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거창한 詩쓰기

배선옥 2015. 1. 2. 20:08

1. 배치

 

  시는 적절한 배치에 의해 그 차원을 달리한다. 배치는 사건이나 계열화화는 달리 어떤 개개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연결된 전체를 포괄하려는 개념이다. 배치 안에서 각 항은 접속하여 새로운 이미지와 사징을 만든다. 여러 접속으로 만들어진 배치가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하나의 커다란 상징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접속항이 달라지면 절단, 채취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다양체를 형성하게 된다.

 

  하나의 시 속에 많은 다양체가 형성된다면 그 시는 입체성을 띄게 된다. 현대적 시쓰기는 수채화적인 글쓰기보다 피카소적인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술의 차원은 복잡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차원은 소재나 제목을 통해 "얼마나 많은 다양체를 보여줄 수 있느냐"이기도 하다.

 

  다양체는 다양한 종류의 나열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재나 제목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나 상징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느냐이다. 평면적인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단순하지만, 입체적인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다양하다. 밑면을 보고, 윗면을 보고, 안과 밖을 보듯 느낌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입체적 글쓰기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치를 통해 많은 상징과 이미지를 표현해야 한다.

 

  '진달래꽃'하면 김소월이 생각날 것이다. 진달래꽃이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접속한다면 이별이나 영접을 상징할 수 있다. 만약 진달래꽃이 여자의 머리와 접속한다면 장신구가 되거나 정신이상이 될 것이다. 진달래꽃이 병이나 도자기와 접속한다면 진달래주가 될 것이고, 쌀가루나 밀가루와 접속한다면 화전이나 꽃밥으로 전환될 것이다. 총이나 군화와 배치한다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나 피를 상징할 것이다. 또한 바람과 배치하면 낙화와 같은 허무를, 강물과의 배치는 자살과 같은 이미지나 상징을 만들게 될 것이다.

 

  질 들레즈는 접속항이 달라지면 절단, 채취로 흐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기계로 표현단다. 입은 먹는 기계이고, 말하는 기계이고, 섹스의 기계이고, 토하는 항문의 기계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붉은 깃발이 배치되는 바에 따라 구조신호가 될 수 있고, 혁명군이 될 수 있고, 위험신호가 될 수 있듯이 배치에 따라 새로운 상징과 이미지가 탄생한다. 시의 첫줄을 읽고 마지막 줄을 읽어 그 의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라면 평면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된 시쓰기는 변화이고, 새로운 의식의 물고를 트는 것이며, 다이아몬드의 다양한 각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일 것이다.

 

2. 유목적 시쓰기

 

  배치를 통한 시쓰기는 정주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좀적 글쓰기 이다. 유목적이란 단순히 정주성에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고의 확장과 무한한 연결 가능성을 통해 다양체를 추구한다. 서정시에서의 유추나 상상력을 통한 사고의 확장은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한계 내에서 직유적, 은유적, 상징적 기법들을 통해 구현되어 왔다.

 

  이러한 의식의 확장을 위해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원리가 적용되었고, 아이러니나 패러독스 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 직유나 은유는 본의가 비유의 대상인 유의와 1:1의 관계를 이루고 본의와 유의가 드러난 상태이지만, 상징은 1:多의 관계를 형성하며 유의만 남과 본의는 숨어 있는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유의 속에 숨겨진 본의는 명백하거나 확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신하거나 암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다양체가 내적으로 숨겨져 있는 것이며 관념성을 통해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다양체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유목적 글쓰기에서의 다양체는 첫째, 차이가 차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동일자의 운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차이가 어떤 하나의 중심, 일자로 포섭되거나 동일화 되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이러한 원리로 볼 때 다양체는 서정시의 비유나 상징적 기법에서 쓰이던 인접성과 유사성의 글어오기 기법에서 더욱 멀어진 의미의 관계망을 요구하고 있다. 서정시는 예를 들면 화폐의 척도난 획일적인 발견을 통해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 다양체 확장 계기보다 사고의 다양성을 묶는 단순화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 집합을 이루고 하나의 추가가 전체의 의미망을 크게 다르게 할 수 있는, 접속되는 항들에 따라 그 성질과 차원 수가 달라질 수 있는 글쓰기를 유목적(리좀적) 글쓰기라고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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