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춘농로중 2018. 11. 14. 13:15



  1990년 쯤 대전에 살 때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 다니는 주경야독의 시절이었다. 예비역들이 자주 모여 어울리다 보니 7명이 모임을 만들었다. 애사 때에는 상여를 메주기로 하고, 평소에는 친목을 도모하기로 회칙을 만들었다.

  여름 방학이 되어 대천해수욕장에서 각 회원의 가족과 함께 1박 2일 캠프를 열었다. 서해안에 있는 최대의 해수욕장! 해마다 머드 축제가 열리고 진흙탕에서 열리는 각 종 놀이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다.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회사에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일을 마치고 가니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탁 트인 바다에서 바다바람에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걸어 다녔다. 물 속으로 들어가니 발에 조그만 게와 불가사리가 자주 밟혔다. 백사장에서는 때때로 폭죽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한 참을 놀다가 예약해 놓은 민박집에 들어와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워서 상추에 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넣은 다음 우물우물 먹었다. 소주도 곁들여 마시니 다들 기분이 신나는 모양이다. 민박집 주인이 맛보라고 내준 게장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입맛을 자극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남자들은 한 방에 모여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창가에 마주앉아 밤새 속삭이네~“

윤형주 선생이 대천바다에서 지은 노래다.

우리는 이런 낭만도 없이

“대학동기 모여 친목을 도모하며

민박집 둘러앉아 밤새 화투치네~“

치는 중에 온갖 잡담과 웃음, 농담 등이 오가는 즐거움으로 왁자지껄하다. 친목도모와 스트레스 해소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날따라 나의 끗발은 식을 줄을 몰랐다. 좋은 패가 자주 들어오는데다, 수덕이 좋아 뻑해 놓은 것이 내게로 자주 떴고, 흔들고 쳐도 점수를 내서 두 배, 박 쐬우면 네 배로 받으며 계속 고~를 외치는 횟수가 많았다. 고스톱은 운칠기삼이라고 했다. 깔린 패와 숨겨진 패에서 나의 능력보다는 운으로 최대한의 기회를 얻었다. 나의 지갑으로 지폐가 두둑하게 흘러 들어왔다. “오고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우정”이라고 화투판의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그렇게 열을 내고 치다 보니 어느 새 먼동이 하얗게 찾아 왔다. 새벽 5시 쯤 판을 거두고 각 자의 방에 들어가 새벽잠을 잤다.


이튿날에는 바다로 나가 밤새 딴 돈으로 의기양양하게 파라솔과 튜브 간식 바나나보트타기 등의 비용을 전부 내면서 인심을 썼다. 한 친구는 돈을 잃고 지갑이 홀쭉해져서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곧 기분을 전환했다. 수영도 못하는 친구인데, 선글라스 너머로 비키니차림의 글래머를 훔쳐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함께 간 아내와 딸은 튜브를 끼고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나의 고스톱 실력은 이기는 횟수가 많은 편이었다. 어떤 때는 한 달간을 결산해보니 제법 딴 금액이 많았다.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에 자동차 학원에 들렀다. 운전 면허증이 없는 아내에게 수강증을 끊어 전해주었다. 아내는 운전학원에 다니며 연습해서 첫 번 째 시험에 실패했지만 공주시까지 가서 합격하여 면허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화투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졌다. 직원의 상가에서, 집들이에서, 계곡의 물놀이에서, 야유회에서, 직원체육대회 때는 후미진 곳에서, 명절 때, 등산가는 버스 안에서 등 화투 한 목에 세 명 이상만 있으면 판이 펼쳐졌고 거기에 군대 담요가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아내는 나의 이런 화투놀이에 질색을 한다. 그래서 되도록 자정까지 들어가려고 무진 애를 썼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도 화투얘기를 하면 손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밤을 늦게 들어왔다고 비난을 한다. 또 고스톱 규칙을 정할 때는 상한가를 정하여 돈을 잃은 사람이 부담이 가지 않도록 노름보다는 오락 쪽으로 했다.

 

 화투놀이를 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첫째로는 금쪽 같은 시간을 아무런 보람 없이 날려 보내게 된다. 화투를 치다보면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른다. 둘째는 건강에 백해무익하다. 대개 담배를 꼬나물고 심각하게 패를 읽어 나가는데 평소에 담배를 안 피던 나도 화투판에서는 제법 피우게 된다. 방 안에는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자세도 대개 철퍼덕하게 앉아서 팔을 휘두르는데 허리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가정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생각할 때 답이 없다. 네 번째는 노름 범주에 들어가기에 무리하는 사람은 돈 잃고 바보가 되고 가정도 파괴될 수 있다. 같이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 중에 이혼이나 별거의 위기를 겪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숙직하면서 고스톱을 치다가 적발되어서 인사위원회에서 견책을 받은 사람도 보았다.

 

 이렇게 즐겨하던 고스톱과 인연을 멀리했다. IMF 구제금융사태에서 직장과 함께 동반 퇴출이 계기였다. 눈앞이 깜깜한 마당에 한가하게 화투를 칠 여유가 없어졌다. 고스톱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1970년도부터 였다. 내가 고스톱을 처음 치던 시기가 1984년도 군에서 제대를 한 후였다. 1998년에 끊었으니 15년 동안 백해무익한 화투를 가까이 한 셈이다. 어떤 때는 괜히 직장문화가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영향도 적잖은 편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인기있는 놀이문화이니 말이다.

 


 흘러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다. 그 시간을 요즘 말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여 자기계발, 취미, 재테크 등으로 나의 관심사를 채웠었으면 얼마나 인생이 풍요로왔을까? 하지만 앞으로 살 날도 많지 않은가. 평생 동안 노래를 부르다가 뒤늦게 화투를 그려 그림대작논란을 일으킨 조영남은 “화투 오래 갖고 놀다 쫄딱 망했다”고 했다. 고스톱을 즐기며 보낸 시간은 지나간 시간 중에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 순간이다.


하하..
잘 치시다가 이제와서 그 무슨 섭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백해무익은 아니고 나름 정신수양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도 고스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쳤지요.
특히 상가집이나 친구들끼리 모였다하면 판을 벌렸는데 아내도 그 걸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시아버님 회투로 집안을 다 망쳤는데 당신도 그럴거냐, 아니다, 이 건 어디까지나 취미활동이다...
그동안 갈등도 있었지요.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상가집 가면 치고, 친구들 만나면 치고,처가에 가면 처가식구들 꼬셔서 또 치고..
하지만 제 나름대로 적정선을 지키려고 합니다.

사진반에 들면서 그 횟수가 많이 줄었어요.
이제 나이도 먹어가니 그만 두어야지요.
사실 그동안 들인 시간이 아깝긴 합니다.
ㅎㅎ 열무김치 선생님이나 저나 고스톱에 관한 애정은 매우 훌륭합니다.
저도 처가는 고스톱에 고자도 모르는 집안이었는데
제가 꼬셔서 고스톱을 유행시켰지요.
당시 교사이던 처숙부님까지 가세하여 밤을 하얗게 세운 적도 있구요.

이제는 끊은지 오래 되어서 감각이 없습니다.
더 좋고 재미있는 유익하기 까지 한 취미가
화투를 멀리 하게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