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거창한 詩쓰기

배선옥 2013. 3. 2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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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필과 서사수필의 문학성

1. 서정수필과 서사수필
수필을 하겠다는 꿈속에는 문학이 들앉아 잇다. 아니 문학을 하겠다는 꿈속에 수필이 들앉아 문학 지망생을 수필의 덫에 걸리게 한다. 시도 소설도 아니다. 문학이라는 다소 어리둥절한 갈림길에서 수필의 덫에 채일 때 이미 수필과 더불어 문학의 벌판을 쏘대게 된다. 그렇게 하여 이름 위에 얹은 수필가라는 관형사다. 범주를 넓히면 문학가라는 통칭이 다라 붙는다. 그런데 수필은 문학이 아니라면 문학가의 대열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문학이라는 테두리에서 시와 소설 등과 한 무리였는데 별 볼 일 없게 된다.
수필을 두고 가령 문학이 아니라고 우기더라도 수필이라는 딱지까지를 떼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수필은 언제나 수필이다. 수필이 문학이고 아니라는 것은 수필이라는 개개의 작품에 딸린 문제이지 수필을 뭉뚱그려 하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수필은 문학이라는 것에 굳이 빌붙지 않는다. 다만 문학으로서의 알맹이로 영글어 있고 그런 꽃으로 피어나기까지 문학이라는 손짓이 시와 소설과 더불어 문학권에 끌어넣어 문학 그 자체의 범주를 넓히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탓만은 아니지만 수필도 문학으로서의 가야 할 길을 탐구하는 작업이 여러 가지로 시도되고 있다. 이는 수필을 위해서나 문학 전반을 위해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 가운데의 하나가 수필에 따라붙는 잡다한 명칭 문제다.
시에 서정시며 서사시가 있듯이 수필에도 서정적인 요서, 서사적인 요소를 갖는 부분이 있다. 흔히 ① 연(軟)수필, 경(輕)수필 ② 중수필. 경(硬)수필이라는 지칭이다. 또한 수필은 에세이라야 한다는 주장도 간혹 눈에 뜨인다. 에세이란 수필의 서구인인데 이런 주장의 밑바닥에는 미셀러니라는 말이 깔린 것 같다.
이렇게 보면 ①은 서정시의 분위기에 해당하는 수필 ②는 서사시에 해당하는 수필이라고 봄직하다. 굳이 미셀러니와 에세이까지를 들춘다면 미셀러니는 ①에, 에세이는 ②에 포함시킬 수 잇다. 명칭이 다양해서 그릇된 것은 없지만 명칭으로 인한 혼란이 야기된다면 그것은 하나로 묶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굳이 시의 경우를 본뜨는 것은 아니지만 수필도 그 갈래를 서정수필과 서사수필의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혹은 소설에서의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처럼 문학지향의 수필을 순수수필, 기타를 대중수필로 묶는 방법도 고랴해 볼만하다.

2. 문학행위란 무엇인가
문학행위는 인간의 삶과 정신영역의 깊이와 넓이를 천착한다. 인간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천착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문학을 통해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 문학 정신이다.
수필도 예외일 수가 없다. 수필이 문학예술의 한 갈래인 만큼 수필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여타 예술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수필이라는 수단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문학예술의 진수를 획득하고자 하는 일종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수필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말은 수필대상의 천착에 미비하다는 말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여기서 자칫 미셀러니와 에세이라는 말의 갈래가 일게 된다. 미셀러니를 가볍다는 말에 밀어붙인다면 에세이는 자못 묵직한 쪽에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신변잡사라도 미셀러니는 화자의 신변에 글의 초점을 맞출 것이고 에세이는 사회문제와 고리를 잇대려 할 것이다. 가령 그림으로 본다면 미셀러니는 구상화에, 에세이는 비구상화에 그 잣대를 대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구상화에 비하여 비구상화가 보다 예술성이 짙다고는 잘라 말할 수 없다. 또 비구상화보다 구상화 쪽이 보다 명쾌하고 담백한 예술성을 지닌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변잡사를 화자의 신변에 맞춘다고 해서 미셀러니이며, 사회와 고리를 잇댄다고 하여 에세이로 치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느 것이 보다 더 예술성이 강하느냐에 딸려 있다. 이는 서정시가 서사시에 비하여 가볍다거나 예술성이 약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좋은 시는 서정시도 서사시도 아닌 다만 시일 따름이다.
미셀러니에 치우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수필이 눈총을 받아야 한다면 이는 억울한 처사다. 에세이로 분류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환영을 받는다면 이 도한 못마땅한 판정이다. 수필에서 요구되는 것은 얄팍한 정신의 소산이 아닌 중후한 정신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소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이 지향할 바가 굳이 에세이라고 한다면 소재는 달리 취사선택될 문제를 껴안는다. 가령 꽃이나 바람을 소재로 삼은 수필이라면 이는 미셀러니에 가까운 글로 따돌릴 수 있겠다. 그러나 인생이나 사회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에세이로 취급되는 편견과 만나지 않을 가 싶다. 하지만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이 문학이라는 수필의 본성이다. 꽃이나 바람도 소재를 다루기에 따라서는 에세이가 된다. 반면 인생이나 사회문제도 미셀러니로 요리되는 것은 어떻게 소재를 다루느냐에 딸려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미셀러니냐 에세이냐가 아니다. 어느 것이든 작품에 잠겨 있는 문학성이란 혼백이 수필의 사활을 결정짓는 마지막 잣대가 된다.

