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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석 2008. 4. 28. 19:13

    올림픽경기장과 함께 본 베이징 명소 20곳

    이양수·유광종·한우덕·김한별 기자 yaslee@joongang.co.kr | 제59호 | 20080427 입력
    2008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국가적 이벤트다. 상하이·톈진·홍콩·선양·칭다오·친황다오에서 몇몇 종목의 경기가 열리지만 압권은 역시 베이징이다. 베이징은 22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연(燕) 나라가 도읍을 처음 정해 옌징(燕京)으로 불린 이후 정치·행정·군사 요충지로 발전해 왔다. 수도 기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한 것은 금·원·명·청 시대였다. 1949년 공산정권을 세운 마오쩌둥 역시 난징(南京)을 수도로 하자는 주장을 물리치고 베이징을 택했다. 베이징 사람들은 베이징을 ‘천년 수도(千年 首都)’라고 평한다.
    1 올림픽 메인스타디움(國家體育場)
    베이징올림픽을 상징하는 역작이다. 4년간 5000억원을 들여 건설한 주경기장은 4만5000t의 철근을 엿가락처럼 꼬아 타원형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냐오차오(鳥巢·새둥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길이(남북) 333m, 폭(동서) 294m, 높이 69m, 총면적 25만6000㎡의 웅장한 모습이 장관이다. 관중 9만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대형 스크린 2대 외에도 곳곳에 소형 스크린을 설치했으며 초현대식 서비스 시설들을 갖추었다. 올림픽 개·폐막식과 육상(필드트랙), 축구 결승전이 열릴 예정이다.

    2 국가대극원(國家大劇園)
    6년간 3600억원을 들여 돔형으로 지은 세계 최대의 공연장. 천안문 서쪽 인민대회당 뒤편에 인공호수와 함께 만들었다. 장안대로 건너편에는 중국 지도층의 집단 거주지역인 중난하이가 있다. 2만여 개의 티타늄판, 1200여 개의 유리판으로 뒤덮여 마치 우주선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연면적 16만5000㎡(길이 212m, 폭 144m). 이 안에 오페라 하우스(2398석), 콘서트홀(2019석), 드라마센터(1035석)가 들어가 있다. 지난해 1월 개관했으며 최근 북한이 자랑하는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를 공연했다.

    3 중국중앙방송국(CC-TV) 신사옥
    천안문에서 동쪽으로 달리다 베이징 제3순환도로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새로운 랜드마크 빌딩. 주변에 중국대반점과 삼성 중국본사 건물이 있다. 비스듬히 기운 두 건물을 윗부분에서 연결한 형태인 이 건물에는 ‘큰 바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밑에서 보면 마치 공상과학 만화에 등장하는 대형 로봇의 다리 같은 인상을 준다. 서울대 미술관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를 맡았으며 지상 52층(지하 3층, 높이 234m), 연면적 55만㎡ 규모에 최첨단 미디어 관련 설비를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4 스마오 톈제(世貿 天階)
    지난해 9월 차오양(朝陽)구에 문을 연 새로운 명소다. 근처에 북한대사관과 르탄(日壇)공원이 있다. 천장에 매달린 길이 250m, 폭 30m의 초대형 전광판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천장을 쳐다보며 걷노라면 마치 현대 문명이 만든 ‘하늘의 계단’에 오르는 느낌을 준다. 화려한 쇼핑몰과 위락시설, 아파트 단지가 하나로 결합된 곳으로 저녁이면 세련된 차림의 젊은 고소득층이 모여든다.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고 식당가(4층)에는 다양한 종류의 고급 식당들이 발길을 잡는다. 농구 스타 야오밍이 운영하는 피트니스 센터도 있다.

    5 스자차이 후퉁(南鼓巷)
    베이징의 ‘속살’이 궁금하다면 서민이 사는 골목길 후퉁(胡同)을 봐야 한다. 좁고 지저분한 후퉁들이 깨끗이 정비돼 새 명소로 떠올랐다. 인력거를 타고 돌아보는 게 일반적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자금성 북쪽에 있는 스차하이(什刹海) 호수 인근이다. 몽골어로 물이 있는 곳을 ‘하이(海)’라고 불러 이런 명칭이 붙었다. 옛날 담뱃대(煙臺)를 팔던 거리인 옌타이셰제(煙臺斜街), 마지막 황제 푸이의 부인 완룽의 사가가 있는 마오얼(帽兒) 후퉁 등이 유명하다. 난뤄구샹(南鼓巷)은 트렌디한 카페·가게들이 늘어선 ‘젊음의 거리’다. 인근에 궁리·장쯔이가 다닌 연기학교가 있다.

    6 판자위안 구완시장(潘家園古玩城)
    골동품과 서화로 이름을 떨친 류리창(琉璃廠) 거리에 이어 새로 각광받는 문화의 거리다. 베이징 최대의 노천시장으로 일컬어진다. 건물 안에 자리한 상설 매장과 주말에만 문을 여는 노점까지 3000여 개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그림·장신구·불상·도자기 등 7개 코너가 있으며 코너 하나를 꼼꼼히 보려면 한나절은 걸린다. 하지만 대부분 가짜나 복제품이기 때문에 물건을 살 때는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저가의 기념품을 사거나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주말 오전에 거래가 활발하다.

