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피는 창가

춘농로중 2019. 9. 9. 17:08




   나는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한다.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갈 때와 드립 할 때 나는 향은 매혹적이다. 오븐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빵 냄새도 좋다. 낙엽을 태우는 냄새, 제주 비자림 숲길을 걸을 때 풍기는 비자나무 향과 상산 나무 향이 좋다. 맑은 향기를 내뿜는 숲속에서도 기분이 좋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숲은 상쾌한 향기를 뿜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휘발 성분의 피톤치드가 콧세포를 자극한다. 전신의 긴장을 풀고 휴식할 때 영혼은 더 맑아진다.

   냄새를 풍기는 것은 식물뿐이 아니다. 몇 년 전, 집에서 토종개 암컷을 기른 적이 있다. 마을 어른께서 선물로 주었다. 개를 데리고 새벽에 산책을 자주 다녔다. 정방폭포 위쪽에 정방사라는 절이 있다. 산책코스라서 그 앞을 지나다닌다. 그곳에는 차우차우 종(種) 개 두 마리와 토종개 한 마리를 기른다. 우리 집에 수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 개가 암내를 낸 것이다. 그 절의 토종개가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 우리 집과는 약 2km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교미하려고 기회를 엿보던 수캐들은, 뒤늦게 나타난 정방사 개에게 한 번씩 물리더니 깨갱거리며 꽁무니를 내뺀다. 두 달 후, 우리 집 개는 새끼 여덟 마리를 낳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을 보았다. 기택(송강호 분)네의 가족이 박 사장(이선균 분) 집에 갔을 때, 박 사장 아들이 기택의 바지에서 냄새를 맡으며 말을 한다. 누나 과외 선생님과 미술 선생님, 주방 아줌마에게서 똑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고유한 채취가 있다. ‘화향 천리 인향 만리(人花香千里 香萬里)’, 향기로운 꽃내음은 천 리를 가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의 향기는 만 리까지 영향을 미친다.”라는 말이다. 향수로 몸의 냄새를 가릴 수는 있어도 삶의 냄새는 바꿀 수 없다.


  10년 전 봄날, 육지에서 제주도의 중산간 마을로 이사했다. 수려한 자연경관에 계절마다 다른 제주도의 매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제주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오름과 구름은 끊임없는 감동을 준다. 산과 들에 나가면 고사리가 지천에 자라서 많이 채취했다. 고사리는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제주도로 이사 오는 사람 중에 건강을 잃고 요양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 한두 해 살아가는 동안 건강을 회복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기뻤다. 반면에 제주도의 높은 습도나 꽃가루 알레르기로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보았다.

봄꽃향기가 탐스럽게 밤공기를 타고 흐르던 어느 날! 함께 근무하는 직원의 초대로 그의 집에 갔다. 벽면이 온통 편백 재질로 장식되어 있다. 육지에서 인사이동으로 제주도로 내려왔다고 한다. 직원 부인이 높은 습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제습기를 가동해도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편백 재질이 우울과 피로를 줄여주고, 활기를 넘치게 한다고 했다. 나에게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며 편백 침대를 만들면 좋겠다고 권한다.


  제주도 곳곳에 편백과 삼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올라간다. 19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고흐의 그림 속에 나와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같다. 편백은 특히 향이 좋아 내장재로써 최고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조림이 시작되었다.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 중에서도 편백의 피톤치드 함유량이 단연 높아 소나무의 약 네 배에 달한다.

   초가삼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온돌방이나 보일러 방에서 지냈다. 방을 뜨뜻하게 한 후, 드러누우면 노곤한 허리가 좀 펴지는 듯 느낌이 좋았다. 침대는 허리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나름대로 편견이 있는 터였다. 동료의 권유도 있지만, 편백 향과 미적 감각에 반하여 침대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허리가 이따금 불편하다 보니 나름대로 피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조선 명저 기행』에 “혈(血)이란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피다. 우리 몸에 피가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우리가 잠을 잘 때 피는 간으로 몰려가 휴식을 취한다. 그래서 간은 핏덩어리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수면이 부족하면 피가 탁해져서 온몸에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고, 몹시 피곤을 느끼게 된다.”라고 쓰였다. 향기가 나는 침대에서 잠을 자면 더욱더 맑은 피를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살았던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감귤나무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방풍림으로 편백과 삼나무가 빼곡하게 자란다. 마침 이웃 마을에서 새집을 짓느라고, 돌담 주위에 있는 편백을 베어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무 주인과는 교회에서 교제를 나누는 사이다. 침대를 만들고자 나눠 달라고 부탁하였다. 인심도 후하게 통원목(原木)을 열 개나 내주었다.

   편백의 밑동을 살펴보니 나이테가 선명하다. 나이테는 외로운 호숫가에 돌을 던진 듯 동심원으로 무늬를 그리고 있다. 편백은 이 마을에서 수많은 성상(星霜)을 보냈다. 그 나이테 어디쯤 지금 나의 모습이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 편백을 옮겨서, 그늘에서 6개월 동안 말렸다. 이웃집 할아버지에게 트럭을 빌려서, 통원목을 싣고 제재소로 갔다. 침대용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켜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했다.


