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춘농로중 2015. 6. 15. 18:02

 

 

 

 

(마음이 고운 사람만이 물찻오름의 물이 보인다.)

 

 뱃사공 곽리자고는 새벽에 배를 젓다가 어느 미친 사내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술병을 낀 채 강을 건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아내가 따라가면서 말렸지만 결국 남편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아내가 하늘에 대고 흐느껴 울다가 공후(하프와 비슷한 동양의 옛 현악기)를 치면서 노래한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그예 물을 건너시네.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

-이하 청소년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두리미디어. 2009)

 

 노래를 마치고 그녀 역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었다. 곽리자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니 여옥이 슬퍼하며 공후를 치면서 곡조대로 재현한다. 이 노래를 듣는 자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여옥이 이 곡을 이웃 여인 여용에게 전하니 이름 하여 공후인이라 한다.

 공후인 이야기는 요즘과 같은 실업 시대에 실의에 빠져 삶을 마감하는 남편이 연상되는 작품으로 우리가 사는 현대에도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처절하고도 비통하다.

 

 2010년 봄이었다. 1998IMF의 직격탄을 맞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 이 사업, 저 사업을 벌이다가 접고 나서 직장을 잡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오게 된 이유이다. 내려온 달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직장에서 급여가 나오지 않았다. 급한 불을 꺼야 하기에 우선 우리 부부는 아르바이트를 구하여 녹록한 나날을 보냈다.

 의기소침해서 우울하게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기분도 전환할 겸, 남원읍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에서 고사리축제가 열린다고 하여 가보게 되었다.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줄지어 있는 부스에서는 먹거리를 팔았다. 귀를 쟁쟁하게 울리는 스피커에서는 연신 유행가가 울려나온다. 오로지 고사리에만 관심이 있는 우리 부부는 주변의 숲에서 고사리를 꺾으려고 둘러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헛김만 내고 돌아오는 길에 사려니 숲길을 걷게 되었다.

 들어서서 조금 걷다보니 강렬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더덕향이라고 할까? 노린재나무와 산초나무에서 나는 향과 비슷한 것도 같고, 누린내나 역한 된장냄새 같기도 하다. 냄새는 못 맡아보았지만 요즘 잘나가는 프로야구의 마리한화가 이런 향기일까? 계속해서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정한 구역에 가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사려니 숲길 안에서 용케 고사리가 많이 있는 곳을 찾아서 신나게 꺾어올 수 있었다.

  2015년 6월 4일, 우리 부부는 0750분 쯤 붉은 오름 입구를 통과하여 삼나무 숲길을 걸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삼나무 숲이 가려주어 그늘 속으로 가는 마음이 상쾌하다. 물찻오름을 향해 걸어가는 오늘도 간간이 그 향기가 난다. 이제 제주도에서 제법 살아서 익숙해 졌나보다. 이름 모를 그 향이 더덕향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가려는 먼발치에 노루 모자가 산책을 나왔다. 우리를 바라보더니 눈을 마주치니 이내 숲으로 몸을 숨긴다. 물찻오름을 거의 다 갔을 때였다. 갑자기 길 옆에 있는 대 숲속에서 호박이 덩굴째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쏜살같이 달아나는 소리가 난다. 늦잠을 자던 노루가 놀래서 일으킨 소동이다. 아침 일찍 산행을 하니 이런 재미도 있다.

 물찻오름 입구에 섰다.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때죽나무, 산수국, 산딸나무, 박쥐나무, 독초인천남성이 많이 보인다. 발음이 첫남성과 같이 들린다. 평소에 통제되다보니 숲이 잘 우거져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숲 해설사 세 명과 일반인 두명이 먼저 올라와 있다. 한라산 정상이 가까이 보인다. 서귀포에서 바라보면 사라오름 옆에 제법 높은 오름이 있다. 정상에 있는 안내사진을 볼 때 성널오름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물찻오름의 물을 보려면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일반인 두명과 우리 부부, 숲 해설사, 다섯명이 함께 분화구 앞에 섰다. 제주도에 오름이 368개가 있는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아홉 군데라고 한다. 숲이 우거져서 고여 있는 물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사려니의 의미대로 신령스럽고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숲 해설사의 해설을 들은 다음 질문시간에 어떤 비싼 향수보다 향기로운 그 향은 어느 식물에서 나느냐고 물었다. 상산나무라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속도를 낼 수 있다. 준비해 간 한라봉을 배낭에서 꺼내 껍질을 벗겼다. 아내 입에다 한라봉 알맹이 하나를 쏙 집어 넣어주었다. 나도 알맹이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 우물우물 먹었다. 알콤달콤 오묘한 한라봉의 맛에 왕복 세 시간의 산행을 기쁘게 마무리했다.

 

 

 

 

 

 

 

 

 

 

한라산 정상

 

(물찻오름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느낀다)

물찻오름....
숲의 그 향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비가 좀 왔습니까?
중부지방은 물론이고 이곳 남부 지방도 두 달 동안 비가 오질 않아 모두들 아우성입니다. ㅠㅠ
사려니 숲길의 비자림로입구로 들어와서 걷다보면
그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 강렬하여 처음에는 약간의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은 친해졌는지 그 향기가 기다려지기도 하고
직접 맡으러 가고 싶습니다.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주도는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내일부터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올해는 비가 적당히 내려서 육지에서 가뭄에 고통받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