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춘농로중 2014. 6. 17. 18:54

 

 

 

                                                                                                           안희정 지음/위즈덤하우스

 

제1장 더 좋은 민주주의

 

*승자 또한 이긴 자의 오만함을 버리고 관용과 겸손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승자가 스스로에게는 관대했던 반면 패자에게는 냉정하고 엄격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래서는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승자는 스스로를 엄격한 기준 아래 두어야 한다. 또 패자가 영원히 일서서지 못하도록 압박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신이다. - 50쪽

 

 

제2장 한국 정치가 가야 할 길

*기업은 불량 제품을 리콜해주지만 정치인이 불량정책을 리콜해주는 일은 없었다. 기업은 자사 제품의 평가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반면 정치는 ‘아니면 말고’식으로 내빼는 행태만 보여주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책임지는 정치가 뿌리를 내려야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회주의적인 정당 정치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 78쪽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곧바로 새누리당의 장기 집권으로 이어진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장미는 5월에 피어나고 7월이 되면 목백일홍이 전국을 뒤덮는다. 토양과 절기에 맞추어 꽃이 피어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또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 해도 화무십일홍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꽃이 아직 피어나지 않았다 해서 다른 꽃을 시기할 일은 아니다. 제철이 되면 꽃은 피어나게 되어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느 계절에 피어날 꽃인지를 파악하고 준비하면 된다. 자신들의 꽃을 피워낼 계절을 준비하는 것이다. 진보 진영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훌륭한 포도밭이 있다. 이 포도밭에서 진보 진영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향의 포도를 생산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만든 토양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118쪽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으로 불교인들의 추앙을 받은 성철스님은, 1981년에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고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1984년 처음으로 세상 바깥으로 나오신 일이 있었다. 당시 신군부의 폭압에 짓눌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고승께서 그들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을 것으로 기대했다. 기자들이 스님에게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묻자 성철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속세의 시비를 떠나 있는 사람입니다.”

~중략~

물론 속인인 나로서는 또다시 그때와 같은 시절이 온다면 독재와의 투쟁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며 편을 가르면 끝없는 적개심과 적대적 투쟁만이 남을 뿐이다. 옳고 그름, 불의와 정의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 상대방과 타협하면서 공통분모를 찾는 과정을 즐기는 것, 이것이 ‘더 좋은 민주주의’다. -128쪽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재탄생시킨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도 주목해야 한다. IMF의 관리를 받던 냉혹한 상황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정보화 사회에 대한 평소의 비전을 국가 정책으로 승화시켰다. 4만개의 벤처 가운데 1개만 성공해도 미래의 먹거리가 된다는 신념이었다. 당시 뿌려놓은 씨앗이 자라나면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통신부를 해체하면서 IT 성장 잠재력을 크게 훼손했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IT 산업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허약해지는 새로운 문제가 야기된 것은 사실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그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곧 새로운 성장 동력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제 역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장기 비전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진짜 위기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137쪽

 

제3장 정부가 넘어야 할 세 고개

 

*자율적인 시장 시스템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는 우선 시장 친화적인 민주주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기능을 새롭게 손질하는 등 내적인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면 기업 권력에 의해 시장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시장의 자율은 존중하되 민주적인 통제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자기 책임에 기초한 국가 공동체다.

~중략~

지난 정권들이 펼친 정책 가운데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단위 당 생산 원가로 따지면 석유가 전기보다 싸다. 그런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전기요금을 낮추자 전기 난방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국 전기 소비가 증가하면서 자원의 낭비와 발전 설비 부족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 144쪽

 

제4장 무엇이 우리를 다시 희망으로 이끌어줄까

 

*대한민국의 위기를 가져온 첫 번째 원인은 우리의 가슴에 미래로 나아갈 동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큰 동력은 한과 서러움이었다.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조국을 떠나 서러움과 눈물로 절치부심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아버지의 세대는 한국전쟁의 비극과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겪으며 생존을 위한 고통에 시달렸다. - 195쪽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적 번영과 ‘인권과 자유’라는 민주주의 발전을 이룬 역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식민지로부터 벗어난 나라 가운데 이 두 가지 발전을 함께 이룬 나라는 없다. 이것이 결국 코리안 드림을 만드는 바탕이 될 수 있다. - 197쪽

