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맛 KAMA저널 2013-2015

배선옥 2015. 1. 6. 16:23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 박동규. 박목월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 박목월 시인과의 인연을 참 오래 전부터 글로 쓰고자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그해 머리에 흰머리가 돋아 났노라며 아버지의 큰 우산 안에 살았던 자신의 행복을 반추해보는 노교수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은 개인의 정서를 넘어 이 삭막해진 시절의 한 때를 마음 따뜻하게 녹여주는 불씨가 되어 준다. 평생 박목월의 아들로 살아왔으니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의 가족사를 사사롭게 그러나 감사의 고백이라 표현한 이 책은 의외로 아주 소박하고 간결하다. 아들의 기억 속에 살아계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 아버지가 젊은 시절 적었던 일기가 구성의 거의 전부다. 그럼에도 집안의 내력이라는 것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해보았다. 박동규 교수가 전하는 가족의 의미와 행복이 새삼스럽지 않은데도 다정다감한 이유다.

 

가족은 오로지 세상에서 생명을 함께 하는 유일한 행복의 샘이다. 맑은 생명의 물을 나누어 마시며 서로가 있기에 살아 있음이 증명되는 모든 것의 중심인 것이다. 그러기에 일상으로 해서 무디어진 감각을 다듬어 생명의 샘에 목을 축이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박목월 시인은 아들인 박동규 교수를 낳기 전 경주에 있던 금융조합에서 출납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런대 실수로 고객에게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해 돈을 물어내야 했다고 한다. 결국 매달 월급에서 3분의 23년 간 제하는 조건으로 해결을 보았는데 이 일 때문에 박목월 시인의 집안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어려운 생활을 했다.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집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던 박목월 시인은 어느 여름 그 날도 벌판을 걸어 해가 산마루에 걸릴 즈음 논둑길로 들어섰는데 걷다가 우연히 뒤돌아보니 젖어서 미끈거리는 흙이 덮인 논길 위에 맨발바닥이 그대로 찍혀 있었더란다. 분명 신발은 신었지만 밑창이 다 닳아 헤져서 발바닥이 그대로 찍힌 것이었다. 너무 절망해 논둑에 그대로 앉아버렸던 그 마음이 바로 나그네라는 시였다고 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멀어서 남도 300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나그네]

 

그동안 알고 있던 낭만적인 정서와는 사뭇 다른 삶의 고뇌와 아픔이 이 시에 서려있었다. 고단한 일상에서 훨훨 벗어나 털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털어버리지 못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 소중하게 끌어안고 고뇌하던 사람이 바로 박동규 교수의 아버지박목월 시인이었노라는 회상에는 또한 우리들의 아버지도 중첩되어 백번 공감이 갔다. 시절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 아버지의 위상도 이제 옛날 같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다 한들 아버지가 변할 수 있을까.

 

내 아버지와 나는 같은 길에 서 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나서 지하철 의자에 앉아 누가 놓고 간 신문지를 들고 흝어보면서도 집 현관에 서 초인종을 누르면 아버지, 고생하셨지요하고 뛰어나올 가족의 목소리만 귀에 쟁쟁하다. 비록 한쪽으로 무너진 구두 뒤축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몇 년 전엔 박동규 교수를 아침 대담 프로에서 자주 뵐 수 있었다. 그 분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참 애틋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섯 살 되던 해 아버지 박목월 시인을 따라 불국사에 소풍 갔던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목이 메어 차마 말을 잇지 못 하고 기어이 눈물을 찍어내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

 

동규는 친구 가족들과 불국사 구경을 가게 된 아버지를 발버둥을 쳐서 결국 따라가게 되었다. 밑창이 다 닳아빠지고 뒤축이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있던 동규는 어머니가 밤새 만들어주신 비단 덧신을 신고 아버지를 따라 불국사 경내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자꾸 벗겨지는 덧신이 불편해 벗어 던지고 맨발로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 다녔는데 일행 중 한 모녀가 동규에게 맨발이 괜찮느냐고 자꾸만 물어보았다. 처음 아버지께서는 이 상황을 모르셨던 모양이지만 토암산을 오르는 중에 결국 그 모녀가 동규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규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날 동규는 아버지 등에 업혀 토암산을 올랐고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내려 다시 집으로 가는 논길에서도 아버지는 동규를 등에 업었다.

아버지, 논길은 물렁해서 발바닥이 안 아파요해도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었다. 등 뒤에 업혀서 아버지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려 목을 잡고 있는 내 손등에 떨어졌다.(page34) 찢어지게라고 표현하던 가난한 시절의 그 절절한 에피소드들은 이 책에도 실려 있다. 다시 읽어보아도 여전히 가슴이 찡해지는 대목들이다.

 

참으로 부모 자식 사이의 막중한 인연은 생각할수록 신비로웠다.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졌다. 이미 나는 50대 중기, 백발이 희끗희끗하다. 이 연령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아버님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어린아이처럼 다시 불러보았다. 또한 아버님을 불러보던 심정으로 자식들을 생각해보았다. 나 자신이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너무나 숭엄한 인연에 온몸이 숙연해짐을 깨달았다.(page199)

 

박목월 시인의 일기를 읽다보니 아버지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뉴스를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불현듯 주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상황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집에 돌아가면 평범한 아버지겠지. 괴롭거나 힘든 상황에 처한 남자들도 아버지일 것이고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들도 아버지일 것이며 난처한 일을 겪고 있는 이들도 아버지일 것이다. 부자 아버지도 있지만 그렇지 못 한 아버지도 더 많으리라는 예상이 어렵지도 않은 뒤숭숭한 시절이다. 밖에서의 일이야 어떻든 나는 그들이 모두 집에서만큼은 좋은 아버지, 대접받는 아버지이길 기원한다. 그런 아버지가 많아지면 행복한 가족이 늘어날 것이고 더불어 세상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