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춘농로중 2014. 1. 14. 17:35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중학 2학년 과학을 담당하는 여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시골에서의 여선생님은 요즘처럼 그리 흔한 편이 아니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1학년 때 담임이 여선생님이었지만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별다른 이유 없이 그만 두었다. 신00선생님이었는데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적응을 잘 못해서 그런지 손바닥을 많이 맞은 기억 때문에 좀 사나왔던 것 같다. 한 학년에 한 반뿐이고 한 집에 대여섯명은 기본적으로 낳던 시기였다. 그래서 88명이 한 교실에서 배웠기 때문에 통제 상 어쩔 수 없었을 것도 같다. 중학교는 면 소재지에 있었기 때문에 남자반 둘, 여자반 둘, 도합 4반 까지 있었다. 가정 과목과 미술 과목은 기본적으로 여선생님이 가르치고 있었다.

 

 과학 선생님은 내가 2학년 때 3학년을 담임하고 있었다. 매 주 월요일은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의 훈시를 들어야 했는데 우리 반 옆에 3학년생들이 정렬해 있어서 잘 볼 수 있었다. 과학 선생님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복장이나 두발 등을 검사했다. 지적된 학생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왼쪽 귀를 잡고 오른손으로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듣기에는 시원스러울지 모르나,  그 여선생님은 성질 더러운 시어머니 마냥 좀 독하지 않나 생각했다. 예쁜 여선생님이 뺨을 철썩 때리면 그래도 좀 덜한데, 과학 선생님은 나이도 사십은 되었을 것 같았다. 스커트를 입으면 똥배가 불룩하게 튀어 나왔다. 종아리도 하지정맥류가 있었는가 보다. 조선 무 다리에다가 신은 스타킹 속에 핏줄이 튀어 나온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구두굽은 저 무거운 체중을 어떻게 버티고 있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수업하는 방식도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크나 큰 칠판에 분필로 쓰기 시작한다. 꽉 채우게 쓰는데 20분 정도는 소요 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그것을 열심히 베껴 쓰게 되고, 과학 선생님은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 “고개 들어, 볼펜 놔”하고는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설명하다 마치게 된다. 한번은 내 자리 옆을 지나다 내 노트를 보더니 글씨를 예쁘게 잘 쓴다고 칭찬을 해 준 고마운 적도 있다. 책상배열을 두 개씩 묶어서 했기 때문에 선생님의 건너편에 있는 학생이 질문하면 바로 옆의 책상에 팔을 얹은 다음 수그리고 얘기하는데, 이 때 얄궂은 학생은 이 틈을 이용하여 낮게 엎드려서 선생의 치마 밑을 훔쳐 본 다음 영웅담을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공부를 하는 선생님이다. 어디에 속하는 지는 학기 초에 첫 수업을 할 때 알 수 있다.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공부계획과 진도에 대해 이야기한 뒤 곧바로 교과서를 펴라고 한다. 그 후의 시간은 칠판에 들입다 필기를 하고 분필로 밑줄을 치며 설명하면서 진도를 나간다. 두 번째 부류의 선생님은 첫 수업이 좀 이상하다. 수업 같지가 않고 엉뚱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로 자기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어찌 보면 시간을 때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종이 울리고 수업은 끝난다.

 

 과학 선생님은 며칠 전에 치룬 채점한 시험 문제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잘 보았기 때문에 100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왠 걸 66점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내 글씨가 아니었다. 시험을 보기 전에 카투사에 복무하는 둘째 형님한테  만년필 형태의 샤프펜슬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너무 좋아서 그 샤프펜슬로 모든 시험을 치루었다. 그런데 시험지에는 파란 볼펜의 글씨였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교무실로 달려가서 과학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전에 내 글씨도 본 적이 있으므로 수긍하면서  시험문제 중에 좀 난해한 주관식 문제를 다시 한번 써 보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고생대 중생대 어쩌구 하는 순서를 쓰는 것인데 6단계였다. 내가 자신있게 쓰고 나니까,  선생님은 어쩔 줄 모르더니, 바로 위에 있는 교감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보고했다. 교감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를 부르더니 나에게 묻지도 않고 대뜸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고얀 놈 봤나?”

 

 

 

 나는 그 답안지가 누구 것이었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 반 반장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와 같이 폭력으로 이끌어 나갔다. 종례시간에는 특히 아이들을 많이 때렸다. 때리는 이유도 가지가지다. 학급회의 시간에 발표를 안했다고, 눈을 크게 안 떴다고,  갖가지 이유를 붙여 때렸다. 약하게 생긴 아이들은 더욱 맞는 빈도가 많았다. 그 문제의 시험지는 시험이 끝나고 감독선생님의 지시로 반장이 걷어서 교무실에 가져갈 때 바꿔치기 한 것이었다. 반장과 일대일로 붙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뒷자리에 앉아있는 핸드볼 선수들이 반장의 뒤를 봐주고  있으니 나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협재에 있는 아름다운 재릉초교의 전경. 한림공원 옆에 위치하고 있다.)

 

 교감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시간씩 문법을 가르쳤다. 시골중학교의 교감이라는 권위에 목에 힘을 주었고 교육자라는 온화하고 스승다움 보다는 괴팍한 면이 더 눈에 띄었다.  교감선생님의 뜻은 나의 주장이 억지라고 보고 의견을 무시하였거나, 윽박질러서 귀찮은 일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

 나는 의기소침했다. 교감선생님의 일갈에 쫄아서 불타고 있는 광장의 깃발은 내팽개치고, 저물 녘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막다른 골목길을  빠져나오 듯  교실로 돌아왔다.

 

아,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니겠지요?
교감 선생은 왜 선량한 학생에게 화를 낸 것입니까?
후속편이 이어지겠군요.
ㅎㅎ 엄청난 숙제가 주어졌네요 ^^
추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육자의 사명을 생각해 봅니다.
분개하면서 읽었느데
제가 궁금해하던 내용을 추가하셨군요.
그 시절 이런 일들이 한두번이었겠습니까?
쓰레기 같은 교육자들이 국가의 녹을 갉아먹고 있었군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반장녀석의 행동이 영악했다고 생각합니다.
반의 리더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학생이
그 나이에 썩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죠.

선생님의 말씀처럼
교육자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반장은 매 타작을 받았을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