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맛 KAMA저널 2013-2015

배선옥 2015. 1. 6. 16:22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지난 주 시아버지의 기일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안 계시고 처음 맞이하는 기제사였지요. 일 하는 며느리라고 제사 음식 준비는 거의 다 해주시던 어머니의 빈자리가 참으로 넓었습니다. 혼자서 전부치고 나물 볶고 과일 다듬고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이번 제사에 처음으로 지방을 쓸 때 아버님 옆에 시어머니의 혼백을 적어 넣었습니다. ‘현비유인파평윤씨 신위가슴은 내내 커다란 바위가 눌러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부 누름틀처럼 조금만 힘을 주면 밑으로 물기가 그대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했으려구요.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중략)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중략)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 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 ‘눈물은 왜 짠가部分

 

어느 여름 함민복 시인의 시 눈물은 왜 짠가를 만났습니다. 시를 읽고 난 독자들의 감상은 대부분 가슴 뭉클 했고 코끝이 찡했으며 정말로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 하는 독자들에게도 또 그의 시에도 동감할 수 없었어요. 이제야 고백하건데 사실 동감하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세가 기울었으면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것이 아니라 시를 팽개치고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했지 않았느냐고 그리하여 중이염 앓는 어머니를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혼자 화를 냈으니까요. 적어도 나라면 시보다 어머니를, 시보다 생활을 먼저 선택하기에 주저하지 않았을 거라며 시와 시인을 한꺼번에 묶어 흘겨보고 있었으니까요. 그 때만 해도 저는 조금 더 젊었고 조금 더 인생이 호락호락해 보였으며 무엇보다 내 삶의 방식이 최선이고 나만 열심을 다 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던 거 같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미안한 치기였습니다. 하지만, 시는 읽을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는 듯합니다. 같으면서 달라진 느낌과 정서를 만나게 되거든요. 하여, 이번에는 좀 더 깊어진 눈으로 함민복 시인의 시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몇 몇 시를 읽을 땐 자꾸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는 어머니 속에 두레박을 빠트렸다

눈앞에 달우물을 파며

갈고리를 어머니 깊숙이 넣어 휘저었다

 

어머니 달무리만 보면 끌어내려 목을 매고 싶어요

그러면 고향이 보일까요

 

갈고리를 매단 탯줄이 내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

- ‘세월 1’ 全文

 

요즘 저는 어머니께서 담아 놓으셨던 된장 고추장과 어머니께서 담아 놓으셨던 고추장아치랑 잘 갈무리 해놓으셨던 잡곡들을 끼니 때 마다 꺼내먹습니다. 쌀을 씻다가 문득, 찌개에 된장을 풀어 넣다가도 문득,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폭 쉬며 아이고, 노인네도 참이렇게 말끝을 흐리곤 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살뜰하게 살림을 챙기고 다독이며 사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25년을 어머니의 며느리로 살면서도 어머니와 같은 부분은 하나도 없다고 알았는데 어머니 살림하시던 모습과 닮은 저를 발견합니다. 양말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정리해야 하고 수건 한 장도 반듯하게 개어 넣어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며느리라서 어머니도 저랑 사신 세월이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돌아보니 어머니는 늘 저의 든든한 아군이셨어요. 제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주시고 무조건 편들어주시던 어머니가 안 계셔서 이번 아버님 제사는 정말 외로웠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함민복 시인이 늙어가고 있다고 탄식했던 그 어머니께서도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더는 늙지 않을 어머니께 긴 세월을 내내 나쁜 며느리이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서울역 그 식당全文

 

살아보니 늘 열렬하기만 한 게 무조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소릴까요. 가끔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뭘까 물어봅니다. 더러는 좀 뻔뻔해지고 극성맞아지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누구는 사려 깊으며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가는 거라고도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그리움의 두께가 늘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조금 수수해지고 따뜻한 마음씨를 찾느라 새삼스럽게 자신을 두리번거리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무엇보다도 어느 사이 옛날의 그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우리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께 노래 한 곡조 불러드리고 싶은 날입니다.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