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맛 KAMA저널 2013-2015

배선옥 2015. 1. 6. 16:25

 

시가 있는 밥상 / 오인태

-정갈한 저녁밥상에 따뜻한 담론을 얹어 차려내는

 

 

음식을 먹는 것을 가리켜 흡입 한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다. ‘흡입이라는 낱말을 찾아봤더니 외부의 물질을 구멍이나 입 따위를 통해 빨아들이거나 들이마심이라고 풀이되어 있다.(중략) 우리가 쓰는 말이 갈수록 인간미가 없어지고 금속처럼 차가워지는 것 같아 섬뜩하기조차 하다.(중략) 언어야말로 세태를 가장 빠르게, 정확하게 반영하는 사회적 징표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사회현상이기 때문이다.(page197)

 

내게 주는 가을 선물로 몇 권의 시집을 구입했다. 여름내 써 놓았던 나의 시들을 흩어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나의 모든 사고들을 집중해서 완성해 낸 작품이었노라고 은근히 자신하고 있었는데 다시 들춰보니 온통 구멍투성이가 아닌가. 천덕꾸러기가 된 나의 시들을 붙들고 또 며칠인가 머리를 싸매고 몸살을 앓았지만 결국은 파일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러곤 부부싸움 한 아녀자가 화풀이로 명품을 사들이는 그 기분으로 시집을 주문했었다. 틈틈이 사서 읽겠노라 다짐해놓고는 이런저런 이유로 구입을 미뤘던 시집들이 뜻하지 않게 내 책꽂이에서 함께 가을을 살고 있다. 오인태 시인의 시가 있는 밥상도 함께 자리를 잡았고.

 

그 여름 내내/ 기차는 하필 잠들지 못하는/ 늦은 밤이나 너무 일찍/ 깨어버리고야 마는 새벽녘에야/ 당도해서 가슴을 밝고 지나갔다//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는 것임을/ 그 해 여름 그 역 부근에 살면서,/ 한 사람을 난감하게 그리워하면서/ 비로소 알았다 낮 동안 기차가 오고,/ 또 지나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딸랑딸랑 기차의 당도를/ 알리는 종소리는 늘 가슴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 순간/ 레일 위의 어떤 금속이나/ 닳고 닳은 침목의 혈관인들/ 터질 듯 긴장하지 않았으랴// 이어 기차는 견딜 수 없는 육중한/ 무게로 와서는 가슴을 철컥철컥/ 밟고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아주 짧게,/ 그러나 그 무게가 얼마나 오래도록/ 사람의 가슴을 짓눌렀는지를// , 기차는 모를 것이다.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다全文 page293]

 

오랜 지인이지만 그와 맞닥트린 기억은 긴 세월을 죄다 들춰봐도 다섯 손가락이 채워지지 않는다. 가끔 만나고 띄엄띄엄 안부를 전하는, 그럼에도 그 가끔의 조우가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듯 편한 이가 오인태 시인이다. 예민한 구석이라곤 없어 뵈는 착한 외모에 전형적인 경상남도 지역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인을 진주에 있던 그의 작업실에서 처음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그를 마초기질이 좀 강한 남자 시인이려니 짐작했던 것 같다. 매우 감성적인 시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다>를 만남으로써 나의 이런 생각은 단박에 깨져버렸지만, 그 후엔 은근히 까다로운 취향과 미각을 선보여 보통은 아닌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SNS에 손수 차린 저녁밥상을 예리한 시절담론과 함께 올려 많은 이들이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 글과 사진들을 모아 한 권의 책 [시가 있는 밥상]을 출간하면서 참으로 부지런하면서 또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삶을 같이하는, 즉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의 성원을 식구라 부르는 것이다.(중략) 내가 매일같이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변변찮은 밥상이나마 나누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 복원에 대한 나름의 염원과 향수를 표현하는 일이다. 종종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과 술을 사고 형편 닿으면 내 손으로 밥을 지어 나눠 먹는 일도 마찬가지다.(page 28)

 

종종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밥과 술을 사는 그가 매일 차려낸 밥상들은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호사스럽다. 청국장, 깻잎장아찌, 수제비가 올라오지만 성게 비빔밥, 볼락 구이, 전복장 같이 우리의 일상에선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음식이 차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박호사의 사전적 의미로만 그의 밥상을 상상하는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두께의 따뜻함과 사상적 무게의 날카로움을 모두 설명하기엔 20프로 부족하다. 에세이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리책도 아니라고 시인 스스로 말하는 이 책은 예사롭지 않았던 시인의 삶을 이야기 하는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까지 더해져 사뭇 진지하고 또 묵직하다. 때문에 독자는 매우 감성적인 글 읽기와 더불어 논리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단 한 번도 아침밥을 굶겨서 식구들을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었다. 그땐 누구 어머니나 다 그러셨겠지만(page19)

이상하게도 나는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다. 어릴 적, 특히 어머니가 내게 해 준 음식 맛에 대한 기억을 살려 그대로 복원해 내고 싶을 뿐이다.(page8)

 

오늘은 오래간만에 배추김치를 담갔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친정엄마께서 담가주시는 김치를 얻어다 먹는 이유는 우리 식구들의 입맛은 친정엄마께서 담가 주시는 김치만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여 김치에 대해선 늘 찬밥신세를 못 면함에도 불구하고 가끔 김치를 담는다. 김치를 버무리며 친정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의 김치와 나의 김치는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엄마가 담그신 김치의 맛을 쫓아해 보려고 엄마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엄마가 옆에서 양념을 넣어주시면 내가 직접 버무려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해도 엄마 손맛을 따라 가기는커녕 흉내도 낼 수 없다. 일단은 음식의 모양새부터도 다르니 바쁘다는 핑계로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 맛을 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세월을 잃어버리면 어쩔까 가끔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여지없이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 오인태 시인의 어머니가 내게 해 준 음식 맛에 대해 생각하려니 또 무엇인가가 울컥한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변방의 시인에게 건네는 오인태 시인의 결론은 아주 단순, 명쾌하다.

 

시의 자아는 본능적으로 세계를 자아와 동일화해서 본다는 것이다.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적 세계관이다. 실제로 시인은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껴안아 더불어 희로애락하고, 또 그러기를 기꺼이 자처하는 존재들이 아니던가.(page173) 시인에겐 시가 곧 밥이니 시로 밥을 짓든지, 밥으로 시를 짓든지 오직 극진할 따름이다. 흠향!(page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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