    7 다산쯔(大山子) 798 예술구
    베이징의 ‘소호’라고 불리는 문화예술촌. 과거 군수공장이 많았던 다산쯔 지역(朝陽區 酒仙橋 부근)에 조성됐다. 넓이는 약 22만㎡. 공장을 개조해 만든 300여 개의 갤러리와 작업실·미술카페 등이 인상적이다. 거리 곳곳의 담벽과 공터는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조각품과 벽화로 장식돼 있다. 798이라는 숫자는 이곳에 있던 한 공장의 번호(이름)였다고 한다. 상하이의 신톈디(新天地)와 광저우의 예술거리 등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왕징(望京)에서 멀지 않다.

    8 구이제(簋街)
    서민이 즐겨 찾는 먹자골목. 둥청(東城)구 둥즈먼(東直門) 근처 1.5㎞ 거리에 150여 개의 식당이 밀집해 각양각색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둥즈먼은 원래 목재와 시신이 드나들어 ‘귀신의 거리(鬼街)’라고 불렸다. 하지만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져 음식점들이 번창하자 거리 이름도 우아하게 ‘구이제(簋街)’로 바뀌었다. ‘구이(簋)’는 둥근 모양에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고대의 식기를 뜻한다. 올림픽 유치전 때, 월드컵 경기가 열렸을 때 젊은이들이 모여 응원했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가장 북적인다.

    9 자금성(紫禁城·故宮박물관)
    자금성은 수십 번 봐도 새로운 맛이 나는 최고의 유적지다. 1420년 완공돼 명·청 왕조의 황제 24명이 거주했다. 전체 면적은 천안문 광장의 1.7배인 72만㎡에 이른다. 자금성은 중심 축인 오문(午門)과 신무문(神武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만들어졌다.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은 타이허먼(太和門) 동쪽의 곁채 건물, 원화뎬(文華殿)등 약 1000㎡의 지역을 새로 개방했다. 보수 작업을 위해 2년간 문을 닫았던 타이허뎬(太和殿)도 다시 볼 수 있다. 자금성에선 요즘 다양한 유물·작품 전시회가 열리며 관람객 편의시설도 확충됐다.

    10 이허위안(頤和園)~중앙전시탑 유람선 투어
    이허위안은 청 왕조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다. 고궁과 함께 필수 코스로 꼽힌다. 여름철엔 배를 타고 시내를 구경할 수 있는 유람선 투어가 제격이다. 현재 창허돤(長河段)과 쿤위돤(崑玉段)의 두 개 코스가 있으며 이허위안~중앙전시탑(中央電視塔)은 후자인 쿤위돤 코스의 일부다. 쿤밍후(昆明湖) 바이후(八一湖) 부두에서 위옌탄(玉頤潭)에 이르는 코스는 10㎞에 이른다. 앞으로 주요 관광지들을 연결해 총 36㎞의 코스를 새로이 운행할 예정이다. 이허위안 남문에서 더 남쪽으로 가면 부두가 있다.

    11 융허궁(雍和宮)
    베이징 최대의 티베트 불교사원. 면적은 6.6만㎡. 청 왕조 옹정제가 즉위하기 전 옹친왕부로 쓰였으나 아들인 건륭제가 자신의 출생지인 이곳을 라마교 사원으로 바꾸었다. 고궁의 건축 양식을 본뜬 데다 티베트 불교의 유물들을 한데 모아놓아 볼거리가 적지 않다. 특히 만복각(萬福閣) 중앙에 있는 26m(지하 8m)의 미륵불은 백단나무를 조각해 만들었다. 자단나무를 깎아 만든 오백 나한상도 명물로 손꼽힌다. 과거 티베트에서 조공한 다양한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중국과 티베트의 예술양식이 융합돼 크고 기묘하고 정교하다는 느낌을 준다.

    12 톈탄(天壇)
    명 왕조 영락제 때 건설돼 명·청의 역대 황제들이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면적은 273만㎡.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는 사상에 따라 북쪽 벽은 원형, 남쪽 벽은 사각형으로 지었다. 그중 기년전(祈年殿)은 둥근 유리 기와 지붕이 있는 높이 38m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3단으로 된 지붕은 대들보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28개의 나무 기둥만으로 지탱하게 만들었다. 원구단(圜丘壇)은 톈탄의 남쪽에 있는 3층 제단인데 각각 천상·인간·지옥계를 뜻한다.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13 중국역사박물관
    천안문 앞에 서면 오른편에 인민대회당, 왼편에 역사박물관이 보인다. 국가를 통치하면서 민의(民意)와 역사를 중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1956년 세워졌으며 면적은 6.5만㎡. 원시사회부터 현대사까지 주요 장면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과 설명문이 전시돼 있다. 아편전쟁, 신해혁명, 5·4운동, 한국전쟁 등도 포함돼 있다. 옆에는 중국혁명박물관이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대대적인 확장·보수 작업을 하면서 국보급 유물들을 많이 추가했다고 한다. 중국을 깊이 이해하려면 한번쯤 들러야 할 장소로 꼽힌다.

