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

배선옥 2010. 1. 9. 19:38

우렁각시가 되어

 

배선옥

 

아침.

그가 이른 귀가를 한다 날밤을 새운 두 눈이 동굴처럼 깊다. 어둡다.

물 먹은 창호지처럼 얇아진 눈꺼풀에 잠자리 날개보다 하늘거리는

아침햇살이 매달린다. 귀찮아 다 귀찮아 날파리를 쫓아버리 듯 손

부채질을 한다 내내 가위 눌려있던 무지막지한 지난 밤의 농도 하지만

무차별적인 건 이렇게 눈부신 햇살도 다르지 않아.

 

어차피 그에게 선택사양 따윈 없다 차라리 즐기기라도 하라면서 가끔

그의 편인 척 손 내밀어 악수를 하고 어깨를 감싸 안기도하지만 이미

다 돌아서기도 전 딱딱한 얼굴로 되돌려질 게 뻔한 건조한 친절. 아예

모른척 하기엔 그도 이제 삶에 대해 너무 빤해진 걸까 깔깔한 입맛을

달래보려 애 쓰다 마는 손이 창백하다.

 

화생방 훈련 중인 아이처럼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는 이내 잠이 든다.

밤마다 한껏 그리울 달콤한 밤의 정령이 머리맡을 지키고 있으려나

나즈막히 코고는 소리 한낮의 햇살가득한 창가로 번지며 물수제비를

뜬다

 

살금살금 그가 벗어놓은 작업복과 양말을 집어들고 방을 나서다 둘러

본다. 내가 깃들어 사는 항아리 안은 여전히 따사롭네 금 간 곳 없네

바람들어 올 틈도 메워져 있고.

 

 

2010년 폔문학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