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떠주는 女子

배선옥 2005. 10. 2. 01:15

월미도


배선옥


혹 짙은 화장으로 위장 해도
탕약처럼 깊은 눈동자를
백자색 낯빛에 담고 있을
너의 슬픔을 읽을 수 있다.

오늘따라
저녁은 일찌기 찾아와
좁다란 네 어깨 너머론
유난히 붉은 석양이 모자를 벗어든 채 
하직 인사를 하고 있구나

사람들은 벌써
저마다의 둥지를 찾아 흩어져 가고
저문 골목에 기대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여인네처럼 네 가슴에도
기다림의 등잔불 켜지고 있으리라

얘야,
네 손을 펼치렴
가자,
이제 두 발 펴고 잠이 드는
바다의 머리맡으로
우리들 가진 그리움으로 불을 밝히고
지금 막 바닷물에 머리 감고 떠 오르는
새파란 별을 건지자

도시는 저만큼 두둥실 떠다니고 있구나
엷은 숨소리며 코고는 소리가 조심조심
이곳까지 산책을 나오고
창문마다 참으로 따스한 꿈들이 분주한 곳

얘야, 이제 손을 잡으렴
지금 여행을 떠나는 별의 꼬리를 잡고
찬란한 노을을 가지러 가자
미처 새벽이 오기 전
슬픔일랑 물푸레나무 뿌리 아래
한 줌 투명한 수액이나 되게 하자.



인천에 온지 30년이 넘었지만 나는 월미도에 대해 그다지 시정을 느끼지 못했다.
'월미도' 하면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역사의 현장이거나 횟집이 즐비한 다소 번잡한 거리쯤이 그에 대한 인상이다.
근래 문화의 거리 조성으로 다소 다른 이미지로 자리를 잡아간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아주 다정하고 아늑한 시정으로 월미도에 애정을 쏟고 있다.
화자는 월미도가 저렇게 번화한 거리로 변하기 전에 월미도에 대해 어떤 따뜻하고 아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이 시를 쓴 시인이 인천출신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 추론은 더욱 확실해진다.
시인은 아마 인생 혹은 사랑에 대해서 깊은 고뇌를 안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떄 고즈넉한 시간 혼자 이 월미도 바닷가를 걸으며 고요한 사색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이 심상에 오래 남아 있다가 이런 시를 쓴게 된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4연의 '애야, 우리들 가진 그리움으로 불을 밝히고'에서 보듯 화자는 지금 자신과 월미도를 '우리'라고 하는 공동의 인격체, 공동의 운명체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이런 따뜻한 시선은 타향에서 성장한 사람은, 그가 인천에 오래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오래 애정을 간직하고 자신만의 절실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시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