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춘농로중 2014. 2. 26. 14:21

                                                                                                         이영숙 지음/창비

 

 

 

 

  감자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에 품은 원한

 

*왜 다들 감자만 심었느냐고? 사실은 다른 작물도 있었는데, 당시 영국이 아일랜드의 농작물을 다 수탈해 가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자만은 캐지 않고 남겨 두었거든. 그래서 감자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소중한 먹을거리가 되었는데, 마침 아일랜드의 거친 토양과 기후에도 잘 자라는 작물이기도 했던 거야. 게다가 수확하기도 요리하기도 편하니까 여러모로 좋았지. 빻거나 반죽하거나 발효시킬 필요도 없이 그냥 물만 부어 삶기만 하면 됐거든. 병충해가 문제였지만. - 22쪽

*그래서일까? 감자 기근을 겪고 난 다음에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고 거세게 들고일어났어. 감자 마름병이 돌고 흉년이 되는 건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더라도 대기근으로 번진 것은 철저히 영국 탓이라고 믿었거든. 그러면서도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는 영국의 편에 서서 참전해야 했어. 식민지 조선의 남자들이 일본군으로 뽑혀 갔던 것처럼 말이야. 참전했던 아일랜드 군인들 중 전사자가 5만 명 가까이 발생했지.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다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어. -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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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간디의 비폭력 저항

 

*그러니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어? 나중에는 간디의 고생을 보다 못해 사람들이 그의 행로 앞에 나뭇잎을 깔아 드렸다는구나. 민족 지도자는 그렇게 탄생하는 것인가 봐, 처음 행진을 시작할 때는 7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떠났지만, 도중에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더니 단디에 도착할 즈음에는 인파가 어마어마했다고 해. 지열로 달아오른 땅을 타박타박 걸어서 끝내 해안가에 도착한 간디가 침묵 속에서 소금을 집어 올려 맛을 보는 행위는 인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 주었어.

이 행진 이후, 인도의 바닷가는 소금을 줍는 사람과 소금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댔대. 영국인들은 이 사람들을 죄다 투옥했는데 그 수가 6만 명을 넘었다고 해. 하지만 인도인들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폭력의 방식으로 영국에 대항했지. - 43쪽

 

 

  후추 대항해 시대를 연 원동력

 

*콜롬버스는 왜 항해에 나섰을까? 아메리카를 찾기 위해 항해를 했던 게 아니라는 얘기는 아까 했지? 인도를 찾아서 떠났던 거라고. 콜롬버스가 인도를 찾으려고 했던 이유는, 값비싼 황금과 향신료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어. 황금이야 오늘날에도 워낙 비싼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왜 한낱 향신료를 위해 그 많은 위험을 무릅썼을까?

그 점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 유럽에 자극적인 맛이 나는 먹을거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그때는 커피도, 담배도, 홍차도, 초콜릿도 없어. 고추도 없었고, 설탕도 없었지. 그러니 음식 맛은 늘 밋밋했을 거야. 솔직히 엄마는 그것들 없이 어떻게 식탁을 차릴 수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야. 그러니 저 멀리 인도에서 수입한 향신료의 맛이란, 얼마나 짜릿했겠니. 돈 많은 귀족들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았겠지. 그렇게 향신료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고,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상인들은 향신료 무역으로 큰 이익을 남겼단다. - 57쪽

 

 

  돼지고기 대장정에서 문화 대혁명까지

 

*대약진 운동도 그렇고 문화 대혁명도 그렇고, 마오쩌둥의 실정이 중국 사회에 그늘을 드리운 건 명백한 사실이야. 그러나 중국에서 여전히 마오쩌둥에 대한 열기와 존경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현실이지. 어쨌든 그는 외세에 시달리던 무기력한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 건국 영웅이니까. 마오쩌둥은 <열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해. 어느 노인이 산을 옮기려는 생각으로 산의 흙을 퍼 담아서 바다에 버리는 일을 계속했다는 이야기 말이야. 어리석은 것처럼 보여도 우직하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인용되잖아. 마오쩌둥은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어려운 난관도 극복할 수 있고, 하늘은 그런 사람을 돕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게 그는 인간의 의지와 끈기를 강조했어. - 78쪽

 


 

  빵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오해들

 

*프랑스 얘기가 나온 김에 프랑스의 대표적 빵 얘기도 해 볼까?

