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거창한 詩쓰기

배선옥 2015. 1. 12. 14:08

6. 대상을 새롭게 의미부여하라.

 

기존에 부여된 의미를 새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나쁜 것을 좋은 쪽으로, 좋은 쪽을 나쁜 쪽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한 것으로,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숭고한 것을 천박한 것으로, 금기시되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일상적인 것을 금기시 하는 것으로..... 이러면서 시가 새롭게 환기될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의미부여 하라. 그곳에 바로 시가 있다.

 

     즐거운 소음 

                                                             고영민

아래층에서 못을 박는지

건물 전체가 울린다.

그 거대한 건물에 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건물 모두가 제 자리를 내준다.

그 틈,

못에 거울 하나가 내걸린다면

봐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

사람 하나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저 한밤중의 소음을

나는 웃으면서 참는다.

 

7. 시를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시를 쓰는 것은 집 짓는 것과 같다.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 하물며 개미도 집을 짓고, 까치도 집을 짓고, 벌레도 집을 짓는다.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당연히 집을 잘 짓는다. 이 말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집을 짓는 순서를 모를 뿐이다.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시에서 기둥은 바로 줄거리이다. 처음부터 고대광실을 지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기둥부터 세워라. 기둥만 세우면 반은 집을 지은 것이다. 기둥만 세우면 비닐만 올려도 집이 되고, 양철만 올려도 집이 되고, 짚을 얹혀 놓아도 집이 된다. 먼저 기둥을 세워라. 기둥은 줄거리이다. 자기가 접한 대상에 줄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제 트럭에 소나무 두 그루가 실려 가는 장면을 보았다. 자, 그럼 이걸 가지고 줄거리를 만들어 보자. “뽑혀 실려 가는 나무 두 그루를 보니,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가는 가난한 내외 같다. 어디로 옮겨질지 불안하다. 잔 뿌리들은 어린 새끼들 같다. 트럭에는 살던 낡은 가재도구도 있다. 늦은 저녁 옮긴 자리에서 두 소나무는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늦은 저녁밥을 짓는다. 두 내외(소나무)가 어둑한 집에서 밥을 먹는다.” 그대로 쓰면 된다.

     이사

                                                             

고속도로 밀리는 찻길,

옆 차선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트럭에 실려간다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다

잔뿌리들은 잘리고

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

얼기설기 새끼줄로 묶여 있다

흙이 말라 있다

저 흙도, 잘린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

어디로 옮겨 심어질까

근근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릴까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을까

 

일단 이렇게 기둥을 세워놓고, 그 다음엔 창문도 달고, 침실도 만들고, 부엌도 만들고 문고리도 달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시 쓰기에 대해서 어려운 하는 것은 기둥도 세우지 않고 처음부터 큰 집을 지으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기둥 서까래도 올리지 않고 인테리어까지 하면서 집을 지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먼저 기둥을 세워라. 커튼을 달고, 도배를 하고, 장식장을 놓은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시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맘대로 줄거리(기둥)부터 만들어 놓아라. 또 하나 얘기를 만들어볼까?


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보니, 아파트 앞 화단에 분꽃 씨가 까맣게 여물고 있었다. 여름내 화사하게 피었던 분꽃이 지고 까맣게 씨앗에 매달려 있다. 저 까만 씨를 이빨로 깨물면 그 속에 하얀 분가루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저 씨앗속에 얼굴에 분을 바르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고 얘기를 만들어본다. 어머니가 저 까만 씨앗속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어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있다. 여름내 밭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 아무리 분칠을 해도 분이 먹지 않는 얼굴, 희어지지 않는 얼굴, 그래도 연신 어머니는 코끝과 이마 볼에 톡톡톡 분을 두드리고 있다. 그대로 쓰면 된다.


                        분꽃


여름내 활짝 피었던 꽃이 가을이 되자 까만 씨앗으로 여물고 있다.

씨앗을 털어 이빨로 깨무니, 하얀 분가루가 나온다.

분칠을 하는 까만 어머니가 나온다.

어머니는 친척 결혼식이 있어

거울 앞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연신 분칠을 한다

아무리 분칠을 해도 희어지지 않는다

 

일단 이렇게 써놓고 도배도 하고, 장식장도 놓고, 문고리도 달고, 창문도 달고, 장판도 깔고, 액자도 걸고 하면 된다. 참 쉽지 않은가?

 

8. 시를 쓸 때는 門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해라

 

시도 집을 지을 때와 같이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독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문을 얼마나 크게 낼 것인지, 쪽문을 몇 개를 달 것인지.

