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2

'시는 무기가 되어야 하고 시인은 전사가 되어야 한다 는

2020.11.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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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1. 1. 1.

민주당의 정체성을 묻다 경향 2020.11.16 :

일찍이 이런 청와대는 없었다 경향 2020.11.16

보수화 변곡점, 4757진보가 다수인 사회로 한겨레 2020 11.16

자유주의 논객들이 다툰 자유론’, 그리고 집회의 자유 한겨레 2020 11.16

미국 대선과 바이든의 경제학 한겨레 2020 11.16

이러자고 촛불 든 건 아니다 한겨레 2020 11.17

중립의심받는 총장, ‘임기보장이 뭔 의미 있나 한겨레 2020 11.17

'민주당표' 검찰개혁이 말하지 않는 것 프레시안 2020.11.19.

남부연방을 꿈꾸며 2 경향 2020.11.19

함부로 땅을 파지 말라 |프레시안 2020.11.20

국회의사당에 원전을 짓자 경향 2020-11-19

부동산, 근본 요법과 현실 요법 경향 2020-11-21

11월 단상 경향 2020.11.24.

‘2030 영끌의 몸통 한겨레 2020.11.24.

우리가 선진국이다 경향 2020.11.25.

지리산 산악열차가 그린뉴딜인가 한겨레 2020-11-26

고유한 일반명사 한겨레 2020-11-29

이란 핵과학자 암살은 한반도 문제이다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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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영생 권력검찰 한겨레 2020.12.01

끝내자, 집으로 돈 버는 시대 경향 2020.12.02

하우스 블루경향 2020.12.02.

2003년 평검사, 2020년 평검사 한겨레 2020.12.02.

4·35·18은 다르지 않다 한겨레 2020.12.02.

서욱과 추미애, 사라진 집단지성 한겨레 2020-12-04

언론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mediatoday.2020.12.06

2020, 어떤 시대의 종말 한겨레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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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권력 수사는 정치행위다 한겨레 2020-12-09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노동자들이 부서진다 경향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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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왜 단병호 앞에서 마음이 복잡했을까 한겨레 2020 12.14

누구 편이냐물었죠? 한겨레 2020.12.15.

 

독재자비난받은 루스벨트에게서 배울 점 한겨레 2020-12-16

노르웨이 부자들이 던지는 교훈 한겨레 2020-12-17

민주화 시대의 방종한겨레 2020-12-17

유튜버의 갑질행태, 폐해 막을 장치 시급하다 CBS노컷뉴스 2020-12-18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한겨레 2020-12-19

싸가지 없는 진보 한겨레 2020-12-20

민주주의 위기와 사법부 매일신문 2020-12-20

·윤 갈등을 보는 법 경향 2020.12.21

추격의 시대 넘어 전환의 시대, 새 발상이 필요하다 경향 2020.12.21.

정치의 사법화, 어떻게 막아야 할까 한겨레 2020-12-23

사법쿠데타에 의한 브라질 민주주의의 전복 한겨레 2020-12-24

대통령 결정 뒤집은 사법부와 안철수의 선거 참여 |프레시안 2020.12.25.

민주노총 바라보는 시민사회 눈빛이 더 힘들다한겨레 2020,12,28

윤석열의 법치 vs 윤석열의 정치 경향 2020.12.29

반문 감정이 추동하는 윤석열 정치한겨레 2020.12.29

석과불식 경향 2020.12.30.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프레시안 2020.12.31.

 

민주당의 정체성을 묻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의석수는 174석이다. 열린민주당 3석과 우호적인 무소속 의원들까지 합치면, 사실상 집권 여당은 국회 정원의 3분의 2180석을 초과한다. 참여정부 시절이나 문재인 정부 전반기처럼 야당의 발목잡기를 더 이상 탓하기 어렵다. 야당의 실수나 야당에 대한 반감에 기대어 반사이득을 보는 소극적 전략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민주당이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입법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처지이다.

 

그러나 45일이나 늦게 개원한 7월 이후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입법으로 보여준 성과는 거의 없다. 구체적인 입법 성과는 고사하고, 부동산정책의 반복적 실패로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감만 높이고, 나아가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무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인지, 의구심만 키우고 있다. 특히 노동 및 재벌 문제에선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기나 한 것인지 헷갈린다.

 

민주당이 집권하고 국회의 절대 다수당이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고 산재사고 OECD 1위라는 비극적 현실을 바로잡을 것으로 믿고 지지했던 국민들은 요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보수야당인 국민의힘이 오히려 협조할 뜻을 보이자, 부랴부랴 정의당 안보다 후퇴한 법안을 내놓고, 이마저도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다. 하청 단계나 하청기업의 규모와 무관하게 원청사업자가 궁극적으로 안전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엄중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죽음의 외주화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기업이나 기업주에게 부담을 주는 법안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있다면, 민주당은 이들을 출당 조치해야 한다. 아니면 민주당 주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국민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의 입법 추진 과정도 갈수록 가관이다. 그나마 의미가 있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입법을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민주당 의원들이 하고 있다. 사실 이 법안들이 정부 원안대로 입법된다 하더라도,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킨 후, 벤처기업 활성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지주회사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소유를 허용해주고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음흉한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벤처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추진하는 이들 법 개정안이 사실은 벤처기업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세습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대다수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정 공정경제와 혁신경제를 추구한다면, 기술탈취와 소비자 착취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 확립을 위해 더 절실하게 필요한 징벌배상, 디스커버리, 집단소송 제도를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입법할 의지가 과연 있는가? 보험가입자의 자산을 지나치게 많이 계열사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위험을 규제하는 보험업법 감독규정을 무력화시켜 삼성생명특별법이 되어버린 보험업법을 정상화할 의도가 있기는 한가?

 

공정경제 3법보다는 오히려 복수의결권 주식 및 지주회사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소유 허용 여부와 징벌배상·디스커버리·집단소송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 및 보험업법 개정 등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재벌정책에 대한 정체성을 결정할 것이다. 특히 복수의결권 주식을 비상장 벤처기업이 한시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이는 재벌들이 꼼수 세습을 합법화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재벌왕국으로 바꾸는 법제적 초석을 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분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나라가 될 것이다.

 

노동 및 재벌 문제에 대해 민주당의 보수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학계와 시민사회,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이 노동 및 경제 관련 법안의 정확한 내용과 함의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국민이 묻기 전에 민주당 의원들이 민주당의 정체성을 먼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최소한 위선적이라는 비난은 면할 수 있다./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2020.11.16

 

일찍이 이런 청와대는 없었다

조국 민정수석(직권남용 등 12개 혐의), 한병도 정무수석(선거개입), 전병헌 정무수석(뇌물), 신미숙 인사비서관(환경부 블랙리스트), 송인배 정무비서관(불법정치자금),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감찰 무마와 선거개입), 최강욱 공직비서관(허위 인턴증명서, 선거법 위반), 윤건영 상황실장(회계부정) 등등.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되었다. 일찍이 이런 청와대가 또 있었던가.

 

수사가 중단되지 않았다면 이 목록에 비서실장 이름까지 실릴 뻔했다. 최근에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경제수석실 행정관, 민정비서실 행정관, 민정비서실 수사관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 검찰에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한다. 그 밑에서 일하던 전직 행정관 2명의 휴대전화도 압수된 모양이다.

 

검찰의 칼끝이 청와대를 향하자 윤건영 의원이 느닷없이 경고를 하고 나섰다. “월성 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가 공약을 지키는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감사원과 수사기관이 위협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체 국민 중 41%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고, 41%도 그의 모든 공약에 동의한 건 아닐 게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탈원전 사업에 찬성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찬성의 범위 안에 그 사업을 수행하는 방식의 불법성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올바른 정책이라도 그것을 수행할 때 적법한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 지금 검찰과 수사기관에서 어디 정책 자체를 문제 삼던가. 그저 그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의 불법성을 따질 뿐이다. 그런데 윤 의원은 이 차이를 교묘히 지우고 있다.

 

그의 주제넘은 발언은 이 정권 사람들의 작풍(作風)’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앞에 열거한 청와대 인사들이 저지른 비리는 크게 권력형개인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단순한 개인 비리에 가깝다. 반면 유재수 비리 감찰 무마, 울산시장 선거개입, 환경부 블랙리스트나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은 청와대의 작풍’, 다시 말해 권력의 행사 방식에서 비롯된 권력형 비리라 할 수 있다.

 

이 해괴한 작풍의 바탕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윤 의원은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이니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의 불법성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사업의 목적이 정당하니 절차의 적법성은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에는 정책 실행의 과정과 연관된 절차의 정당성 또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여당의 최고위원인 신동근 의원은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불편하고 또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감사원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결국 감사의 결과를 자기들이 설정한 숭고한(?) 대의에 뜯어 맞추라는 요구다. 그런 이들이니 원전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일쯤은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게다.

 

청와대 작풍의 또 다른 요소는 대통령 심기 경호.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VIP를 위한 손타쿠사건에 가깝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도 대통령이 벌인 현장 이벤트의 뒤치다꺼리를 하려다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되었다. 수십년에 걸쳐서 해야 할 탈원전을 대통령 심기에 맞춰 무리하게 서두르다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떳떳한 사업이라면 떳떳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합법적 방식으로 수행될 수 없는 사업이라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윤건영 의원의 경고는 결국 청와대는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 그 경고가 먹힌다면, 진짜 범인들은 다 빠져나가고 밤에 몰래 444개의 자료를 삭제해야 했던 말단 공무원들이 그 책임을 뒤집어쓸 것이다.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나, 왠지 그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경향 2020.11.16 03:

 

발톱-. 맞는 말이지. .

study****-일찍이 저런 덜떨어진애 기사를 자주 실어준 언론도 없었지...

복숭아 -진짜 도덕성은 개한테 던져준 정권..그러고 엄청 고고한 척..진중권 이 사람이 하는 말에 절절히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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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도대체 경향신문 정체성이 뭔지 궁금하다 문민정부 흠짓내기인지 부패골통 적폐세력 지원인지 최소한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있어야지 조중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싶은 것인가

똥묻은 개는 온동네 싸돌아 다니며 똥칠을 하는데 똥묻은개 잡아서 씻기자하는 문민정부의 손가락티를 가지고 드럽다 논하는가 제정신이면 전두환이 부터 때려잡고 이명박이,박근혜 부정부태부터 파헤치고 최소한 윤석열의 패륜적인 망나니짓부터 논해야 하지 않는가

 

cho****-이재오김문슈, 그리고 이자 까지...이해 불가능한 인간들이다. 한때는 진보의 탈을 쓰고 민주화운동 한다고 껍적거리더니 우째 이리 됐나. 불가사의다.

김형사-@cho****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당시 운동권은 진보,보수가 없었다.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는게 공통의 목표였고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진행되며 자기 이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갈리어 정치를 한 것이지. 민주당만 민주화에 공로가 있다는 착각은 하지마라. 180석이라는 의석수만 믿고 하고싶은대로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심지어 지금 민주당 의원들중 당시 민주화로 감옥갔다온 운동권이 과연 몇명이나 있는지 궁금하다...(나도 많을지 적을지 모른다) 당시의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이라면 의석수만 믿고 지들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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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쓰레기 척척석사 왔는가?

이 놈의 뇌는 우동사리로 되어있고 아가리는 온통 통물로 가득차 있는가?

 

naver 대표계정 입니다.

김형사-@심심 쓰레기 댓글러왔는가...진중권의 말중 어떤게 우동사리이며 어떤게 X물로 가득차 있다는 건가? 메세지를 공격할게 없으니 메신저를 공격하는 양아치짓은 그만하길 빈다.

 

보수화 변곡점, 4757진보가 다수인 사회로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향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4월 총선 직후만 해도 당분간 전국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승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총선 직후인 428~2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3%,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19%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4%에 달했다. 지난주 문 대통령 지지율은 46%로 떨어졌다.

 

정당 지지율 변화는 좀 더 가파르다. 서울과 부산 지역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거의 붙었다는 여론조사 결과(117~9일 리얼미터)도 나왔다. 두곳 모두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젠더 이슈 관련 중도사퇴 또는 유고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점은 20·30대 여성 지지세가 강했던 민주당엔 아프게 작용한다. 급하게 당헌을 고쳐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를 내기로 한 점도 궁색하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는 출범 이후 최고치(68%, 113~5일 한국갤럽)를 기록했다. 어느 것 하나 민주당에 쉬운 게 없어 보인다.

 

집권세력의 각종 실책과 비리가 평가의 초점이 되기 쉽다. 이런 상황은 야당 지지층을 결집하고 여당 지지층은 이완시킨다. 그러나 내년 봄 보궐선거가 야당에 꼭 유리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지금의 기본적인 정치지형이 민주당에 유리하게 형성돼 있는 탓이다.

대통령제에서 선거는 집권당보다 대통령 지지율의 영향을 더욱 민감하게 받는다. 집권 4년차인 문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좋은 편이다. 1110~12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부정 비율은 각각 46%-45%로 엇비슷하다. 눈여겨볼 건, 뚜렷한 계기가 없는데도 국정운영 긍정 여론이 1주일 전에 비해 3%포인트 오른 점이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정치적 악재를 만나면 40% 선까지 내려갔다가도 곧바로 40% 후반대를 회복하고 있다. 이 지지율의 복원력이 현 정치지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집권세력에 유리한 진보 우위의 정치지형이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공화당이 완전히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던 1930~60년대 미국 정치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한 정당에 대한 유권자 지지 강도는 그 정당을 상징하는 인물의 선호도로 표현된다. 미국에서 1860년대 이후 오랫동안 흑인들이 공화당을 강하게 지지한 건, 노예해방을 선언한 링컨이라는 상징 인물에 힘입은 바 컸다. 이걸 바꾼 게 1932년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루스벨트 이후 흑인 유권자는 민주당 지지기반으로 변했다.

 

한국 보수정당의 상징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시기 시기마다 약간의 굴곡이 있지만 197910·26 이후 이 흐름은 변한 적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징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상징 인물이었지만, 2009년 서거 이후 특히 젊은 세대에게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2012년부터 4년 단위로 세차례 실시한 박정희·노무현의 호감도 변화조사결과는 눈여겨볼 만하다. 20124월 조사에서 박정희·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호감도는 각각 66%, 67%로 비슷하게 나왔다. 20(노무현 81%, 박정희 46%)30(노무현 84%, 박정희 53%)에선 노 전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50(박정희 81%, 노무현 55%)60대 이상(박정희 84%, 노무현 40%)에선 정반대였다. 40대에선 노무현 77%, 박정희 63%로 노 전 대통령이 높지만 격차는 크지 않았다. 그해 12월의 18대 대선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건 이런 박빙의 호감도가 밑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4년 뒤인 2016년 조사에서도 이 추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박정희 68%, 노무현 67%로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20201월 조사에서 두 전직 대통령 호감도는 노무현 74%, 박정희 45%로 극적으로 변화했다. 20~30대뿐 아니라 40(노무현 82%, 박정희 31%)50(노무현 73%, 박정희 58%)에서도 노무현이 박정희를 압도했다. 직접적으론 박근혜 탄핵과 촛불의 영향이지만, 2012년 노무현에게 강한 호감을 보이던 20~30대가 나이 들면서 진보의 층이 두꺼워진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위원은 각 진영의 상징 인물에 대한 호감도는 투표 성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의미한 지표다. 이 정도 격차로는 보수가 선거에서 승리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감도가 회복되면 달라지겠지만, 딸인 박근혜의 실패로 당분간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보수에서 새로운 상징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지금의 정치지형이 바뀌기 쉽지 않은 이유다. 미국에서 루스벨트 영향력이 강하던 반세기(1930~70년대) 동안 민주당 다수파 시대가 지속되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새로운 보수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비로소 정치 주도권이 교체된 것과 비슷하다.

 

여기엔 세대와 지역의 변화가 깔려 있다. 과거의 지역 갈등구도가 약화하면서 전국 차원의 정치·사회 갈등구도가 강해졌다. 지역과 세대의 변화는 현 시기 진보-보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한국갤럽은 2012년과 2019년 유권자의 정치적 이념성향에 관한 의미 있는 조사를 했다. 스스로를 진보·중도·보수 중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주관적 이념성향 조사였다. 이슈별 응답에 기초한 객관적 이념성향 조사와는 다르지만, 유권자의 투표 성향을 예상하는 데엔 유용한 도구다. 조사결과는 흥미롭다. 20127310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나는 보수라는 응답 비율이 나는 진보라는 응답 비율보다 높아지는 나이는 47살이었다. 47살 밑으로는 진보비율이 높고, 그 위 연령대에선 보수비율이 높다는 얘기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한다는 통설이 있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수화의 변곡점은 47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2019년 조사에선 이 변곡점이 57살로, 7년 전에 비해 열살 정도 올라갔다. 2012년 한국 사회에선 47살이 보수와 진보 숫자가 같은 나이였다면, 지금은 57살이 그 나이라는 것이다. 57살 밑으로는 진보 다수의 세대가 형성됐다는 뜻이다. 이렇게 50대 후반까지 진보성향을 갖는다면, 보수정당은 매번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30년 전인 1990년대와 비교하면, 그때는 야당인 민주당이 항상 불리한 정치지형에서 싸웠다면 지금은 국민의힘이 같은 처지에 놓인 셈이다.

 

특히 진보성향이 도드라지는 연령대의 존재가 눈에 띈다. 2012년엔 20대와 40대에 비해 30대에서 고르게 진보 비율이 높게 나왔다. 2019년 조사에선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진보 비율이 가장 높았다. 7년의 세월을 따라 진보세 강한 연령대가 그대로 옮겨간 것이다. 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을 떠받치는 연령대와 일치한다. 한국갤럽의 올해 1020~22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로 잘하고 있다’ 43%, ‘잘못하고 있다’ 45%였다. 한주 전에 비해 긍정 평가는 4%포인트 떨어지고 부정 평가는 3%포인트 올랐다. 그런데 30대와 40대에선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여전히 큰 폭으로 앞서고 있다.(3051%-36%, 4056%-37%) 집권 후반기에도 문 대통령이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는 동력이 바로 30~40대의 강력한 지원인 셈이다.

 

그 이유를 세대적 동질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장덕현 한국갤럽 연구위원은 지표로 보면 30대 후반~40대 초반이 가장 안정적인 진보 세대로 나온다. 2002년 노 대통령 당선과 2009년 그의 죽음을 겪었던 집단 경험, 그걸 바탕으로 2017년 탄핵 운동에 참여했던 것이 이 세대의 정치 성향에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특히 20대 초중반의 역사적 경험은 세대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 흔히 586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50대가 과거의 50대에 비해 보수화하지 않은 건, 1980광주 학살의 경험이 이들의 삶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을 20살 무렵에 봤고 7년 뒤엔 그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했던 경험이 30~40대를 20대보다 확고한 진보 세대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지금의 50대는 과거의 50대보다 진보적이다. 세대 분석으로만 보면, 한 세대 전인 1990년대에 비해 한국 사회는 분명히 진보가 다수인 사회로 이동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잇단 선거 승리엔 이런 인구사회학적 변화가 깔려 있다.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한겨레 2020 11.16

 

자유주의 논객들이 다툰 자유론’, 그리고 집회의 자유

코로나 방역을 위해 집회의 자유를 얼마나 제한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지난 광복절 보수단체의 집회 이후 코로나의 전국적 확산에 놀란 정부가 차벽을 설치하여 개천절 집회를 전면 차단하고 대면예배를 금지하는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하자 아무리 방역 목적이라지만 정부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반면 정부와 여권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을 위해 일정 정도 집회의 자유 제한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 같다.

 

어느 입장이 더 타당한가? 정부는 전쟁 또는 팬데믹 상황과 같은 비상시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제한할 수 있다면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만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사실 이러한 문제는 근대 정치사상의 핵심적 문제로 존 스튜어트 밀을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다. 마침 잘 알려진 두 논객이 밀의 <자유론>을 언급하며 집회의 자유 문제에 대해 날 서게 충돌한바 밀의 주장을 간략히 소개하고 개인의 자유의 한계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밀에 의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만 관련된, 즉 행동의 결과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적 영역에서 정부나 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밀은 이러한 자유의 예로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감정의 자유 등 의식 내면의 자유, 기호의 자유, 행복 추구의 자유, 결사의 자유, 좋은 삶을 추구할 자유를 들고 있다. 더 나아가 밀은 각 개인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그리고 행동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스스로 감수하는 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처럼 사적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밀은 타인과 관련된 영역, 즉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적 영역에서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특히 밀은 개인 또는 공공에 확실한 손해를 끼치거나 손해를 끼칠 확실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사안은 자유의 영역을 벗어나 도덕성 또는 법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밀은 정부나 사회가 타인의 안전을 지키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개인의 의무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법적 강제와 처벌 같은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피해가 불확실한 경우는 강제 대신 설득, 권유, 훈계 등을 통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밀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사안일 경우에도 범죄를 예방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례로 일반적인 경우 술 마시는 일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로 술에 취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간섭할 일이 아니지만, “술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에게 특정한 법적 제한을 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밀의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자유는 자신만 관련된 영역, 즉 양심과 사상, 신앙 등 의식 내면과 행동의 결과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적 영역에서는 절대적이지만 그렇다고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특히 타인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행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 일부에선 사회적 통제 필요성에 대한 밀의 지적과 달리 개인의 자유의 절대성만을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통제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정치학) 한겨레 2020 11.16

 

미국 대선과 바이든의 경제학

결국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이겼지만 내용은 꽤나 불편한 승리였다. 이번에도 많은 이들은 바이든의 낙승을 전망했지만 7300만명이나 되는 유권자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고 경합주에서도 트럼프는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블루웨이브를 기대했던 의회 선거의 결과도 민주당에 실망스러웠다.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었던 저학력 백인과 노인계층의 지지는 전보다 줄었지만 히스패닉과 저학력 유색인종의 트럼프 지지는 오히려 증가했다.

 

2016년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와 그 패자들의 불만을 동력으로 한 것이었다. 경제의 양극화는 정치의 양극화를 낳는다. 실증연구들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더 노출된 선거구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평등이 높아지며, 그런 지역에서 정치적 지지가 좌우로 더 극단적으로 변했다고 보고한다.

