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춘농로중 2014. 2. 5. 08:09

 

 

                                                                                                      신정일 지음/푸른영토

 

 

*우리는 그때 우리가 살아오면서 읽었던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 토론하고 이야기했다. “적절한 대답은 달콤한 키스와도 같다”는 <유혹자의 일기>에 실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 15쪽

 

*나는 그곳에서 나 이외의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사회 공동체에 눈뜨게 되었단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강물을 보면서 깨달은 ‘기다리는 것’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을 배웠단다. - 17쪽

 

 

 

*‘나는 오로지 작가만을 꿈꾸며 살았는데,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 내가 쓴 책이 이 서점에 꽂힐 날이 과연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서점을 둘러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 26쪽

*마치 작은 산이 솟구치듯 방파제를 때리고 제주시를 삼켜버릴 듯 넘어오던 파도의 위용을 바라보며 생동하는 삶의 의미를 깨닫기도 했다. 가슴 한편에선 세상이라는 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는 내가 진실로 따사로운 항구에 도착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는지도 모른다. - 40쪽

 

*내가 살던 마을 입구에는 몇 아름의 당산나무로 쓰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벼락을 맞아 나무의 중심부는 푹 파여져 나갔지만 껍질만으로도 푸른 잎을 틔우는 엄연히 살아 있는 나무였다. 그 나무 옆을 지날 때마다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저 나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나무가 지난해에 자연적으로 고사하고 말았다. - 99쪽

 

*“나는 내 키 높이를 열심히 재고 있네. 사람의 키 높이란 늘 같은 것이 아니라서 말일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네” 라는 구절뿐만 아니라 조르바는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온몸으로 체득한 자유와 만물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내게 사람다운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 105쪽

 

*그때 나는 황동규 시인의 시를 읽던 중에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성실이 있다면, 포기하는 일밖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라는 구절에 눈이 꽂혔다. 그래, 체념하고 포기하자. 그 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놀랐다. 그 구절은 ‘포기하는’이 아니라 ‘포기 않는’이었다. 그럴 수가! 그런데 한참을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만큼 절망적이었으므로 ‘않다’가 ‘하다’로 보였던 것이다. 다시 한참을 생각해보니 하는 것이나 않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데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큰 깨달음이었다. - 112쪽

 

*“글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시력이 약화되어 자기가 쓴 글이나 남이 쓴 글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읽지 못한다’라는 것은 문자 이상의 뜻을 갖고 있다. 밀턴 같은 천재처럼 눈이 안 보여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 자신만 하더라도 남이 쓴 글이나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내 눈으로 봐야 사고가 수월하게 진행되어 나가지, 남의 말을 듣고 무엇을 이해할 때 사고는 거기서 크게 멀리 나가지 못한다. 나는 눈을 통해 몽상하고 철학한다.”

 

김현의 <책 읽기의 괴로움>에 실린 글이다. -169쪽

 

*이 모든 것이 발의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얼마나 지당한가. -237쪽

 

*현대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 그 세 가지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세상을 꿰뚫어보고 세상을 경멸하는 건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과 경외심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73쪽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 나의 삶이 진행형이고, 그 당시를 겪었던 사람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다음의 말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색이란 그 속성상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공유점을 제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다분히 가치가 있다고 여겨질지라도 타인에겐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355쪽

신정일 선생, 제가 좋아하는 분입니다.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신산함이 많았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
사르트르 답지 않은 말이군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인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인데
철학하는 이답지 않은 말입니다.
온갖 신산을 맛본 분이라서 그런지
존경심이 절로 납니다.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한
선생님의 배려가 훌륭하십니다.
사르트로도 선생님의 비판에
어록을 수정할테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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