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노고단] 노고단의 봄 향기, '지리산 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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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旅行自由]/전라남도

2021. 3. 13.

노고단 가는 길의 봄 향기,

‘지리산 천은사’

전남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 종무소 061-781-4800

 

바람이 계절을 바꾸어 가고는 있다지만, 지리산은 아직도 한기가 서린다.

그래도 자연의 시간을 거스르지 않아 꽃은 피고, 향을 피워낸다.

해발 1.507m의 노고단에서 흐른 산길은 성삼재를 지나 시암재로, 다시 흘러 861번 지방도로를 만난다. 그리고 그 곳에 ‘천은사(泉隱寺)’가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불렸던 천은사.

우람한 봉우리들이 감싸고, 절집의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이 산의 기운을 받아 흐르니 ‘泉隱寺’라 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 그 규모야 대찰에 비할 것은 못되지만 천은사만의 고요함속의 넉넉함은 절집의 매력이다.

 

신라시대에 창건 된 천은사는 828년(흥덕왕3)에 인도스님인 ‘덕운(德雲)’이 창건한 절집으로 ‘뜰 앞의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하여 ‘감로사(甘露寺)’라 했다. 875년(헌강왕1)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중건하였고, 고려시대에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어 수행 처로서의 역할을 다했으나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임진왜란 등으로 인하여 절집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쇠퇴하였다. 1610년(광해군2)에 ‘혜정(慧淨)’이 중건하고, 1679년(숙종5) ‘단유선사(袒裕禪師)’가 크게 중창하였으며, 1774년(영조50)에 ‘수도암(修道庵)’에 머물던 ‘혜암선사(惠庵禪師)’가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 1735~1789)’과 함께 소실된 전각을 중수하면서 천은사는 새로운 절집이 되었으며, 그 때의 모습이 지금에 이른다.

 

원래의 이름은 ‘감로사’였는데, 1679년(숙종5년)에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인근 저수지에 큰 구렁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들을 두렵게 하니 절집의 스님 한 분이 용기를 내어 구렁이를 잡아 죽였다고 한다. 살생을 금지하는 수행생활을 어겼으니 온전할 리 없다. 이 후 샘물이 솟지 않자 사람들은 ‘샘이 숨었다’하여 ‘천은사’로 불렀다.

 

그렇게 절의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중창하였으나 계속되는 화재에 소실되었는데,

이는 물의 기운을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었기 때문이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조선시대 명필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러 이야기를 듣고는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수채(水體)’로 ‘智異山 泉隱寺’라 쓰고 일주문에 걸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 하니 이후 절집에는 화재가 없었으며, 맑은 샘도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은사는 한동안 ‘산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1987년부터 노고단 가는 길에서 통행료를 징수해 온 이유다. 지리산에 온 김에 성삼재에 차를 대고 노고단에 오르려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절집은 들러보지도 않는데 입장료를 받는다며 사람들은 절집을 향해 ‘신종 산적’이라 불렀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천은사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1,600원이었다.

그러던 2019년 4월 29일, 10여년의 논의 끝에 전라남도가 천은사 소유의 861번 지방도를 매입하기로 하면서 32년 만에 입장료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소란스럽던 절집은 이제 온전히 수행자들의 공간이 됐다.

들뜬 가슴 내려 앉히는 염불소리와 어긋남 없는 목탁소리의 조화가 이곳이 천년 고찰이었음을 너른 저수지의 물길위에 수를 놓는다.

 

주차장을 지나 일주문 앞에 선다. ‘智異山 泉隱寺’, 조선 4대 명필 원교 선생의 글씨다. 물이 흐르는 모습과 같다는 ‘수체(水體)’다. 이유 없는 화재가 잦았던 절집에 물의 기운을 더하여 더 이상의 화재를 막아낸 글씨다.

 

일주문 너머 길을 따르면 다리위에 누각이 지어졌다. ‘수홍루(垂虹樓)’, 천은제로 나가는 물길 위에 선 피안교 위의 2층 누각이다. 현판은 구한말 학자이자 독립투사 ‘염제 조희제(念齊 趙熙濟, 1873~1938)’선생의 글씨다. 피안교를 건너면 이제 천은사의 경내다.

 

계단 위로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을 지나면 아래 마당이다.

그 위에 다시 넉넉한 마당이 자리하는데, 법요식의 집회장소로 사용되는 보제루가 자리하고, 시계방향으로 요사채로 사용되는 회운당, 회승당, 명월료와 본당인 극락보전이 자리하며, 명부전과 스님들의 요사채인 설선당, 사물(목어, 범종, 법고, 운판)이 걸려있는 운고루가 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그 중 본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은 2019년 5월 보물(제2024호)로 지정되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부의 기둥을 높여 예불공간의 위엄이 보인다. 특히 내부 단청의 안료를 분석한 결과 19세기 이전의 천연 안료가 그대로 남아있는데다가 채화기법이 뛰어나고 보존상태도 양호해 조선 후기 단청의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한다.

 

본당의 뒤로 삼성전이 자리하는데 같은 전각에 산왕각, 칠성전의 현판이 같이 걸려있다. 그 뒤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 그 옆으로 석가모니의 탄생에서 열반까지의 삶이 여덟 장의 그림으로 걸린 팔상전이 자리하고 응진전과 진영각이 선다.

 

절집은 아늑하다.

비어 휑하지도, 그렇다고 다닥다닥 붙어 복잡스럽지도 않다. 수행자들의 공간, 딱 그 공간이다. 금방 마친 비질의 흔적이 오래 살아온 절집의 마당, 시간이 흘러 주름진 모습으로 마당은 빗질이 되었다.

 

어느 순간,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절집임을 실감한다.

세상사 소란스러움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사계절 풍경이 달라지지만 절집의 가람들은 온전히 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렇다고 흐름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동화되어 그럴듯한 풍경을 만들어 내니 이제 욕심 내려놓은 오래된 옛 모습 같다.

경내를 벗어나 차고 달다는 감로수 앞에 서서 목을 축이고, 그 물로 방금 내린 아메리카노 커피로 몸을 데운다.

이른 아침의 산사 풍경이 향기롭다. 커피 덕인지 봄이 오는 바람의 향인지 모를 일이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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