이 빵 알지? 바게트(baguette), 프랑스 말로 ‘막대기’라는 뜻이야. 바게트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기에 만들어졌다는 거란다. 그때는 ‘무게는 300그램, 길이는 80센티미터’라고 아예 빵의 형태를 법으로 정해 놓았다는구나. 너나없이 똑같은 빵을 먹기 위한 조치였고, 그래서 ‘평등 빵’이라고 불리기도 했대. 구체제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빵 하나도 평등하게, 똑같은 걸로 먹자고 결심한 거였지. 사실 혁명 전에는 흰 빵이란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평민들은 아무리 많은 돈을 내더라도 먹을 수가 없었어. 평민들의 음식은 검은 빵뿐이었지. 흰 빵을 먹다 들키면 옥살이를 해야 했거든. 이런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평등 빵’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겠지. 이렇게 근대 혁명을 거치면서, 똑같은 값에는 똑같은 질의 상품을 제공받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점차 자라나게 돼. - 96쪽

 

*그럼 다음으로 아래의 빵의 이름은? 맞아, 크루아상이야. 바게트 못지않게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는 빵이지. 크루아상(croissant)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해. 이 빵은 원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지역에서 먹던 평범한 모양의 빵이었는데, 오스트리아가 1636년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을 막아 낸 뒤에 승리를 기념하려고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어. 왜 하필 초승달 모양이었느냐고? 오스만 튀르크는 오늘날의 터키로 이슬람 국가였는데, 이슬람의 상징이 초승달이거든. 그러니까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려던 거였지. 무슬림의 입장에서 보자면, 전쟁에서 진 것만도 억울한데 적국 사람들이 이슬람의 상징을 빵으로 빚어서 먹었다니, 모욕당하는 기분이었을 것 같아. 하여간 크루아상은 그렇게 만들어져서 1683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집오면서 프랑스에 전해진 거야. 여기서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오다니, 어쩐지 빵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지? -97쪽

 

 

  닭고기 프랑스의 선량한 왕 앙리 4세와 때를 잘못 만난 미국의 후버 대통령

 

*헨리 8세는 자신의 애정 문제 때문에 로마 가톨릭에서 영국 성공회로 국교를 바꾸었어. 당시에는 왕이 믿는 종교를 국민들도 따라야 했으니, 이건 왕이 제 기분대로 국민들의 종교를 바꿔 버린 셈이야. 왜 그랬느냐고? 그게, 헨리 8세의 부인인 캐서린이 오래토록 왕자도 낳지 못하고 늙어 가던 무렵, 앤 불린(Anne Boleyn)이라는 젊은 여인이 왕의 눈에 띄었거든. 궁중 시녀 출신인 젊고 매력적인 이 여인에게 헨리 8세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져들었어. 그런데 앤 불린은 정식 결혼을 원했어. 첩이나 정부 따위는 싫으니 왕비로 맞아 달라고 한 거야. 그래서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가톨릭의 수장인 로마 교황이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어. 허용할 수가 없었지. 가톨릭 교리에 이혼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캐서린은 스페인의 공주라는 배경이 있어서 함부로 대할 수 없었거든. 스페인은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였고 당시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없었던 거야. 그런 이유들 때문에 교황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헨리 8세는 나라 전체의 종교를 바꿔 버리겠다고 공언했어. 로마 가톨릭과는 인연을 끊고 자기 뜻대로 살겠다고 한거지. 그는 결국 앤 불린과 새로 결혼했고, 로마 교황청은 그를 파문했지.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했겠지만 말이야. - 106쪽

