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춘농로중 2019. 8. 19. 13:44




  어렸을 적에 깊은 산골에 살았다. 바다는 볼 수 없기에 냇물에서 멱 감으며 놀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버스를 타려면 십리는 걸어 나가야 한다.

   어느 여름 날 저녁, 국민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TV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학교 주변의 동네 사람들은 모두 나와 보게 된다. 배터리로 영사기를 돌리는데, 어느 때엔 고장이 나서 영화도 못 보고 헛걸음을 칠 경우도 있다. 제목은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거린다. “소라의 노래”가 아닐까. 성인 영화였고 한 장면이 생각난다.

   한 여인이 있었다. 주인공이니 만큼 시골에선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다. 갑자기 장애인이 되어 상심이 컸다.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남자에게 버림받을 까봐 두려웠다. 어느 날 바닷가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뾰쪽 구두를 벗어 놓고, 목발에 의지해 바다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바닷물이 가슴까지 차올라 이제 곧 물에 빠질 찰라 였다. 다행히 애인이 그 장면에서 여인을 구조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 여인은 애인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모래 속에 숨어서 지켜보던 소라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입으로 물을 쭉 뿜어낸다.

 

  1998년 IMF 경제위기로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5개 은행이 강제로 퇴출되었다. 내가 몸담았던 충청은행도 명단에 끼었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고 나니 그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부에서는 어느 날까지 인수은행인 하나은행으로 복귀하면 채용해주겠다고 방송했다. 내가 소속한 지점에서는 지점장을 제외한 전 직원이 강제 퇴출에 반발하여 복귀하지 않고, 대전에서 경주에 있는 콘도로 향했다.

   경주가 아무리 신라의 고도이고 경치가 아름다워도 심난한 마음은 가라앉지가 않는다. 저녁에 서무계장과 몇 명이 인근에 있는 감포 바닷가에서 횟감을 사왔다. 쓰디 쓴 소주를 한 잔 들이 키고, 소라 회를 한 점 입에 넣으니 취기가 올라온다. 이튿날은 동해안을 따라 강릉에 있는 콘도로 갔다. 우리 지점 직원 30명 중 여행원 대부분은 하나은행에 재고용되었다.

   무엇을 하여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동서인 아우들이 “형님! 무창포해수욕장으로 바람이나 쐬고 오지요.” “그래 좋지” 우리 네 가족은 차를 몰고 일제히 출발했다. 무창포 해수욕장 텐트촌에 텐트를 치고 바닷바람을 맞았다. 파도소리가 찰랑찰랑 거리고 바다의 삐릿한 내음을 맡으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곧 이어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나를 위로해 주려는 아우들의 배려인지 밤새 군대 담뇨에 화투패를 패대기 친 결과 장원을 했다.

   새벽 바다가 고요했다. 다들 잠들어 있는 틈에 아내와 둘이 인근의 대천해수욕장 어항에 갔다. 물 좋은 횟거리가 나왔나 살펴보았다. 소라가 먹음직스럽다. 이만 원을 주니 소라를 얼마나 많이 주든지 마대 자루에 가득히 담아 준다. 소라와 광어를 사니 장사아주머니가 국물을 내면 시원하다며 조개를 한 바가지 담아 준다. 소라를 삶아서 딱지 바로 뒤에 있는 독을 제거한 뒤, 밥 상위에 내어 놓으니 모두들 맛있다고 하며 잘 먹는다.

 

  벌써 이십일 년이나 흘렀다. 요즘 들어 경제가 난리다. “한·일 무역 분쟁에 겹쳐 미국과 중국 간의 환율전쟁이 터졌다. 원화가치와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실업률(3.9%)이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급여 신청자는 10만 1000명을 기록해 월 7,000억 이상의 돈이 이들에게 지급된다. 20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16개월 연속 감소 중이다.”(중앙일보 게재)  실업과 고용, 재분배와 사회정의, 복지정책의 후퇴에 국민들은 절망한다. 정부는 “우리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고 근본적 성장세는 건전하다”라고 말한다. 막연한 낙관론이다. 21년 전 IMF 경제 위기 때의 김영삼 정부도 똑 같은 말을 했다.

 

  며칠 전 국내 유수의 0마트에 갔다. 식품코너를 돌아보는데 따로 판매대를 차려놓고 소라 회와 문어회를 팔고 있다. 21년 전 힘든 시기에 먹었던 소라회가 생각나서 먹을 만큼 사왔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피난 길에 “도로묵”을 먹고 그 맛이 천하일품이라 앞으로는 “‘은‘이라고 불러라“라고 명했단다. 전쟁이 끝난 후, 은어가 생각나서 다시 먹어보니 뻣뻣하고 맨숭맨숭해서 다시 도루묵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먹은 소라 회는 오늘도 여전히 맛이 좋다. 아내와 맥주를 한 잔씩 따르고 건배를 했다.


