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피는 창가

춘농로중 2014. 8. 8. 14:04

 

 

 

  1984년 3월 1일! 조국의 부름을 받아 공군에 입대하였다. 전 년도에 육군에서 영장이 나와 신체검사를 받은 결과 갑종을 받아 대기 중 이었다. 공군으로 입대한 이유는 주위에 있는 선배들이 공군으로 많이 입대하여 공군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육군과는 다른 세련된 복장과 외출이나 외박을 자주 나오는 점도 한 몫 했다. 제대한 바로 위의 형님이 육군으로 포천에서 복무했는데, 얼마나 구타에 시달렸는지 매일 저녁마다 구타를 당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교육사령부에서 한 달여의 기본군사훈련을 받은 후,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 3박 4일간의 특박을 나갔다. 귀대할 때에는 내가 소속되어 있던 1구대 1내무반의 동기들끼리 음식점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오기로 했다. 당시 대전 시내 은행동에 있는 돌구이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돌 판을 가스불판위에 비스듬히 올려놓아 삼겹살이 구어지면서 나오는 기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고기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귀대하면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언제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실컷 먹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니 돌판 위에 밥을 볶아 주는 데 그 또한 고소하며 맛있다. 그 식당은 동치미 국이 또한 별미다.

 나는 행정특기를 지원하여 인사행정이나 보급대, 지원대 등에서 복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훈련기간 도중에 연병장에서 노란말똥구리 계급장(준위)을 단 분이 왔다. 돌아다니면서 살펴보더니 7~8명을 차출하는 것이었다. 불려 나온 사람들의 됨됨이를 보니, 공통적으로 키가 크고 안경을 쓰지 않았다. 한 사람씩 차렷 자세를 취해보라고 하더니 대열로 들어가라고 한다.

 

 서대전역에서 밤에 군용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계속 갔다. 동기6명이 우리는 의장대에 배속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려움 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때로는 졸기도 했다.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동이 터서 훤했다. 비는 구질구질 내리는데 나를 기다리는 것은 군용트럭이었다. 그 곳에 올라 타니 제법 먼 거리를 갔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대에 도착하니 작대기를 세 개 달고 있는 사병이 우리 동기를 인수하여 데리고 간 곳이 의장대였다.

 의장대에서 의장기본동작훈련을 받은 다음 내무반에 배치되었다. 1내무반에서 3내무반까지 복도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1명씩 가게 되었다. 나는 2내무반의 가장 끝부분에서 관물 함과 침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제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내무반장급의 고참들은 이제 갓 입대한 우리 동기들을 보고는

“야! 니들 앞으로 군대생활 몇 개월 더해야 돼!” 물어보고는 우리가 “이병 김개동. 지금까지 2개월 했으니까 앞으로 33개월 더해야 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그래! 나 같으면 자살하고 말겠다.” 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드디어 불침번을 서게 되었다. 불침번은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두 시간씩 4명이 서게 된다. 1번립에서 4번립으로 부른다. 나 같은 졸병은 4번립에 배치되어 기상나팔이 울리기 5분 전에 각 내무반에 돌아다니며 말단들을 미리 깨워 병영의 아침이 시작된다.

 그 날도 4번립에 배치되었다. 3번립은 나보다 한 달 고참이었다. 경상도 사나이로 나와는 성씨가 같아 서로 말은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나의 성씨는 우리나라에 14대 성으로 그리 흔하지도 드물지도 않다. 당시 의장대원 100여명 중에도 3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3번립은 의장병으로서는 자세가 엉거주춤하여 시골에서 지게질하다가 왔느냐는 소리도 가끔 들었지만 마음씨가 참 좋았다. 나를 흔들어 깨워서 근무복장을 하고 나갔다. 3번립은 나에게 두 시간 동안 서 있으려면 힘드니까 내무반 침상에다 모포를 깔고 누워 있다가 누가 일어나거나 움직이면 재빨리 요령껏 대처하라고 하며 들어갔다.

 나는 졸병인데다 군기가 바짝 들어서 졸리거나 힘들지도 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 불침번의 막중한 임무를 망각한 채, 3번립의 말대로 행동했다. 그렇게 얼마나 누워있었나 인기척이 나서 재빨리 일어나려는 찰나 딱 걸렸다. 마침 3내무반장이 잠에서 깬 것이었다. 별명이 “황소”였는데, 아침 점호시간에 찜빠(군대속어로 잘못이나 에러)를 잡았다.