 

이제 미국은 지역적으로도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한쪽으로 치우친 선거구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아졌다. 바이든을 지지한 지역은 주로 대도시 중심지였는데, 이들 지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차지하여 2016년 선거 때의 64%보다 더 높아졌다. 학력과 소득이 높고 자동화의 위험이 큰 일자리가 적은 지역이 이전 선거 때보다 더 많이 바이든을 지지했다.

 

이제 미국은 지역적으로도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한쪽으로 치우친 선거구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아졌다. 바이든을 지지한 지역은 주로 대도시 중심지였는데, 이들 지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70%를 차지하여 2016년 선거 때의 64%보다 더 높아졌다. 학력과 소득이 높고 자동화의 위험이 큰 일자리가 적은 지역이 이전 선거 때보다 더 많이 바이든을 지지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도 트럼프의 선전은 불평등의 시대에 엘리트들이 외면한 소외된 이들 때문이었다. 그가 퇴장한다 해도 트럼프주의는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팬데믹이 가져다준 깊은 불황으로 이미 일자리와 소득의 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트럼프식의 국수주의적 포퓰리즘과 금권정치의 결합이 공화당의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고학력자와 고소득자의 당이 된 민주당의 주류는 불평등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이번 의회 선거에서도 약진한 쪽은 급진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로 대표되는 민주당의 좌파 진영이었다.

 

바이든의 경제학은 이러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의 주된 경제 정책은 재정지출 확대와 부자 증세다. 바이든 캠프는 클린에너지 등에 대한 약 2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교육과 양육에 약 2조달러, 그리고 의료보험과 미국산 제품 구매, 연구개발, 사회복지와 주택 등을 포함한 총 7.3조달러의 재정지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내총생산의 약 35%나 되는 금액이다.

한편 소득 40만달러 이상 구간에 대한 최고세율을 37%에서 39.6%로 인상하는 등 세금을 올리고 트럼프가 21%로 크게 낮춘 법인세를 28%로 높여 재정지출 계획의 절반 이상을 충당할 계획이다. 또한 최저임금 15달러로의 인상과 노조 할 권리 등 노동자들의 권익을 강화하는 조치들도 제시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좌클릭한 계획으로 평가되지만 전국민 단일의료보험과 같은 진보적인 정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바이든의 경제 정책은 불황과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자본주의의 건강한 작동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지출은 10년에 걸친 계획이며 의회에서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파가 되지 못하고 대규모 재정확장이 불가능하다면 오바마 정부 때와 비슷하게 경제회복이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바이든의 정책으로 트럼프 대통령 때에 더욱 악화된 불평등의 추세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20150.479에서 20190.484로 높아져 소득불평등이 2차대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의 숨은 승자는 시장을 지배하며 막대한 이윤을 거두는 거대 기술기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의회와 행정부가 분열되면 이들에 대해 반독점 규제를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부통령 당선자 카멀라 해리스는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사이다.

 

코로나19의 극복, 경제회복과 불평등 개선,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여러 무거운 과제를 짊어진 바이든의 정책 슬로건은 더 나은 재건이다. 바이드노믹스가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고 미국을 더 나은 곳으로 재건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시민들의 정치적 지지와 압력일 것이다. 해리스는 당선이 결정된 뒤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행동이고 우리가 싸운 만큼 강해진다고 강조했다. 불평등이 낳은 트럼프주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재건을 만들어내는 힘도 민주주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2020 11.16

 

이러자고 촛불 든 건 아니다

6년 전,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6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열흘 동안 그 곁에서 동조 단식을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지금,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가 한 달 넘게 단식농성 중이다. 요구사항은 6년 전 유민 아빠 때와 큰 차이가 없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세월호 조사를 맡아온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활동이 내달 10일로 종료되고, 5개월 뒤엔 세월호 관련 공소시효도 만료된다. 여전히 사건의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할 때마다 정부는 사참위 조사와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고 했다. 지켜보다가 시간이 다 갔다. 지난 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하고 사참위의 시효를 연장해달라는 국회 청원에 10만명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아직 정부 여당에서는 반응이 없다.

 

4년 전,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한 국회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192시간27분이라는 세계 최장기 기록을 세우며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야당 의원들은 다수당이 되면 제일 먼저 테러방지법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고 민주당은 이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6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었지만, 테러방지법 폐지안을 제출한 정당은 없었다. 21대 국회에 와서 민주당 이병훈 의원의 테러방지법 개정안이 나왔다. 테러의 정의를 확장해서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도 테러 행위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테러방지법은 영장 없는 국민사찰을 허용하고 헌법상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필리버스터를 주도했던 정당에서 테러방지법을 한층 강화하는 안을 내놓은 것이다.

 

2년 전, 24살의 하청업체 청년노동자 김용균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를 만난 자리에서 생명과 안전을 이익보다 중시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는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벌 강화와 관련 입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던 약속은 파기되었다. 책임져야 할 원청회사의 업종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김용균법에 김용균씨나 구의역 김군의 일터는 해당되지 않았다.

 

지난 8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제출되었다. 제안자는 김용균재단의 김미숙씨였다. 97일 이낙연 신임 민주당 대표도 국회 연설에서 해마다 2000여명의 노동자가 희생되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빨리 처리되도록 소관 상임위가 노력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은 기업 부담을 고려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대신 산안법 개정을 추진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산안법 개정안은 원청기업의 책임자를 처벌하는 대신 과징금을 대폭 올리는 쪽을 택했다. 동시에 3명 이상, 혹은 1년 동안 3명 이상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과징금을 최고 100억원까지 물게 한다는 내용이다.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9월 화물차 운전기사가 또다시 기계에 깔려 숨졌다. 2년 사이 두 명이 숨졌지만, 민주당 산안법안의 그물망 밖이다. 1년에 3, 100억이란 기준이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년에 5, 1000억이라고 해도 원청-하도급의 사슬 속에서 하루 5.5명이 산재로 숨지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불행과 고난을 버티게 하는 힘은 실낱같은 희망이다. 지금은 돈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해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지금보다 나아지리란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은 초인적인 성실성과 인내심을 발휘한다. 그러나 희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번번이 외면당할 때 희망은 좌절이 되고 슬픔을 넘어 분노가 된다.

 

4년 전 이맘때를 기억한다. 아스팔트 냉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지만 추운 줄 몰랐다. 이참에 썩어빠진 정치를 확 뒤엎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지금 이런 세상 보려고 촛불 든 게 아니다. 촛불에 담긴 희망을 담보로 권력을 얻었다면, 촛불에 담긴 열망을 하나하나 이루는 데 그 권력을 써야 한다. 콘크리트 지지층에 기대어 오만하고 안일했던 권력이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도 똑똑히 기억해둬야 한다. 누구 편에 선 개혁인지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공수처 신설이나 검찰개혁도 허망하다. ‘정권 재창출은 개혁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진순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한겨레 2020 11.17

 

중립의심받는 총장, ‘임기보장이 뭔 의미 있나

피고발인 12. 성명불상자(백운규 채희봉(대통령비서실 비서관)의 상급자로서 전체 범행을 지시한 자)’.

1야당이 고발장에서 이렇게 좌표 찍은 뒤 검찰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는 게 검찰개혁이라고 부하들 앞에서 일갈했다. 이틀 뒤 충직한 한 부하가 수사관 100여명을 압수수색 현장에 풀었다. ‘조국 사건시즌2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은 정책 수사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 등의 형사법 위반 수사라고 하지만 기세는 정책 수사 이상이다. 검찰총장 참모 출신 검사장이 지휘하는 강도 높은 압수수색은 다시 살아있는 권력을 표적 삼는 모양새다.

 

그러나 애초 월성 1호기 폐쇄를 놓고 이렇게 난리 칠 일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노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2012년 월성 1호기와 같은 노형(CANDU-6)의 캐나다 원전이 폐쇄결정됐다. 20169월엔 하필 월성 원전이 있는 경북 경주 지역에서 국내 최대인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다. 지역민들은 폐쇄를 강력 요구했다. 법원 역시 높아진 안전 기준에 미흡하다며 수명(30)이 지난 원전을 계속 운행하는 게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현 정부가 아니더라도 조기 폐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정부를 맹비난하는 보수언론들 역시 박근혜 정권 때는 안 그랬다. 20156월 고리 1호기 폐쇄를 결정할 때만 해도 군말 없이 받아들이며 이참에 원전 폐로산업 육성해야’(2015613일치 <조선일보> 사설)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언론들의 표변은 정략이 아니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월성 1호기 감사를 지휘하던 감사원장은 이들의 논리에 상당히 공감했던 모양이다. ‘대선 지지율 41%가 국민 대다수 지지냐라고 했다는 감사원장 발언은 탈원전은 5년 임기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 아니’(2017620일치 <조선일보>)라는 사설과 닮은꼴이다. 선거와 공약에 대한 몰이해가 닮았다. 이례적으로 총선 6일 전부터 사흘 연속으로 감사위원회의를 강행하며 총선 전 발표를 서두른 것도 월성 1호 조작 진상, 총선 뒤로 넘기면 안된다’(2020220일치 <조선일보> 사설)는 주장에 자극받은 때문 아닌가. 내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집으로 돌아가버렸다는데, 총선에 집착한 게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 결국 감사원장의 이런 태도가 보수언론과 만나 사안을 정치 쟁점으로 키웠다. 보수언론들은 감사원 발표 직후 월성 1호 폐쇄 주역은 결국 문’ ‘대통령이 (중단 언제 결정) 물은 뒤 장관이 조기 중단 지시라는 등 대통령을 몸통으로 지목했다. 취임 이후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지휘 방침으로 정한 듯한 윤석열 총장의 사단이 여기에 뛰어든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만 바라본다는 윤석열식 정의도 검찰에 대해선 예외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지적했듯이 채널에이 사건에선 기자의 휴대폰과 노트북이 수차례 초기화되는상황에서도 감찰을 저지하며 사실상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쪽으로 사건을 지휘했다. 막판까지 수사검사의 직무 배제를 요구하며 대놓고 측근 편을 들었다. 그 과정 내내 보수언론들의 후원이 든든한 뒷배가 돼주었음은 물론이다.

 

윤 총장의 어법은 이미 정치인에 가깝다. ‘독재’ ‘사회 봉사’ ‘살아있는 권력 수사발언에 이어 이번엔 사회적 약자 보호가 검찰의 기본적 책무라고 했다. 약자 보호에 애쓴 검사들과의 간담회도 진행 중이다. 검사 대상 강연에서 말끝마다 국민’ ‘국민하는 것도 검찰총장보다는 대선 주자 느낌이다. “윤 총장이 최근 정치를 해야겠다는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느낌이라는 지인의 전언(<한겨레> 117일치 2)도 이를 확인해준다. 그간의 행보와 지지층을 보면 당연히 야권 주자다.

 

임명권자가 환상의 조합을 꿈꿨던 전임자에 이어 추미애-윤석열조합 역시 원수지간이 된 지 오래다. 갈등 상황은 국민들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 정치인 장관의 권한 남발은 정치 지망생 총장의 정치 행보를 희석하는 보호막이 돼주고 있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최소 2년간 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 제도다. 그러나 정치 중립을 의심받는 총장에게 임기를 보장해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검찰 조직에도, 정권에도, 당사자에게도 일 뿐이다. 스스로 결단하지 않으면 임명권자가 결자해지하는 수밖에 없다. 임기 없는 장관이야 (공수처장 추천 말고는) 더이상 자리 지킬 명분도 실익도 없음은 물론이다.

김이택 대기자 rikim@hani.co.kr 한겨레 2020 11.17

 

 

'민주당표' 검찰개혁이 말하지 않는 것

검찰개혁,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서야

언젠가부터 뉴스를 살필 때 슬쩍 건너뛰는 기사들이 생겼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 총장의 갈등을 다루는 기사들이다. 검찰개혁에 대한 이견에서 출발한 갈등에서 시간이 지나자 원자력 발전소 폐쇄 결정에 대한 재수사가 등장하고,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휴대폰 비밀번호 강제로 해제하는 법을 추진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들의 말 한마디까지 전부 기사화 되면서 서로의 가족에 대한 흠집 내기와 신상 털이가 이어진다. 이 상황에 대한 피로감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단순히 고위 공직자 간의 갈등이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이라는 권력 기관 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쏟아지는 보도 속 피로감에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차분하게 지금의 국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시작은 분명 검찰개혁

분명 시작은 검찰개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검찰개혁을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검찰은 물리적 공권력을 행사할 권한을 지닌 동시에 사법 절차의 시작점인 기소를 독점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권한에 비해 견제는 적게 받는데, 범죄 수사의 독립성을 이유로 외부의 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 구성원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스스로 기소를 독점하는 까닭에 검사가 법적 처벌을 받는 일 역시 드물다. 검찰이 바로 이러한 지위를 이용해 정치권과 결탁하거나 불화하며 스스로를 정치 세력화하고, 정치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일이 잦았다.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 우병우, 김기춘과 같이 검찰 출신 인사가 청와대의 요직에서 검찰을 정권의 칼로 활용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기도 했다.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배경이다. 탄핵국면을 거쳐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고,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검찰개혁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검찰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수사권을 검찰로부터 분리하는 것, 둘째, 검찰의 비위가 발생했을 때 셀프 면책이 되지 않도록 공수처를 통해 검찰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94월 민주당이 주도해 공수처법안과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고 20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시켰다. 마지막 세 번째 방향은 법무부의 탈()검찰화라는 기조 아래 정부가 검찰을 통제하며 검찰이 독자적 정치 세력처럼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부임과 동시에 검찰 인사를 재편하고, 검찰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도 이 맥락에 놓여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에 대해서 "검찰개혁의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고 그게 본질"이라고 한 말은 현 사태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태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표' 검찰개혁이 말하지 않는 것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민주당이 국회에서 제도를 만들고, 법무부가 검찰과 직접 대립하며 수행하는 '민주당표' 검찰개혁 방안의 결론은 한 가지를 향한다. 비대한 검찰의 권력을 견제하고 쪼개서 그 힘을 약화시키자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는 검찰의 기소 독점을 깨뜨리기 위함이었고,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나누는 일이었으며, 법무부장관의 검찰 인사 재편 강행은 검찰의 인사권을 흔들어놓았다. 거대한 권력인 검찰을 공격해 약화시키면 곧 검찰이 개혁된다는 식이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개혁이 중요한 과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검찰이 변해야 하는 이유가 정부와 민주당의 말처럼 그저 검찰 권력이 비대하기 때문일까. 검찰 권력의 '크기'에 집중할수록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비대한 권력이 작동하는 '방향'이다. 2009년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생존권 투쟁을 벌이다 참사가 벌어졌을 때 용역 깡패와 경찰의 유착 관계를 부실하게 수사한 것도, 참사의 모든 책임은 철거민에게 있다며 기소하고 수사기록물은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검찰이다. 2013년 국정원과 함께 서울시의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에 가담했지만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도 검찰이다. 기업이 노동조합 파괴 공작을 벌릴 때는 눈을 감았다가, 노동자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시신을 탈취해 강제 부검하도록 수사를 지휘한 것도 검찰이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검찰이 정부와 힘을 겨룰 수 있을 만큼 비대한 권력 집단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검찰이 특정한 사건에만 공안사건이나 노동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지배 질서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이 방향성을 바꿔 놓지 않으면 노동자와 시민에겐 무용할 따름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검찰개혁이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말하지 않고 있다.

 

'검찰 길들이기'는 검찰개혁이 아니다

201712월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검찰의 권력이 지금까지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왔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시작부터 위원회의 구성, 조사 사건 선정 과정, 위원회의 권한 등에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출범 후에도 당시 문무일 검찰 총장의 사과를 다섯 차례나 받아냈다고 하지만 상징적인 사과에서 그칠 뿐 검찰의 과거사에 대한 의미 있는 권고 역시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김학의 전 차관의 성범죄에 대해 구속수사라는 성과를 만들었다하지만 이마저도 성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뇌물죄'를 적용하는 방식이었다.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위원회였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과거사위가 개별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오히려 과거사위의 역할을 '개별 사건의 재심을 담당하는 것'처럼 여겼다는 데 있다. 검찰 권력이 여태껏 어떻게 움직였는지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개혁의 방향성을 도출해낼 기회, 즉 검찰이 지금까지 민주적 통제나 시민의 감시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던 조직인지를 확인하고 변화를 꾀할 기회를 날린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사위의 활동은 각 사건의 시시비비에 갇히는 꼴이 되었고, 제대로 된 결론 역시 도출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태도였다. 과거사를 통해 검찰의 문제를 진단하는 일에 앞장서기는커녕 과거사위의 부실한 운영을 핑계 삼아 기승전-공수처라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검찰개혁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자리는 걷어차고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 흐름은 소위 '조국 사태' 이후 지난 1년 동안 법무부가 보여주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태도는 '검찰개혁'을 통해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이 아니라 정권이 검찰력을 손에 쥐기 위한 모습에 가까웠다. 추미애 장관은 부임과 동시에 친정부 성향의 검사를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하는 것을 넘어 이에 반발하는 평검사의 실명을 거론하기까지 하며 검찰을 길들이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외에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과정이나 울산시장 하명수사팀과 같이 정부와 관련된 수사팀의 지휘라인을 흔드는 모습은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길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누군가는 행정부 산하의 검찰이 장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이에 반발하는 검찰이 문제가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찰개혁은 권력 기구의 서열을 정리하거나 재편 하는데 멈추어선 안 된다. 정권이 검찰력을 손에 쥐고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일을 검찰개혁이라 부를 순 없다. 공권력 앞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시민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비대한 검찰 권력의 내용과 방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시민이 통제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검찰 길들이기'에만 열 올리는 법무부가 정말 검찰개혁을 바라는지, 아니면 검찰이라는 권력을 손에 넣기를 바라는지 의심하게 되는 이유이다.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원칙으로

검찰개혁이 불필요하다거나 지금 검찰이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이 노동자와 시민을 탄압하며 권력에 복무해온 역사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검찰을 장악하고야 말겠다는 식으로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는 '덕분', 검찰은 스스로를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수호하는 집단'이라 자처할 명분을 쌓고 있다. 검찰권 행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토대로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법무부의 검찰 장악이라는 정해진 결론을 반복하는 사이에 개혁의 대상인 검찰이 오히려 개혁의 주체를 자처한다. '정치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진짜 검찰개혁'이라며 검찰이 당당하게 나서는 난처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다시 원칙을 확인하자. 검찰의 권력이 거대하다는 사실 자체로 위협을 느끼는 것은 민주당 정권의 입장에 불과하다. 검찰 권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지, 시민이 감시와 견제를 이어갈 방안이 무엇일지 이야기하자. 공권력이 시민의 삶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소심의위원회'를 설치해서 검찰의 기소를 시민이 직접 견제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도 있다. 검사가 아니라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기소하는 '사인소추제도', 피해자가 직접 상소하고 공소에 참여하는 '공소참여제도' 등 참고할 수 있는 제도 역시 많다. 다만, 2017년 설치한 수사심의위원회가 검찰에 명분만 제공했을 뿐 실제로는 위원회 명단부터 심의 근거까지 모두 비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제도의 도입이나 변화 그 자체는 핵심이 아니다. 공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을 원칙으로 검찰개혁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건너뛴 검찰개혁은 허울뿐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서 시민의 삶을 바꾸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대용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프레시안 2020.11.19.

 

남부연방을 꿈꾸며 2

달 전, “남부연방을 꿈꾸며라는 글을 정동칼럼’(2020·9·17)에 썼더니 친구들이 핀잔을 준다. 교수가 어찌하여 그리 거친 얘기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지방의 절박한 사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야속했다. 그 칼럼은, 여러 지방정부들이 초광역화를 통해 지역발전 비전을 모색하고 있는 최근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수도권 블랙홀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초광역화를 넘어 초초광역화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광주·전남, 전북 등 지리산 남쪽의 지방정부들이 힘을 모아 서울공화국일극체제를 양극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남부연방을 꿈꾸며의 주제였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연방제 수준의국가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에 나온 게 아니다. 과감한 지방분권과 자원분산을 통한 균형발전 정책으로 국가의 틀을 재구조화하자는 주장은 민주화 이후 빠지지 않은 개혁과제였다. 그런데 이 개혁과제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수도권 집중체제의 기득권이 강고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지배, 전쟁과 분단, 국가주도형 산업화와 군부독재 등으로 우리나라의 중앙집권체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고 그 권력을 동심원의 핵으로 하여 자원이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은 우리 사회 기득권체제 혁파와 맞닿아 있으며 풀기가 쉽지 않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지방정부의 초광역화를 통한 지역발전 모색은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지방의 주체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이 스스로 중앙집권체제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지방정부의 초광역화 논의는 의미 있게 발전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선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가 행정통합을 하기로 합의하고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도민 공론화를 시작했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김경수 경남지사와 송철호 울산시장,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합의한 ··경 메가시티 비전이 최근 행정통합 논의로 나아가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도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가 다소간의 입장 차를 해소하고 행정통합 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다. 전북에서도 송하진 전북지사가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초광역 경제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도 충청권 4개 시·도지사가 경제공동체 만들기, 행정통합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모양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강원도는 평화특별자치도 비전을 다듬고 있다.

 

불과 몇 달 사이 솟아오르고 있는 지방정부들의 노력은 벼랑 끝에 내몰린 지방의 절박한 현실의 발로이다. 더 이상 중앙정부의 시혜적 조치들만 믿고 기다릴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지방이 자기주도적으로 살길을 찾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이 살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는 것이 그간의 정세와 다른 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뭔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방제에 준하는자원과 재량권이다. 세제를 바꾸어서 지방세의 비율을 높이고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치권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현실적으로 국가가 이 문제에 대해 손뼉을 마주쳐야 한다. 중앙정부, 국회, 청와대가 뜻을 함께해 주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정세균 국무총리가 전국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런 흐름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비전을 공유한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였다. 그런데 역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의지가 강한 지도자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연방제에 준하는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하겠다는 공약도 했다.