요즘 시는 문이 너무 작다. 하여 독자들이 쉽게 그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든다. 집이 아니라 일종의 감옥 같은 시들이 많다. 들어가도 나올 수도 없다. 시가 아니라 미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문을 많이 내는 것도 문제다. 이런 시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여 너무 적나라하고 필요이상의 바람이 들이쳐 집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시는 집이라고 했다. 집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다. 그러면서 밖이 안과 적절하게 내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시에는 안방의 역할을 하는 부분, 대청마루의 역할을 하는 부분, 부엌, 헛간의 역할, 마당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필요하다. 이는 적절하게 시의 문을 닫아놓느냐 열어놓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를 쓸 때는 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얼마의 크기로 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숨의 기원

                                                               고영민

1.

이불 밖으로 나온 딸아이의 다리를 슬며시 이불 속으로 넣어줍니다. 아이는 슬며시 눈을 떠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잠이 듭니다

저렇게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잠결입니다

잠은 다시 딸아이의 눈을 감기고 가슴을 부풀려 숨을 고르고 세월을 만듭니다 숨소리는 영혼이 나갔다가 갈 곳이 없어 다시 제 집을 찾아오는 아득한 소리입니다 날숨은 어제 같고 들숨은 오늘 같습니다

 

2.

팔을 뻗어 딸아이가 제 어미의 옷섶에 손을 찔러 넣습니다 아내가 잠결에 슬몃 눈을 뜨고는 벽에 기댄 채 무릎을 안고 있는 나에게 왜, 안자고 있어? 라고 물어보고는 다시 잠이 듭니다

저렇게 묻는 것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잠결입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가만히 그러쥘 때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그 안에 웅크리고 있을까요 무언가를 가만히 쥐고 싶어 부러 빈손을 한번 움켜쥐는 밤입니다 나는 등으로 전해오는 냉기와 이불 밖으로 잠깐 삐져나왔던 딸아이의 한쪽 다리와 작은 손에 쥐어진 아내의 따듯한 유방을 생각합니다

 

3.

딸아이도, 아내도 숨이 깊어집니다 일순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합니다 아이의 숨은 짧고 아내의 숨은 더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발품입니다

이제 앞강으로 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이 차갑게 알을 슬어놓고는 한 生을 전해주려 떠내려 올 시간입니다 방안은 온통 숨소리뿐입니다 나는 딸과 아내의 숨소리 사이로, 내 숨소리를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어디를 갔다 오는 곡절입니까,

기척입니까

 

9. 가장 쉬운 시쓰기는 자기 얘기(추억, 기억)를 쓰면 된다. 이 안에 진솔함이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얘기는 남과 가장 차별화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멀리서 시를 찾지 말고 자기안에서, 일상에서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수원

                                                                               고영민

내가 하는 일은 농약이 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루 종일 약통을 저어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중간에서 호스를 당겨주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1만평 과수원의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빠짐없이 농약을 쳤는데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햇빛에 앉아 막대기로 커다란 농약 통을 젓는 것이 여간 지루하고 심심한 일이 아니어서 나는 그 긴 막대기로 약통 안에 영어 스펠링도 쓰고, 씨발이라고도 쓰고, 보지라고도 쓰고, 막대기를 빠르게 휘저어 회오리를 만들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양인순의 이름도 썼다가 지우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나절 사과나무에 약을 친 아버지가 물큰 농약냄새를 풍기며 내게 걸어와 마스크를 벗으며 하시는 말이, 너 하루 종일 약통에다 뭐라 썼는지 내 다 안다! 라며 내 머리통을 어루만지며 웃으시는데

내가 저은 약통의 농약이 어머니가 당기던 길고 긴 호스를 타고 흘러 아버지가 들고 있는 분무기 노즐을 빠져나올 때 ~발씨발씨발, ~지보지보지 이렇게 나왔던 걸까, 아버지랑 어머니는 농약에 취해 회똘회똘 집으로 향하고 나는 국광처럼, 홍옥처럼, 아오리, 부사처럼 얼굴이 자꾸만 빨개졌다

 

10.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라.

 

한 대상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 의미를 확장시켜 전혀 다른 대상으로 만들어라. 아래 시에서 갈대를 개꼬랑지로, 머루를 유두로 만들 듯. 갈대가 흔들리는 것이 개꼬랑지가 사람을 반겨 흔들리는 것 같고, 머루는 애를 낳은 여자의 유두와 같지 않은가? 분홍빛 처녀의 유두와 달리, 검은 유두엔 일종의 한과 서글픔이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의미를 확장했으면 그걸 가지고 나만의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라. 그러면 원 대상은 굳이 내가 상징을 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상징성을 갖게 된다.

 

                           갈대

                                                                                  고영민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있는 흰 꼬리들은

뚝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드는가

                           

                                    머루 

                                                                                  고영민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대지

유두가 검은 년은 남자 복이 없다는데,

봐라, 네 년도 나처럼 남자 복은 글렀네

넝쿨에 기대 앉아

눈 감고 생각하건대

한때 네 눈(目)이 생기던 그 곳을

머루라 하고,

아예, 캄캄한 네 이름을 머루라 하고

너도 나처럼

유두가 검고,

머루는 익고,

너는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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