    14 중관춘(中關村) 대학가
    베이징 시내 서북쪽 하이뎬(海澱)구에 있는 대학가이자 중국 최고의 정보기술(IT) 단지다. 그래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중관춘에는 최고 명문인 칭화(淸華)·베이징·런민(人民)대 등 39개 대학이 몰려 있다. 1988년 국가급 과학기술 단지로 지정됐으며 롄샹(聯想)·팡정(方正)·노키아·IBM 등 국내외 유수의 IT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중관춘은 명·청 시대 태감(내시)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명나라 때 태감을 중관(中官)이라 칭했고, 그 명칭이 ‘中關’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른다.

    15 베이징 지하성
    베이징 지하에는 길이 30㎞에 이르는 땅굴이 있다. 만리장성이 역대 왕조의 북방민족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것이라면 베이징 지하성은 미국·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만든 것이다. 문화혁명의 광풍이 한창이던 69년 공사를 시작해 10년 만에 완공됐다. 당시 땅굴을 파는 작업에 동원됐던 70대 대학교수는 “방공호 개념으로 판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베이징역 인근의 시다모창(西打磨廠) 후퉁 안에 작은 입구가 있으며 예전 골목은 없어지고 새로운 관광 골목이 조성돼 있다.

    16 저우커우덴(周口店)
    50만 년 전 이곳에 살았던 베이징원인(猿人) 유적지다.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50㎞ 떨어진, 산지와 평야가 접하는 곳에 있다. 산이 남쪽으로 향해 원인들이 살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이곳에 있는 동서 140m, 남북 2~42m의 동굴이 원인의 주거지로 추정되고 있다. 1929년 12월 중국 인류학자 페이원중(裵文中)이 처음 발굴했다. 이곳에서 발굴된 베이징원인의 유골은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 실종됐다. 저우커우덴에는 베이징원인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박물관도 있다. 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7 쓰마타이 창청(司馬臺 長城)
    만리장성의 여러 관문 중 하나로 베이징에서 동북쪽으로 120㎞ 정도 떨어진 미윈(密云)현에 있다. 만리장성 중 가장 가파르고, 아름답고, 신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쪽 왕징러우(望京樓)에서 서쪽 허우촨커우(後川口)에 이르기까지 4.5㎞ 구간이며 산꼭대기에 봉화대가 있다. 이 구간은 명나라 홍무제(洪武帝) 때 전면 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벽돌에는 건설 인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중국의 유명한 만리장성 전문가 뤄저원(羅哲文) 박사는 “만리장성은 세계 최고이고, 그중에서 최고는 쓰마타이”라고 말했다.

    18 칭둥링(凊東陵)
    베이징에서 동북쪽으로 140㎞ 떨어진 허베이성 쭌화(遵化)현에 있다. 명13릉과 구분하기 위해 칭둥링이라 부른다. 청 왕조의 강희·건륭·함풍제 등 14명의 황제와 서태후 등 136명의 왕비 능이 조성되어 있다. 20년대 국공 내전 당시 일부 무덤이 도굴됐으나, 청 왕조의 무덤 양식과 보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베이징 시내에서 125㎞가량 떨어져 있다. 이 지역은 청 순치제의 사냥터였으며 지금도 만주족이 많이 살고 있다.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120㎞ 떨어진 허베이성 이(易)현에는 옹정제 등이 묻힌 칭시링(凊西陵)이 있다.

    19 루거우차오(蘆溝橋)
    베이징 남서쪽 교외의 융딩강(永定河)을 가로지르는 길이 266m, 폭 7.6m의 다리.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장소다. 37년 이곳에는 중국 국민당 제29군(軍)의 일부가 주둔 중이었다. 7월 7일 밤 펑타이(豊臺)에 주둔한 일본군의 야간훈련 도중 10여 발의 총성이 들린 후 사병 한 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다음날 루거우차오를 점령했다. 7월 11일, 중국 측의 양보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일본은 군대를 증파해 베이징·톈진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중일전쟁과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됐다.

    20 윈쥐쓰(云居寺)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70㎞ 떨어진 팡산(房山)구 스징산(石經山) 짱징둥(藏經洞)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7만㎡. 수(隋) 왕조 말 짓기 시작해 역대 왕조에서 증축을 거듭했다. 돌에 새긴 석경(石經), 종이에 쓴 지경(紙經), 나무판에 새긴 목판경(木版經)을 보관하고 있다. 1400년간 만들어진 석경의 숫자만 불경 1122부, 3572권, 1만4278개에 이른다. 청 왕조 강희·옹정·건륭제 때 새긴 목판경은 7만7000여 개에 이르러 가히 해인사 팔만대장경에 비견할 만하다. 1981년 발견된 부처님 사리는 베이징 바다추(八大處)의 ‘부처님 치아(佛牙)’, 시안(西安) 법문사의 부처님 손가락(佛指)과 함께 ‘3대 불교 보물’로 일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