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맛 KAMA저널 2013-2015

배선옥 2015. 1. 6. 16:26

감꽃처럼 희었지만 끝내 그를 위한 화환은 완성할 수 없었던 사랑

꽃들은 어디로 갔나 / 서영은

 

 

지금 내 눈길이 머무는 곳은 책상 맞은편 한쪽 벽을 빼곡하게 채운 책꽂이다. 공간이 부족해 안쪽과 바깥쪽 두 줄로 책을 꽂아놓은 책꽂이 안쪽의 어딘가에 1983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꽂혀 있을 거다.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도 아니건만 마치 아득한 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해내 듯 책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1983년은 작가 서영은이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던 해이다. 당시 흑백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있던 서영은의 모습은 아무리 새로운 기억을 떠올려보아도 그다지 예쁜 모습은 아니었다. 간장이 가득 담긴 항아리 같은 아니, 도저히 손을 집어넣어 속을 헤집어 볼 수 없는 목 긴 물병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여인네의 분위기와 그래서 짧은 커트 머리 뒤로 오히려 더 선명하던 안개의 이미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녀는 소설가 김동리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그 뒤 몇몇의 헝클어진 소문을 끌고서 물속으로 가라앉듯 잊혀졌다. 중간에 사막을 건너는 법을 발표했었지만 먼 그대에서 느꼈던 그 애틋한 물기는 없었다. 가을볕에 잘 말린 고추처럼 물기는 남김없이 날려버리고 바스라질 듯 서걱거리던 문장들이 영 마음과 겉돌아서 책을 덮었던 기억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녀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의 시선에서 비켜 앉았던 그 긴 시간동안에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여행을 했다고 한다. 서영은의 문학선집 5[사막을 건너는 법] [타인의 우물] [시인과 촌장] [사다리가 놓인 창] [먼 그대]는 불현듯 내 청춘의 어느 한 지점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나는 무척이나 오랫동안 작가 서영은의 팬이었다.

작가의 자전소설인 꽃들은 어디로 갔나는 참 담담해서 더 애틋하다. 굳이 작가의 자전소설임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긴 세월의 물살에 잘 씻기고 다듬어진 무엇인가를 보는 듯 말끔한 이야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걸어 들어가게 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현란한 문장도 없고 감성을 두드리는 멋들어진 표현도 없이 그저 담담한 이 소설이 읽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행간에 담긴 세월과 그 세월을 잘 갈무리 한 작가의 진정한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해라.”(page68)

 

젊은 아내 호순과 서른 살 나이 차가 나는 박선생 그리고 박선생의 아내인 방 선생. 그들의 사랑은 소설 속에서 또 현실 속에서 참 진진하고 눈물겹게 표현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떤 형식으로 그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위해 행동했든 그들에게 사랑은 목숨 같은 것이라고 간절하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선생에 대한 아내 방선생의 사랑과 호순을 향한 박선생의 사랑 그리고 박선생을 향한 호순의 사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잠시 아득했다. 그것은 이 책의 도입부에서 이미 어떤 파국을 보여주고 있었던바, 작가가 제목에서 거론한 의 의미가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꿈을 꿨다. 그녀는 풍랑을 만나 실종된 남편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거친 물속으로 잠수 또 잠수하면서 그녀는 그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물속 깊은 곳인데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만져졌다. 손에 받아보니 감꽃처럼 희었다. 그녀는 그를 찾으면 그 눈물 꽃으로 만든 화환을 그의 목에 걸어줄 거라고 했다. 어느 목소리 있어, 그 화환을 다 만들면 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목젖에 걸린 울음일 뿐 더 이상 눈물 꽃이 되지는 않았다.(page27)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오히려 김동리의 소설들과 그 소설 속에 느껴지던 힘의 원천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젊은 한 때 멋들어지게만 읽었던 서영은의 먼 그대를 제대로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주말의 명화 시간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았다. 책으로도 읽고 영화로도 본 이 이야기는 대할 때마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처음 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났던 30대에도 그랬고 영화로 보았던 40대에도 그랬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근래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도 여전히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로버트 킨케이드의 사랑이 멋은 있지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나는 영 파격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허허 웃어보았다.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색깔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 같다. 로버트 킨케이드의 사랑도 있는가 하면 프란체스카의 사랑도 있고 그녀의 남편이 보여준 멋은 없지만 깊고 무거운 그런 사랑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리고 이런 사랑도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 절에 숨어 지내며 한글을 가르쳤는데 그 절에 찾아온 처녀와 하룻밤을 지내고 식을 올린 뒤 가정을 꾸려 아들만 다섯 낳았다는 그러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흰 여성을 사랑하여, 본처와 사회로부터 매서운 지탄을 받으면서도 그 여성을 끝내 놓지 않고 새로운 가정을 꾸민 중년 남자(page26) 그러나 이 남자의 떠들썩한 연애가 세상을 뒤흔들 때 그녀는 아직 시골 여학교의 소녀였고 그 때로부터 십년이 더 흘러서야 그 남자와 이 여자가 만난다. 그 남자 박선생과 이 여자 호순의 사랑은 어떤 색깔로 정의할까. 저간의 사연을 알게 되면 그들의 사랑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책을 덮을 때 까지 내게 남은 건 이 여자 호순의 사랑뿐이었다. 호순이라 이름을 바꾸고 앉아있는 작가 서영은의 사랑뿐이었다.

 

사랑하는 당신!

이제야말로 나는, ‘나를 사랑한 당신, 당신을 사랑한 나라는 삼생(三生)을 이어온 관계가 어마어마한 축복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나의 무명을 깨우쳐주기 위해 평생 수고한 당신의 그 애끓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후생에서 우리 만나게 되면 확인하게 될 거예요. 전생의 빛 때문이라면, 이제 그만 나의 이 회한과 참회의 눈물을 핏빛 진달래처럼 즈려밟고 편히 가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이 마지막임을 맹세합니다.”(page 284)

 

 

비밀댓글입니다
ㅎㅎㅎ회떠 주는 여자님 소설도 엄청 보셨나 봅니다 저는 소설은 정윤희 박계형 주로 통속쪽만 봤어요 그러니 저런 감정은 없지요 물론 김유정이니 그런분것도 가끔 읽기는 한데 남자라 별로에요 무척 책에 빠졌던 분인것을 느낍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마음 편하게 글을 쓰세요 요즈음 시는 어려워요 어느 치과 의사 분 그분도 시인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모임 같더니 전부 이상 시인들만 탄생했다고 저는 속으로 무척 웃었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제가 시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다 보니...시가 안 되면 표현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한 방안으로 소설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도 많이 읽고요 소설문학이라는 단편소설 전문의 소설전문잡지도 정기구독 해서 보고 있습니다. 소설에서의 표현들을 만나면서 내 시의 답답함을 깨닫고 의기소침 했던 시적 표현을 다시 되돌아 보기도 한답니다^*^ 좋은날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