3. 문학성은 어떻게 성취 되는가
수필은 체험에 따른 문학이라는 언급 탓인지 과거회상형의 수필이 수필작단을 대부분 차지한다. 과거회상은 일종의 그리움이다. 수필이 그리움에 망연히 잠겨 있을 때 세월은 후딱 앞으로 치닫는다. 세월을 따라잡지 못하는 수필은 세월이 스쳐간 발자취를 뒤따르며 세월이 흘린 이삭이나 줍는 형편이 된다.
그러나 이삭줍기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 수필의 특성이다. 수필을 노상 이삭줍기의 테두리에 둘 때, 수필은 무사 안일한 안전제일주의에 치우치게 된다. 저돌적인 정신으로 수필의 건재함을 보여주어야 수필도 여타 문학과 선두를 다투는 치열한 정신의 소산물이 될 것이다.
수필은 사사로운 과거회상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이것은 대상을 보고 느끼는 특이한 시각에서만이 가능한 작업이다. 과거회상은 흘러간 옛노래다. 수필은 옛노래도 좋지만 새로운 노래를 찾아 소재의 벌판을 뒤져야 한다.
흔히 수필은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더러 있다. 재미란 무엇인가. 수필을 옛이야기 하듯 다루자는 뜻인가. 재미는 사람을 흥겹게 하는 손재주며 말재주이다. 내면천착이라는 말을 얹어주는 수필인데 재미는 대상의 겉핦기로 감각기관을 스칠 뿐이다.
재미를 도외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글읽기라는 노동에서 재미가 없을 때 노동은 힘겹고 따분하다. 가령 한 편의 수필을 읽고 마음에 어떤 충격을 받았다면 그것은 감동이다. 수필을 통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수필은 마술처럼 모종의 속임수로 독자의 넋을 호리는 재주는 물론 아니다. 감동은 거짓이 아닌 진실에서 우러난다.
수필가는 지나간 사건이나 앞으로 다가올 유형무형의 존재에서 새로운 존재를 탐색하는 존재의 탐구자다. 수필가는 우리 전체의 어떤 모습까지도 정신의 영토 안에 이식하는 사색적 접목술을 지닌다. 현세를 중심으로 과거세, 미래세까지를 일시에 수용하는 혜안을 갖는다.
다소 떠드레한 주문 같지만 수필은 수필이면 족하다. 그러나 이 말 도한 애매하고 무책임하다. 수필을 수필로만 본다는 말의 밑바닥에는 수필관이라는 지렛대가 끼어든다. 그러므로 수필가들이 갖는 제 나름의 수필관에 따라 수필은 올바르게 일어설 수도 있고 나둥그러지기도 할 것이다.
수필은 깨달음이다. 어떤 소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새로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앞을 본다. 시대를 이끄는 구실을 한다. 예를 익힘이 새것을 아는 길이라고 말한 선인의 대목은 새삼스런 의미를 준다. 그것은 절실함이다. 예를 거쳐 새것을 탐구하는 자만이 비로소 옛것의 탄탄한 초석 위에 새것을 세운다. 이처럼 과거회상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새것을 세우는 터전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문학성의 성취 도한 이에서 출발한다.

4. 수필의 길은 어디 있는가
거듭 말하자면 서정수필이냐 서사수필이냐는 하등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서정수필은 과묵하지만 섬세하고 서사수필은 목소리가 높고 투박하다.
서정수필에는 따뜻한 친근감이 잇는데 서사수필은 차고 싸늘하다.
서정수필은 정적인데 서사수필은 동적이다. 깊은 사색은 정적인 서정에서 따내기 쉬우나 서사는 행동하는 지성이란 느낌을 갖게 된다.
서정수필을 봄과 가을이라면 서사수필은 여름과 겨울이다.
이것으로 보면 서정수필은 다분히 여성적인데 서사수필은 남성적이다. 수필이 서사수필로 지향해야 한다. 이는 남성적인 바탕으로 지향하자는 뜻이 될 것이다. 남성적인 여러 면을 생각에 넣는다면 수필은 거친 바다, 광막한 황야, 험준한 산길에 비길 수 있다.
여성적인 나약한 수필이 우리 수필계의 작단을 잠식하다시피 하는 판국에 남성적인 수필에의 지향시도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수필문학을 더욱 강건하게 지키는 수필의 활로 찾기가 될 것이다.

출처 : 소향 정윤희 문학의 쉼터
글쓴이 : 所向 정윤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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