습은 예스럽던 다른 포구와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다. 번듯한 어른의 품격을 지녔다고나 할까, 느긋한 편안함을 즐기는듯하다.

 

 

사천진항 :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2

고운 모래사장을 따라 한참을 오르고 나서야 ‘사천진항’에 닿는다.

매봉산 자락 사기막리 초막터 아래에 용이 나와 하늘로 올랐다는 용소가 있고, 사기막리 무릉담에서 발원한 계곡이 사지목구렁 무릉덤이에서 합류하여 용연동 저수지로 모여 바다로 흐르니 사천천이다. 사천천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 사천진항이 있다. 사천항으로도 불린다.

강릉시내 양 끝에 강릉항과 함께 있는 포구로 관광어촌에 가깝다. 그러나 여전히 양미리와 오징어를 주로 잡아 생활하는 어촌으로 관광지와 어촌계의 구분이 잘 이루어진다.

 

사천진항

길손 역시 늦은 아침을 해결한 곳으로 분주함 없는 느긋한 포구의 풍경이 마음에 와 닿는다.

커피 전문점과 횟집들과 함께 어우러진 포구에 정박된 어선의 여유로운 출렁거림은 어제의 피곤함을 씻는 듯 흔들거리며 편안한 쉼을 취하고 있다. 포구의 주변으로 솟은 바위들의 모습과 갯바위에 아치형의 다리를 놓아 멋진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영진항 :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2-7

지금까지 백두대간의 대관령을 넘어왔다면 ‘영진항’ 부터는 진부령을 넘어온다.

오대산 송천계곡에서 흐르는 연곡천과 함께 진고개길이 영진항을 향한다. 아래로는 솔향기캠핑장이며, 포구의 서쪽으로 영진리고분군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포구의 위 아래로 해변이 자리하여 길손들의 발길이 잦다.

연곡천은 은어가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하며, ‘바다를 거느린다.’는 영진항은 넙치, 가지미를 주 어종으로 하는 포구다. 둘러싼 방파제가 아늑한 포구다.

 

영진항

세상사 속도전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포구의 뜨락에 서면 온전히 바람에 바다의 향을, 맑은 바다의 투명함을, 나른한 볕의 따스함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삶의 풍경이 베인 포구가 주는 풍경에 길손은 늘 부드러운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주문진항 : 강릉시 주문진읍 교향리 184-126

아늑한 편안함을 뒤로하고 이제 제대로 된 어항기지 ‘주문진항’이다.

철갑령에서 발원하여 삼교 저수지에 모인 물이 흘러 신리천이 되어 흐르고 바다와 닿는 곳에 주문진항이 크게 자리한다.

강릉의 외항으로 속초항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다시 찾은 어항이다. 1917년 부산-원산 간 항로의 중간기항지였고, 10년 뒤인 1927년 개항장이 되어 영동지방 제일의 어항이 되었다. 화물선이 주로 입출항하고 있고, 약 300여척의 어선이 드나들고 있다. 오징어, 양미리, 명태, 청어, 멸치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이른 아침 어선에서 바로 내린 싱싱한 생물들을 만날 수 있으며 흥정을 통해 저렴한 값으로 구매할 수 있다.

 

영동 제일의 어항다운 규모로 물양장1,018m, 안벽 105m에 방파제가 1,060m에 이른다.

더하여 432m의 방사제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이 방사제는 드라마 촬영장소로 이용된 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콘크리트로 잘 다듬어진 ‘어선 정박장’을 지나면 ‘어선 장비소’가 해안에 자리한다. 수협과 주차장을 지나면 ‘주문진해양박물관’으로 무료관람이다. 다양한 보석과 운석, 해양식물표본들과 각종 화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1936년부터 운영되어온 ‘주문진시장’이 자리하며, 항구에는 좌판이 열리는 ‘풍물시장’이 있다. 주차장을 지나면 어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어민 수산시장’이다. 포구를 감싸 안은 항구를 지나 약 7분 거리에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주문진등대’가 자리한다.

