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

배선옥 2010. 7. 30. 00:04

f(x)= 詩



배선옥



방금 가지치기를 끝낸 모양이다 아직 마르지 않은

나뭇진 냄새가 났다 바람이 움직일 때마다 짓이겨진

이파리들은 신음대신 아주 진한 풋내를 쏟아냈다

아주 낯선 세계였고 낯선 숲엔 그가 살고 있었다


팔에 굵은 힘줄이 돋는 시인을 만났다. 그가 잘 벼른

칼을 들어 올리자 터질 듯 도드라지는 새파란 핏줄이

눈부셔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힘껏 아주 힘껏

칼을 내리칠 때 서슬에 놀란 시간들이 제풀에 잘게

부서져 前과 後로 스스로 흩어졌다 모였다


모세의 바다처럼 이쪽과 저쪽의 확실한 경계 앞에서

나는 또 숙연해졌었던가 차라리 그 바닷물 속에 갇혀

영영 가라앉아버리고 싶었다


가려도 표창처럼 날아와 두 눈에 꽂히는 詩들이 나는

그저, 그저 너무 아팠다



2010년 펜문학 원고
부끄러움이 고개를 드는 제 시들을 기억하게 하시는군요..
제2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