 

*어쨌거나 가톨릭을 믿는 다수의 프랑스 백성들은 엄청나게 안심했겠지. 이제는 신교도들이 불안하게 됐어. 하지만 앙리 4세는 왕이 되기 쉬운 길, 백성들이 평화로울 수 있는 방안으로서 종교를 바꾼 것이었기 때문에 신교도를 탄압할 이유가 없었어. 그래서 그는 1598년 ‘낭트 칙령’이라는 것을 발표했지. 낭트 칙령이란, 신교도에게도 일정 지역 내에서 종교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기로 한다는 왕의 명령이야. 이것으로 종교의 자유가 처음으로 실현된 셈이야. -109쪽

 

 

  옥수수 미국을 방문한 흐루쇼프

 

*그런데 잠깐 이런 의문도 들 것 같아. 옥수수가 다른 곡물에 비해 왜 쌀까? 그건 옥수수의 생산 비율이 높기 때문이야. 한 알의 씨앗을 심었을 때 몇 알의 알곡을 수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게 바로 생산 비율인데, 옥수수는 다른 곡물보다 생산 비율이 월등히 높거든. 예를 들어 18세기 동유럽에 자리한 판노니아 지방의 생산 비율 기록을 보면, 호밀이 6:1인 데 비해 옥수수는 자그마치 80:1에 이를 정도였어. 지금은 그때보다 품종 개량이 되었으니까 더 높은 생산 비율을 자랑하지. 그래서 오늘날에도 옥수수는 빈민국의 기아 퇴치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단다. - 124쪽

 

*미국 측에서 흐루쇼프에게 어디에 가 보고 싶은지를 물어봤대. 초대 손님 접대를 위해 흔히들 하는 질문이지. 그가 꼽은 곳은 바로 디즈니랜드였어. 미키마우스와 신데렐라의 성이 있는 그 놀이공원 말이야. 그냥 한번 해 본 말이 아니었단다. 디즈니랜드는 그가 방문하기 불과 몇 년 전인 1955년에 개장한 터라. 흐루쇼프는 그곳에 정말 가보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미국 측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디즈니랜드 방문은 힘들겠다고 했대. 그러자 그는 불같이 화를 냈지. 불만에 찬 흐루쇼프가 물었어.

“안전 때문이라니? 거기에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라도 있소? 거기에 로켓 발사대라도 갖추고 있소? 아니면 그곳을 폭도들이 장악하기라도 했단 말이오?”

흐루쇼프는 이렇듯 상당히 다혈질이어서, 피터 칼슨이라는 작가는 당시의 일화를 모은 책에 ‘노발대발 흐루쇼프’라는 재미난 제목을 붙여 출간하기도 했어.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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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나나 유나이티드 프루트 사와 바나나 공화국의 수난

 

*이렇게 살충제가 우리 몸에 해롭다면 아예 안 뿌리거나 확 줄이면 안 될까? 그런데 문제는 바나나가 굉장히 상하기 쉬운 과일이라는데 있어. 원래 바나나의 종류는 천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했는데, 병충해를 입어 큰 손실을 겪은 뒤, 단단해서 장거리 수송에 용이하고 병충해에도 강한 ‘캐번디시’라는 한 가지 종류만 기르게 되었대. 그럴 정도이니 바나나에 얼마나 많은 살충제를 뿌리겠어. 벌레가 생기거나 상한 바나나는 상품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니까. - 143쪽

 

