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유적지

바위솔 2012. 4. 27. 11:00

 

 

 

 

 

2012년 4월 26일 (목)

 

 

서울역사였던 건물입니다.

 

 

 

 

 

 

1900년 7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며 남대문역으로 시작된 서울역은 1925년 현재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건립된 뒤 2004년 새로운 민자역사가 신축 될때까지 80년 동안 서울역사로

사용 됐었습니다. 이 건물은 1981년 이미 사적(284호)으로 지정 되였지요.

 

 

 

구 서울역은  2011년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친 후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중입니다.

 

 

 

 

 

"문화역서울 284" 구 서울역의 지금 이름입니다.

 

 

 

 

 

 

이름처럼 서울역은 복합문화 공간으로 거듭나 년중 다양한 공연,강연,전시등의 프로그램을

보여 주고 있는데 (월요일 휴무) 전시및 공연등은 거의 무료로 운영 한답니다.

위 전시실은 서울역 시절 3등 대합실이였던 곳 입니다.(1층 우측)

 

 

 

 

 

 

 

 

 

 

12개의 돌기둥과 돔으로 구성된 중앙홀 천장입니다.

 

 

 

 

 

중앙홀 좌측 전시실은  1,2등 대합실이였던 곳 이고요.

 

 

 

 

 

1,2등 대합실 앞에는 귀빈예비실과

 

 

 

 

 

귀빈실도 있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과거 이발소였던 자리에 복원전시실을 만들어 상시 전시하고 있습니다.

 

 

 

 

 

 

2층에서 제일 넓은 곳 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이 있던 곳 입니다.

 

 

 

 

"서울역 그릴"이라고 꽤 유명 했던 곳 이였다네요. 

 

 

 

 

 

 

         안구속의 서울역                                   

                                                                  <최승호>    

 

개미 눈알속에                       

서울역이                              

       있다                                           

 

 33333마리 개미 눈알 속의        

33333개의 서울역                  

 

보는 능력은                          

무한레일을 달려온 안구들 처럼

공룡에서 개미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서울역에서 쓰던 물건들과

 

 

 

 

 

그렇지 않은 물건들이 어우러져 "오래된 미래"라는 전시명으로 지금 전시중인 작품들은

 

 

 

 

 

2012년 4월3일(화)부터 전시되였는데 6월 15일(금)까지 전시될 예정입니다.

 

 

 

 

 

 

 

 

 

 

 

 

 

 

 

 

 

 

 

 

 

 

 

 

 

 

 

 

 

 

 

 

 

 

 

 

 

 

 

 

 

 

 

 

 

 

 

 

 

 

 

 

 

2층에서  중앙홀을 한참 내려다 본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죠.

사실 "문화역서울 284"를 찾아 온건 옛 서울역사나 사람들을 보려고 온것은 아니였습니다. 

 

 

 

 

 

정작 제가 보려고 했던건

 

 

 

 

 

도포자락 휘날리며 한손에 수류탄을 들고 전면을 응시하는 왈우 강우규 의사 였습니다.

曰愚 姜宇奎 의사를 아시나요?

 

 

 

 

 

 

1919년 9월2일 오후 5시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당시 해군 대장이던 사이토 마코토가 인천에서

기차를 타고와 서울역에 내려 환영나온 군중앞에 손을 흔들며 화답한후 마차에 타려는

순간 군중 속에서 수류탄을 던져 총독 폭살을 시도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일본 관리등 37명만을 살상해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께한 분이 왈우 강우규 의사입니다.

당시의 춘추가 64세 였습니다. 늙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거행한 의거는

대한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독립에 대한 열망을 심어 주었지요.

 

 

 

 

안중근의사,윤봉길의사와 함께 강우규의사는 독립운동의 3의사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의사께서 교수형을 당하신지 90년도 더 지난 세월인 2011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런 모습으로 의거 현장에 동상으로 부활 하셨습니다.

 

 

 

강우규 의사 께서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순국 직전에 남긴 시입니다.

 

 

 

단두대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가난은 나라도 구제 할수 없다지만 노숙자는 언제까지 이리 버려둘 것인지

 

 

 

 

 

얼키고 설킨 문제들을 풀어볼 의지는 있는 건지

 

 

 

 

 

끝없이 늘어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택시들 처럼

 

 

 

 

 

좋은 날을 기다리긴 하지만 차례가 올것 같지 않는 끝에 서서 마냥 지쳐갑니다.

 

 

 

 

 

 

서울역하면 언제나 함께 생각나는 단어들..장항선과 서울역 그릴.바로 옆에 짜장면집.학창시절..그러나 강우규의사는 처음들어보니 얼마나 부끄러운 무지인가..바위솔님덕분에 깨달음도 많고 그래서 즐거워지는 인생입니다..언제까지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