 

주문진항

이렇듯 주문진항은 연안항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람 사는 냄새와 북적거림, 더하여 싱싱한 횟감과 그와 같은 모습의 생동감을 느끼고 싶다면 주문진항이 제격이다.

 

 

오리진항 :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8-3

복잡함을 벗어나면 그야말로 한갓진 포구를 만나게 되는데 ‘오리진항’이다.

포구의 이름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사실상 포구의 기능은 상실했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바다로 나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방파제도 테트라포드가 유일하다. 오리진항의 이름으로 남은 것이라고는 을씨년스런 평평한 콘크리트다.

그나마도 중앙에는 거대한 2개의 바위가 고래형상으로 우뚝 솟아있고 안쪽으로 해풍에 쫀득하게 말라가는 오징어 건조가 한창이다. 나머지는 캠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다. 쓸쓸하지만 포구의 향기가 가득하다.

 

지금 이대로도 좋을 것 같은 오리진항도 조만간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소돌항과 오리진항이 강릉시와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2021년 어촌뉴딜 300 사업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주민 소득증대를 위하여 관광, 레저 산업 활성화에 나선다.

 

오리진항

지척에 연안항 주문진항과 관광명소 소돌항 사이에 낀 작은 포구는 참 조용하다. 관심 없다면 어민들의 오징어 건조장으로 알고 지나쳤을 작은 공간이다.

한 때,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골짜기가 다섯 개였고 각 골짜기마다 나루터가 있어 ‘오리진(五理津=오리나루)’이라 불렸으며, 다섯 개의 서낭당이 있어 서낭제를 지냈었으나 이제 과거의 영화로움은 지우고 편안한 풍경만을 남겼다.

 

 

소돌항 :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791-23

마지막으로 찾은 강릉시의 최북단 포구는 ‘소돌항’이다.

소돌항은 포구보다는 ‘소돌 아들바위공원’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1972년 지방어항으로 지정 당시의 이름은 ‘우암진항’이었다. 그러던 2008년 안목항이 강릉항으로 바뀐 것과 같이 우암진항이 ‘소돌 아들바위’와 ‘소돌 조개구이’가 이름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소돌항이라 이미 불러왔던 이유를 들어 같은 해 9월 소돌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제 올해 2021년에는 어촌뉴딜 300 사업자로 선정되어 해양레저관광 체험시설과 편의시설을 확충하여 명실공이 특화사업부지로서 소돌항 일대를 정비하게 된다.

 

소돌항

포구에 묶인 어선은 많지 않다. 지척의 소돌아들바위와 아들바위공원을 찾는 사람들에 비한다면 존재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고요한 공간이다.

 

파도 소리마저 잠잠한 포구에는 어부들의 그물을 만지는 모습뿐이다. 이렇게 한가하고 나른한 모습이 내일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갈 소돌항의 모습은 기대일까, 우려일까. 나름의 푸근함을 가진 포구의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물론, 어부들의 편함을 위한 시설이라면 길손도 환영이다.

 

 

포구 기행을 마치고 나니, 포근했던 도직포구와 존재가 사라진 오리진포구의 아늑함이 잊히지 않는다.

작을수록 더했던 애절한 공간에서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바쁘면 바쁜 대로 훑고 지나면 될 것이지만 작은 공간에서 유난히 긴 시간을 머물렀다. 세상사 소란스러움이 미치지 못 한곳이었다.

 

바다만이 가진 물기 머금은 바람이 좋다. 메마르지 않은 바람과 함께한 시간 여행이었다.

마음은 이미 비워져 가볍다. 보이지 않아도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어부들의 모습에서 삶의 생기를 얻어간다.

생각만으로도 웃음 베이고 가슴 든든해진다. 이 또한 남부럽지 않은 길손만의 여행 방식이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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