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거창한 詩쓰기

배선옥 2013. 12. 10. 21:43

이 계절의 시인. 이가림 문학강좌


교감의 시학을 위하여

-내가 걷는 시의 길


이 가 림




내가 걸어왔고, 걷고 있고, 걸어가려는 시의 길 위에서,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교감의 시학', '만물조응의 시학'. '참다운 만남과 관계'의 시학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의 아버지 보들레르가 말한, 이른바 '상응(correspondances)의 시학을 일반적으로 다시 소개하거나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교감 '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과의 현상학적 관계를 의미한다. 우선 어떤 사물에 대해 사랑을 하지 않으면 교감할 수가 없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사물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고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교감할 수 없다. 시인은 사물의 거죽이 아니라 알맹이, 그 깊이를 꿰뚫어 보고 거기에 소중하고 숭고한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세계를 온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통 '아름답다'고 간주해 왔떤 것만을 볼 것이 아니라, 추악하다고 도외시 해왔던 것, 천시하며 외면해왔던 것들에까지도 '그윽하고 정다운 눈길'을 던져야 한다. 더럽고 추악한 '악'이라고 치부해왔던 것의 실체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뚫어지게 응시해야 한다. 심지어 시인은 사회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없애버려야 할 쓰레기로 취급하는 변두리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따뜻한 관심의 눈길로 바라보아야 한다.


가령 우리 앞에 더럽고 악취를 풍기는 똥막대기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똑바로 직시하지 않고서는 그것의 모양과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시인은 그것을 뚜럿하고 깊이 있게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그려내야 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과의 정다운 교감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시인인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아쉬움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 사물과 나 자신이 나누어 가진 어떤 정다운 관계, 즉 '우정'이 있었기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에게만 우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사물에게도 우정을 느낄 수가 있다. 사물과의 교감, 그 우정의 느낌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표현했을 때, 그것을 읽는 독자는 커다란 동화(동화 indentfication)의 기쁨에 떨게 된다.


시를 쓸 때는 말은 쉽고  의미가 많이 담겨지도록 해야 한다. 의미는 별로 담겨진 게 없고 말만 잔뜩 어렵게 쓸 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가짜 시, 그것을 쓴 시이조차 이해할 수 없는 엉터리 시가 되고 만다. 그것은 난해시가 아니라 불가해한 시라고 할 수 있다. 난해시는 난해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도대체 전달이 안 되는 불가해한 시는 그아먈로 말장난에 불과한 나쁜 시이다.


그리고 시인은 무엇보다 언어를 아껴서 정확히 사용해야 한다. 시인이 쓸데없는 말을 마구 남발한다면 시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시인은 말을 잘 부릴 줄 아는 뛰어난 장인인 것이다. 시인은 진실의 과녁을 정확시 꿰뚫는 언어의 명사수가 되어야 한다. 진싱릐 과녁을 향해 언어의 탄환을 10발 쏴서 겨우 2발 내지 3발 정도 관통시키는 시인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말 장난꾼일 것이다. 진실의 한복 판을 백발백중 꿰뜷어야만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언어의 명사수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늬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산문학 2013년 겨울호-에서 부분 발췌함.


배 시인 지난주 인천 대공원 갔다가 ...그대가 불현듯 보고싶었다오...그대 옆지기가 붙어 계실 시간이라 폰만 열었다 닫았다...어째 이리 모지란지...요...ㅠㅠ
잘 지내시지유~~~~ㅎㅎㅎ 한달 넘게 시어머니께서 병원에 계셔서 정신없는 가을을 보냈구먼유~~
언제 한 번 뵈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