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맛

배선옥 2017. 4. 22. 12:35

[인천의 시인 11]


내 안에서 꿈꾸기


박현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요 때로는 세월의 무게에 가위눌려

발버둥도 치다가 지나가는 바람에 눈물나도록 웃기도 하다가

그저 숨 쉬는 것만이 진실인 척 괴롭기도 하다가

세상일 뜻대로 안 되거든 허공에 대고 욕도 한번 질러보는 거지요

어찌 네모가 네모여야만 하고 동그라미가 동그랗기만 할 수 있나요

칩거하던 우울 끄집어내 볕 좋은 날 일광욕도 시키다가

미친 척 울섶에 뿌리박고 섰는 쥐똥나무 가지 뚝 잘라

펑펑 두들겨도 보다가 쓸데없는 객기도 한 번씩 부려보는 거지요

그러다 잠시 저기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면 어때요

한 번쯤 잠행하듯 떠날 수 있는 용기 또한 황금을 주고 산들

누가 뭐라 하겠는지요

두려울 것 없는 최고의 용기를 사서 비무장지대 철책선 같은

내 안의 탑 허물어 새로운 블록 쌓기를 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나를 꿈꾸기도 하는 거지요.


[토요일 오전을 하릴없이 뒹굴거리는 중이다. 어젠 또 친구들과의 단란한 유흥의 기회가 있었지만...서방님과의 오붓한 저녁시간을 위해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를 냈던바, 야구 삼매경에 빠져 TV속으로 돌진해들어갈 기세인 서방님이 마누라의 깊은 애정을 귀찮아 하시더라는~~하여, 옆에 앉아 야구 끝나기 기다린다는 것이 그만 깊은 밤에 빠져들었던바,


오밤중에 지방으로 출발하시는 서방님을 옳게 배웅도 못 하고는 아침까지 잠삼매경이었으니 날로 나쁜 마누라의 길로 의연하게 꼿꼿하게 가고 있는 배선옥..정말 큰일이다. ㅍㅎㅎ


박현자 시인은 아마도 내가 문학지망생이던 시절부터 줄곧 같은 길을 가시는 분일 거라고 기억하고 있다. 늘 조용하시지만 대단한 열정과 안목을 가지고 계시는 시인이라는 느낌을 늘 가지고 있다. 글도 사람도 담백한.. 아주 가끔 행사에서 뵙고 인사나누고 가끔 SNS에서 안부를 전하는 사이...그럼에도  같은 편인 듯 한...그런 느낌이 좋다. 시도 또한 그렇다


현자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오이지를 눌러놓던 누름돌이 생각난다. 친정엄마는 오이지를 달글 때 모든 재로에 신경을 쓰셨지만 특히 누름돌도 퍽 아끼셨는데 내 눈엔 그저 조금 큰 돌덩이였건만 지금 생각하면 그 돌은 늘 참 깨끗하고 정갈했다. 누름돌로 눌러놓지 않으면 오이는 둥둥 떠올라 다 물러버린다. 그러니 누름돌도 다른 재료들 만큼이나 중요한 건 당연하지.


현자시인은 마음속에 열정을 푹 눌러서 담백하게 꺼내놓게 하는 잘 생긴 누름돌을 가지고 계신바, 그 것이 바로 삶을 바라보는 그녀의 안목이라는 것이겠지. 오래간만에 다시 읽어보는 박현자 시인의 시어들...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가고 있다. 볕좋은 토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