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춘농로중 2014. 5. 25. 13:17

 

 

 

  5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봄날은 제주도에 신혼여행 왔을 때의 일정처럼 후다닥 가버리고, 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선다. 앞뜰에 있는 앵두나무에 꼬맹이 둘이 놀러 와서 앵두를 따고 있다. 내가 다가가니 놀라면서 쭈빗거리며 눈치를 본다. “괜챦아”하고 안심시키고 덜 익은 것은 먹으면 배탈나니 빨갛게 잘 익은 것만 따가라고 말했다. 이미 종이컵에 두 컵이나 가득하게 채워있다. 어제 오후에 앵두나무 옆을 지나가는데 무엇인가 움직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송장메뚜기가 앵두나무 가지위로 펄쩍 뛰어 올라가 있다. 반가움에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바짝 가져다 대도 도망가지 않는다.

 가는 봄의 뒤끝을 잡고 서쪽방향인 모슬포와 한림으로 바람을 쐬고 왔다. 절부암 앞에서 차귀도를 바라보니 먼 바다로 나가고 싶다. 협재해수욕장에도 관광객들이 백사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노리매공원에서는 푸른 매실을 열려있고, 형형색색으로 피어 있는 장미꽃을 탐했다.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다 오후 2시 쯤 되니까 살며시 졸음이 밀려온다. 담팔수나무 그늘진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인다.

 

 

 

 

 

 공군에 입대하여 자대에 배치되었다. “의장대”라는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데, 군기가 무척세서 쫄다보니 살 떨리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동기가 6명이어서 힘을 합쳐서 그런대로 견디어 나갔다. 군번이 빠른 명호가 선임자로서 보고할 때마다 실수가 잦아서 두둘겨 맞으니까 나머지 동기들은 대개 원산폭격자세로 있거나 그냥 지나갔다. 나의 서열은 다섯 번째 였다.

 입대하여 기초군사교육을 교육사령부인 대전에서 한 달반 가량 받은 후, 3박 4일 휴가를 다녀왔다. 배속 받은 8639부대는 서울에 있었다. 이제 까지의 서울에서 생활은 군대에 있을 그 시절 뿐이다. 자대에서는 한 달가량 의장대의 동작행사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고참 병장 중의 한명이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제일 힘이 드는 것은 총 돌리기였다. 15번을 입으로 구령하면서 돌리게 되는데, 총을 돌리기 위한 순서가 있어서 실제로는 13바퀴를 돌리게 된다. 숙달되기 전까지는 총기를 땅에 떨어뜨리기 일쑤다. 그래서 저녁에 내무반에서 군대담요를 펴놓고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되었다. 때때로 총을 잘 돌리는 고참의 시범을 보면 신비스럽게 잘 돌려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용했던 총은 M16A1소총으로 무게가 3.18Kg이 나가므로 가볍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대하고 나서 하늘같은 고참들을 만나서 말을 들어보니, 자기네는 4.3Kg이나 되는 M1소총을 떡 주무르는 듯이 돌렸다고 말도 말라고 한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때는, 이등병은 6개월, 일등병은 10개월, 상병은 8개월, 병장은 11개월, 도합35개월을 복무하였다. 한 호봉은 한 달을 뜻한다. 한 호봉 차이라고 해도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고참 스승에게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온 종일 훈련을 받고 나면, 총기를 병기실장에게 반납해야 한다. 당시 병기실장은 병장을 갓 달았는데, 의장대의 군기는 병기실장으로 부터 나온다고 할 정도로 서슬이 시퍼랬다. 총기를 깨끗이 닦은 다음, 동기들 6명이 총을 들고 병기실로 간다. 선임자가 총기반납보고를 하면 총기를 일일이 검열을 한 다음, 총기를 제자리에 놓고 벽에 기대 서라고 한다. 그러면 병기실장이 총기청소가 형편없이 됐다고 주먹에 장갑을 낀 다음, 배나 가슴을 때리게 된다. 한 대라도 맞아보면 알겠지만, 엄청난 통증과 함께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래도 잘 참는 동기는 10대 가량 버티는데, 나는 3대 정도 맞으면 얼굴에 표시가 나는지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

 ‘닭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처럼 어김없이 한 달이 갔다. 기존의 고참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동작시범이었겠지만, 우리 동기 6명은 피땀어린 노력과 고통 속에서 수료식을 마치고 3박 4일간의 특박을 명 받아서 부모님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공군 의장대에 계셨나봐요..
한 멋짐, 하셨겠는데요? ㅎ

그늘진 곳에 차를 세우고 오수를 즐기신 망중한의 여유가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
의장행사 대열에 끼어있으면 덩달아 멋져집니다.
하지만 혼자 있으면 글쎄요~~~

점심시간에 15분 정도의 달콤한 오수는
건강에 매우 좋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한번 해보셔요.
어명이오 ~~ ^^
공군의장대...사람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았군
미완성인 인생을 지금도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좋아하는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이
교재에 나와있네요.
어제 저녁에 연주하며 불러보았습니다.
왼손 장지 손가락이 작업 중에 칼에 약간 베었는데
아직도 따끔거린답니다. ^^
의장대는 군기가 쎄기로 유명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키도 크고 잘 생겨야 하는 걸로 알고 있구요.

후방 부대에 근무했지만 제가 복무한 부대도 군기가 쎘습니다.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지 않고
엎드려 바쳐 상태에서 구둣발로 가슴을 찼는데요...
지금도 비만 오면 가슴에 통증이 남아 있는게 그때의 흔적인 듯합니다.
요즘은 구타가 사라졌겠지요...
키가 크고 덩치가 있다면 남자다운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장요원을 차출할 때에는 주로 키 위주로
봅니다. 다만 안경을 끼면 안되는까
시력도 보리라 생각합니다.

구타를 해도 주먹으로 가슴이나 배를
때리는 것 보다 엎드려 뻗쳐 상태에서 군화로
가슴을 차는 것은 더 야비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후유증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구타가 없는 세상이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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