  목공은 톱과 망치 등으로 가구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으로 매력적이다. 어렸을 적에 조그만 썰매를 만들어 보았고, 텃밭에 있는 살구나무에 원두막 흉내를 내본 정도다. 제비집 아래에 받침대를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가구 만드는 기술은 서투르다 못해 엄두를 못 낸다. 침대 만들 재료는 충분히 확보했어도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고추잠자리가 헬리콥터처럼 떠서 놀던 날이다. 중산간 마을에서 서귀포 시내로 전직(轉職) 하게 되었다. 그곳에 사는 동안 목수인 선배와 마음을 활짝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이사 간다고 말하니 섭섭해했다. 침대를 만들어 달라고 어렵사리 부탁했다.

   편백 널빤지만 준비했지 침대 다리용 나무는 생각지 못했다. 목수가 직접 구하여 침대 다리를 만들고 퀸 사이즈의 침대를 짰다. 목수가 골격을 잡고 침대 다리를 고정하는 동안, 나도 옆에서 전동드라이버로 널빤지에 나사못을 박고, 샌더로 널빤지 바닥을 골고루 갈았다. 옹이가 배긴 부분이 매끄러워지고, 모서리가 둥글둥글하고 야무지게 되었다.


  편백을 구한 지 일 년 육 개월 만에, 평상형의 침대가 완성되었다. 방안에 침대를 들여놓으니 편백 향기가 종소리처럼 번져 나간다. 여느 침대와는 사뭇 다른 자태와 의연한 미감(美感)을 자랑한다. 살아있는 청청 한 나무로 대지에 뿌리를 내리다가, 일상 속에서 고되고 지친 나에게 신선한 삶의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생명의 나무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편백 침대와 함께 한 지 어느덧 팔 년이 지났다. 요즘도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에 침대에 누우면, 오묘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살아서는 사람들에게 피톤치드를 주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죽어서는 목재와 향기로 휴식을 취하게 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기보다는 먼저 사랑을 하게 된다. 편백의 사랑을 받으면서 느끼지 못하고 지극히 당연하다고만 여겼다. 모든 사랑은 누군가 먼저 시작하는 짝사랑에서 비롯된다. 이불을 걷어 헤치고 편백 침대를 바라보았다.



어쩜 이리도 글을 재미있게 쓰시나요 한펀의 수필 후딱 한펀 잘읽었습니다ㆍ 세상에 침대를 직접만드셨다구요
미욱한 글을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침대를 제가 만들기는 어림도 없어요.
사진에 나와 있는 목수가 골격을 짜고
저는 나사못을 박고 샌더로 매끄럽게 갈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좋은 글에 머무르며
아름다운 밤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꽃별같은 눈물 흘리는 하늘,
조용히 머리맞댄 구름과 밤새 외로운 이야기 나누는 듯하여
부시시 한자리 끼어듭니다
행복한 밤되세요^^
김시인님! 감사합니다.
한가위 명절을 맞아 즐겁고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굿모닝~^^~
연일 굳은 날씨속에서도
오곡 백과 익어가는 풍요로운 계절에
넉넉한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여름처럼 덥습니다.
내일은 함덕해수욕장에 가서 수영을 해볼까
합니다.
구기자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엉뚱하게 아재개그로 오후를 보내봅니다.
~~~^^
편백나무 침대를 만드셨네요.
어제인가 어느 글을 읽었는데 잡초를 제거한 낫이나 베어진 풀에서 나는 향기도 참 좋다고 한 글을 읽었습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피가 걸쭉해지나 봅니다.
앞으로는 수면 시간을 늘려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여직껏 4~5시간의 수면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몸이 안좋은지 가끔 피로가 몰려오곤 하더라고요.
추석연휴 가족들과 즐겁고 따뜻한 시간 되세요.
피톤치드는 위험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치료제라고 합니다.
말씀대로 풀에서 나는 것도 마찬가지 이지요.
수면 시간이 짧은 편입니다.
피로가 누적되지 않아야겠지요.
연휴에 휴양림을 걸으니 숲속의 향기와
바람이 신선하게 스치고 갑니다.
한가위 만큼 풍성한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솜씨가 좋습니다
버려지거나 불태워질 나무를
작품으로 거듭났네요^^
직업 중에 목수 직업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일하면서 작품을 만드니 말입니다.
제작년에는 아내와 함께 공방에 가서
우체통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페인트까지 입혀서 입구에 걸어놓았더니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제블에 지난글 보다가
닉따라 와봤는데
여기도 낯익은 블벗님들이 계시네요..
저의 이모부님 깨서 목수 일을 하셨는데...
제대로 배운적 없이
어릴때 부터 손재주가 좋은셨다더군요.
이모 침대를 황토 흙침대로 멋지게 만들어 주시는거 보면서
마니 부러웠했답니다..
우와...편백나무 침대...그것두 손수 만든...
넘 넘 부럽네요.
수필 한 편에 많은 걸 배웁니다
우와! 황토 흙침대를 만들어 주시다니 이모님은 사랑을
듬뿍 받으시네요.
이모부와 함께 쓰는 퀸사이즈겠지만요.
조카에게도 하나 부탁해봐요.
안 들어주시면 말고요.~~~^^
ㅎㅎ 방갑습니다
이러저러 사연은 많은데
지금 병원에 입원중이세요
끝달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두 건강하세요
어렸을 적엔 가끔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면
여학생이 꽃을 들고 위문오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글쎄 아픈 적이 있어야지요.
팔에 드레싱 한 번 못하고 어른이 되었다니까요.
맨 처음 입원했던 것이
맹장수술이었네요. 그게 끝이에요.
이모부님에게 자주 문병가시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