*게다가 우리로서는 수입산 바나나가 대부분이라 ‘푸드 마일리지’가 크기 때문에 바나나를 먹을 때는 더 조심해야 해. 아직 초록색일 때 바나나 다발을 따서 성장 억제 농약을 풀어 놓은 물에 담갔다가 건조해서 수출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그 농약 성분이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된다고 해. 그리고 우리나라에 수입된 다음에는 먹음직한 노란색이어야 잘 팔리니까 빨리 익으라고 ‘카바이트’나 ‘에틸렌’ 같은 화학물질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익힌다는 거야. 원래 바나나라는 자연물 자체야 나쁠 게 없지만, 이렇게 인공적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야. - 145쪽

 

 

  포도 칠레산 포도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하지만 콜럼버스의 진짜 공로는 유럽과 남아메리카의 식재료를 양쪽에 소개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에는 감자, 토마토, 옥수수, 카카오, 파인애플 등의 먹을거리가 잔뜩 들어왔고, 남아메리카에는 포도와 커피 같은 구대륙의 식물이 전파되었으니까. 세계인의 식탁에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거야. 야마랑 알파카 같은 가축밖에 없던 남미에 양, 소, 말 등이 퍼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런데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전한 것 중 가장 무서운 것은 따로 있어. 바로 유럽에서 유입된 무기와 천연두 같은 전염병이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로 인해 숱하게 죽어 갔지.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콜럼버스는 자기 생활 반경과 세계를 넓혀 준 사람이겠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삶과 문화를 송두리째 빼앗아 간 사람일 거야. 엄마는 이 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 -161쪽

 

 

  차 아편 전쟁이라는 큰일을 낸 작은 잎

 

* 차 한잔을 권하는 이유

 차에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어서 각성 효과가 있거든. 졸음이 오지 않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말이야. 그래서 공장 같은데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차를 제공했다고 해. 게다가 차에 넣는 설탕은 열량을 보충해 주는 효과가 있거든. 그러니 예전의 노동자들이 고된 노동을 잊으려고 의지하던 알코올이 몸을 축내거나 이런저런 말썽의 원인이 되던 것에 비해, '설탕 넣은 차'는 노동자들의 원기를 돋우면서 생산성도 높였으니 사회에서 권장했던거야. - 174쪽

 

*영국 정부 입장에서 보니 사태가 심상치 않은 거야. ‘어라? 이것 봐라. 우리는 자기네 차와 도자기를 하염없이 사는데. 쟤네가 우리한테서 사는 건 기껏해야 모직물 약간에 향료 조금이란 말이야. 은이 계속 중국으로 들어만 가니. 이거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우리도 중국에 팔 만한 게 없을까?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기만 하는 은을 다시 나오게 하는 방법이?“

영국은 궁리 끝에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는데. 그게 바로 아편이었어.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한 다음 그것을 중국에 파는 거였지. 그렇게 영국과 인도와 중국 사이의 삼각 무역이 형성됐어.

아편의 재료는 무엇일까? 바로 양귀비란다. 하늘하늘 자태가 곱고 색도 아름다운 꽃 있잖아. 그 화려한 꽃이 시들고 나면 열매를 맺겠지? 동그랗고 예쁜 단지 모양의 열매 속에는 하얀 진액이 있는데, 그걸 농축시켜 놓은 게 아편이야. 아편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조금만 쓰면 좋은 진통제가 되기 때문에 수백 년 전부터 사용해 왔어. 하지만 많이 흡입하면 심신이 몽롱해지고 환상까지 보게 하는 무서운 마약이지. 게다가 한번 중독되면 여간해서는 끊기가 힘들다고 해. 그렇게 위험한 아편을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중국에 몰래 판 거야. -176쪽

 

 


이 포스팅 몇 번 읽었습니다.
아들 아이 생일 선물을 찾고 있었는데 딱입니다. ^^
서점에 주문해둔 상태구요...
모처럼 흥미를 유발시키는 좋은 책을 만난 느낌입니다.
악명 높은 다국적 기업으로 인해 약소국의 피해가 엄청났습니다.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과테말라의 르벤스 구스만 대통령의 축출되등
약자의 눈으로 살펴보는 세계사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는 것 마냥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드님에게 참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