 

연방제에 준하는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개혁을 하려면 적지 않은 제도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종국에는 지방분권 개헌까지 필요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기득권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방이 힘을 모아 그것들과 싸우겠지만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방정부의 초광역화 과제를 대통령 의제로 채택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은 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잘 파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앞장서고 진보·보수, 여야가 손잡고 지방의 미래를 위해, 국가 재구조화를 위해 연방제에 준하는정치개혁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 2020.11.19

 

 

함부로 땅을 파지 말라

개발의 시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애초 인간들이 석탄을 캐고 석유를 개발한다고 땅을 파기 시작한 것이 불행의 시초였다. 그렇게 무한대의 지하자원을 채굴했던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이산화탄소의 엄청난 배출을 초래한 근본 요인이었다.

 

대개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구의 토양은 대기보다 두세 배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다. , 토양은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격리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가장 큰 탄소 저장고인 것이다. 강남 일대 재개발지역 지하 1~3m 깊이에서 유기탄소가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금싸라기 강남 땅의 대부분이 본래 논밭이었고, 논밭은 엄청난 이산화탄소의 저장고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산업화시대, 인간들은 땅을 개발하고 화석연료를 소비하면서 지구의 이산화탄소 순환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땅 속의 탄소 자원을 태우면 지각에 갇혀 있던 탄소는 대기 중으로 대규모로 방출된다.

 

서울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서울은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도시 전체가 아스팔트와 시멘트 그리고 보도블록으로 가득 덮여 물이 대기 중으로 증발할 수 없고, 내린 비도 땅에 스며들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나간다. 비가 땅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해야 하고 시멘트와 아스팔트 포장도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광화문 광장은 이번이 도대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시장만 바뀌었다 하면 광장은 다시 파헤쳐졌고, 그렇게 몇 번이나 광장은 뜯어지고 다시 지어졌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시장이 부재 상태인데도 갑자기 다시 파헤쳐지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파냈다가 다시 또 뜯고 있을 것인가?

 

천혜의 보고 제주도도 제2공항을 짓는다, 관광단지를 조성한다, 비자림 숲을 모조리 자른다면서 매일 같이 개발한다고 난리다. 제발 좀 제주도를 손대지 말라. 언제까지 아름다운 제주도를 파괴할 셈인가?

 

더 이상 우리 땅을 토건족의 손에 맡길 수 없다

이 땅 토건족의 탐욕은 도무지 끝이 없다. 그 탐욕스러운 토건족과 수십 년 간 관료들 간에 쌓아온 관행의 강고한 고리는 여전히 물샐 틈 없이 작동되고 있다. 박정희의 개발성장 시대부터 전국 방방곡곡 산허리를 끊고 터널을 뚫고 그 많은 도로를 탐욕스러울 만큼 만들어왔다. 한국의 고속국도 밀도는 OECD 평균보다 일곱 배나 된다.

 

또 도시마다 도로 지하에 지하철을 건설하고 빈 땅만 보이면 아파트 신축에 4대강 삽질 등등 그야말로 한 날 한 시도 국토를 가만 두지 않았다. 겉치레와 과시욕에 급급한 각 지자체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눈앞의 목표와 이익만 추구한 채 죽음과 절멸의 길로만 치닫고 있다. 참으로 탐욕스럽고 아둔하다. 그러나 가장 위험하다. 우리 국토를 더 이상 토건족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

 

엊그제 밤새 내린 폭우가 104년 만에 11월 최다 강수 기록이라 한다. 요즘은 걸핏 하면 백년만의 기록이 세워진다. 그만큼 이미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는 분명한 경고다.

 

개발이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오고 있다. ‘개발의 시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프레시안 2020.11.20

 

국회의사당에 원전을 짓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수소전기차 충전소가 있다. 지난해 9월에 들어섰다. 수소전기차 충전소는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정부의 목표는 지난해까지 전국 89곳에 설치하는 것이었으나, 주민 저항이 심해 여태 37곳에 머물러 있다.(8월 말 현재) 그런 기피시설이 지체 높은 국회 안에 설치돼 있으니 상징하는 바도 각별하다. 국회는 여염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나랏일 하는 이들은 사사로운 이유를 앞세워 공공시설을 기피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 세종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압도적 다수 여당의 뜻이니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한민국 미래가 걸린 일인 만큼 국민의힘도 수소전기차 충전소 설치 때처럼 흔쾌히 수용하리라 믿는다. 기왕 할 거면 완전 이전이 좋겠다. 그래야 333553에 이르는 드넓은 터에다 또 다른 국가 백년대계를 제대로 도모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건물에 대한 미련도 버렸으면 한다. 싹 밀고 새로 세우는 개발 방식이 우리 주특기 아닌가.

 

국민의힘의 협조로 국회가 이전한다면 여의도 터를 활용하는 데도 국민의힘을 배려하는 게 도의에 맞다고 본다. 국민의힘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원전 살해라고 비탄하며 감사원 감사 청구에 이어 검찰 고발까지 한 데 마음이 쓰여, 그 순애보에 맞춤한 제안을 해본다. 국회에 원전을 짓자. 2년 일찍 폐쇄한 원전에도 그리 애달파하니, 이번에는 100년 가도 끄떡없게 지어보자. 국회의사당 지붕과 원전 지붕 둘 다 둥근 돔인 것도 우연이기만 할까.

 

여의도 국회 터가 원전의 입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더구나 원전 전문가들이라면 그 천혜의 조건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한국과 일본의 원전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만은 예외다. 장 교수의 지론에다 내 짧은 식견을 보태서 설명해보면 이렇다.

 

원전 입지의 제1조건은 원자로를 식힐 수 있는 풍부한 수량. 여의도는 드넓은 한강을 끼고 있다. 민물로는 부족하다고? 라인강을 끼고 있는 프랑스 페세나임 원전의 전례를 보라. 민물은 강점이 더 많다. 지난여름 태풍에 바닷가 원전들이 줄줄이 멈춰 섰다. 강풍에 날아온 소금기에 내부 전력설비가 고장난 탓이다. 다음은 지반의 안전성. 모래를 쌓아 만든 섬이라 지반이 약할 거라고 걱정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 주변에 즐비한 초고층 빌딩을 보라.

 

국회 원전의 미덕은 끝이 없다. 서울에서 전기를 생산해 서울에서 쓰니 원전 건설비용의 3분의 1이나 되는 송전설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력 유실 문제도 해결된다. 송전탑 반대 투쟁 같은 성가신 일도 없다. 무엇보다 전국 전력의 20% 가까이 쓰면서 자급률은 3%에 그치는 서울의 에너지 종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꿈의 원전이 현실화할 기회를 걷어차서야 되겠나.

 

원전을 지을 땐 방폐장도 함께 짓자. 1986년 이래 방폐장 터 선정은 원전 터 선정보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지금도 월성에서는 주민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저들에겐 공공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자기 똥은 자기가 치우고, 정 안 되면 곁에 두고라도 사는 게 공공적 태도다. 아무리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이 없다 해도, ‘원전은 정화조 없는 화장실이라는 조롱을 언제까지 듣게 할 건가.

 

서울의 노른자위에 신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으니, 원전을 에워싸고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짓자. 입주 우선순위는 원전 사랑 순으로 하고, 무상 입주를 기본으로 하자.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1순위가 되겠지만,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방법은 원전 말고는 없다고 부르대는 지식인과 언론인을 비롯한 원전 찬성론자들도 빠뜨리지 말자. 이들에게는 영구 입주와 세금 없는 자녀 상속을 보장하자. 후쿠시마에서 나는 신선한 해산물도 무상으로 공급하자. 다만, 그들의 고매한 이타성과 겸양까지 고려해 이 모든 것에 대한 사절을 전면 금지하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원전 반대로 돌아서는 이들에 한해 금지를 해제하자.

노파심에 덧붙인다. 장 교수와 나는 입주 대상에 포함시키지 말아달라. 이 모든 건 풍자다.

안영춘 l 논설위원 경향 2020-11-19

 

부동산, 근본 요법과 현실 요법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두 가지를 들면 교육과 부동산이다. 그중에서 부동산 문제는 더 복잡하다.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부동산이라는 말 자체부터 불편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집과 땅, 이 말이 더 좋다. 거주나 생명의 의미가 깃든 집과 땅이라는 말에 비해 부동산이라는 말은 이미 상품 가치, 자본 가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1854년 북미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땅과 숲, 동물, 식물 등은 모두 우리의 형제자매들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쉽게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설사 사고팔더라도 땅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런 면에서 부동산에 대한 근본 해법이 있다면, 그것은 땅을 경제가치 범주로부터 생명가치로 복원하는 것이다. 즉 땅은 모두의 것이기에 누구도 사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재산증식의 도구로 쓰지 않는 것, 다만 그 땅 위에 세운 건물에 대한 것만 소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싱가포르, 에티오피아 등 여러 나라들에서 이런 모델을 시행 중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이 모델을 채택하려면 촛불혁명 이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보통사람들 대다수가 이 새로운 모델을 간절히 열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집이나 땅을 재산증식이나 투기의 수단으로 삼는 태도 자체를 버리는 일이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 가을, 산과 들의 단풍, 그리고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과 모래사장, 이 모두는 우리의 머리를 정화하고 마음을 포근하게 감싼다. 이렇게 원래 천지(天地)는 모든 인류의 것! 아니,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 시각이라 좀 이상적이다. 이상을 버릴 순 없지만, 그렇다고 당장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은 무언가? 첫째, 나는 사람들이 가진 내 집 마련의 꿈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사람들이 이 꿈을 실현하게 도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거주용 집 외의 집에 대해선 보유세를 높이되, 거주용 집은 세금이 낮아도 좋겠다. 게다가 모든 청년이 처음 집을 장만하려면 집값이 싸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월급을 3~5년 저축하면 작은 집 한 채 장만할 정도가 돼야 한다. 혹 집값이 오르더라도 은행 이자율 이상으로 오르진 못하게 하면 어떨까? 사실 현재는 자기 월급을 성실히 저축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갈수록 더하다. 달리 말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는 것, 나아가 집을 여러 채 갖는다는 것은 (상속분 외에) 투기나 약삭빠른 행위들이 있어야 쉬이 가능하다. 그러니 부동산 계급사회가 공고해지는 건 명약관화다. 이 잘못된 현실을 고치려면 우리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원점에서 출발하는, 특단의 사고가 필요하다.

 

둘째, 독일의 사회주택(Sozialwohnung)처럼 비교적 넉넉하지 않은 이들도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영구임대주택(저렴한 월세)을 많이 지을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에도 청년주택 내지 신혼주택 프로젝트들이 시작되었다. 이런 모델을 더욱 확장하여 곳곳에 사회주택을 많이 지으면 좋겠다. 그것도 천편일률적인 건물 구조가 아니라 전반적인 배치나 미학적 매력, 자연 경관과의 조화 등을 고려한 것으로 말이다.

 

셋째, 한국에서는 독특한 전통의 전세 제도가 있는데, 이것 역시 개념을 확장, 사실상의 영구임대주택으로 만들면 좋겠다. 즉 한번 전세살이로 들어가면 본인이 원하는 한 별다른 추가 인상 없이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오랫동안 살다가 사정이 생겨 이사하고 싶으면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영구 전세를 얻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굳이 자기 집 마련을 위한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부동산 투기나 난개발 같은 기형적 현실도 사라진다.

 

요컨대 집·땅으로 사기를 치거나 투기하는 걸 근절한다면(, 전국 시·도마다 난개발·투기 신고센터설치), 부동산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반만년 단군 자손들이 물려준 이 나라 이 땅, 값비싼 상품이 아니라 모두의 공동 자산이라 여겨 후손들이 큰 고생하지 않고 잘 살도록 물려주는 게 도리 아닐까? 이런 현실 요법과 근본 요법을 잘 결합한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더 커질 것이요, 그렇지 않고 마냥 대박이나 로또만 바라며 이리저리 몰려다닌다면 우리 앞날엔 1990년의 일본 부동산 거품 붕괴나 2008년 미국발 금융 거품 붕괴처럼 절망과 몰락이 기다릴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최근의 부동산 과열, 또 누구에게 손가락질만 해댈 것인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세종환경운동연합 난방특위 위원장 경향 2020-11-21

 

 

11월 단상

11월의 설악산 단풍을 담은 사진을 받아보았다. 독일에선 볼 수 없는 자연이 빚어낸 화려한 색조다. 독일의 11월은 비, 바람 그리고 어두움이 가득 찬 시간의 시작이다. 뛰어난 토목기사이자 시인인 하인리히 자이델은 시 ‘11에서 이런 달을 정말 칭찬해야 한다/ 아무도 이처럼 날뛰지 않는다/ 아무도 이처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햇살도 없이/ 아무도 이처럼 구름 속에서 시끄럽게 굴지 않는다/ 아무도 이처럼 폭풍으로 으스스하게 만들지 않는다/ 모든 것을 얼마나 축축하게 만드는지/ 그렇다, 정말 굉장하다라고 독일의 11월 날씨를 저주했다. 작년 여름 포르투갈의 따뜻한 해변마을로 이주하기 전까지 아침 운동 때 나는 거의 매일 이 시인이 누워있는 공동묘지 옆을 지났다.

 

힘을 잃어가는 햇살이 젖은 땅 위에 뒹구는 낙엽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들을 위로하는 11월은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독일에선 만성절’, 전몰 장병과 희생자를 기리는 국민애도일’, ‘참회와 기도의 날’, ‘망자를 위한 추도 일요일이 모두 11월에 있는 행사다. 깊어가는 종교의 계절이라는 유안진 시인의 ‘11이라는 시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의 11월은 더 침울하고 어두운 달이 되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코로나19 위기가 심하지 않았던 포르투갈조차도 얼마 전부터 비상이 걸렸고 일부 지역에는 통금도 실시되었다.

 

코로나19 재앙을 맞아 온종일 넘쳐나는 뉴스는 무척 다양하다. 공포, 불안, 고통과 같은 단어들이 종종 코로나19 사태로 개인이나 사회가 알게 모르게 겪는 아픔을 표현하고 있지만 방역지침이나 머지않아 시중에 나올 백신, 경제위기와 관련된 대응과 같은 건조한 내용이 보도나 논평의 대부분을 채운다.

 

전자현미경의 흑백사진을 통해 그의 비밀스러운 형태를 드러낸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 색상과 도안으로 처리돼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지금까지 135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는 개인이나 사회에 나타나는 위험에 대한 인식의 일반적인 틀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처음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졌던 올해 봄만 해도 이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집단적인 공황장애(恐慌障碍) 같은 분위기마저 있었다. 그동안 구체적 위험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지식이 축적되면서 공포와 불안은 여전하지만 그때처럼 이를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어떤 의미에서 적정한 수준의 공포와 불안은 인간의 자기보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동물이 교감신경을 전반적으로 잘 통제해 위협에 대응, 싸우거나 아니면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의 투쟁-도주 반응이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본래적인 자신이 될 수 있게끔 하는 불안의 적극적 의미를 강조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논거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실제적 위험에 부응하는 공포와 불안의 적정한 제어나 통제가 이론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그래서 공포와 불안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거나 회피하고 모두 다 불안에 떤다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논거에 기대어 자기 위안을 찾기도 한다. 심지어는 트럼프처럼 코로나19와 싸워 이겼다는 식으로 공포와 불안에 대한 영웅적투쟁을 자랑하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위험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감염과 전파력에 있다. 따라서 불안이나 공포는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처럼 - 자신도 포함된 환경을 생각하고 주위 사람을 배려할 것을 요구한다. 코로나19의 감염경로를 보여주는 지도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준다. 이는 또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이나 나는 타자의 인질이다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강조하는 타자의 윤리학을 상기시킨다.

 

이런 불안과 공포감 그리고 배려와 연대와는 다른 반응도 나타난다. 바로 분노의 표출이다. 장기화하는 긴장이 임계점에 거의 달하는 상황에서 코로나는 거짓말이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이른바 성난 시민이나 삐딱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는 늘고 있다. 여기에는 실업자, 영세상인, 중산층, 각종의 음모론 신봉자, 자유주의자, 반유대주의자, 극우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모르는 영혼은 무기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합리적 논거 없이 표출되는 분노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공동체의 토대를 허물 수 있다.

 

새해를 맞을 때만 해도 아무도 예견치 못한 코로나19가 그간 가져다준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한 해도 이제 곧 작별을 고하게 된다. 내년에는 백신의 힘을 빌려 이 비극의 어둡고 긴 굴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따라서 클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현대과학에 큰 희망을 걸지만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우리가 지녔던 삶의 방식만으로 세계는 과연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는지를 자주 묻게 된다.

 

우리 삶의 신조가 된 지 이미 오래된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라는 속도와 물량의 철학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치열한 경쟁에도 그대로 나타나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증권시장을 흔들어 놓는다.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의 고통은 첨단의학의 성과나 백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세하기 짝이 없는 코로나19는 역설적으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건강한 공존을 위한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경향 2020.11.24.

 

‘2030 영끌의 몸통

#통계 하나. 한국감정원 집계를 보면, 올해 주택 증여 건수는 이미 사상 최고치다. 종전 최고치는 2018111864건이다. 올해는 10월까지 119249건으로 연간 최고치를 넘어섰다. 특히 강남권이 급증했다. 강남·서초·송파 3구의 증여 건수는 지난해 1300~1500건인데, 올해는 벌써 2100~2600건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통계 둘. 20대 이하의 아파트 매수가 크게 늘었다. 한국감정원 집계를 보면, 지난달 20대 이하가 전국에서 사들인 아파트는 3561. 전달(2848)보다 25%나 늘었다. 지난달 전체 아파트 매입 건수(66174)5.4%를 차지했다. 지난해 1월 연령대별 통계를 집계한 이래 처음으로 5%를 넘어선 것이다.

 

#통계 셋. 정부는 신용대출 자금의 주택시장 유입을 막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지난 13일 발표했다. 연봉 8천만원이 넘는 고소득자의 1억원 초과 신용대출을 제한하는 게 뼈대다. 신용대출로 집을 사면 대출을 회수할 수도 있다. 정부의 규제 방침 발표 이후 1주일 만에 5대 시중은행 신규 신용대출이 15천억원 급증했다. 은행들은 30일 시행 예정이었던 대출 규제를 부랴부랴 23일로 앞당겼다.

 

#통계 넷. 케이비(KB)경영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한국 부자 보고서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자가 조사 대상이다. 올해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총자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7%. 지난해보다 2.9%포인트 커진 것으로, 7년 만에 최대치다. 집값이 많이 오른 것 때문이다. 부자의 수는 201016만명에서 지난해엔 35만명으로 9년 만에 2.2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인구는 연평균 0.5% 늘었지만, 부자 수는 9%씩 증가한 것이다.

 

집값 급등과 전세난으로 청년들까지 패닉 바잉’(공포 구매)에 나선다고 한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영끌을 한다 해도 서울 아파트를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부 고소득 맞벌이를 빼고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평범한 청년들은 당장에 월세에서 전세로 넘어가는 것도 버거운 처지다. 지금 2030‘5060 세대의 자녀들이다. 5060부동산 불패 신화를 몸소 경험했다. 패닉 바잉과 영끌의 몸통은 이들이 아닐까 싶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한겨레 2020.11.24.

 

우리가 선진국이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주 목요일 하루 187000명을 넘었다. 그 어떤 나라도 역병이 전 지구적으로 창궐한 이후 단 하루 만의 국민 확진자 기록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이제 미국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4분의 1이 코로나19 환자이다. 흑인의 피해는 백인의 두 배에 이른다.

 

미국은 실패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70개국이 넘는 외국에 약 800개의 군사기지를 만들어 군대를 파병하여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실패는 더욱 뼈아프다. 공정한 선거와 승복조차 미국의 현직 대통령은 헌신짝처럼 버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가 7300만명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투표한 미국인의 47.2%이다. 트럼프가 임기 내내 인종차별적인 언행으로 일관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모습은 태평양 건너편에서조차 또렷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무려 7000만표를 훌쩍 넘기다니!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은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더라도 미국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인종 차별과 군사주의에 터잡은 트럼프주의는 살아있다.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은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거의 잡아먹힐 뻔했다. 미국은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세계적 문제가 되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는 한 코로나19 역병은 끝나지 않는다.

 

이달 10, 불과 보름 전 중국 인권변호사 장바오청에게 3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의 죄명은 테러주의와 극단주의를 선양했다는 것. 나는 중국의 2001년을 기억한다. 그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중국은 이를 줄여 입세(入世)’라고 불렀는데, 약칭이 안성맞춤이었다. 중국이 세계에 복귀했다. 입세 후 10년 동안 중국의 대외 무역은 6배가 늘었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수출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반영하여 인권과 인간 존엄성 보장의 법치국가로 나아가리라 기대했다. 입세 후 15년이 지난 2015년에는 중국 변호사 숫자가 3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해 79, 중국 인권변호사 대체포 사건이 터졌다. 중국 전역에서 몇 달간 인권변호사와 인권운동가 300여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중국이 경제 대성장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담을 보편적 법치주의를 이루고자 하였다. 소외당하는 인민을 대변하고자 하였다. 중국 지도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 사건을 중국 법치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킨 뼈아픈 좌절로 본다. 중국의 인권변호사들이 억압당하지 않고 성장했다면 작년 겨울 우한에서의 코로나19 정보는 투명하게 더 일찍 공개되었을 것이다. 중국과 세계 사이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세계는 중국몽에 공감하였을 것이다.

 

한국은 국민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가 미국의 1.3%밖에 안 된다. 대낮에 광화문집회에서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나라이다. 시민이 아프면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는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앞선 나라, 선진국이다. 한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미국과 중국에 큰 영향을 준다. 한국은 미·중이 본받을 모델 국가, ·중을 잇는 접착 국가로 성장했다. 한국은 선진국인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으로서의 경제력과 민주주의를 손에 쥐고 있다.

 

한국이 자주적 전략 단위임을 주변 나라가 알도록 행동할 때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군사주의 모순을 해결하도록 미국의 군사주의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요 국군 전투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한국 법치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에서의 비군사적 분야 일체의 행정권을 행사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의 안전은 핵잠수함 같은 군사 무기로 담보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요구하는 쿼드와 같은 중국 포위 안보 체제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자주적 선진국이어야 중국과 미국을 이어붙일 수 있다.

