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피는 창가

춘농로중 2013. 12. 29. 19:40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3월 초에 친구의 가족과 함께 고창 선운사로 나들이를 갔다. 나는 자매로 큰 애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는 5학년이었고, 친구는 남매로 아들이 6학년 둘째가 3학년이었는데 사이좋게 잘 지냈다. 그 해에는 지난 98년 6월 퇴출된 5개 은행 직원들의 고용승계 문제를 둘러싸고 퇴출은행 직원들과 인수은행이 치열한 법적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법원의 판결이 퇴출은행원의 복직이나 손해배상 문제뿐만 아니라 은행퇴출 조치의 정당성 판단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어서 양측의 공방은 갈수록 뜨거웠다. 동남-대동-동화-경기-충청 등 5개 은행에서 고용승계가 안된 직원 수는 7,025명이나 되었다. 국회에서도 시끄러웠다. 민주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IMF 환란을 초래한 두 주범”이라며 맹공을 퍼부었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관치금융’을 공격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5개 은행 퇴출 등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청문회를 16대 국회에서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퇴출 은행원이다 보니까 나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가정적으로는 그 해 안해가 대학에 합격했다. 늦은 나이에 2,000학번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안해에게 남편으로서 축하해 주기 위해서 ‘이숙영의 파워FM’에 사연을 신청했다. 방송하는 날이 마침 일요일이었고 아침시간이어서 한밭종합운동장에 나가 마라톤 연습을 하게 되었다. 소형라디오를 지참하고 우레탄이 깔린 트랙을 돌기 시작하는데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숙영씨는 안해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내가 안해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희망곡인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들려 주었다. 다른 마라톤 매니아보다 실력이 처지는 편인데 그 날 따라 힘이 솟구쳤다.

 

 

 

 

 

 선운사에 들어가는 길목에서 처참한 광경이 목격되었다. 다음 날이 경칩이었는데 겨울 잠에서 깬 개구리들이 아스팔트 길을 건너가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깔려 배가 툭툭 터지며 죽는 것이었다. 숫자가 하도 많으니까 통제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선운사에서 경내를 둘러보고 동백나무 군락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동백꽃은 아쉽게도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선운사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풍천장어와 복분자주를 시켜 놓고 마음 껏 먹었다. 복분자주는 내가 운전을 해야 해서 친구 혼자 다 해치웠다.

 육지에서의 동백꽃을 구경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큰 맘 먹고 서천의 동백정이나 여수 오동도에 가보면 의외로 무성한 초록 잎새 사이로 새색시처럼 새초롬하게 숨은 동백꽃을 볼 수 있었지만, 큰 나무에 비해 꽃봉우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다소 실망감이 들기도 하였다.

 동백나무는 16세기경 일본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 당시 유럽으로 동백나무를 가지고 간 사람이 예수회 선교사 카멜루스로, 그의 이름에서 카멜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저 유명한 베르디의 가극<라트라비아타 La Traviata>가 춘희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동백꽃은 유럽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춘희(동백아가씨)의 소설 속 주인공은 한 달의 25일 간은 흰 동백꽃을, 나머지 5일간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꽂고 다녔다.

 제주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제주시에 있는 한라수목원에 가보면 월별로 볼만한 식물을 제시하고 있는데, 1월은 수선화, 백량금, 동백나무라고 쓰여있다. 제주도에서는 오름동산에, 올레길에, 앞마당에, 울타리에, 정원에, 도로변의 가로수로 심겨져 탐스런 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리고 꽃 종류도 새색시 같은 꽃 보다도 커다란 꽃잎이 장미처럼 생긴 서양식 동백이 눈에 더 많이 띈다. 동백꽃은 추운 겨울에 흰 눈을 맞으며 기온에 따라 붉게 피는 데, 색깔이 주변에만 봐도 붉은 꽃, 분홍 꽃, 흰 꽃, 등 다양해졌다. 군락을 이루는 꽃으로 만개했을 때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현란하다.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은 꽃잎이 아니라 송이 째 떨어진다. 꽃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창 아름다움을 뽐낼 때 떨어지는 것이다. 꽃은 매달려 있는 것보다 바닥에 더 많이 뒹군다.

 

 

 

 

 

 창립 30년 만에 퇴출된 내가 다니던 충청은행도 젊은 시절 생을 마감한 셈이다. 동백꽃은 눈물처럼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예쁜 카페트가 깔린 것 같기도 하다. 바닥에 떨어진 꽃도 아름답고, 이제 막 빨간 꽃부리가 땅을 헤집고 나오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동백꽃 주변에서는 행화였던 하얗고 노란 수선화가 이 겨울을 맞아 또 다시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다.

충청은행이 없어지던 그 해,
부산의 동남은행이 없어졌습니다.
상심해하는 후배를 위로하며 늦은 밤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나는군요.
사실, 후배를 위로할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젊음을 바쳐 일하던 삼성자동차가 공중분해되어 서울역 앞에서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데모행렬에 제가 있었으니까요. ㅠㅠ
선생님도 그런 아픔을 경험하셨군요.
삼성자동차는 로노에서 인수한 것으로 알았는데,,,,,,
나의 아픔보다 남의 아픔을 더 어루어만져주신
그 넓은 가슴이 해를 넘기는 이 때에
아주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