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구례] 물좋은 절집의 매화, '천은사 백매, 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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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의 테마여행]/한국의 매화를 찾아서..

2021. 3. 14.

물 좋은 절집에 머무는 매화,

‘천은사 백매’

 

길을 나섬에 마음은 벌써 봄이다.

시리고 시렸던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시간, 저 멀리 남도의 어느 땅은 벌써 봄기운의 아지랑이가 서성인다고 바람이 전한다.

봄은 향기로 시작된다. 체증에 묵혀버린 가슴마저 내려앉혀 주는 은은한 향, 봄의 시작은 늘 그렇게 슬그머니 다가온다. 기다리지 않고 구태여 애쓰지 않더라도 자연은 계절의 옷을 바꿔 입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잊혀 지지 않는 향기가 있다.

서늘한 바람결에 스며든 가벼운 상큼함이다. 어느새 눈 감고 고개를 젖힌다. 조금이라도 더 짙게 머금고 싶은 욕심의 몸짓이다. 그래서 봄은 향이 베이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천은사 백매

지리산의 봄은 아직 이르다.

새벽에 나선 길은 동트기 전에 산길의 능선에 들어섰다. 아직은 스산한 바람, 아니 한기가 느껴지는 공기가 상쾌하다.

 

그냥 지나치기 미안한 지방도로를 타고 올라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861번 지방도로, 한동안 문화재관람료 징수로 말이 많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길이 관광도로로만 볼 수는 없는 길이다. 처음의 길은 일제강점기에 지리산 벌목을 위해 낸 길이었고, 이후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동족의 피가 뿌려진 비극의 길이다. 그러던 1985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돈을 빌려 도로를 포장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길이 완성이 된 것이다. 먹고 살만해지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렸고, 노고단 가는 길목의 ‘성삼재도로’가 된 것이다.

 

그 초입에 오늘 찾아갈 매화가 자리한 ‘천은사(泉隱寺)’가 있다.

한 때 ‘물이 맑고 차서 정신이 번쩍 든다.’는 ‘감로사(甘露寺)’로 불렸던 절집이다. 인근 사람들을 위한다는 스님의 발로가 살생으로 이어지면서 물이 사라지자 ‘물에 숨었다.’ 하여 ‘천은사’로 부르게 되었다.

물이 마른 절집에 화재가 잇따르니 조선 4대 명필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선생이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라는 ‘수체(水體)’로 일주문에 현판을 걸어 화기를 막았다. 뿐만 아니라 ‘극락보전(極樂寶殿)’과 ‘명부전(冥府殿)’도 선생의 글씨다.

독립운동가 ‘염재 송태회(念齎 宋泰會, 1872~1941)’선생은 피안교 위의 누각 ‘수홍루(水虹樓)’를 썼으며, 원교선생을 흠모하던 또 한명의 조선후기 명필가 ‘창암 이삼만(倉巖 李三晩, 1770~1845)’선생이 ‘보제루(普濟樓)’와 ‘회승당(會僧堂)’의 현판을 썼다.

 

세상 번잡스러움이 없는 넉넉함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천은사는 다른 지리산 자락의 대찰과는 다르다.

웅장한 지리산의 산세에 어울려 편안히 자리한 가람들의 배치가 그렇다. 보제루와 극락보전이 마주하고 좌우로 전각들이 늘어 서있다. 어느 것 하나 눈에 띄게 높거나 화려한 전각도 없다. 본당을 제외하면 사실 특별한 단청 없이 자연의 질감을 그대로 두었다.

과거의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에 멈춘 듯하다. 그래서 보제루와 함께 절집의 경내가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서 촬영장소로 쓰였나보다.

 

“헐.”

그런데, 극락보전 옆 첨성각 모퉁이에 자리한 백매의 모습이 요상하다. 자연스러움이 없다.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인다.

천은사의 누군가가 백매를 잘 다듬어 준 것 같은데, 그 관심이 과하다. 자라고 싶은 대로 두었으며 좋았을 것을 지나치게 다듬었다. 둥치는 고매의 품격을 지니고 있으나 올라설수록 난감하다. 손주에게 수염 잡힌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역정을 내지도 못하고 과한 관심을 그대로 받아낸 백매, 어리석은 길손의 눈에 안쓰럽다.

 

수고 2m30정도에 수폭은 3m정도다. 앞으로 어찌 변할지 모르니 수치의 의미는 없다.

둥치의 뒤틀림은 위로 오를수록 곧게 서있다.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등걸의 수피 터짐으로 보면 90년의 수령은 넘어 보인다.

감로수 같은 좋은 물로 이끼와 버짐도 피워 냈어야 할 매화가 면도하고 크림까지 바른 어설픈 중년의 모습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화나무가 천은사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감사를 드린다. 내소사처럼 병산서원처럼 덜컥 베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안도가 든다.

 

천은사 흑매

“와~~.”

백매를 뒤로 하고 팔상전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익숙한 매향이 풍긴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홍매가 여유롭게 자신을 뽐내고 있다. 수피 터짐도 없는 매끈한 피부를 자랑한다. 그 폼새나 향이 마치 화엄사의 각황전 앞 흑매와 묘하게 닮아있다.

꽃잎은 해와 맞닿아 맑고 투명하다. 화사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어린 홍매다. 수고, 수폭 2m정도에 수령 10년정도의 흑매다. 식재 된 자리가 돌담의 끄트머리에 서 있어 위태로워 보이나 천은사의 관리가 꾸준한 것은 분명하여 먼 내일에는 천은사의 명매가 될 것 같다. 돌담 위 흐드러진 흑매의 향연이 벌써 눈에 선하다.

 

소록도 수양매와 수도암 250년 백매가 태풍에 꺾여 사라지고, 단속사지 정당매가 600년을 마감하고 사라진 마당에 천은사의 매화 사랑은 반갑기만 하다.

다만, 과하지 않은 사랑으로 자연이 키우고, 매화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모습을 두고 보는 것도 매화를 바라보는 기품 아닌 즐거움이지 싶다.

 

물이 좋아 작설차가 으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커피 한잔을 들고 경내를 빠져 나온다.

길손 역시 까막눈을 가진 어리석은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홍루 피안교 위에 서서 천은 저수지를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린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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