 

중국이 경제 발전에 상응하는 법치와 인권 보장을 성취하는 데에 한국 모델이 중요하다. 중국 인민의 가장 가까이에서 평등한 법치 공간을 보여줄 나라이다. 나는 상상한다. 선진국 한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창설하는 날을. 현재 유럽, 미주, 아프리카에 이미 인권재판소가 있다. 또한 소망한다. 선진국 한국이 유엔 핵무기 금지 협정과 아시아 비핵지대를 주도하는 순간을. 한국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송기호 변호사 경향 2020.11.25.

 

지리산 산악열차가 그린뉴딜인가

문재인 정부의 현안 과제 가운데 하나는 경제를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활동 제약으로 일자리가 더 줄어들었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규제를 개혁하여 신산업 육성 정책을 펴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한 산악관광산업을 문재인 정부가 본격 추진하고 있다. 그 첫 사업으로 지리산 형제봉에서 청학동에 이르는 산악열차를 건설하는 하동 산악관광 개발사업을 정부부처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관광산업 진흥 노력과 역병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경제에 활력을 넣기 위한 정부의 경제정책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험준한 지리산 위에 기찻길을 건설하여 생태계를 훼손하는 것만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길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산악관광열차를 타고 한두 시간 만에 산을 넘어가는 기차여행은 산촌 경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산악관광열차를 건설하는 건설업자와 출발지나 종착지의 숙박휴양시설을 운영하는 대기업에 그 이윤이 집중될 것이다. 오히려 지역주민이 관여하는 산림휴양서비스를 활용한 치유산업 육성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산림은 대부분 민간 소유고, 국유림은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국민 모두가 함께 주인인 국유림은, 그 자연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골고루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동군이 산악열차를 개설하고자 하는 곳은 대부분이 국유림이며,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 등 야생 생물이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근년 들어 지구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변화가 심하다. 지난여름에는 집중강우로 영동선의 일부가 무너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변화는 지리산 지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림이 훼손될 경우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경사가 심한 지리산 능선에 기찻길이 건설된다면 집중강우 때 기찻길이 무너지거나 기찻길 아래 산골 마을이 산사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또한 지리산 능선을 따라 철길이 놓이고 열차가 달린다면 여기 사는 반달가슴곰들이 기차를 피해 산 아랫마을로 내려올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산촌 사람들의 생활에 어려움이 더해질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경제성장 전략을 추구하지 말고, 생태계를 살리면서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진정한 그린뉴딜 정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92년에 이미 유엔 회원국들이 브라질 아마존에 모여서 지구상의 모든 산림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산림관리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산림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위하여 이용할 산림과 미래 세대를 포함한 모든 생명이 함께 살 수 있게 보전할 산림으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이 사는 지리산과 같은 산림은 공익을 위한 보전임지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사가 급한 산악지의 국유림은 임업 생산의 경제성이 낮으므로 공익적 보전임지로 지정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고 임업 생산성이 큰 임지는 임업용 보전임지로 지정해 생산적 용도로 활용하도록 하면 된다. 모든 산림을 생태·경제적 특성을 기준으로 그 주요 용도를 구분하는 것이다.

 

특히 국유림 중 공익적 보전임지에서는 산악철도를 놓는 것과 같은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는 개발을 배제해야 한다. 생물다양성과 수자원 보전 등 공익적 생태계 서비스를 공급하는 국유림이 많은 지자체에는 특별재정지원금을 교부하고, 사유림인 공익적 보전임지에는 생물다양성법이 정한 생태계 서비스 지불제를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임업 생산성이 높은 임지에는 산림휴양개발을 포함한 경제개발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여도 될 것이다.

윤여창 서울대학교 농림생물자원학부 교수 한겨레 2020-11-26

 

 

고유한 일반명사

유일하다. 하나밖에 없다. 무한한 우주를 뒤지고 억만 겁의 시간을 오르내려 보아도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하나밖에 없을 때 우리는 거기에 고유명사를 붙인다. 사람 이름을 비롯하여 산 이름, 강 이름, 별 이름, 동네 이름, 상호가 그렇다. 관심과 애정이 가는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애정이 있어 이름을 붙이지만 이름은 더 깊은 애정을 다시 부른다(집착과 함께).

 

잘 알려진 고유명사는 다른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재활용되기도 한다. 이강인은 한국의 메시이고 독재자는 히틀러이며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는 꼬마 아인슈타인이다. 예쁜 산을 두고 한국의 알프스라 소개하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유명사의 확장이다.

 

반대편에 일반명사가 있다. 여러 사물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태백산이든 수유리 화단이든 앞집 계단이든 피어나면 모두 이다. 절집이든 고물상 앞마당이든 산 너머든 멍멍 짖는 녀석은 . 낱낱이 가진 차이는 사라지고 그저 하나의 공통성으로 묶인다.

 

그런데 일반명사라 하더라도 각 사람에게 고유명사인 게 있다. 아무리 이 세상에 같은 이름의 대상이 널려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밖에 없다. ‘엄마라는 말을 떠올려 보라.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니라 우리 엄마만 떠오른다. 물건도 곁에 오래 두고 지내면 나에게 유일무이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그물로 맺어진 인연과 체험에 따라 일반명사가 점점 고유화되는 걸지도 모른다. ‘고유한 일반명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그 이름은 그리움으로 바뀐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겨레 2020-11-29

 

 

이란 핵과학자 암살은 한반도 문제이다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라는 모흐센 파흐리자데의 암살은 한반도 문제이다.

이 사건은 조 바이든 미국 차기 행정부의 외교를 저지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미국 분석통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바이든은 취임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 핵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미국을 다시 가입시키겠다고 공약했다. 바이든 팀은 또 이란 핵협정이 북핵 문제를 다루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바이든은 올해 초 <워싱턴포스트>와 회견에서 내가 대통령으로서 북한이 포함된 새로운 시대의 군축협정 공약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이란 핵협정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았고, 효과적인 협상의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뉴욕타임스>의 기고들에서 이란 핵협정을 조각내는 대신에, 트럼프는 그 기본적인 틀을 북한에 적용해야만 한다”, “우리가 이란과 했던 것처럼,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한 뒤 되돌리는 협상된 합의만 남는다고 말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에 이란 핵협정 복원은 북핵 협상으로 가는 수순이다. 바이든이 이란 핵협정에 복귀하려는 이유는 북핵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바이든이 외교안보팀 진영을 발표하면서 천명한 미국이 돌아왔다는 대외정책 기조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고립적 일방주의가 본질인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훼손된 동맹과 미국의 지도력을 회복하는 데 이란 핵협정 복원은 그 시금석이다.

 

이란 핵협정은 중국·러시아·독일·영국·프랑스·유럽연합도 참여한 국제협정이다. 트럼프의 일방적 파기에도 나머지 국가들은 여전히 협정 준수를 다짐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 복귀하지 못 한다면, 바이든이 천명한 미국이 돌아왔다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란 핵협정 복귀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트럼프가 이 협정을 파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안팎에서는 이 협정을 무산시키고 이란과의 적대관계를 지속시키려는 세력이 건재하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에게 쫓겨났지만, 트럼프와 유일하게 궁합이 맞았던 것이 이 협정의 파기와 대이란 강경책이었다. 워싱턴에서는 공화당 계열의 보수적 인사라면, 거의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반대한다. 그 배후에는 군산복합체의 이해가 깔려 있다.

 

이스라엘 및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동맹국들도 있다. 미국 정가가 친 이스라엘유대인 단체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2007<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이라는 글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국익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익을 추구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이 일었다. 미국 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기독교 복음주의 교단도 있다.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선이고, 이란은 악이다.

 

파흐리자데의 암살이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해 저질러졌고, 바이든 외교에 대한 사보타주임은 공공연한 사실인데도 바이든 진영과 미국 정가는 침묵한다. 거센 비토 세력들이 곳곳에서 출몰할 이란 핵협정 복귀에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력을 소진할 우려가 크다.

 

중동은 한반도에 석유값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중동과 한반도가 연동된다.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이 방북해, -미 수교 등을 클린턴의 방북으로 일괄타결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북한을 가지 못 했다. 그해 7월 캠프데이비드 중동평화회담이 파국을 맞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약속한 오슬로평화협정이 무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임 뒤 한국을 찾은 클린턴은 방북해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중동 정세에 발목이 잡혔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도 이라크와 이란을 겨냥한 악의 축에 북한을 끼워 팔기로 넣어서, 북한과의 무한대결이 한때 지속됐다. 북한 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사실은 이란 핵협정 등 중동문제에 외교력을 써야 했던 결과에 불과했다.

-이란의 핵협정 복원은 우리의 영향력 밖의 문제일 수 있다. 이란 핵협정 복귀에 매달려야 할 바이든 행정부에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 문제를 안정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쓸 외교력을 절약시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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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는 마음가짐

도대체 어떤 해를 살아내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길이 막막한 채 연말을 맞고 있다. 하지만 사상 유례없는 일들이 이어지며 정신없던 한 해도 마무리는 해야 할 터다. 잠깐 멈추고 되돌아본다. 올해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되새길 것인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게 된 코로나19로부터 읽어야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 우리는,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

 

지난 1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되새겨보던 중, 두 가지 마음을 길어냈다.

첫 번째 마음은 조금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인류는 19세기 이후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세계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지면, 기원 1년 이후 1800년대까지 겨우 다섯 배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200여년 동안 100배나 성장했다.

 

기술혁신이 이뤄낸 속도의 혁명이 가파른 성장의 동력이었다. 공장은 쉼 없이 점점 더 많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교통수단의 비약적 발전으로 재료가 가공되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단축됐다. 인터넷은 지식정보 확산 속도를 무한대로 높였다.

천천히 가라는 바이러스의 명령은 이런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성장세가 가파를수록 바이러스 확산세도 가파르다. 잠시 멈추면 확산도 멈춘다.

 

두 번째 마음은 흩어지자'는 것이다. 대감염의 메시지는 비접촉이다. 사람이 바이러스의 숙주다. 접촉하면 퍼진다. 목숨을 지키려면 비접촉 원칙을 지키라는 명확한 메시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서로 간의 접촉면을 점점 더 넓히는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인류의 발전 방향이 그랬다. 마을은 넓어져 도시가 됐다. 마을과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국가 전체를 돌아다니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세계화 바람은 그런 이동이 전세계로 넓어지게 만들었다. 도시 간 무역은 국가 간 무역으로, 다자무역질서로 넓어졌다. 전세계 누구나 만나고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다는 특징이, 현대 문명의 아름다움으로 여겨지는 데까지 왔다.

 

접촉하지 말라는 코로나의 주문은 이런 문명의 발전 방향을 단번에 뒤엎는다.

두 가지 마음을 요약하자면, 조금 내려놓으라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바이러스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을 모두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영원히 확장할 수도 없고 영원히 소유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잠시 맡겨진 것일 뿐이다. 그러니 끊임없는 확장에 집착할 일도 소유에 집착할 일도 아니다.

 

조금 내려놓자는 이야기는 결코 삶을 멈추고 제자리에 머무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좀 더 과감하게 발을 내딛자는 이야기에 가깝다. 경제성장률을 높이자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던 개발도상국의 삶에서 벗어나, 환경이나 사회적 신뢰처럼 다양한 가치를 향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선진국의 삶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다. 더 중요한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를 각자 구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정부가 했던 탄소중립 선언은 의미가 깊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방향 전환이다. 상반기 지급됐던 보편적 긴급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제 논의도 반가웠다. 모두에게 잠시라도 쉴 여유를 주려는 움직임이다. 공공주택 정책 대상을 중산층으로까지 넓히겠다는 발표도 맥을 잘 짚었다. 집을 소유하려 너무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이런 기조가 사회 패러다임 전반으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경제의 최고 지표는 물질적 생산 위주로 측정하는 국내총생산이다. 인간적 가치를 담은 국가 지표를 만들고 여기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전히 사회보장제도는 기업에 고용된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 흩어져 있는 개인들이 스스로 서서 연결하며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여전히 기업은 당장의 재무적 가치만을 극대화하는 데 급급하다. 장기적인 가치,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업 경영 방식이 더 도입되고 정착되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번 회복은 다시 돌아가는 회복이어서는 곤란하다.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초회복이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변화는 늘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쉬운 길만 가면서 더 나은 삶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이원재 LAB2050 대표 한겨레 2020-12-01

 

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영생 권력검찰

검찰개혁을 이렇게 시끄럽게 끌고 가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뜩이나 민생이 고달픈데, 끝없는 추미애-윤석열 충돌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집권세력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9부 능선에 오른 검찰개혁을 멈춰 세울 수 없다는 것 또한 너무나 분명하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의 힘을 빼고 나눠, 통제와 견제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개인적으로는 국민의 선택과 위임으로 작동하는 민주적 정치 과정에 검찰이 멋대로 개입하고 판을 흔드는 검찰권력 과잉 시대를 끝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꼽고 싶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치를 좌지우지한 역사를 우리는 오래 겪어왔다. 철권을 휘두르던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민주화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그러나 관료 권력기관에까지 온전히 민주적 통제가 미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법치의 외관이 중요해지면서 검찰이라는 관료기관의 힘은 갈수록 세졌다.

 

그나마 권위주의 정권에선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나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조종했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에 독립성을 주고 수사에 아예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패했다. 제어장치 없이 독립성만 보장하자, 검찰은 폭주했다. 문재인 정부는 수사엔 개입하지 않되 통제와 견제 시스템을 갖추는 쪽을 택했다.

 

그러자 검찰이 팔다리 잘리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수사권 조정 같은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개혁의 정당성을 흔들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검찰은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구조다. 제왕적 총장이 어떤 맘을 먹느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독점적 강제력을 쏟아부을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결과 앞에 한국 사회는 전율한 바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역대급 수사력을 투입해 표창장부터 사모펀드까지 탈탈 털었다. 대통령의 인사권, 국회 청문회라는 정치 과정은 뭉개버렸다. 정작 권력형 비리라 할 중대 혐의는 아직까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뒤이어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대통령 직함을 35번 언급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해 끼워넣은 짜깁기 공소장을 썼다. 이를 받아 당시 미래통합당은 대통령 탄핵을 거론했다. 4·15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국민의 선택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한 행보였다.

 

검찰의 과잉·표적 수사는 수구 매체, 보수야당 등과 때로 합을 맞춘 듯 진행됐다. 보수야당 대상 수사는 지지부진 지리멸렬했고, 총장은 조선·중앙일보 사주와 회동했다. 검찰이 수사하면 수구 매체가 부풀리고, 또 검찰은 수사 확대로 답하는 증폭의 나선 구조가 가동됐다.

 

한동훈 검사장이 4·15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혐의) 찾아다닌다는 채널에이 기자에게 그건 해볼 만하지”, “그런 거 하다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화답한 검·언유착 사건에선 유권자의 선택을 흔들려는 기득권 동맹의 욕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윤 총장은 이런 한동훈을 보호하려 ‘3겹 방어막을 쳤다.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 검찰이 내미는 마법의 주문이 살권수.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정의라는 주장이다. 살권수를 외는 순간 과잉수사는 기개, 편파수사는 산 권력과 죽은 권력에 대한 균형잡기로 포장된다. 그러나 산 권력, 죽은 권력은 그저 메타포일 뿐이다. 민주화된 국가에선 죽은 권력야당도 의석수만큼의 산 권력을 누린다. 누대 정권에서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은 그야말로 영생 권력이다. 이 모든 권력의 비리를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 정의이다. 그러나 윤 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검찰개혁이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정치적 중립을 박차고 선택적 정의를 정당화한 터다. 물론 선택은 검찰이 한다.

 

통제를 벗어난 국가기관이 스스로 권력화한다는 경고는 현대 정치학과 사회학이 공히 내놓은 통찰이다. 선출되지 않은 영생 권력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검찰개혁이다./손원제 논설위원 한겨레 2020.12.01

 

 

끝내자, 집으로 돈 버는 시대

이번을 마지막으로 1년간의 경제직필 집필을 그만두면서 부동산정책의 성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집은 재테크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한 한국적 현실, 대부분의 언론이 종부세 폭탄 프레임을 연일 보도하며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방해하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기 미온적 대응에 너무도 답답하였지만 올해 여름 부동산세제 강화, 주택 공공적 공급 확대, 임대차 보호 강화 등이 발표되면서 현재의 부동산정책은 바람직한 트라이앵글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현재 부동산시장이 뚜렷하게 안정화 기조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사실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다. 정부가 종합적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 중 지금 실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임대차 보호이고 나머지 두 정책은 아직 시행 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단맛을 본 투기세력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정책 전환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최근 많은 언론이 종부세 폭탄 프레임, 규제의 부작용과 무용성 논리를 퍼뜨려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하고 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세금만집 팔고 나가란 얘기냐등과 같이 매우 자극적인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실제로 종부세를 현재 얼마나 내고 있고 향후 얼마나 내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황당하다. 특히 많은 언론이 공시가격 현실화와 다주택자 및 초고가자산 종부세 강화로 인해 집 하나밖에 없는 고령자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고령층은 종부세 대상이 되지 않는 저가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올해 종부세 대상자가 총인구의 1.15%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종부세를 내는 고령층은 정말 소수일 것이다. 더구나 해당 고령층도 장기보유 공제, 고령자 공제, 거기에 부담 상한 제도까지 적용받기 때문에 웬만큼 비싸지 않은 고가주택이 아니라면 세부담이 클 수 없다. 물론 정말로 소득이 거의 없는 고령층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종부세 강화에 주저한다면 그로 인한 투기, 가격 상승, 많은 무주택 서민들의 좌절, 청년들의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세난에 대한 분석도 의도적인 헛발질이다. 기승전 정부 규제 탓이다. 임대차 보호 강화로 손해를 보게 된 임대인들이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세물량이 줄어서 전세가가 오른다고 분석한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급등한 매매가이다. 현재의 전세가 상승은 이를 따라잡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매매가 상승에 더해 최근 다주택자 규제 강화에 대해 이들이 자녀 증여로 대응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 입장에서 자녀를 세대 분리시켜 아파트를 증여하고 자녀가 들어가서 살도록 하는 것이 가족 전체의 부동산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매매가의 급등, 다주택자의 증여 확대의 원인을 따지다 보면 결국 부동산 투자·투기의 기대소득이 크다는 것, 그것을 충분히 환수할 만큼 부동산세제가 강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올해 여름 취득세, 양도세, 종부세 다 강화했는데 무슨 소리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단기투자자, 다주택자들에게는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나 증여를 통해 똘똘한 한 채로 줄이고 2년 거주하면 쉽게 피해갈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강화된 양도세, 보유세도 시행은 내년 61일부터이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 그 후의 대선을 앞두고 현 정부가 언론의 집요한 방해를 극복하고 그 의지를 지켜갈 수 있을까? 시장은 분명히 종부세 폭탄 프레임을 활용하여 정부의 의지를 꺾으려 할 것이다.

 

기본적인 수준의 주거는 큰 부담 없이 거주하거나 보유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국민과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 기대수익이 크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국민들도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대다수에게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무주택자야 당연히 그렇겠지만 1주택자들도 당장은 손해를 보는 듯하여도 나중에 자녀들이 독립을 할 때 결국 그 혜택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입각 당시 집으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고 말하였다. 정말이다. 그러기 위해 규제는 촘촘하고 뜸을 들이지 말아야 하며 사각지대가 없어야 하고 그 의지가 꺾이지 말아야 한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 경향 2020.12.02

 

하우스 블루

전세 계약이 연장된 세입자는 행복할까. 지난주 서울 강동의 한 대형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지난 10서울의 3000가구가 넘는 단지에 전세물건이 동났다는 언론 보도가 난 곳이었다.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간 전세계약을 연장한 세입자의 말을 들었다.

 

그는 4년 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34평형을 5억원 중반대에 전세 계약했다. 당시 아파트 가격은 6~65000만원 정도였다. 매수도 생각했으나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2년 뒤 가격은 9억원으로 올랐다. 너무 많이 올라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거품이라고 생각해 기다려보기로 했다. 강력한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의 말도 믿었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이 내리기는커녕 더 폭등했다. 아파트 가격은 13~14억원을 호가한다.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이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더 거주하게 됐으나 기쁘지 않다. 그는 “4년 전 5000만원만 더 주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대차3법으로 전세 연장 건수가 늘었다고 했다. 서울시 아파트 단지를 분석해 보니 계약 연장률이 지난해 평균(57.2%)보다 지난 10(66.1%)에 상승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국민 10명 중 7명은 전·월세 급증에 대한 걱정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다시 강동의 아파트로 돌아가 보자. 부동산업소에서는 현재 34평형 아파트 전세가가 8~8500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KB부동산 시세(72000~77000만원)보다도 훨씬 높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해 6억원 수준에서 전세계약을 연장한 세입자는 2년 뒤 1~2억원을 더 내야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살 수 있다. 세입자의 전세가 인상은 일시 유예일 뿐이다. 그리고 반전세가 늘고 있다. 보증금은 인상하지 않고 추가로 월세를 받는 것이다. 단지 계약 연장으로 세입자에게 주거안정이 확보됐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전세난의 원인으로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을 꼽았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월세 사느니 대출받아 전세로 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시중에 떠도는 자금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법이 바뀌면서 2년 거주요건을 맞추기 위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집주인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같은 이유로 곤란을 겪었다. 전세난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갑자기 심각해졌다. 정부가 말하는 저금리와 과잉유동성만이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정책 잘못이라는 언급이 없다.

 

서민들은 월세로 살다가 돈 벌어 전세로 옮기고 이어 자신의 집을 갖는 꿈을 갖고 산다. 세입자들은 현재 살던 곳에서 종전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계속 거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젠 그런 소박한 희망무리한 요구가 됐다.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동일한 규모의 돈을 가지고는 집 크기를 줄이거나, 주거 형태를 다운 그레이드(아파트에서 빌라로)하든가, 외곽으로 밀려나야 한다. 업그레이드는 고사하고 열악한 상황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 주택공급대책이라며 호텔방에서 살라고 하는가 하면, ‘빌라도 인테리어를 잘 꾸미면 훌륭한 거주공간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많은 서민들이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하는 이유는 인테리어 때문만이 아니다. 아파트가 교육 여건과 방범, 주차, 쓰레기 청소 등 주거환경이 낫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주차문제로 잠도 제대로 못 잔다는 빌라 거주민의 실상을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묻고 싶다. 그러니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가서 살아라는 말도 나온다.