새벽에 밖을 나가보니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스치네요

작은 꽃잎 나뭇가지에 매달리면
파란 하늘은 더 높아질테지요~

소라의 노래/향수의 글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아름다운 가을 되세요^^
오후에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그래도 대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운 방안의 공기를 휘감아 갑니다.
오늘도 즐거우셨나요?
감사합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가을이 다시 오고
피고지는 꽃도 서서히 옷을 벗기 시작하네요

하시는일마다 성취의 기쁨 누리시고
좋은 날되세요^^
일기예보대로 소나기가 내리고 있습니다.
시원하게 내리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즐거운 저녁 되십시오~~~
어릴적 추억을 꺼내게 하시네요
우리 동네에도 전기가 안들어와 초등학교 3학년때인가 전기 들어왔을때 그 느낌
지금도 생생합니다
초 3때 전기가 들어왔으면 그래도 혜택을 빨리 누린 셈이네요.
가을에 탈곡을 하거나 보린바심을 할 때
전기불을 켜보니까 얼마나 밝던지~~~
대개 보리바심은 밤에 하게 되드라고요.
감사합니다.
글을 어떻게 이렇게잘풀어내세요 능력자세요
미욱한 글을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고향풍경이 저와 비숫하네요.
저도 5학년 때 다른지역으로 이사갔는데 그곳에는 전기도 들어오고 공동수도도 있더라고요.
마을회관에서 타잔을 보곤 했었지요.
저도 소라를 무척좋아합니다.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덕적도 갔을 때 항구에서 사온 소라를
삶아서 먹고 모두가 배탈이 나서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새벽에 나가서 머위랑 참죽을 꺽어다 먹었는데 뭘 먹어서인지 모두들 배탈이 멎어서 다행이었지요.
소라의 딱지 뒤에 독이 있나봅니다.
저는 소라의 꽁무니쪽에 독이 있다고 들었습이다.
저는 다 먹어도 괜찮더라고요.
마트에 가서 소라를 사다가 먹어봐야 겠습니다.
손질해서 냉동으로 파는 소라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퇴출 그 고통을 잘 견뎌내신 것 같네요.
편안한 날 되세요.
ㅎㅎ 대체적으로 조개류가 맛이 좋습니다.
광천 남당리에 가며 새조개가 일품이지요.
배탈이 멎은 것은 아마 머위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속이 안 좋으면 익모초를 드시던 생각이 납니다.
소라 독은 그 부분이 희게 나타납니다.
젊고 기운이 좋을 때는 소라독을 잘 해독하지만
연세가 들수록 방어능력이 떨어지게 되지요.
건강하시고 늘 평안하세요~~~
소라회를 보시며 참 어려웟던 기억을 하시네요.
제2의 IMF 가 온다고 하는 요즈음 입니다. 경제적인 충격은 없어야 하는데
그런 불감증의 정부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망해먹고 이민온 사람이기에
정부나 정치인들의 얘기는 불신 하는 편이지요, 뭐 아는게 없어요.
이젠 그런 걱정도 탓할 나이도 아니니 다행이랄까요. 늘 편안 하세요.
그래서 "개x도 모른다"는 말이 생겼지요.

조선시대에 하루는 왕이 도승지를 불러
"요즘 몸이 나른하고 기력이 없으니 대책을 강구하게""해구신(海狗腎)(물개거시기)이 최고이니 곧 올리겠나이다"
그리하여 강원도 고성군수를 거쳐 간성의 물개잡이 어부에게 어명이 하달되었지요.
때는 겨울이라 물개를 구경조차 할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遺棄犬(똥개) 몇 마리를 잡아서 腎을 취해 잘 말려서 진상하였지요.
어의가 잘 달여 올리니 왕이 먹고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왕이 기뻐하며 그 어부를 불러 상을 듬뿍 주었지요.
돌아가던 어부가 망우리 고개에 다다르자 북악산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야~ 이 병신들아!
개x도 모르면서 무슨 정치를 한다고~!"
600년이 지난 요즘도 매일반입니다.

육지 사람들이 왜 제주도까지 갔느냐고 묻곤하지요.
그럴때면 육지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밀려 내려오다 보니
서귀포까지 왔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에 글을 읽으며 옛 생각을 했습니다.
imf 를 겪으며 강제 퇴직했던 그때 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혼자 웃었습니다.
전 너무도 실망감이 커서 가방하나 둘러메고 정처없이 떠돌다 왔지요.

소라의 노래가 지금 쯤이면 달콤하게 들려와야 할텐데요.
하루도 편치않은 일상이 흘러가고있지만 어떻게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매끄럽게 읽히는 글솜씨가 일품입니다.
불쌍한 것이 서민이고 피할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모름지기 최고의 지도자라면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합니다.

열무선생님께서 매끄럽다고 하시니
쑥쓰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