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춘농로중 2016. 5. 23. 09:37

5/1 일요일. 셋째날

 

  스위스에서 이틀째 밤을 보냈다.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내린다. 트렁크를 호텔에 맡기고 나서 우산을 쓰고 “빈사의 사자상”을 보러 나갔다. 전철은 구 시가지를 유유히 빠져나와 루체른 호수를 지난다. 오래된 목조교인 카펠교가 더욱 낭만적으로 보인다.

  호프교회 앞에서 내려 “빈사의 사자상”까지 걸어갔다. 마크 트웨인은 이 빈사의 사자상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저미는 바위조각이라고 표현했다.



 

 스위스는 어지간히도 가난한 나라였다. 척박한 알프스 산골짜기에서 소와 양을 방목하거나 남자들은 용병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 외에는 달리 돈을 벌 재간이 없었다.

  1792년 8월 10일 프랑스 혁명으로 튈르리 궁에 감금됐던 루이 16세의 가족들이 도주를 시도했을 때 그 궁을 지키다 몰살당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해 1821년 덴마크의 조각가 토어발트젠이 산기슭의 암석위에 만든 것이다.

  프랑스 혁명 때 자신들의 숫자에 몇 배나 되는 시민군과 대치하며 예견된 죽음을 선택했던 이유는 ‘충성과 신의’의 명성을 지켜 후대에게 생존의 유일한 방편이던 용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스위스 용병의 용맹을 기념하기 위한 것보다는 후손의 생계를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이자 친족이었던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눈물 어린 묘비다.


  발걸음을 옮겨 트램을 타고 로젠가르트 미술관으로 향했다. 루체른 중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피카소의 작품 32점과 파울 클레의 작품 125점을 포함해 보나르, 뷔야르, 세잔, 샤갈, 칸딘스키, 마티스, 미로, 모네 등 23인의 작품 300점 등 모던 아트의 거장들이 미술관 건물의 육중한 벽돌을 휘감고 있다.*

  로젠가르트미술관은 옛날에 베를린은행으로 쓰이던 건물을 구입하여 미술관에 알맞게 개조한 곳이다. 한 때 은행원이었던 나로서는 우리나라 은행 건물 구조의 단조로움에서 아기자기하고 우아한 스위스은행의 구조를 보았다.

  1층은 피카소만의 공간이다. 첫 번째 방에는 피카소의 드로잉을 모아 놓았다. 두 번째 방에는 피카소의 두 연인이었던 마리 테랏와 도라 마르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피카소의 딸이 배를 타고 한가롭게 노니는 그림도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특이한 주제의 피카소 작품 몇 점이 있는 방도 있다.

  2층에서는 인상파를 비롯한 근대 미술의 보석 같은 작품을 고루 만날 수 있었다. 모네,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을 감상했다. 학교에 다닐 때 미술책에서 보던 이름들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다. 지하는 폴 클레의 공간이었다.

 


 미술관을 나와서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루체른 중앙역으로 갔다. 골든패스라인은 루체른에서 인터라켄, 츠바이짐멘을 거쳐 몽트뢰까지이다. 스위스의 초원과 들판, 호수의 풍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기차이다.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향한다.

  비 온 뒤라 산의 골짜기에서 폭포가 형성되어 보기 좋았다. 기차 안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해와 두 딸들은 연신 카메라셔터를 누른다. 튠즈호수를 지나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했다.

쿱에 들러 시장을 보는데 우리나라의 제품으로는 유일하게 ‘신라면’이 눈에 띈다. 사발면 크기로 우리화폐로 환산해보니 3천 원 정도인데 스위스에서 보니 반가웠다.


*스위스 스케치 박윤정 컬처그라퍼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