 

집값 폭등은 사회의 건전성을 좀먹고 활력을 떨어뜨린다. 젊은이들에게 주택마련은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었다. 열심히 일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는 신기루가 되었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주식시장에 올인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집문제로 인해 불화를 겪는 가정도 많다. 부부가 다투다 살인과 자살로 이어지는 참극이 발생했다.

 

전세 매물 부족으로 지난달 전국의 주택 전셋값이 7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고 한다. 둘만 모여도 집얘기를 한다. 집없는 서민들은 괴롭다.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집문제로 인한 우울증(하우스 블루)에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박종성 논설위원 경향 2020.12.02.

 

2003년 평검사, 2020년 평검사

요즘 젊은 검사들은 그냥 직장인 같아. 월급쟁이 모범생, 생계형 직장인. 우리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나쁜 놈들 잡고, 내 돈 써가며 수사도 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런 분위기가 전혀 없어. 검사로서 자부심이나 사명감, 결기를 가진 후배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고.”

 

검사 생활을 오래 했던 이들을 만난 자리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다. 대체로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과 다른,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에게 느끼는 당혹감인 듯했다. 대한민국 어느 집단에서나 세대 간극은 존재하지만, 검찰은 유독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 문화가 강한 조직이라 그들이 느꼈던 이질감은 더 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윗세대 검사의 이런 촌평들에 나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여줬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속마음으론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반겼다. 비대한 권한을 가진 검찰의 역사를 봤을 때 사명감이나 결기는 그 반대편 덕목과 종이 한장 차이였다. 검사로서 자부심이나 사명감은 과한 공명심으로 변질되기 쉽다. 결기 있게 대처했다고 스스로 여긴 일들이 곧 무리한 수사로 이어지는 장면도 많았다. 검찰개혁을 위해 손질 중인 많은 제도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와 결합해야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선배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젊은 검사들의 모습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직에 있는 한 검찰 간부의 다음과 같은 설명도 참고할 만하다. “수사·근무 환경이 우리 때와 달라졌어요. 증거 챙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요. 절차와 규정 지키는 게 중요하니 요즘 검사들은 무리하거나 경력에 오점 남길 일은 안 하려고 해요. 튀거나 잘 나서지도 않고.”

 

현직에 있는 한 검찰 간부의 다음과 같은 설명도 참고할 만하다. “수사·근무 환경이 우리 때와 달라졌어요. 증거 챙기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요. 절차와 규정 지키는 게 중요하니 요즘 검사들은 무리하거나 경력에 오점 남길 일은 안 하려고 해요. 튀거나 잘 나서지도 않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 ‘검사와의 대화로 상징되는 평검사들의 첫 공개 집단행동을 떠올려보면, 2020년의 평검사들의 태도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2003년 당시 평검사들은 검찰 조직문화를 존중해달라며 대통령의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는 반헌법적 황당한 요구를 했다.

 

그에 반해 2020년 평검사들은 검찰권 축소와 관련된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통과 때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총장의 측근을 철저히 배제했던 인사 때에도, 총장을 겨냥한 수사지휘와 감찰 지시가 거듭되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주 전체 99%가 넘는 평검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그래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이들의 성명서는 장황하지 않았다. 검찰총장 직무정지와 징계청구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만 지적했다. 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이야말로 평검사들이 일선에서 피의자를 대할 때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할 원칙이자, 행정부로서 법무부가 지켜내야 할 핵심 가치라는 점에서 집권 세력과 추미애 장관은 이들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소속 부처나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특히 추 장관은 더 늦기 전에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윤석열 총장을 겨냥한 추 장관의 조급하고 허술한 대응에 이미 법원과 검찰 구성원 전체, 심지어 장관 자신이 위촉한 법무부 감찰위원회 전원이 등을 돌렸다.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추 장관은 정치적으로 봐도 실패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대표되는 수사, 인사, 패거리 문화에 동의하지 않았던 검사들조차 장관에 맞서는 검사동일체로 만들어놓았다. 그사이 여론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검찰개혁이란 목표가 그를 향해 가는 과정의 엉성함으로 인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가진 거대한 권력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개혁이 그 대상 전체를 배제하는 과정이어서는 곤란하다. 절차를 중시하는 평검사들, 개혁에 동의하는 합리적인 이들마저 떠나보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늦었다 싶을 때는 이미 늦은 게 맞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과 대통령이 임명한 총장의 대결로 이미 정부는 많은 걸 잃었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게 최악은 피하는 길이다. 더 깊은 수렁이 설마 있겠냐 싶지만, 우리가 수없이 봤던 정권 후반기처럼 지금 상상할 수 없는 수렁은 언제나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단 멈춰 돌아보고, 반문하고, 우군을 설득해 천천히 여론과 함께 가야 한다./석진환이슈 부국장 한겨레 2020.12.02.

 

 

4·35·18은 다르지 않다

비극이다. 학살 책임자가 여전히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전두환은 1980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을 향한 헬리콥터 사격은 없었다며,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광주지방법원은 지난달 30, 전두환에게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치지 않고 전두환을 욕하고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구조를 살펴보자. 40년 전 사건에 대해, 왜 아직도 뻔뻔한 거짓말이 존재하는가.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80년 광주학살 청산 과정의 결함이 하나의 이유이다. 국가범죄에 대한 청산은 진실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 과거사 청산 중 두 측면이 균형 있게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5·18의 경우 진실규명 없이 피해자에 대한 조처가 먼저 이루어졌다. 그 과정은 굴욕적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19908‘5공과의 단절정책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일방적으로 제정한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진상규명을 외면한 채 돈으로 입막음하는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위 법률에서 규정한 금전 지급 대상의 명칭에는 불균형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건에 대한 어떠한 진상규명도 없었기에 보상금을 받는 주체는 희생자피해자가 아닌 관련자로 규정되었다. 비록 위 법률로 일정한 보상은 이루어졌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청산하는 절차였다

 

5·18 진실규명은 관련자희생자로 호명되어가는 과정이었다. 2002년이 되어서야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희생자라는 주체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2018‘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비로소 법률에 근거하여 조사 권한을 부여받은 위원회 구성이 가능해졌다. 수십년 동안 제대로 된 진실규명이 지체되는 불균형 속에서 거짓말은 끈질기게 번져나갈 수 있었다.

 

5·18과 정반대 순서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제주 4·3사건이다. 민주화 이후 치열한 투쟁 속에서 2000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이 입법될 수 있었다. 법률에 근거를 둔 조사기구로써 청산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학살이 벌어진 지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공식 조사였지만, ‘관련자라는 치욕스러운 호칭은 없었다.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이 보고서에 근거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추념식에 참석해 사과했다.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 등 추가로 밝혀야 할 영역은 존재하지만, 여러 과거사 사건 중 진실규명에 있어서 단연 의미 있는 성취를 가진 것이 4·3이다. 그러나 진실규명 이후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비나 소액 생활지원비를 제외한) 국가의 배상·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재심 사건을 제외하고는 국가배상소송 형태의 개별적인 피해 회복도 없었다. 여러 국가범죄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4·3이 가진 불균형이다. 5·18의 불균형이 거짓말을 번지게 했다면 4·3의 불균형은 제대로 된 피해 회복 없이 희생자들을 돌아가시게 했다. 역시 비극이다. 고문당하고, 가족이 죽임당하고, 빨갱이로 손가락질당했던 고통에 국가는 말로만 사과했을 뿐이다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2003년 사과 발언이다. 이를 위한 조처, 4·3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최근에야 4·3특별법 전부개정안 형태로 제출되었다.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 다시 발의되었으나 예산 부담을 이유로 아직 큰 진전이 없다. 4·3단체들은 연내 입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국회 문턱은 높다.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이 야속할 만큼 없다.

 

전두환은 감옥으로!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구호이다. 왜 집행유예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부디 같은 분노와 관심을 4·3특별법에도 가져주시길 바란다. 둘은 다르지 않다.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제대로 배상하지 않는 것도 중대한 문제이다. 국가범죄에 대해 예산을 이유로 배상하지 않는 것은, 감옥이 부족하다며 학살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합의가 있다면 감옥도 만들고 예산도 만들면 된다.

임재성변호사·사회학자 한겨레 2020.12.02.

 

서욱과 추미애, 사라진 집단지성

최근 문재인 정부가 몇몇 국정 현안에 대처하는 양상을 살펴보면 아주 유사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대통령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로 인해 국정 조정능력에서 공백이 초래되고 정부 기능 내에서의 협력이 실종된다. 공무원들끼리 손발이 맞지 않고 부처의 일 처리에서 실수와 결함이 드러난다. 이를 기회로 야당의 정치공세가 강화되고 담당 부처의 장관이 몽땅 그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한참 일이 악화된 다음에서야 청와대가 수습에 나선다. 몇몇 사례를 보자.

 

지난 922일 오후 430. 연평도 동북 해상에서 사라진 우리 공무원이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된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날 밤 9시가 넘어 북한은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것처럼 보였다. 23일 오전 1시부터 청와대에서는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오전 8시 반에 장관회의 논의 결과를 보고받은 문 대통령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잦은 경계 실패로 군이 질타받던 터에 대통령의 지시는 노기가 서린 질책에 가까웠다. 이 지시에 압도된 청와대 안보실은 정확한 정보관리와 세심한 위기관리를 진행하지 않고 국방부에 일 처리를 위임했다. 이날 서욱 국방장관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극소수 참모를 장관실로 불러들였는데 정책실장은 공석이었고, 북한 문제에 대한 정무적 조언을 해야 할 대북정책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서욱 장관과 동일한 보병작전 출신의 합참의장, 작전본부장 등 참석자 전원이 같은 사고와 경험을 공유하는 육군이었다. 그 결과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대안 검토 대신 북한과의 대결을 불사하는 단일한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 기울어 24일의 강도 높은 대북 규탄성명으로 이어졌다. 25일 북한의 사과통지문이 도착하자 전날의 대북 규탄성명에서 상당 부분 정황을 사실로 단정한 오류가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안보실은 아무런 역할이 없었다. 이후에는 국방부가 이전에 뱉은 이야기를 주워담느라 쩔쩔매고 뒤늦게 청와대가 나서 사태를 수습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파동은 석 달 전 국방부와 쏙 빼닮은 꼴이다. 윤 총장의 임기 유지에 대한 문 대통령의 판단이 무엇인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검찰총장이 국정의 큰 부담이 되는 동안 국무총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정 역할은 보이지 않고 법무부에만 사태 해결이 위임되었다. 여당은 적극적인 관여를 하지 못하고 뒤만 쫓아가는 거수기였다. 추미애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법무차관, 감찰관, 감찰위원회 등 관련 기능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지 않고 생각이 같은 극소수 참모들과 비밀리에 윤 총장에 대한 감찰과 징계를 진행하였다. 비록 추 장관의 검찰개혁에 대한 방향은 옳다고 할지라도 집단지성이 아닌 집단사고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부정확한 정보관리와 절차적 결함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법원이 윤 총장의 직무배제 일시중지 요청을 받아들이고 차관이 사의를 표명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법무부가 더 이상 사태를 수습할 방법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늦게나마 청와대가 나서지 않으면 출구는 없다.

 

비슷한 현상은 방역 전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방역은 국가의 모든 가용한 자원을 동원하는 총력전과 같아서 그 책임 단위는 누가 뭐래도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빠지고 질병관리청을 주축으로 한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모든 것을 위임하는 지금의 방식은 바이러스가 더 확산될 경우 취약함을 드러낼 것이다. 확진자 숫자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조정하는 소극적 정책만으로는 이 재난을 이길 수 없기에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의 차원에서 국가의 가용자원을 집중하는 더 높은 수준의 방역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에서도 합리적 중도층까지 개혁의 전선에 동원해낼 수 있는 참으로 운이 좋은 정부다. 이 정부가 후반기에도 그 운이 통하려면 기계적으로 부처에 중요 사안을 위임하는 행태를 근절하고 국정 운영의 전반에서 집단지성을 복원해야 한다. 청와대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는 거대한 신경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물체로서 뛰어난 지성을 제공하는 유기체다. 그 중추에 뇌의 역할을 하는 청와대의 기능 마비를 치유하지 않으면 국정 난맥은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2020-12-04

 

언론은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

2015년 미디어 경제학자 줄리아 카제의 미디어 구하기가 출판됐을 때 한동안 언론의 대안적 경제 구조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광고에 기대는 비즈니스 모델은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에 가치를 둘 수밖에 없고 사기업이 소유한 언론은 사적 이익 추구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정작 시민이 알아야 하는 정보 전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하여 그는 독자의 신뢰와 언론 독립성 회복을 위해 광고가 아닌 독자 구독과 후원에 기댈 것과 미디어 거버넌스에 다수 시민이 참여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카제가 제안한 모델과 유사한 시도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르몽드의 엉 부 뒤 몽드(Un bout du Monde)’와 메디아파르트의 자유 언론을 위한 기금(Fond pour la Presse Libre)’이 그것이다. 이들의 운영 방식은 상이하지만 그럼에도 그 원칙은 동일하다. 언론이 소수 거대 자본가가 아닌 시민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20207월에 등장한 엉 부 뒤 몽드는 카제가 그의 책에서 제안한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를 실험하는 모델이다. 비영리 미디어 주식회사는 주식회사 장점을 통해 자본을 원활히 투자받되 비영리적 목적을 강화한 시스템이다.

엉 부 뒤 몽드(Un bout du Monde) 홈페이지(https://www.unboutdumonde.org/) 갈무리.

 

르몽드는 사실 오랫동안 기자들이 주주인 독립 언론이었지만 2008년 경영난으로 인해 매각되면서 소수 대주주가 지분을 나눠 가지는 구조로 변화했다. 최근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게 된 계기는 20199월 발생한 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르몽드 대주주 중 한 사람인 마튜 피가스가 르몽드 구성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체코의 에너지 분야 사업가에게 자기 지분의 49%를 매각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많은 독자와 언론인들이 혼란에 빠졌지만 다행히 편집권 독립과 르몽드의 안정적 재정 시스템 구축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엉 부 뒤 몽드는 바로 이런 르몽드 소유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비영리 협회로 수많은 독자와 언론인들이 매체 운영 자금 조달에 참여하는 주주가 될 것을 권장한다. 각 주주는 동일한 투표권을 갖게 되며 가장 활동적 회원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수 주주들이 편집권에 개입할 수 없게 하고, 집단적이고 투명한 의사 결정을 통해 독자 신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자유 언론을 위한 기금은 지난 9월 정보의 자유와 언론의 다원주의 및 언론의 독립 수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기금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수많은 정보 채널이 등장하면서 언론의 재정적 위기는 심각해지고, 언론의 소유권 집중으로 인해 편집권 독립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익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언론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등장했다.

 

가디언의 스콧 트러스트 기금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메디아파르트 창립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매체 자본을 이 기금에 넘긴 것이다. 광고 수익이나 정부 지원금 없이 오직 독자 지원에 의해서만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탐사 저널리즘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메디아파르트는 2020년 들어 구독자가 20만 명까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수익 규모도 커졌지만 비영리 기금에 곳간 열쇠를 넘기는 선택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적 혹은 특정 이익으로부터 자본을 보호하고 완전한 독립성을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The Guardian) 홈페이지(https://www.theguardian.com/international) 갈무리.

 

아울러 메디아파르트는 이 기금을 통해 메디아시떼’, ‘막스악튀’, ‘르 풀프등을 비롯, 소규모 독립 탐사저널리즘 매체들과 협업하고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독립 언론 영토를 확장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시민이 구독·후원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언론. 오랫동안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져 왔던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물론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언론이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언론이 이윤 추구가 아닌 공공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 비로소 가능하고 이를 위해선 시민 독자에 기대는 언론 모델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파리2대학 언론학 박사) mediatoday.2020.12.06

 

2020, 어떤 시대의 종말

2020년이 이제 곧 저물어간다. 이로써 2010년대가 끝을 맺게 된다. 더 넓게 봐서는, 코로나의 난리 통에 또 다른 종말들이 앞으로의 세계사적 흐름을 크게 결정지을 것이다.

 

첫째, 1945년 이후 전후 수정 자본주의가 낳은 중산계급 사회,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파탄을 맞았다. 이 파탄이 가장 가시화된 곳은 바로 신자유주의를 세계적으로 선도해온 미국이다. 한편으로 최상위 1% 미국인의 세금 공제 이전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19~20% 정도 된다. 이 비율은 1960년대만 해도 10%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처럼 된 것은 양극화가 극심했던 1910~20년대의 수준으로 회귀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최하위층 미국인들이 아예 기아상태에 빠진다.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시대처럼 말이다. 믿기지 않지만, 텍사스주 휴스턴 같으면 지금 아동 4명 중 1명이 종종 돈이 없어 배고픔에 시달릴 정도다. 미국 전역에서는 총인구의 약 8분의 1이 적어도 간헐적으로 기아에 노출된다. 자본주의 세계의 종주국인 미국은 전전(戰前)의 시대처럼 다시 한번 별천지에서 사는 부유층과 계속 줄어드는 중간계층, 그리고 언제 기아 상태로 떨어질지 모른 채 불안에 떠는, 커져가는 중하층과 하층으로 나뉜 상태다.

 

둘째, 전후의 중산계급 사회와 함께 구미권의 세계적 헤게모니도 이제 드디어 본격적인 종말을 맞기 시작한다. ‘중산계급 사회1945년 이후에 생겨났지만, 구미권의 헤게모니는 18세기 말, 노예무역과 노예노동을 착취하는 사탕수수 농장의 경영 등으로 축적된 자본을 원천 삼아 영국이 공업화를 처음으로 이루어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업에 한정해서 살펴보아도, 세계 제조업 총생산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몫(52%)은 유럽 전체와 북미를 합친 구미권(40%)을 훨씬 능가한다. 현재 영국의 공업 생산량은 한국 제조업 생산량의 60% 정도밖에 안 된다. 아시아는 이제 18세기 중반 이래로 다시 한번 세계 생산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 미국과 같은 구미권의 대표 주자가 그나마 여전히 세계적 우수성을 보유하는 분야란 금융과 군사, 본래부터 군사와 연결돼 성장한 일부 정보기술, 학술, 그리고 예능 정도다. 그러나 학술만 해도 이미 2년 전에 중국 학자들이 세계적 과학·기술 분야 학술지 논문의 20%를 차지한 반면 미국 학자들의 몫은 16%에 불과했다. 예능으로 말해도 내가 아는 수많은 러시아나 노르웨이 청년들에겐 지금 미국의 팝보다 한국의 케이팝이 훨씬 더 친숙하다. 군사적 우위는 미국이 보유하는 최종의 카드지만, 이 카드의 유효기간 역시 약 20~30년 내로 만료될 수도 있다. 해군 군함의 보유 척수로 보면, 중국 해군은 이미 미 해군을 능가할 정도다. 종합해서 말하면 아마도 2040~50년대쯤 거의 250년 지속된 구미권의 패권은 종언을 고할 것이다. 이제 2010년대가 저물어가면서 구미권 헤게모니의 종말도 드디어 가시권에 들었다.

 

셋째, 아시아의 개발이 구미권의 독점권을 깸과 동시에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개발자체가 반성의 도마 위에 올랐다. 만약 세계 평균기온이 2100년까지 3도 정도 오른다면, 중국 상하이가 아마도 엄청난 침수 위험에 부딪힐 것이며, 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1700만명이 기후 난민이 될 확률이 높다. 중국이 지금의 계획대로 2049년쯤에 세계 최강대국이 된다 하더라도, 기후 참사는 역사적 성취를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임박한 기후 참극은 세계 진보의 패러다임을 지난 10~20년 동안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역사적으로 20세기의 진보는 개발을 향한 집착을 보수와 그대로 공유해왔다. 분단 시대의 한반도만 해도, 중공업 위주의 산업화는 오히려 북한에서 남한보다 훨씬 더 일찍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 진보는 저개발 지역의 개발, 그리고 산업화 결실의 더 평등한 분배와 함께 지구적 생산 총량의 제한, 즉 세계적 규모의 탈성장을 외칠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개발 기회를 박탈당했던 지역들은 그 기회를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지만, 이미 산업화된 지역에서는 이제 기후위기 등 생태계의 문제를 의식해서 생산 총량을 동결하거나 하향 조절하여 그 결실을 좀 더 동등하게 나누어야 한다. 탈성장 이념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미 고도로 산업화된 지역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미국보다 17년 더 늦게 이루어졌다. 미국과 달리 제조업 공동화 현상도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운 좋게도 미국과 같은 규모의 사회적 파탄은 모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국 정도로 기아 노출 인구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한국의 고교생 중 약 8%는 밥을 종종 굶는 결식 청년이었다. 이제 코로나까지 덮쳐 취약계층의 상황은 더더욱 악화됐다. 구미권의 패권이 약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아시아의 다른 신흥 산업 사회들과 함께 한국도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지만, 이 국제적 위상의 대대적 제고만으로는 다수의 한국인이 절로 행복해지는 건 결코 아니다. 부유층이나 중상층에게 여유 자금이 더 많아진 만큼 집값도 천정부지로 계속 오르고 있다. 그리고 크게 오른 국제적 위상과는 대조적으로, 제조업 대국인 한국은 기후 대책과 관련된 국제적 의무를 제대로 다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 자리에 잘못 오른 사기꾼 이명박이 12년 전부터 저탄소 녹색성장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지금은 세계 7위다. 1인당 배출량은 비슷한 산업 구조를 가진 일본과 독일보다 오히려 더 높다. 지난해 저먼워치, 뉴클라이밋연구소, 기후행동네트워크 등이 발표한 기후위기대응지수(CCPI) 2020’을 보면 한국은 주요 61개 산업 국가 중 58(26.75), 거의 모든 면에서 실패하고 있는 나라인 미국(18.60) 정도로 낮다.

 

아시아 시대의 세계적인 핵심 국가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을 완전히 벗어나 친환경 복지국가로 가지 않는 이상 자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바깥 세계에 모범을 보여주지도 못할 것이다. 한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식 생태형 복지국가 모델 전환의 장기적 비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2012.08

 

문재인 정부의 '뉴딜', 노동은 울고 자본은 웃는다

[장석준 칼럼] 이게 '뉴딜' 정부의 노동 입법인가?