 그 날 불침번을 섰던 4명은 체육실에 집합하여 원산폭격을 받으며 하나하나 가슴팍을 얻어맞아야 했다. 나는 주범이기에 더욱 집중적으로 맞았다. 점심 때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뜨거운 국물을 먹으니까 가슴이 화끈거렸을 정도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3번립과는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제대하고 한 참 지나서 소문을 들어보니 나에게 찜빠를 주었던 “황소”라는 고참은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한 동안 내가 잘못을 범하고도 애매하게 황소 고참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불침번 임무의 중요함을 깨우쳐준 그 분에게 명복을 빌 뿐이다.

 

 올 해들어 22사단 사건이나 윤일병 사건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안타깝게 한다. 한 참 전에 사병이 장교를 구타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났고, 구타는 근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군대폭력을 근절시키는 것은 요원한 모양이다. 폭력에 너그럽고 감시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폭력피해자의 앞길은 극히 제한돼 있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윤일병처럼 참고 견디다 변을 당하거나, 얼마 전에 벌어진 22사단의 임병장처럼 총기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님들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쾌적한 병영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읽으면서 저의 옛군대 생활을 회상해보았습니다.
자대 배치받은 후 처음으로 외곽보초를 나갔는데 함께 근무를 선 이가
제대를 일년 정도 앞둔 하사였습니다.
단풍하사라고 해서 상병에서 시작하여 하사로 제대하는 의무 복무제가 당시에는 있었지요.
제대가 얼마 남았느냐고 묻길래 남은 개월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너같으면 자살하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공주사대 다니다 온 친구였는데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양 미간 사이가 심하게 벌어진데다
눈 바로 아래 검은 점이 있어 서늘한 느낌의 공포를 주던 고참이었습니다.
추석날 외곽보초 근무를 선 후 취사장에 혼자 밥먹으러 갔는데
깜깜한 취사장에 누군가가 혼자서 국통의 고기 건더기를 건저먹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양반이었지요. 화들짝 경례를 하고 취사장을 나왔습니다.
그날 저는 저녁을 굶었습니다.

몇 달 후 그가 제대를 하는데,
부대원들이 모두 모여 내무반에서 위병소까지 도열해서 환송했지요.
그때가 그가 제 손을 잡으며 "너 oo대 다니다 왔다고 했지? 내게 한 번 찾아와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신문과 방송을 달구는 기사에다 춘농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그 시절 그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먹는데에는 관대한 법인데
단풍하사에게 위협감을 느꼈나봅니다.
그렇다고 추석날에 단식을 했으니
밤하늘에 떠있는 한가위를 보면서
고향생각을 많이 했겠습니다. ^^
단풍하사가 나름대로 언덕선생님에게
한 번 찾아오라고 한 것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찾아가셨으면 상다리가 휘어지게 ~~~ ^^
키가 훤칠~ 하시고 인물도 좋으셨나 봅니다.
그러니 착출이 되셨겠지요. ^^

제 막내동생이 군생활할때, 휴가 나오거나 면회를 갔을때마다 구타는 없냐고 물어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믿고 다행이라 여겼는데, 제대 후에 하는 말,
왜 구타가 없겠느냐고...
쫄병시절에는 이런다고 때리고 저런다고 때리고 그랬지만
다행히도 심하게 맞거나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아들을 군에 보내야 하는 시기가 멀지 않아, 벌써부터 심란합니다..
ㅎㅎ 인물이 좋아서 차출된 것은 아니구요.
차출되어 의장대 복장을 하니까 옷이 날개라고
못생긴 부분이 보완되는 것 같았습니다. ^^

막내동생이면 지성씨(=고용주)를 말씀하시나요?
누님이 걱정하지 않게 말을 잘한
믿음직한 사나이이군요.

아드님이 군대가기 전에 개선이 되리라 믿습니다.
휴대폰을 소지하는 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
푸하하하하~ (저, 빵 터졌습니다~ ㅎ)
지성씨(=고용주) 맞습니다. ㅎㅎㅎ

그러게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그랬나봐요.
여기는 그렇게 때리는 놈들 없다고.... 그러더니..

제 아들이 군대 가기전에 개선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듯해요.
제 아들 지금 고3이어요...흑흑~ ㅎ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아르오티시나 의경, 산업체근로자 등등
운동선수로 메달을 따는 것도 ^^

아드님이 군 생활할 때에는 충분히 개선
되리라 믿습니다.
귀여운 멍뭉이라 사진만 보고 갑니다.
너무 늦은시간 방문이라....ㅎㅎ
원래 예술가는 야행성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동거니는 불침번을 잘 서나요?
호두는 냥이들의 소리가 나면
용서가 없습니다.
요즘 계속해서 비가 내리니까
데리고 놀러 나가지 못해서 마음이
찡합니다. ^^
자유분방한 예술가나 작가들은 주로 밤늦게
작업하는 심야형 인간이라는데
동건엄마도 그런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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