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색, 그대로 물들다

우리나라 대표 한복 베틀한복, 결혼한복 전통적 아름다운 감각의 자연의 색의 조화

한복머리에 필요한 한복장신구와 신부한복의 노리개 등에 대해 소개합니다.

댓글 0

베틀 & 세상/한복의 모든 정보

2011. 6. 14.

우리 옷과 장신구

 

 

 

1) 노리개


노리개는 패물의 하나로 겉고름과 안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차서

우리 고유의 복식미를 고조시키는 대표적인 장신구이다.

노리개의 종류는 만드는 재료, 색상, 문양, 의미 등에 따라  분류되며,

소재는 금, 은, 보석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자수나 장식적 부속품 등으로도 장식되었다.
노리개는 하나 단독으로 사용하는 단작 노리개의 경우도 있으나

여러 개를 같이 합해 사용하는 경우 특히 삼작 노리개가 많았다.
  노리개의 명칭은 색상, 재료, 형태, 개수 등의 순으로 붙여지는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매미 노리개, 수나비 노리개, 옥 노리개, 나비 삼작, 대 삼작 등이 있으며

자손 만대의 뜻으로 표주막 삼작, 고추 모양 노리개를 했고 박쥐,

나비 등은 복이나 장수를 뜻하며, 당의나 저고리 고름에 찼다.

 

 

 

 

 

2) 비 녀


  비녀는 계, 채, 잠 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워지며 조선 후기 얹은머리를 금지하고

낭자머리를 권장한 후부터 더욱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비녀의 모양과 소재는 다양하였는데 여인의 머리에 꽂힌 비녀를 보고 계급을 알 수 있었다.
  비녀는 긴 부분의 몸체와 머리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머리 부분은 비녀가 낭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모양을 내고 장식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머리부분의 모양과 만든 재료 등으로 종류가 구별되어 진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3) 첩 지

 

 첩지는 조선시대 부녀자가 예장할 때 머리 위에 얹어 장식하던 머리 장식품으로

3㎝ 너비의 가체 중간에 천을 대고 그 위에 첩지를 얹어서 고정시켜

가리마 위에 올려놓고 다리를 좌우 귀 뒤로돌려 쪽 머리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가체금지령 이 후 쪽진 머리를 하게 되면서부터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용첩지, 봉황첩지는 황후와 왕비가 사용하였고 개구리 첩지는 내외 명부가 당의를 입고 사용하였다.

장식품인 첩지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였는데

상궁은 은제 개구리, 정경부인은 도금개구리, 정부인은 머리부분만 도금한 개구리를 썼다.

 

 

 

4) 뒤꽂이


뒤꽂이는 쪽머리뒤에 덧꽂는 비녀 이외의 장식물을 총칭한 것으로

끝이 뾰족한 단순한 뒤꽂이 이외의 실용적인 면을 겸한 귀이개, 빗치개 등이 있다.
  재료와 두식(頭飾)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나 일반 뒤꽂이 가운데

가장 많이 애용 된 것은 화접 뒤꽂이로 매화나 국화사이에 호랑나비가 앉은 것과

연봉뒤꽂이가 이밖에 비취, 산호, 진주 등을 사용하여 매우 화려하게 만들었다.

 

 

5) 장 도


 장도는 반가의 성인이면 허리띠나 주머니끈에 매달아

일상적인 소지품으로 휴대했던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이다.

점차 손칼로서의 실질적인 기능보다는 상징성과 장식성이 강조되어

장신구로서의 역할 특히 여인들의 노리개 장식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몸에 지니는 것인 만큼 장도집과 자루를 호사스럽게 꾸며, 십장생,

용 등의 각종 상서로운 문양을 조각하거나 상감하였는데

장식은 대칭적이며 고리가 달리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6) 화 관


조선시대 궁중에서 의식이나 경사가 있을 때, 반가에서는 혼례시나 경사시에

대례복, 또는소례복을 입을 때 착용한 수식물이다.

족두리와 마찬가지로 조선 영조 때 가체금지령에서 가체에 대신케 함으로 일반화되었다.

관에 오색구슬로 꽃 모양을 둘렀고 떨 나비를 달았다.

본래 귀족과 양반계급의 부녀자 예복에 쓰이던 화관이 혼례 때에 쓰인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며 관모라기 보다는 수식으로 변모 사용된다.

대개 활옷이나 당의를 입을 때 썼다.
  서민들의 혼례에 등장하여 오면서 일생에 한번 써보는 찬란한 예관으로서의

쓰임새를 발휘하던 화관의 화려함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7) 족두리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의식 때 예복에 갖추어 쓰던 관으로

영, 정조 때 가체금지령이 내린후 성행, 일반화되었다.
  검은 비단 여섯쪽을 이어 꿰매고 안에 솜을 넣어 겉에 장식없이 쓰기도 하고,

상부, 중앙, 옆면에 칠보, 밀화, 옥 등을 장식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8) 아 얌

오늘날 예복이나 생활복에 멋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아얌은

족두리보다 앞선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형태는 위가 트여있고 귀를 덮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모체와 아얌드림 형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체의

두부 정상부위는 홍실의 장식술과 술대를 드리워 장식.
  앞쪽과 옆면은 주로 칠보, 옥, 진주 등의 꾸미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긴 아얌드림 역시 일정 간격의 꾸미개로 곱게 단장한다.

오늘날은 장식의 목적으로 사용되어 다양한 형태의 아얌이 제작되고 있으며
사용재료와 색, 장식문양과 기법이 화려하고 다양하게 응용되어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