19371, 미국인들의 눈길은 온통 미시건 주의 플린트 시로 쏠려 있었다. 그곳 제너럴 모터스(GM) 공장은 벌써 수십일 째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공장 안에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전년 1230일부터 집에 가길 한사코 거부하며 공장 안에 머물고 있었다. 2년 전에 결성된 자동차노동조합(UAW)GM 사측에 맞서며 구사한 새로운 파업 전술인 '공장점거(sit-down) 파업'의 일환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확했다. GM이 자신들이 속한 산업별 노동조합인 UAW와 전국적 단체협상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측의 입장은 완강했다. 사업장별 교섭은 가능해도 미국 전역의 GM 공장들을 포괄하는 전국 교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UAW가 출범한 해에 통과된 새 노동법(이른바 와그너 법)은 산업별 노동조합과 산업별 단체교섭을 장려했지만, 미국 최대 완성차업체 GM에게 그런 법 따위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사측은 공장 점거가 불법이라는 점만 부각시키며 공권력 동원을 요청했다.

 

경찰력만으로는 이미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경찰이 무장 구사대와 함께 공장 문 앞에 버티고 있었지만, 노동자 가족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문 너머 파업 대열에게 음식을 전달했다. 실탄까지 쏘며 해산하려 했지만, 분노한 파업 지지 시민들만 늘리고 말았다. 최후의 수단은 주방위군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주방위군 지휘권은 당선된 지 고작 두 달밖에 안 된 신임 주지사 프랭크 머피에게 있었다. 대통령과 당적이 같은 민주당원이고 할아버지가 아일랜드 독립투쟁 중에 목숨을 잃은 가족사를 지닌 머피는 플린트 시의 실제 주인인 GM과 파업 노동자 사이에서 진심으로 고뇌했다. GM 경영진과 주주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와 군을 출동시키라고 협박했고, UAW가 속한 새 노총 '산별조직위원회(CIO)'의 위원장 존 루이스는 시내 호텔에 투쟁 본부를 차리고는 IRA(아일랜드 공화군)의 손자가 아니면 누가 노동자 편에 서겠냐며 압박했다.

 

2월이 되자 마침내 주방위군이 출동했다. 군대는 점거 중인 GM 공장을 포위하고 정문을 향해 기관총을 설치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측은 군의 공장 진입을 요구했지만, 머피 주지사는 더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공장을 포위한 주방위군은 사실상 노동자를 위협하기보다는 회사의 명령만 떨어지면 총기로 무장한 채 공장에 진입하려던 무장 구사대를 막는 역할을 했다.

 

미국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으로 공권력이 자본이 아니라 노동 편에 선 것이었다. 결국 GM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점거 파업 44일째인 211일에 사측은 UAW 지부를 인정하고 전국 수준에서 UAW와 협상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사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공장점거 노동자를 보호한 뉴딜 정부

실은 머피 주지사 혼자만의 결단은 아니었다. 자본의 나팔수인 주류 언론의 거센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방위군의 공장 진입 명령서를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꺼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연방 대통령의 확고한 입장 덕분이었다. 당시 연방 대통령은 바로 뉴딜 개혁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D. 루즈벨트였다.

 

연방정부 안에서도 공장점거 파업을 무슨 수를 써서든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루즈벨트의 보수적인 러닝메이트였던 부통령 존 낸스 가너는 아예 연방군을 보내 파업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가너 부통령이 마침내 그의 반대편에 서서 여당 안에서 뉴딜 반대를 선동하게 되는 사태를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연방 정부는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피 주지사의 결정은 이러한 대통령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한 셈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뉴딜 개혁의 핵심에 놓인 거대한 결단을 확인할 수 있다.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 소득이 상승하고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됐으며 미국 자본주의의 장기 번영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렇게 임금 소득이 오르기 위해 선행돼야 했던 심각한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개선되려면, 우선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의 균형이 바뀌어야 했다. 자본 쪽으로 너무도 기운 저울의 방향을 바꿔야만 했다.

 

루즈벨트 정부는 이를 실제 단행했다. 산업별 노동조합 시대를 연 와그너 법을 제정했으며, 새 노동법 아래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의 힘을 거침없이 구현하려 한 CIO 소속 노동조합들의 공장점거 파업을 막지 않고 오히려 경영진이 산업별 단체협상장에 나오도록 압력을 넣었다. 덕분에 노동 진영은 안정된 일자리와 괜찮은 임금을 따낼 수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UAW 조합원 수는 플린트 파업 승리 이후 1년만에 3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변화 때문에 뉴딜이 지금도 '혁명적' 개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럼 '한국형 뉴딜'을 내세우는 대한민국의 현 정부는 어떠한가? '뉴딜'을 간판으로 내세우니 만큼 현 정부와 여당 역시 자본 쪽에 기울어진 저울의 방향을 고치려는 단호한 의지로 충만했다고 볼 수 있는가?

 

문재인 정부도 노동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루즈벨트 정부의 와그너 법처럼, 집단적 노사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입법안을 내놓았다. 2020630일에 정부가 제21대 국회에 제출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법률개정안'이 그것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사업 및 사업장에 종사하지 아니하는 근로자의 기업별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 규정을 삭제"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사업장 내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사용자는 교섭을 요구한 모든 노동조합과 성실하게 교섭하여야 하고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를 강화하려는 입법안인 것만 같다. '한국판 와그너 법'인가?

 

그러나 이런 기대는 곧 산산이 무너진다. 개정안은 "단체협약에는 2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다"는 기존 법률 제321항을 "3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다"고 바꾸자고 한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함으로써, 사측이 노동조합의 새 단체협상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1년 더 늘려 주었다.

 

게다가 개정안은 "쟁의행위는 ...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는 기존 법률 제421항을 "쟁의행위는 ...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바꾸자고 한다. "전부 또는 일부"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점거 금지를 보다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생산 시설의 일부에서 농성을 벌이더라도 '점거'로 규정돼 금지 대상이 된다.

 

'뉴딜' 하겠다면서 노골적으로 자본 편에 서는 정부

원판 뉴딜 정부는 공장점거 파업을 응원하면서 개혁을 밀어붙였는데, 한국형 뉴딜 정부는 공장점거 파업을 금지하겠다고 한다. 기존 법률이 규정한 것보다 더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형 뉴딜'은 박정희 정권의 '한국식 민주주의' 이후 최대의 조지 오웰식 어법으로만 느껴진다.

 

이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들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고 한다. 공장점거가 주로 대기업 노동자들이 구사하는 파업 행태이기 때문에 이 개정 내용은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에만 해당될 뿐 다수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과연 '과도하게' 힘이 센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도 여전히 공장점거 파업 같은 투쟁 형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약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일수록 사측이 단체협상장에 나오게 만들기 위해 점거 파업 같은 수단에 더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파업 전야>만 봐도 빤한 사실이다. 그 영화에서 중소기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극악한 탄압에 맞서 마지막으로 기대는 수단이 다름 아닌 점거 파업이다. 정부 개정안은 지금도 이런 투쟁 방식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 이미 강력한 노동조합과 오랜 역사의 단체협약을 지니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에게서 이 최후의 무기를 빼앗겠다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개정안에는 노동조합 활동의 폭을 넓혀주는 조치들도 있다. 그렇다면 노동계가 따낸 만큼 경영계도 얻는 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게 협상의 상례가 아닌가? 정부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시대 리버럴 정권에게서 이런 허구의 평등 외에 달리 뭘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직도 '촛불 정부'를 입에 달고 사는 정부-여당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한때나마 '소득주도성장'을 외쳤던 정치 세력이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한국형이든 뭐든 '뉴딜'을 간판으로 내건 정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나라에서는 자본에 대해 노동이 여전히 압도적 열세에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전 세계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힘을 과시한다고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의 막강한 우위 속에서 분파적 생존을 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에다 이제는 플랫폼 노동자들까지 가세하는 노동 진영 전체의 대다수는 비슷한 발전 수준을 보이는 자본주의 국가 어디와 비교해도 불리한 세력 균형 아래 놓여 있다. 이를 풀지 않고 무슨 사회 개혁이고, 무슨 '뉴딜'인가?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런 한국의 노동자들에게서 공장점거라는 투쟁 형태마저 압수하려 한다. 1987년 민주 항쟁 직후에 잠시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노동자들이 외마디 함성을 토하는 수단이 됐던 그 무기마저 박탈하려 한다. 아울러, 하다못해 '촛불'이나 '뉴딜' 같은 텅 빈 상징마저 저들 것으로 독차지하려 한다.

 

쓰다 보니, 도무지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혁명''항쟁'을 입에 달고 살던 이들이 세운 정부가 하는 일이 이 모양이니 당신들이 쏟아냈던 그 말들이 현실이 돼 돌아오는 꼴을 보리라고 써야 하나, 아니면 그 따위 법률안을 정말 통과시킬 셈이라면 더는 '촛불'을 들먹이며 진영을 가르는 짓은 하지 말라고 써야 하나?

 

그저 머릿속을 맴도는 제헌국회의원 조봉암의 외침 하나를 인용하며 끝맺어야겠다. 제헌헌법의 자유권 조항마저 저들 입맛대로 농단하려는,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먼 선조격인 한국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조봉암은 이렇게 호통 쳤다.

 

"이 천하가 언제나 너희 천하가 될 줄 아느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0.12.08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권력 수사는 정치행위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개혁이란 논리는 애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용납하지 않는 정권에선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대로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한다고 곧 검찰개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야권 1위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이미 정치행위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여야가 모처럼 검찰개혁에 의견을 모았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6인소위 의원들이 대검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특별수사청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상황을 감지한 중수부가 소리 없이 상황관리팀을 하나 꾸렸다. 소위가 중수부 폐지 등 합의사항을 발표하자 중수부는 닷새 만에 수사에 뛰어들었다. 언론의 관심이 그리 쏠리고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여론을 장악했다. 결국 해병대가 상륙작전 하는데 부대를 해체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저축은행 피해자들까지 대검을 찾아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 됐다. 국회의 검찰개혁 시도는 물건너가고 중수부 폐지는 흐지부지돼버렸다. 20113월부터 석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이듬해 11월 잇따른 검사들의 뇌물·성추문 등으로 퇴진 위기에 몰린 검찰총장이 다시 중수부 폐지 등 개혁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중수부장 등 부하 검사들이 몰려가 물러나라고 했다. 결국 선배인 총장(한상대)이 쫓겨났고 중수부 폐지는 없던 일이 됐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중수부 폐지 여론이 높았지만 검찰은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직전 참여정부 역시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파헤친 중수부의 성역 없는 수사가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얻으면서 검찰개혁의 시기를 놓쳤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출범 직후부터 검찰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당사자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며 청와대가 직접 나서 개혁 방안을 조율했다. 검경 사이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이고 공수처 법안도 가다듬었다.

 

그런데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개혁 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두번째 검찰총장한테서 개혁 동참을 약속받았다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의 깊이는 간과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죽은 권력 청산에 열중하더니 총장에 오른 뒤부터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이하 살권수’, <한겨레TV> ‘논썰’ 14회 참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1년여가 지나면서는 대놓고 살권수=개혁이라고 부하들에게 지침까지 내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하고 공수처 도입한다고 검찰개혁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 담겼다. 이미 그 살권수로 열렬한 지지층을 얻고 야권 1위의 대선 주자 반열에도 올랐으니 속내를 감출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15개월간의 살권수는 사실 권력형 비리보다 살아있는 권력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국회 청문 절차에 뛰어들고, 정책 사안에도 칼을 들이댔다. 대학입시용 표창장이나 군대 휴가 절차까지 여론의 심판대에 끌어들여 사건을 키웠다.

 

살권수=개혁논리에 집착하면 균형감 잃은 반쪽짜리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쪽 권력들은 다 빼주기 때문이다. 장관 시절 영장에 혐의사실 빼라고 직권남용한 야당 대표도,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으로 고발당한 야당 원내대표도 인디언기우제나 먼지털기 수사 한번 안 받고 다 무사했다. 검찰 식구나 가족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채널에이> 사건이나 최근의 전현직 검사 룸살롱 로비 사건만 봐도 제 식구들은 살권수에서 빠진다.

 

살권수=개혁프레임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논리다. 과거 경험이 말해주듯 살아있는 권력 수사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정권에선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대로 참여정부에서 봤듯이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한다고 곧 검찰개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검찰 권한 줄이는 개혁 칼날을 피해보려는 조어일 뿐이니 가짜 개혁이다.

 

중국 병법서 <36>의 제1계는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적을 감쪽같이 속이는 걸 싸움에서 이기는 첫번째 비결로 꼽았다.

 

총장의 살권수는 개혁 대상 검찰을 일약 권력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 반열에 올려놨다. 갈 곳 몰라 하던 무응답층 상당수가 그에게 쏠렸다. 그사이 살권수가 곧 개혁이 되고 권력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오히려 수사 방해 시도처럼 돼버렸다. 대단한 만천과해 전략이다. 이미 살권수에 한번 빠진 이들은 그 한계를 알아채지 못했다. ‘만물박사평론가를 비롯해 상당수 진보 논객들까지 총장 편에 섰다. 참여정부 때 속아놓고 또 속는다. 속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야권 1위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살권수는 이미 정치행위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10일 검찰총장 징계위에 이어 곧 공수처도 출범한다. 총장의 살권수도 막바지에 몰렸다. 성기지만 결코 빠트리지는 않는다는 하늘 그물까지 속일 수 있을까.

김이택 대기자 rikim@hani.co.kr 한겨레 2020-12-09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노동자들이 부서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과정을 지켜보며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과정의 담론을 지배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소위원회의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거대 양당이 이 법의 필요성을 말로만 외치다가 입법절차를 시작하려니까 무서워서 피해버린 꼴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중시키거나 이윤 추구를 불편하게 하는 일의 두려움은 한국사회에 토착된 풍토병이다.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 과정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먹여 살린다는 이 설화는 이윤과 임금의 관계를 설명하는 경제이론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위에 군림하고 있다.

 

먹여살리는 자

감옥에 못 간다소리치고

정치는 이 고함에 화답한다

징역·벌금껍데기뿐인 법

무엇이 과잉처벌인가

이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주체성을 부정해서 자본에 복속시키고, 국가의 행정력과 선출된 정치력을 무력화시키고, 더 잘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내세워 희생자들을 소수자로 몰아붙이고, ‘먹여 살리는 자가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저지르는 온갖 탈규범적 행태들을 정당화해왔다. 이것은 다수가 신봉하는 미신이다. 밥벌이하다가 죽는 죽음과 불구가 되는 사고를 줄이려는 많은 노력들은 이 미신 앞에서 좌절되었고, 좌절을 거듭할 때마다 미신은 더욱 번창했다.

 

이번 입법절차의 발단에서부터 정치권은 사용자 단체의 논리를 수긍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중대재해의 형사적 책임을 물어서 기업총수에게 실형을 언도하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이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어 있다. ‘7년 이하라니까 당연히 ‘7년 이상은 없을 테지만 ‘7년 이상뿐 아니라 7개월도 7일도 언도한 적이 거의 없고, 벌금은 ‘1억원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체로 500만원 정도였다. 법은 껍데기뿐이었다(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피고인 1065명 중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받은 사람은 21명으로 전체의 2% 정도이고 평균 형량은 9.3개월이다. KBS 2020126일 보도).

 

이러니, 중대재해의 기업주 처벌이 과잉처벌이라는 말은 무엇이 과잉인지 아무런 비교기준이 없다. 이 말은 감옥에 못 간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먹여 살려주는 자의 무서운 고함이다. ‘감옥에 못 보낸다는 정치의 메아리가 이 고함에 화답하고 있다.

 

감옥에 못 가는또 하나의 논리는 노동의 최하위 현장에서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최상부의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올려서 밀어붙일 법리적 연결고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CEO는 사고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먹여 살려주는 자의 논리다. 노동자가 몸으로 당면하는 현장이 최하이고, CEO의 위상이 최상이라는 인식이 이 논리의 기본틀이다. 법은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아랫부분에서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 물러간다. 물러가면서 이 물러감을 다시 논리화한다. 논리 안에 정의는 없고 말의 형식만이 존재한다. 말의 형식이 결국 법제를 이루는데, 국회는 이 위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동자들은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부딪히고 깨진다

 

내가 이 답답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식인·분석가·활동가들이 TV에 나와서 이 문제로 특집좌담을 하는 동안에도, 국회에서 권력의 지분을 놓고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고층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김훈 작가 경향 2020.12.10.

 

·윤 싸움그 비극적 관람

검찰개혁이란 역에 내렸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운명인 양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내린 곳이 종착역인지 환승역인지 모르겠다. 종착역이라면 출구가 있어야 할 테고, 환승역이라면 막차가 와야 할 텐데. 출구는 찾을 수 없고,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검찰개혁이란 이름으로 전개된 지 1년이 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다른 세상이 펼쳐질까. 불행히도 그럴 것 같진 않다. 이날부터 윤 총장 징계 절차가 시작됐다. 윤 총장이 징계를 받든 피하든 검찰개혁은 이미 궤도를 이탈했다. 검찰개혁이 검찰 굴복으로, 가장 위험한 권력인 검찰의 수장이 순교자로 둔갑했다. 남은 건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승패뿐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헤겔의 언급에 덧붙인 말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가 떠오른다. 화해하기 힘든 격렬한 신들의 전쟁은 지금도 비극과 희극을 반복하며 질주하고 있다.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적 감정>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공적 감정을 키우지 않는 것이 비극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입하면 ·윤 싸움은 처음부터 비극이었다. 추 장관은 기꺼이 애국할 준비가 돼 있는 시민들을 검찰개혁 대전의 관찰자로 추락시켰다. 그렇다고 싸움의 동기를 제대로 알려준 것도 아니다. 선출된 권력이라 해도 헌법적 견제 장치를 굴복시키려 한다는 게 요즘 민심이다. 여권 연루 사건의 수사진 교체, 윤 총장 징계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윤 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 견제라는 깃발만 들고 민주정치의 기본인 문민통제를 거부했다.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으로 군림했음에도 스스로 살아 있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성찰하지 않았다. 이 싸움은 그래서 권력 투쟁일 뿐 공적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저잣거리에선 검찰개혁이 우스갯소리로 회자된다.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한 지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검찰개혁하느라 시간을 못 맞췄다고 했다는 것 아닌가. 한 여권 인사는 호랑이 잡으러 가는 포수가 동네 입구부터 총을 쏴대면 호랑이는 고사하고 토끼 한 마리도 못 잡지라고 냉소를 보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개혁 철학은 검찰개혁의 비극을 역설한다. 루스벨트는 대공황 시기, 뉴딜 정책 성공을 위해 공적 감정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자연재해가 아니면 복지정책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진가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포착하라고 지시했다. 실업급여와 빵을 받으려 줄지어 선 사람들의 사진이 언론에 실렸고 국회 보고서에도 포함됐다. 시민들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나도 겪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됐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성공했다.

 

죽기 살기로 겨룬 싸움에서 희극이 있겠나 싶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어느 선까지 대충 하다 접을 것 같지 않다. 그간 법복에 가려졌던 검찰 내부 얘기가 드러나고 있다. 여의도에서 남성 권력자들과 부대끼며 이들의 감정 버튼을 누르는 방법을 아는 추 장관도 타협할리 없다. 게다가 각자 대의명분을 품고 있으니 검찰개혁은 적당히란 불가능하다.

 

누스바움은 인간의 본성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것이 희극적 관람의 특성이라고 했다. 취약한 인간의 한계가 살아 있음의 표지임을 일깨운다고 확신했다. 사생결단식 ·윤 싸움은 이런 측면에선 희극이라 할 만하다.

 

코로나19로 모두들 외로운 시절을 나고 있다. 누군가는 가난해서 외롭고, 또 누군가는 세상이 불평등해서 외롭다. 얼마 전 한 후원단체가 보낸 연말 선물을 받았다. 가로·세로 15짜리 한평 달력이다. 1년치 12장을 배열하면 가로·세로 각각 180(3.24), 채 한평이 안 된다. 1인 최소 주거면적 4.2(14)보다 작다. 한평이 부동산 자산 단위가 아니라 삶의 터전인 사람들은 이 달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2년 전 1210일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는 안전조치 하나 없는 작업장에서 컨베이어벨트에 깔려 사망했다. 그의 2주기가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귀한 목숨은 아직 국회에 갇혀 있다. 김씨가 지켜보고 있다면 온통 검찰개혁밖에 없는 세상 때문에 지독하게 외로울 것 같다. 검찰개혁으로 민생개혁이 가려졌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윤 싸움너머에 한평 달력이 꿈꾸는 삶, 세상의 모든 아픔을 앓는 정치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처럼 권력투쟁뿐인 싸움이라면 더욱 간절해진다.

구혜영 정치부장 koohy@kyunghyang.com경향 2020.12.11.

 

노무현은 왜 단병호 앞에서 마음이 복잡했을까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12

2004531일 청와대 주최로 열린 노사정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 왼쪽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다. 이 무렵이 참여정부와 노동계의 관계가 그래도 가장 좋았던 시절로 꼽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9993월 민주노총의 정책 담당자 몇 명이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네덜란드 노총(FNV)과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 모델인 사회경제이사회(SER)를 돌아보고 온 뒤 집행부에 보고서를 하나 제출했다. 결론에 네덜란드 모델이 노동조합 전략에 주는 시사점이란 부제가 붙은 보고서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1970년대 이후 네덜란드 노총은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노동환경 변화로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노총은 파트타임 노동에 반대하며 이들을 외면했다. 결국 네덜란드 노총은 파트타임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을 풀타임 노동자와 동일하게 보호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197040%에서 198521%까지 떨어졌던 노조 조직률은 1998년엔 29%까지 회복됐다. () 우리나라도 비정규 노동자가 이미 정규 노동자와 맞먹는 규모로 늘어났지만 이들의 조직화에 가장 핵심적인 걸림돌은 노동조건에서 이들이 정규직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쓴 주진우 민주노총 조사통계부장(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그때 네덜란드 상황을 보고 정규직 노조 중심의 우리에게도 곧 닥칠 문제라는 강한 예감을 받았다. 그래서 노동형태 변화에 대응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가 시급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영감을 얻은 건 노조만이 아니다. 정부도 그랬다. 네덜란드는 1982년 임금 동결과 일자리 확대를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으로 유명했다. 2005년 노동계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노무현 대통령은 선진국의 노사관계 개혁사례를 연구해 보고하라고 노동비서관실에 지시했다. 그렇게 작성된 게 네덜란드 사례 보고서였다.

