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거창한 詩쓰기

배선옥 2015. 1. 16. 16:21

시를 어떻게 쓰면 되냐고 여쭤보면, 나의 선생님들은 이런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하셨다: "모를 때 써라. 알면 못 쓴다." 아마 지식과 개념이 들어찬 머리가 자유로운 상상-창작을 방해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수십 년 시를 공부하고 가르치고, 또 쓰기까지 한 분들의 시집에서 좀체... 시를 찾지 못할 때가 있는 걸 보면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와는 반대로, 어쩌다 백일장 같은 데서 깜짝 놀랄 만한 글을 쓴 아이가 있어, 불러서 물어보면 시에 대해 거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걸 보면 역시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반쯤만 맞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시집에 시가 된 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지적인 사유가 바로 시에 육박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일장의 그 아이는 사실 시가 뭔지 알고 있다. 다만 제가 시를 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을 뿐인 것. 다시 말해, 제 앎을 풀어 낼 설명의 언어를 아직 가지지 못했을 뿐.

글이란, 알아야 쓰는 것이다. 다만 이런 단서를 달고 싶다. 배우고 읽고 써서 알되 잘 잊을 것. 잘 알기는 하되 더 잘 모를 것. 머리가 잊고 몰라도 앎은 몸속에, 그러니까 무의식 속에 들어앉아 쓰는이를 건드리거나 암중에 원격조종한다. 잘 잊고 있는 상태는 어떤 비상한 집중 상태를 끌어오는 것 같다.

 

그러니 결국 글이란, 앎이라는 모름, 모름이라는 앎이 우리 (온)정신을 움직여 쓰는 것이다. 의식이 모르는 말을 받아 적는다는 창작론도 얼마간은 이와 연관이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