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춘농로중 2018. 9. 21. 19:47

 




 북한군 의장대 대장이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의장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라고 보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몇 일 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환영행사 중의 한 장면이다.
 의장대는 중세 때 서양에서 국왕이 다른 나라 국왕에게 도열한 군대를 보여준 데서 출발했다. 장엄한 군기로 전의를 상실케 하면서 상대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는 일석이조의 이벤트였다. 국가 원수나 귀빈 등을 맞이할 때 의장대의 사열을 하는 문화는 역시 서유럽의 전통을 본딴 것이다. 의장대는 가급적 그 나라의 전통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몇몇 식민지 출신 국가에선 이것이 식민지 시절의 군복이나 군장류의 디자인이 반영되기도 한다.
 칼 같은 기상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의장대는 ‘대한민국 군대의 얼굴’이라고 불린다. 180cm가 넘는 늘씬한 키와 훤칠한 외모의 의장대원들이 끊임없는 연습으로 만들어 낸 기수와 의장 사열, 화려한 퍼포먼스 등은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입대할 때 만해도 육군에서 전역한 형의 얘기를 들어 보면, 부대 내의 만연된 폭력으로 가혹행위와 구타를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육군에서 징집영장이 나오기 전에, 나름 "신사의 군대" 같은 공군에 자원입대하였다. 특기는 일반 행정병으로 지원했지만, 교육사 훈련과정 중에 한 부사관이 와서 호명을 하는데, 그 안에 내 이름도 불렀다. 이렇게 해서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의장대로 차출되었다.
 부대 회식 때 불러대는 “공군의장대가” 가사 속에 들어있는 “눈 뜨면 훈련에, 저물면 집합에”를 반복하였다. 육군을 피해서 공군으로 왔지만, 쓰레기 차 피하려다 똥차 만난 격이었다. 키만 컸지 허접했던 과거에서 탈피하여 최단시간 안에 엄정한 군기와 절도, 세련된 복장으로 대한민국의 얼굴이 되었다.
 당시의 국군통수권자는 구국의 일념으로 직속상관을 지하에 가두고, 체육관에 추종자를 모아놓고 자기를 뽑게 만들어 투표로 당선된 장군출신의 대통령이었다. 오로지 대머리란 이유만으로 이주일과 모 탈렌트를 못나오게도 하였다. 지금도 통장에는 29만원 밖에 없다고 하는데, 29만원의 기적을 선보인다. 자대에 배치하자마자 내무반에서 “직속상관 관등성명”의 첫째 칸에 “대통령 000”을 암기해야 했다.
 1982년 8월 이 분이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캐나다를 공식 방문하여 태평양지역 국가들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도록 함께 노력하자며 정상회담을 하였다. 귀국 환영행사를 하러 김포공항에 가서 의장대사열하는 중에 나로서는 역대 대통령 중에 처음으로 함께 하는 사진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의장병인 나를 평가할 때에는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겠지만, 나를 아는 동기나 선후배들은 나의 외모나 서투르게 돌리는 “돌려 총” 실력에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증거가 있지 않은가. 의장대의 모범으로서 맨 앞줄에 서서 칼같이 행사에 임하고 있다.


 가끔 “국가대표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스포츠 종목이 있다. 바둑은 아마 5단으로 이런 실력으로서는 국가대표는 커녕 군대표로 나가기도 어렵다. 마라톤도 아주 좋아했던 종목이다. 풀코스를 4시간에 주파하는 정도다. 매년 경주에서 열리는 동아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을 때 보면, 헬기를 동원하여 방송을 중계한다. 맨 먼저 프로급 선수들이 스타트를 끊는 데, 이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달리는 속도가 헬기를 쫒아가는 것 마냥 바람처럼 내달렸다. 나는 면민체육대회에서 고작 준우승하는 것이 최고였으니, 국가대표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내 평생에 국가대표로 활동한 적이 있다. 바로 공군의장대 시기였다. 외국 귀빈이 방한하면, 의장대가 공항에서 처음 맞이하는데다 청와대 공식 환영식에서 국군을 대표해 의전을 수행하고, 다시 환송식까지 열어주는 부대니까 국가 대표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국가 대표까지 했으니 보람과 추억이 있는 시기였다.


좋은 곳에서 근무하셨네요.
저도 해보고 싶었는데.
내무 생활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일단 멋지고 회려하고 눈에 확 띄니까 사람들이 별스럽게 보는 건 사실입니다.
당시 의장대에 계셨다면 대단하거였지요.
하다못해 포병출신이었던 저도 광주 민주화 항쟁에 가서도 후방에서 지원을 할 만큼 대접(?)을 받았는데 의장대면 훈련은 좀 힘들었더라도 폼나는 생활은 했으니까 같은 군인이라면 부러워했을만도 합니다.

저렇게 대접을 받던 29만원짜리 옛날 대통령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냥...인생무상입니다.
그야말로 '폼생폼사'입니다. 군기가 센 부대는 졸병때는 힘들지만 고참이 되면 졸병들이 구두를 닦아주고 옷도 각지게 다려주어서 외출할라치면 기분이 참 좋지요. 구두에 광이 나서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지고 데이트 하는 아가씨가 무슨 색깔을 입고 나왔는지도 비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모닝써! 선배님 반갑습니다 국방부공군의장대에 복무하다 작년에 전역을 했습니다! 반갑습니당!
ㅎ ㅎ 후배님! 반갑습니다.
"모닝 써"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전역하다 오래되어서 ~~
432기 후배 되네요.
오늘은 하늘이 맑고 좋은 날입니다.
좋은 날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