 

청와대와 민주노총 보고서는 강조점이 다르다. 민주노총 보고서가 노조의 조직 확대와 사회적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면, 청와대 보고서는 대타협을 가능케 한 정부의 일관된 정책과 주도적 역할에 주목했다. 눈에 띄는 건 양쪽 모두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다. 청와대 보고서는 네덜란드 사회적 대타협 과정에서 타협이 최선’(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이라는 공동 인식이 원동력이 됐다고 썼다. 민주노총 보고서는 네덜란드 모델은 네덜란드 전통과 관행의 제도적 표현이다. 다만, 위기가 있다면 극복을 위해 협력하는 게 싸우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네덜란드 노사는) 생각한다고 적었다.

 

진보정권과 민주노총 모두 네덜란드 모델에 주목한 지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러나 바뀐 것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갈등이 심해진 진보정권과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도 사회적 대화와 타협에서 한치의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왜 진보정권과 노동계는 불화하는 걸까. 보수정권에서 노-정의 격한 충돌은 정책 지향의 근본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그러나 노동과 복지를 중시한다는 진보정권 아래서도 정부와 노동계는 대화마저 쉽지 않은 갈등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노-정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경제 개혁을 위한 핵심 사안에서 우리 사회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노동존중 사회복지국가라는 목표는 진보정권과 노동계의 협력 없이는 실질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정 대화와 협상에 참여한 적 있는 인사들은, 진보정권과 노동계의 서로에 대한 엇갈린 감정이 미묘하지만 중요한 간극을 만든다고 말한다.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은 노동인권 변호사로서 1980~90년대 민주노총 핵심 인사들을 변호하고 현장에서 함께 투쟁한 사이였다. 2003930일 노 대통령과 민주노총 지도부 오찬은, 관계의 변곡점에 놓인 양쪽의 생각과 정서를 잘 보여준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로서는 여러 가지 마음이 복잡합니다. 옛날엔 민주노총 가까이서 지지도 하고 개별적으로 도움 주기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때때로 대립하기도 하면서 참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 어렵기도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님, 무례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노무현 정부 출범 때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에게) 저는 인간 노무현을 신뢰하고 존중합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오른 노무현은 신뢰하기 어려울 겁니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대통령과 노동>, 권재철, 2011)

 

청와대 노동비서관으로 그 자리에 배석했던 권재철씨는 그건 역으로 단 위원장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현장 노동자였던 단병호와 민주노총 위원장인 단병호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서로 달라진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노 대통령은 노동현장에 애정이 깊었지만, 한편으론 과거 노동운동을 봤던 시각으로 현재의 노동계를 대한 측면이 있었다. 노동계 역시 노 대통령을 그렇게 대했다. 대통령으로서의 고민은 고려하지 않고 변했다고만 비판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진보정권과 노동계는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보수정권과는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으니 투쟁과 대결이 기본 구도다. 진보정권과 노동계는 그래도 서로 주고받을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브 앤 테이크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걸 손에 쥘 수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주면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으리란 믿음, 10개 현안 중 핵심적인 2개를 합의하지 못해도 나머지 8개를 우선 받아들이려는 생각은 손쉽게 배척됐다.

 

이런 분위기는 진보정권이 노조를 변화의 파트너가 아닌 적절한 관리대상으로 본다는 생각을 노동 쪽에 심어줬다. ‘사회적 대화에 의지를 보였던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가령 청와대와 현안을 논의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노동부 등에 맡기고 (청와대는) 빠진다. 그 이후엔 관리가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또 정부는 하나하나씩 주고받기 하자는 식인데, 이건 노조 간부들에겐 거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거기엔 노동 쪽의 책임도 있다. 핵심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불완전한 타협은 할 수 없다고 하니까 노-정이 파트너로서 어려움을 함께 넘어서려는 생각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협력이 이뤄지지 못하자, 노무현 정부는 전체의 90% 가까운 비조직 노동자들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과 정책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주노총, 한국노총과는 긴장과 대립을 감수했다. 2003829일 노 대통령과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의 만남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그런 기류를 드러낸다. 이남순 위원장이 대통령이 그러시니까 정치권에서도 (노동계를) 홀대하는 거 같고 경영계가 가세하고 언론이 받아서 비난하고, 우리로서는 총공세를 당하는 기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투쟁성이 강한 대기업 노조의 운동방식과 경향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 대신) 비정규직, 교섭력이 약한 중소기업 노동자 문제 등에 오히려 정책을 집중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대통령과 노동>, 권재철, 2011)

 

노 대통령의 직설적인 어법은 노동계의 마음을 더욱 할퀴었다. 이남신 소장은 노 대통령은 정규직 노조가 투쟁 성과로 높은 임금을 쟁취했는데도 그걸 밑으로 흘려서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연대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노조는 기본적으로 대중조직이고 이익단체다. 이걸 이해하면서 연착륙을 시도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대통령만큼 정규직 노조와 총연맹을 직접 비판하지 않는다. 참여정부-노동계 충돌의 여파를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이후 9년간의 보수정권 경험은 노동계도 변화시켰다. 과거와 달리, 한국노총은 물론이고 민주노총도 정부와의 충돌을 부담스러워한다. 양쪽 모두 조심스럽지만 이것이 사회적 대화와 타협으론 이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진보정권과 노동계는 갈등 속에 10년 전에 비해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 건 상징적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박찬수 | 선임논설위원. 한겨레 2020 12.14

 

누구 편이냐물었죠?

이 선배, 엊그제 <한겨레>는 누구 편이냐고 물었죠? ‘막싸움양상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에서 어느 쪽에 서 있냐는 질문이지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검찰개혁이냐, ‘검찰 장악이냐라는 양자택일의 채근으로도 들렸습니다. 하기야, 여당의 한 의원은 친검찰로 의심받는 법조기자단에서 한겨레 등이 앞장서 탈퇴해, 검찰개혁 의지를 입증하라고 했다죠.

 

이 선배가 보기에 윤 총장 징계 국면에서 한겨레의 논조가 모호했나 봅니다. 사실 기사, 사설, 칼럼, 만평 등에서 한겨레 내부의 온도 차이가 꽤 드러났습니다. 검찰개혁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추 장관의 헛발질을 비판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정치색을 노골화하는 윤 총장의 원초적 잘못을 질타하는 글도 여럿 있었습니다. 인식과 처방이 다른 글이 한 지면에 나오기도 했죠.(123일치 ‘2003년 평검사, 2020년 평검사칼럼 및 윤 총장 징계위, 절차적 흠결 없이 진행돼야사설)

 

언론이 갈등 현안에 대해 입장이 명확한 것은 좋은 일이지요. 논조가 오락가락하거나, 양비론을 펼치는 언론을 독자가 미더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일관성과 명확성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른바 -윤 갈등은 대립하는 양쪽이 명분과 흠결을 함께 갖고 있고,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도 얽혀 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이 뭔지는 싸움의 흙먼지가 가라앉으면 좀 선명해지겠지만, 당장은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2003<뉴욕 타임스> 첫 옴부즈맨이 된 대니얼 오크런트는 의견란에 불만인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지요. “칼럼니스트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쓸 자유가 있고, 독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사안이 복잡할 때 언론사 내부의 시각 차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언론의 숙명은 검찰개혁처럼 복잡한 사안을 매일 판단하고 보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일까요? 저는 몇가지 유형을 생각해봤습니다. 먼저, ‘갈지자형입니다. 곤혹스러운 판단을 중지하는 것인데, 동력이 꺼진 보트처럼 이리저리 표류하는 기사가 나올 겁니다. 둘째는 직진형입니다. 진영의 색안경을 찾아 걸치는 것으로, 일관된 세상이 보이겠지만 사회에 독이 됩니다. 셋째는 북극성형입니다. 이것은 가치를 분명히 하고 이에 견줘 사안의 선후 경중, 시시비비를 가리는 겁니다. 밤길을 걷는 탐험가가 북극성을 보며 방향을 잡으면서도, 당장은 발아래 갈림길과 장애물에 집중하는 것에 비유할 만합니다. 방법의 일관성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세번째처럼 하면 양비론이 두려워 좌고우면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검찰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것이지요? 이런 목표나 가치에 비춰 보면 윤 총장의 정치적 언행, 선택적 수사, 제 식구 감싸기는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마찬가지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는 동떨어진 추 장관의 절차적 정당성 훼손도 그에 못지않은 강도로 비판해야 합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겨레는 공수처 발족이 검찰개혁의 중요한 이정표라 보고, 사설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인 이 기구가 검찰과 사법부를 통제해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삼권분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닙니다. 야당의 견제장치도 무력화된 마당이지요. 당연히 한겨레는 검찰과 공수처를 포함한 권력기관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제도와 관행이 정착되도록 부단히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겁니다.

 

앞으로도 한겨레 보도에 온도 차이는 날 겁니다. 다만, 그 차이가 내부 혼선의 표출이 아니라 가치에 바탕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게 너는 누구 편이냐묻는 선배께 드릴 대답입니다.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 한겨레 2020.12.15

 

라이크윈-전형적인 양비론 기사-윤석열의 비위 사실이 밝혀졌고 징계는 당연한건데 이걸 추윤의 갈등이라 떠드는 것 자체가 윤석열의 비위를 두둔하는 모습

 

superk****다양한 견해가 문제가 아니라 윤석렬만 빨아대는 한겨레 젊은 기자들이 문제고

그런것을 다 실어주는 선배 기자도 문제고

검찰의 잘못된 관행이나 잘못된 수사를 지적하지 않는 그 만용에 놀라울 뿐이고..

계속 다양성 지속해라 한겨레.. 니들은 이제 기득권의 편이니

 

황규영-“누구 편이냐?” 고 묻고 싶었을까요?. “제대로 사실에 기반해서 줏대를 가지고 보도하고 있냐?” 라고 묻고 싶지 않았을까요? 진영의 안경을 쓰고 있는 자의 입장에서 볼때 기자님이 얘기하신 추장관의 불법적인 절차 무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 기억에 한겨레에서 저를 납득시킬만한 근거를 가지고 절차의 부당성을 비판한 기사는 없었습니다. 사안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과 판단없이 기계적인 중립을 의식해 결과적으로는 틀린 주장을 비중있게 다뤄주는 기사를 좋은 기사를 위한 과정으로만 이해해주기에는 한겨레에 거는 제 기대가 너무 컸나 봅니다. 조중동에나 나올법한 기사가 한겨레의 이름으로 걸리는 일이 잦아졌다고 느끼는 것이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저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착각이기를 바랍니다.

 

독재자비난받은 루스벨트에게서 배울 점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취임 이후 최저치다. 레임덕 시작이란 말부터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졌다는 평까지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에 발맞춰 정치적 대립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논란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국회에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비롯한 쟁점 법안들이 속속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며 입법됐다. 거대 여당의 입법 독재,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무너졌다는 격한 비난이 야당과 보수 언론에선 나온다. 과연 그런가. 정말 의회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일까. 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부가 독재로 회귀하는 게 현 상황의 본질일까.

 

각자 시각은 다르겠지만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시대를 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다. 지금의 한국과 흡사한 지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화당의 거센 반대에도 뉴딜 정책을 담은 법률의 입법을 밀어붙였다. 뉴딜의 핵심으로 꼽히는 사회보장법과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을 두고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고 비판했다. 루스벨트에 대해선 독재자’ ‘사회주의자’ ‘소련 공산당의 첩자’, 심지어 파시스트라는 공격까지 있었다.

 

특히 루스벨트가 추진한 미국 연방대법원 개혁은 격렬한 사회적 논란을 불렀다. 대법원이 뉴딜 법안에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리자, 루스벨트는 대법관 수를 두배로 늘려 미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민주주의 토대를 허물어뜨린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일부 의원조차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사법부를 대통령 마음대로 바꾸는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요즘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을 연상시킨다. 루스벨트의 대법원 개혁 시도에 비하면, 공수처법을 삼권분립 훼손이라 비난하는 건 애교에 가깝다.

 

숱한 논란 속에 입법에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다. 대법관 수를 늘리려는 구상은 의회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그러나 역사는 루스벨트 시대를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극심한 혼란에 빠진 시기로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루스벨트를 거치며 미국은 진정한 대중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대통령제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말한다. 보수적 법학자인 로버트 보크는 공화국의 본질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을 평가하면, 루스벨트가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건 전례 없는 논란 속에서도 그가 추진한 뉴딜 정책과 입법이 미국 사회를 전향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 때문일 것이다. 루스벨트는 합법 절차를 통해 개혁을 밀어붙이고, 선거라는 제도로 국민 승인을 받았다. 지금 야당과 보수 언론은 여당이 거대 의석을 지렛대로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키고 공수처법과 국가정보원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걸 독재라고 비난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렇게 통과된 법이 수십년 이어온 검찰과 정보기관의 권력 남용을 끝내고 남북간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느냐 여부일 것이다.

 

그때와 다른 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대통령의 태도다. 루스벨트는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국민에게 직접 설명을 했다. 뉴딜 입법이 선거에서 이기려는 정략이란 비난엔, 이것이 공익과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반격했다. 사법부 개혁 논쟁에선 미국 헌법은 법률가의 계약이 아니라 평신도(일반 시민)의 문서다. (1787년 미국 헌법 제정에 참여한) 대표단의 다수는 법원과 의회·행정부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진화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갈 거라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했다.(1937917일 제헌절 연설) 이 연설은 야당의 더 큰 반발을 불러왔지만, 루스벨트는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쉬운 건 그 부분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데,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솔직한 얘기를 듣긴 어렵다. ‘대통령 의중을 헤아리는 추측과 이게 대통령의 뜻이라는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 국민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윤석열 총장 징계위원회가 끝났으니 이제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길 기대한다. 왜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고, 무엇을 기대했으며, 지금 그 기대는 지켜지는지, 검찰총장 임기제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대통령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 루스벨트 뉴딜의 성공 비결은 국민과의

국민과의 소통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박찬수 선임논설위원 pcs@hani.co.kr 한겨레 2020-12-16

 

 

노르웨이 부자들이 던지는 교훈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 끝에 있는 노르웨이는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2019년 국제통화기금(IMF) 자료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4위다. 유엔개발계획(UNDP)인간 개발 지수에서는 1위다. 코로나19가 유럽을 강타한 상황에서도 핀란드와 함께 바이러스 확산을 잘 억제했다.

노르웨이는 경제 통계에 있어서도 본받을 점이 있는 나라다. 모든 과세 대상자의 각종 소득 자료를 금융기관 등 제3자의 자료까지 동원해 철저히 검증한다. 이런 투명하고 꼼꼼한 통계 덕분에 새로운 부자의 비밀이 최근 드러났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달 홈페이지를 통해 노르웨이 경영대학 소속 안드레아스 파예렝, 이탈리아 에이나우디 경제금융연구소 소속 루이지 귀소 등 4명의 학자가 쓴 논문 투자 수익의 불균형과 지속성을 주목할 논문으로 소개했다. 이 논문은, 부자가 어떻게 더 부자가 되는지를 실증 자료 분석으로 밝혀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같은 조건으로 같은 돈을 투자해도 부자들이 얻는 수익이 항상 더 많다. 흔히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지만, 더 근본적인 부익부 빈익빈의 원인으로 공정 경쟁이 성립하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결론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자본소득과 보유 자산에 대한 과세 행정 자료를 분석해서 나왔다. 분석에 이용된 자료는 3천만건에 달한다. 이 기간 노르웨이 국민들의 투자 수익률은 3.8%였는데, 자산 하위 10%와 상위 10%의 평균 수익률 격차는 세전 18%포인트, 세후 10%포인트로 나타났다. 세금이 그나마 투자 실력 차이를 줄여준 셈이다.

부유층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은 마찬가지였다. 상위 75%의 개인이 2004년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2015년까지 이를 1.5달러로 불린 반면, 상위 0.1%에 속하는 개인은 1달러를 2.4달러로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11년 만에 수익률이 90%포인트 벌어진 것이다.

 

부자일수록 투자 수익률이 높다는 결론은 계층별 투자 수익을 단순 평균해서 나온 게 아니다. 투자 규모 등의 요소가 끼치는 영향을 배제한 뒤 비교해도 격차가 꾸준하다는 게 이 논문의 분석 결과다.

부자들의 투자 수익률이 더 높다는 것 자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은 부자들은 위험이 높은 곳에 더 투자할 여력이 있고 실제로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설명이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논문은 이런 통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 위험도 등 계측 가능한 요소들이 수익률 격차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은 개인 투자자의 특성이 수익률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이런 특성은 금융에 대한 전문적 이해도, 금융 관련 정보 처리 및 활용 능력, 타성을 극복하는 능력, (사업가의 경우) 사업 관리 능력 등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금융 또는 투자 지능의 차이가 빈부 격차를 키운다는 이야기다.

부자와 가난한 이의 투자 수익률 격차는 그들의 자녀 세대에서도 반복되고, 이 격차의 주요 원인은 성장 배경 등에서 비롯된 투자 능력 격차라고 논문은 지적했다.

 

노르웨이는 2019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빈부 격차가 5번째로 낮은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도 부자와 빈자의 공정 경쟁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을 논문은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지식과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더 중요한 사실도 일깨워준다.

신기섭국제뉴스팀 선임기자 한겨레 2020-12-17

 

민주화 시대의 방종

1세기 전 이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선포한 이래 민주화는 국가의 정체성이 되었다. 해방 후 국민은 3년의 전쟁과 40년의 백색·군사독재, 9년의 그 아류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국민의 자유를 짓밟은 이승만의 자유당, 민주공화제를 유린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민주와 정의라는 고귀한 용어마저 회칠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그리고 그 후계자들의 반민주 정권에 국민은 피를 흘려 싸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은 대의기관인 국회가 아닌 국민(시민)의 힘으로 해냈다. 4·19혁명, 반유신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를 몰아내고 노태우와 이명박을 감옥에 보냈다.

 

우리는 국민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국제사회가 선망하는 민주주의 제도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내부를 살펴보면 이제 겨우 낮은 단계의 민주화일 뿐이다. 도처에 방종이 활개 친다. 일본 강점 유산과 군사독재의 시혜를 받은 한국형 브라만 계급이 기득권 동맹체제를 형성하면서 민주화의 걸림돌 정도가 아니라 저해 역할을 하고 있다.

 

총독부에 탯줄을 대고 군사독재와 야합으로 급성장한 족벌언론, “털어서 명성 얻고 덮어서 돈을 번”(어느 변호사의 표현) 그리고 거악을 척결하고자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거악이더라(어느 검사의) 개탄이 담긴 검찰, 독재정권의 온갖 특혜로 공룡화된 일부 재벌 기업, 본회퍼를 욕보이는 사이비 목회자로 상징되는 일부 대형 교회.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가치집단의 이익집단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의 힘은 막강하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오고 혁명의 열기가 보이면 움츠렸다가 개혁의 단계가 되면 어김없이 동일체가 되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준다. 그리고 개혁을 저지·좌초시켰다.

 

민주정부에는 건건이 조롱하고 모욕 주고 저주·악담을 퍼붓고 왜곡하고, 독재정권이나 사이비 민간정부는 덮어주고 아양 떨고 선도한다. 국회·검찰·사법·재계·학계·언론·종교계에 깊고 넓게 똬리를 틀고 있어 개혁의 칼을 대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 하나에도 저토록 힘겨워하는 것은 한국형 브라만 계급의 집단저항 때문이다. “무장한 불의는 가장 다루기 어렵다.”(아리스토텔레스)

 

어느 평자의 말이다. “한국 현대사는 역사가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라고, 친일 음악인을 청산하자는 광복회장의 발언을 용공으로 몰고,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이 부하가 아니라고 저항하고, 권력남용·뇌물수수·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과 17, 벌금 180억원과 130억원을 각각 선고받은 박근혜·이명박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면하라는 아우성은 가히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올해 한국의 순위는 180개국 중 42위인데, 한국 언론 신뢰도는 40개국 중 40(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 공정한 언론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고, 더욱 분통 터지는 일은 공정하지 않은 언론()들의 광고 수주가 가장 높다는 점이다. 부패한 재벌·기업의 협찬성 광고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입법·사법·행정·정치·경제 등 포괄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한 국가별 부패인식조사 결과 전 세계 180개국 중에서 한국은 올해 39, 오이시디(OECD) 회원국 중에서는 최하위권이다. 민생은 어려운데 힘센 자들의 부패는 사그라지지 않고 검찰과 감사원은 내로남불이다.

 

민주화에 역행했던 세력이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방종에 빠져 개혁을 해코지하고 있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어렵사리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출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적지 않다. 기득권 동맹의 방종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촛불혁명이 민주화운동의 정점이지만 종점은 아니다. 민주화 시대의 방종은 반민주 행위 바로 그것이고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한겨레 2020-12-17

 

유튜버의 갑질행태, 폐해 막을 장치 시급하다

유튜브(YOU TUBE)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YOU와 텔레비전의 별칭인 TUBE가 합성돼 만들어진 말이다. , 모든 사람이 시청자이자 제작자란 의미로 이젠 누구나 자유롭게 동영상을 올리고 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그럼에도 폐해 또한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안타깝기 짝이 없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유튜버의 허위 영상 하나로 식당 문을 닫게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대구 간장 게장 식당 주인의 예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한 유튜버가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음식을 재사용하는 무한리필'이란 영상을 올렸고, 100만 뷰가 넘을 정도로 관심을 받아 결국 영업을 중단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조회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의 그릇된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식당 주인은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유튜버의 갑질과 횡포를 막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러한 행태는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한 경기도 안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조두순을 소재로 한 영상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는 유튜버들이 몰려들면서 '두순코인'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주민들이 오죽하면 "조두순보다 유튜버가 더 무섭다"고 했겠나.