 

*민주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이기심이 주로 전쟁, 폭력, 수탈, 계급투쟁의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모두에게 유리한 게임은 있을 수 없었다. 동양에서는 덕치德治, 천심, 봉건적 윤리론으로 이기심을 초월하고자 했지만, 의도와 달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동양의 민본주의는 사실 민주주의의 철학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현대 사회는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고전하고 있다. -200쪽

 

*나의 결론은 분명하다. 냉전시대의 대결주의로는 새로운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리더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중국이 막강한 국력으로 패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모델로 삼기 어려운 특수한 정치 체제하에 있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과거의 침략사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지배력만 키우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는 물론 동남아에서도 리더 국가의 지위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의 리더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에서 벗어나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발전 모델의 소프트파워가 있다. 대한민국이 저평가될 유일한 요소는 남북 대치 상황이다.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관리되고 개선되어 나간다면 대한민국은 아시아 각국이 추구할 발전 모델로 부상할 것임에 틀림없다. -208쪽

 

*새로운 성장 전략은 사람에 대한 투자에서 찾아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우리에게는 사람이 유일한 자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사람에 대한 투자를 확실히 하는 나라가 성공하는 추세인 만큼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211쪽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장한다. 이는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이 펼쳐온 전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담론을 매개로 한 개방 전략을 추구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 활성화와 정보 통신 인프라의 구축에 힘썼다. 노무현 정부는 생산요소 투입형 경제를 지양하면서 R&D 투자를 확대하는 혁신경제를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만이 4대강 등 토목 사업을 내세우며 이러한 흐름을 후퇴시겼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역대 정부의 정책과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럴 듯한 이름으로 정책 아젠다를 차별화하는 일이 아니다. 값싼 노동력에 기반을 둔 수출 주도형 국가 경제 전략을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일이다. -213쪽

 

 

 

 

*교육 예산을 초등학교 미만으로 집중시키자. 0세부터 5세까지의 아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높은 수당과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재원은 물론 교원 제도, 나아가 의무 공교육 체계도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가장 적극적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이다. - 214쪽

 

*그러면 ‘열심히 하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 근면과 성실이 최고의 가치였던 산업화 시대의 그늘을 뛰어넘을 수 있다. 비교의 대상을 따라잡기 위해 달리는 사람은 힘이 들기만 할뿐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자신만의 온전한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남다른 치열함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일정한 수준에 올라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29쪽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에서 기업의 현실은 항상 위험에 직면해 있다. 가능하면 정부에 기대고 싶어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는 기업 스스로도 나아가 나라 전체도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렵다. 기업가의 도전 정신만이 코리안 드림을 만들 수 있다. 사자는 초식동물의 발에 걷어 채여 큰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공의 신화는 그러한 자세에서 탄생된다. 그런 자세로 성공해서 부자가 된 기업인이라면 이 사회로부터 존경과 박수를 받을 것이다. 시장에서의 위험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정부에 떠넘길 일이 아니다. -236쪽

 

제5장 ‘코리아 리스크’를 넘어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중국의 왕조가 교체되면 국체가 뒤바뀌기도 했고, 그에 대한 입장 때문에 위정자들이 분열과 대립으로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이러한 모습을 사대주의 역사라고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변방의 역사를 지킬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변방의 강역을 보존하기 위해 굴욕을 마다하지 않은 이 땅의 지도자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사대의 외교술이 없었다면 조선시대의 어느 한 순간도 이 땅 위에서 온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53쪽

 

*1968년 울진·삼척 공비 침투 사건 때에는 가족을 잃은 유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대북 규탄뿐이었다. 하지만 2010년에 희생된 천안함 46위의 유해 앞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남북 관계의 불안 요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이제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관리가 가능한 분단 구조를 풀어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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