 

유튜브는 시청자가 방송을 많이 봐 줄수록 후원을 받아 더 많은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선을 넘을수록 조회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선정적인 영상이 난무하는가 하면 저작권에 상관없이 음악이나 사진을 도용하고, 가짜 뉴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욕설과 비하 발언, 자극적인 섬네일과 허위사실, 악의적인 영상도 심심찮다. 기존 매체들과는 달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보니 관심을 끌기 위한 일부 유튜버의 일탈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행법상 이를 단속할 만한 규정이 마땅찮은 게 현실이다. 또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제재도 쉽지 않고 삭제와 차단 등의 조치도 한계가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개인 유튜버들을 일일이 단속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부 유튜버로 인한 폐해가 한둘이 아닌 만큼 마냥 손을 놓고 있기도 어정쩡하다.

유튜버들의 자정노력이 우선은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유튜버의 구독자 수가 일정 수 이상되면 검증을 하고 유튜브 시청연령을 제한하는 등 장치마련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1인 미디어를 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근찬 논설위원 CBS노컷뉴스 2020-12-18

 

우리 대통령은 착한 임금님

4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를 돌아보자.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대통령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의 면면 말고?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학교나 공직에서 은퇴한 분들한테서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그 자리에 있었을 때 더 충실히 보냈어야 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물러난 뒤에야 알았다.” 교직이나 일반 공직이 그렇다면, 대통령의 자리는 엄중하고 또 엄중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이면서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기자회견이나 국정브리핑을 통해 각 분야의 정책 방향, 그 실행과 검증 과정을 밝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국민을 이끌고 가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닮았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취임사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예감하며 감동했다. 하지만 신기루였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경호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금세 없던 일이 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국민과 열심히 소통하겠다는 약속이 가뭇없이 사라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든 해명이든 듣지 못했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과 기자간담회를 합친 횟수는 김대중 150, 노무현 150, 이명박 20, 박근혜 5, 문재인 6회다. 위정자로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하는 자리는 불편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 임금님인데, 착한 임금님이다. 여느 임금님과 다른 것은 군림 기간이 5년으로 정해져 있어서 이제 1년 반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중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보내는 임금님이 아니라 불편하게 보내는 대통령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감히 말하건대, ‘성공한 대통령의 길이 거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불편한 자리, 불편한 질문을 피하면서 임금님처럼 처신하는 방식은 비슷한 구도를 갖는다. 먼저 대통령으로 선의의 약속이 행해진다. 약속하는 자리는 불편하지 않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불편함이 따르는데 그때부터 질문도 피하고 자리도 피하는 임금님이 된다. 대통령으로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면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김용균씨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김용균법을 약속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고 김용균이 적용되지 않는 김용균법이 제정된다. 그때부터 질문도 받지 않고 불편한 자리도 찾지 않는 임금님이 되는 식이다.

 

1년 전이면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국민과의 대화에서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자신감을 피력했을 때는 대통령이지만, 오늘 전혀 다른 결과 앞에서는 질문을 받지 않는 임금님이 된다. 당 대표 시절 지자체장의 잘못으로 선거를 다시 하게 될 때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또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지만, 서울특별시장·부산광역시장의 미투 문제와 부닥치면 임금님이 되어 침묵한다. 집권 민주당이 제1야당과 똑같이 위성정당 방식으로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면서 민주주의에 흠집을 냈을 때에도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국민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 현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침묵으로 일관한다. 과문의 탓인지 낙태 합법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후보 시절 지지자들의 나중에!” 연호 속에 피해갔는데 성소수자에 관해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는지 듣지 못했다. 동성결혼권을 처음 합법화한 나라는 2001년의 네덜란드였는데, 미국에서 2015년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성결혼권이 인정된 후 독일도 2017년에 동성결혼권을 합법화했다. 프랑스에서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 법안을 주도했다면,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주도했다. 특히 메르켈 총리는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독일 헌법 조문을 들어 반대표를 던졌는데, 법안 상정에는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 최고지도자들의 모습이 그랬다. 국민 사이에 의견이 분열되어 있는 사회 현안도 피하는 대신 자신의 뜻을 피력하고 토론, 설득하고 추진, 돌파한다. 우리는 동성결혼권은커녕 생활동반자법도 없는 형편인데, ‘시대의 기후를 앞서 읽고 자신 있게 소신을 밝히는 정치지도자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국가최고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불온한 시선을 갖고 있어서겠지만, 상이나 훈장 중에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을 위한 경우도 많다. 전태일 열사에게 훈장을 주는 자리라면, 적어도 그 이름을 딴 ‘‘전태일3에 관심을 표명하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게 대통령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자신의 소관 사항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임금님이 되어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불편함이 싫은 임금님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임금님이 두어번 진노하셨을 뿐이니, 참모들도 장관들도 불편하지 않다. 참모, 장관이 불편하지 않으니 관료들도 불편하지 않고 국회의원들도 불편하지 않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공방, 국회에서 벌어지는 저급한 공방들은 인민의 삶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가려주는 스펙터클이다.

 

4년 전 촛불을 들었을 때를 돌아보자. 오늘 무엇이 바뀌었나? 대통령과 장관들, 국회의원들의 면면 말고? 이젠 재벌개혁이란 말조차 나오지 않게 되었고, 교육개혁은 이미 포기한 듯 관심 바깥의 일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문제는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란 뜻의 이탈리아 조어)가 되는 일방통행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 위에 코비드19가 덮쳤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글이 신민들의 심기를 무척 불편하게 하리라는 것을. 집중포화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착한 임금님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여 대통령의 자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면 그것으로 이 서생은 기쁠 것이다.

홍세화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2020-12-19

 

 

싸가지 없는 진보

“21대 국회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전 세계적인 위기와 격변 속에서 협치는 더욱 절실합니다.”

지난 7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개원축하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런데 왜 협치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인용한 게 아니다. 일단 말로나마 협치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게 중요하다. 흥미로운 건 협치라는 단어 자체가 문재인 정권의 열성 지지자들로부터는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겨레>의 한 기사에 달린 다음 댓글을 보자.

야당과의 협치? 사기꾼과 협치하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4·3항쟁으로 3만명 이상이 죽었고, 광주 민주화운동 등 반성했는가? 이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파리 죽이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들이다.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 검찰, 대기업 등을 동원해 국민들을 속이고 이용해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고 있을 뿐이다.”

 

이 댓글엔 아무런 대표성도 없지만, 평소 댓글을 좀 들여다보는 분이라면 이런 논조의 댓글들이 매우 많다는 데에 흔쾌히 동의할 게다. 지난 1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회통합과 협치를 위해 한국판 목요클럽을 출범시켰을 때 문 정권 지지자들이 지금이 한가하게 협치 놀음 할 때냐며 비난을 퍼부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협치 반대론의 주요 논거는 역사적인 것이다. 야당은 몹쓸 짓을 많이 한 역대 독재정권들의 후예이니 아예 상종할 가치가 없다는 식이다. 이는 일부 강성 여당 의원들이 야당을 공격할 때에 쓰는 주요 메뉴이기도 하다. 심지어 온건한 이미지의 어느 의원마저 지난 9월 추미애 장관 아들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때 과거 군을 사유화하고, 군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그랬던 세력들이 민간인 사찰 공작하고 쿠데타도 일으켰다이제 그게 안 되니 그 세력이 국회에 와서 공작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권모술수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 정권이 협치를 거부하면서 야당의 분노를 극한에 이르게 하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여당이 야당을 완전히 무시하고 독주를 하면 할수록 야당이 내분을 겪으면서 합리적인 온건파가 설 자리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실린 ‘‘중도지향한다며 태극기와 손잡나우왕좌왕 국민의힘’(1211일치 5) 등과 같은 기사들은 그런 이치를 잘 시사해주고 있다.

 

문 정권이 의도적으로 그런 권모술수를 구사하는 건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결과적으로 야권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만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권에선 그걸 내심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공수처법 개정안을 힘으로 밀어붙인 것에 대해 “180석의 힘을 똑똑히 보여줬다는 식으로 자화자찬 일색인 걸 보더라도 그렇다. 애초의 약속과 달리 야당 거부권을 없앤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문 대통령도 야당 시절 우려했던 싸가지 없는 진보가 훨씬 더 악화되었다.

 

인간이 아무리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배은망덕하게 굴어도 되는 건가? 박근혜 탄핵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던지 잊었는가? 당시 60여명의 여당 의원들과 보수 언론의 협력 없이 그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일부 보수세력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사실상 문 정권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문 정권 사람들은 그건 까맣게 잊고 모든 게 다 자기들 잘나서 정권을 잡은 것처럼 싸가지 없는 진보의 길로만 나아가고 있다.

 

혹 진보는 보수로부터 배울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배울 게 전혀 없는 사람들이 보수를 이끌게끔 하는 술수를 부리려는 게 아니라면, 그런 오만방자한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이 경우에도 들어맞는 진리다. 문 정권이 부동산 문제를 비롯해 민생 관련 정책들에서 실패했거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엔 무능한데다 선의만 앞세운 탓이 크다. 이게 바로 협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무언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나의 잘못이라면, 앞서 인용한 문 대통령의 협치에 대한 꿈,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4년 전에 밝힌 다음과 같은 꿈의 실현을 열망하는 것임을 밝혀두고 싶다. “독선과 아집 그리고 배제와 타도는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역사 발전의 장애물입니다. 우리 정치도 이제 적과 동지의 문화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 경쟁의 문화로 바꿔나갑시다.”

강준만 Ι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2020-12-20

 

민주주의 위기와 사법부

나는 오늘 밤, 어떠한 두려움이나 편향됨 없이, 또한 정치적 기관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성향으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하여 주어진 직무를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 1026(이하 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선서식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신임 연방대법관이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배럿 대법관 탄생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인준 과정에서 배럿 대법관이 속한 소수 기독교 종파에 대해 제기된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치적 역풍을 무릅쓰고 임기 말 대법관 지명을 강행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셈 역시 비판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투표에서 질 경우 소송전을 벌일 것이고, 2000년 선거처럼 연방대법원 판결로 대통령을 결정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던 시기였다. 배럿 대법관 임명은 '그때'를 대비하여 대법원의 63 보수 우위를 확실히 다져 놓은 트럼프의 묘수로 여겨졌다. '나 자신의 성향'(my own preferences)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특이한 다짐은 그런저런 우려를 의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211일 미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 후 거의 한 달여 계속된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텍사스를 비롯한 18개 주가 조지아, 위스콘신 등 4개 경합주 선거인단 투표를 무효화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을 각하한 것이다. 간단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 절차는 개별 주법이 정하고 있고, 다른 주는 그에 대해 다툴 자격이 없다는 법리를 재확인한 결정이었다. 광범위한 선거 조작이 있었고, 연방대법원에만 가면 승리할 수 있다고 공언해 온 트럼프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배럿 대법관은 임명 초기 일부 정치적 판결에서 스스로 회피한 바 있지만 11일 대법원의 심리와 결론에는 동참했다. 취임 때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배럿뿐 아니다. 고서치, 캐버너 등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 모두 이견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면서 "지혜도 용기도 없다"고 비난했다. 대법원보다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대법관들을 향한 분노였을 것이다. 트럼프 재임 시절 망가지고 진흙탕 싸움으로 이어질 뻔하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대법원의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 덕에 그나마 회복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집행했다. 설마하던 사상 초유의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무도(無道)하고 어이없고 비겁한 조치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절차적 정의를 숱하게 무시한 점에서 징계는 무도하다. "과거의 윤 총장이라면 이러했을 것이다""소설 쓰시네" 소리를 들을 만한 내용으로 일국의 검찰총장 징계를 결정한 것은 어이가 없다. '판사 사찰'이란 엄청난 불법을 인정하면서 정직 2개월 결론을 내리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수사 대상 운운하는 것은 비겁하다. 징계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기에 더 이상 첨언은 생략한다. 이 자리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은 다름 아니다. 사법부가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행정부와 한 몸이 된 입법부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북한의 짜증 한 번에 표현의 자유, 재산권 등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협하는 법률들이 마구잡이로 통과되고 있다. 통제 장치가 고장난 권력의 독주가 현실화 된 것이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권력층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능해질 게 분명하다. 검경의 권력층 비리 수사를 공수처에 이첩하라는 조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라고 배우고 가르치는 지식이 아무 쓸모없어질 판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법원이다. 내일 윤 총장의 징계 처분 집행정지 요청을 심리할 예정인 서울행정법원에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다. 법관이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떠한 두려움도 편향됨도 없이, 정치적 압력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으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한 처음의 뜻을 되새기기만 하면 된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매일신문 2020-12-20

 

 

·윤 갈등을 보는 법

·윤 갈등을 놓고 백가쟁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지나친 비분강개는 다소 수상하고 문제의 해법도 못 된다.

 

법적인 시각으로는 이렇다. 법무부 장관의 권한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고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과 징계의 관계는 어떠한가, 징계위가 윤석열 총장의 비위로 인정한 사실은 정당한 징계 사유인가 등이 쟁점이다. 사태를 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혼란스럽다. 법무부 장관과 여권이 내세우는 명분은 검찰개혁이고, 심지어 검찰 자체도 말로는 개혁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런데 여권이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외치면, 검찰은 여권의 속내가 검찰 길들이기라고 반박한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부르짖으면, 여권은 그 실질이 개혁에 대한 저항이며 조직이기주의라고 비난한다.

 

직무집행정지처분 사건에 관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문을 읽어 보면, 법원의 입장은 역시 원론적이다. 본안소송이 제기돼 있는 마당에 당장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정도 요컨대 현재 계속 중이거나 장차 제기될 소송에서의 재판 공정성을 고려해야 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사법권이란 그렇다. 원칙론과 중립적 위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지나치다 싶으면 가끔 제동을 걸고, 기본적으로 이른바 정치적 문제에서는 사법자제론으로 현상유지를 택한다. 법원의 결정으로 이 분란이 종결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해다. 법적 절차에서 누가 이기든 정치적 의미에서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아야 하나? 우선 논제가 검찰개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조국, 추미애가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법무부 장관직에 앉지 않았을 경우 이런 분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임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현 정부가 적폐청산에 검찰권을 동원한 것, 윤 총장의 과도한 측근 챙기기인사, 이를 뒤집는 추 장관의 윤석열 라인 학살인사, 윤 총장의 수사 편향성, 추 장관의 기록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와 윤 총장의 지휘권 박탈 시도 등 일련의 과정이 지적되지만, 그것은 싸움의 양태일 뿐 본질은 아니다. 어차피 검찰이 개혁에 스스로 몸을 맡길 만한 조직은 아니다.

 

분란의 실체는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대립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으니 정치적 중립성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그간 검찰권이 행사된 행태를 보면 논점을 벗어나 있다. 문제는 검찰권이 통제받지 않는 권력자가 되어가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검찰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하지 말라는 법에 어긋난 주장이나 헌법에도 검찰청법에도 없는 검찰권 독립의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라.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가지는 성향, 능력, 자세 등이 오늘의 상황에 한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설령 그가 임기 만료나 임기 중 어떤 사유로 퇴진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검찰 조직 전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2, 3의 검찰주의자는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윤 총장이 자리를 유지한다고 해서 기왕에 조직논리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휘두르던 검찰이 어느 쪽으로든 갑작스레 행보를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서 있던 시절, 검찰은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추어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권력의 시녀 노릇만 한 것도 아니었다. 때로 중요한 시점에 검찰은 권한 행사를 조절해 권력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조직 자체의 권력 유지에 만전을 기해 왔다.

 

제도 개혁의 면에서 볼 때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가 과연 앞으로 검찰권 행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공수처의 활동으로 검찰이 꼼짝 못하리라고 본다면 그 역시 성급한 추측이다. 공수처가 검찰에 밀리거나 그 눈치를 보는 상황, 아니면 공수처가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상황, 심지어 공수처가 또 다른 검찰이 되는 상황은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만약 검찰이 공수처의 권한 행사가 직권남용이라면서 공수처를 수사한다면 어쩌겠는가. 장차 공수처의 구성과 운영에서 적정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해 여론의 지지를 잃으면 또 다른 분란이 닥칠 것이다.

 

검찰개혁은 숨이 짧은 이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도 개혁이 서서히 검찰을 변화시키도록 유도하고, 갈등과 잡음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조금 늦었지만 무엇보다도 양식 있는 중도층 시민들의 지지를 회복하고 넓혀 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그런 노력을 다한 후 내후년의 대선 결과가 나오면서 윤곽이라도 잡힐 것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2020.12.21

 

추격의 시대 넘어 전환의 시대, 새 발상이 필요하다

뉴노멀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 오래다. 원래는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상황을 뜻하는 경제 용어였다. 이제 뉴노멀은 팬데믹 위기가 만드는 변화를 칭하는 말로 확장됐다. 위기라는 낱말에는 위협과 기회라는 두 가지 뜻이 숨어 있다.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역량을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주체는 명확한가, 얼마나 기민하게 문제를 진단하고 대응하는가, 얼마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

 

코로나19 대응은 한국이 갖고 있는 역량의 강점과 약점 모두를 보여주는 거울 같다. 정부는 질병관리청과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사스와 메르스 대응에서 빛을 발한 광범위한 검사추적치료 및 격리라는 3T 메커니즘을 수행하자는 방향성을 잡았다. 의료계의 장비업체들은 곧바로 빠른 진단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 ‘우수한 인재들의 프로젝트 몰입을 통한 문제 해결과 생산공정의 최적화라는 한국 제조업의 문제 해결 방식과 유사하게 의료 인력의 헌신적인 투입을 통해 방역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제작에 어려움을 겪자 제조 대기업 엔지니어들은 마스크 생산업체에 찾아가 공정을 재설계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 K방역이 한계에 봉착했다.

 

제조업이 추격의 한계에 부딪히고 고도화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백신 도입 문제도 유사한 딜레마를 드러낸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 경쟁이 전기차로 재편되듯, 전염병 상황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게임 체인저는 백신이다. 물론 백신을 도입했을 때 양산 공정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구축하는 것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백신 도입에서 정부는 전통적인 방식의 백신 개발업체와 주로 계약을 협의하고, mRNA라는 새로운 백신 개발 방식을 채택한 업체와의 협의에는 더뎠다. K방역이 잘 작동될 때 백신 투자에 안일했고, 미지의 다른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을 고려하는 데 의사결정의 병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제를 만들고 정책들을 조합해 입법과 행정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정부·여당이 제기한 쟁점들이 그렇다. 검찰개혁 의제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세력과 세력 간의 익숙한 정쟁이 되어 버렸다. 국민 주거의 질을 높이는 부동산 정책은 투기꾼과의 싸움에서 시작해 임대주택 거주자와 주택 보유자·보유 희망자의 싸움으로 전환돼 버렸다. 달라진 것은 여당이 의회 내부의 비토를 고려하지 않고 다수결로 입법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론조사 지지율에 따라 정책 방향이 선회될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견제장치일 텐데, 뉴노멀 시대에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갈등 조정과 함께 풀어내는 데 한계가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린 뉴딜 같은 장기적 어젠다 대응은 구체화 단계에서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역사적 기여가 있었다. 우수한 인재들을 갈아 넣어가며물량을 최대한 납기에 맞춰 뽑아내기 위해 자동화 기술과 공정관리 기술을 도입한 산업화로부터 유래해 온 추격형 전략은 자원과 발전된 과학기술이 없고 오직 높은 교육열과 헌신만 믿을 수 있는 개발도상국 한국의 나름의 생존 양식이었다. K방역은 수출과 교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전염병의 초창기 대유행을 막기 위한 일리 있는 대응 방식이었다. 빠르게 적폐를 설정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아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것도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독재를 타도한 성공적인 전술 중 하나였다.

 

다만 지금은 그 이상의 것, 혹은 다른 것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을 따름이다. 유사한 것을 빠르고 싸게 만들던 산업화 방식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없고, 백신 없이 방역을 지금까지 하던 대로 성공할 수 없고, 민주화 게임의 방식으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개혁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들 그 동력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기존의 선진국을 추격하던 시기 만들어진 방식들의 시효가 끝나간다. 달리 말해 새로운 방식에 익숙한 새로운 주체들이 필요하고, 새로운 주체들에게 적합한 위치를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방식, 새로운 주체를 호출하면 기존 방식의 파탄을 딛고 넘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새로움이란 것도 기존의 우리 것에서 발생한 새로움인지라 다른 나라의 방식과 같지 않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향한 추격과 적폐 청산의 방식은 파탄났다기보다는 내재적으로 갈무리되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과의 유산 속에서 자라난 다음 세대를 조금만 더 신뢰하고 역할 분담에서 상생을 도모한다면, 그러한 갈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기의 시대는 그러한 종류의 전환이 필요하고, 강제되는 시대다. 새해에는 추격의 시대에 태어나 이미 선진국 시민으로 살고 있는 새로운 주체들이 전환하는 시대 속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0.12.21.

 

정치의 사법화, 어떻게 막아야 할까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2(재판장 홍순욱)의 추가 심문이 24일 진행된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고,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집행한 징계가 타당한지, 타당하지 않은지를 행정법원 부장판사가 두차례 심문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대통령과, “행정부 수반대통령이라는 두가지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검사징계법의 징계권자는 행정부 수반이라고 봐야 한다. 만약 집행정지를 행정법원이 받아들여도 국가 원수로서 대통령의 지위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문재인 대통령이 입을 정치적 타격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를 법원이 뒤집어엎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선출해서 권력을 위임한 최고 권력자의 권위가 실추되기 때문이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별도로, 절대 바람직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를 섣불리 비난할 일은 아니다. 법치국가에서 누구든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는다. 항소심도 봐야 한다. 윤석열 총장은 자신이 지휘한 수사가 정당했다고 좋아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 비리 의혹과 고위 공직자 인사 절차에 검찰이 끼어든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조국은 조국이고, 검찰은 검찰이다. 혼동하면 안 된다.

 

조국 장관 임명이 정당했는지 여부는 당시 언론의 검증으로 판가름날 수 있는 문제였다. 검찰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장관 지명을 철회했을 것이다. 조국·정경심 부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필요하다면 나중에 해야 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세상이 뒤집힌 뒤 검찰은 장관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 뒤 임명된 사람들은 모두 깨끗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는 장관 후보자들만 해도 그렇다. 어떤 후보자는 검찰이 마음먹고 걸면 얼마든지 걸 수 있는 혐의가 수두룩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 청문회에서 드러난 혐의를 가지고 사법 절차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그렇다. ‘법대로는 언제나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검찰은 한발 늦게 움직여야 한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에 대해 검찰이 전면 수사에 착수한 것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체제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균형을 잡아가며 국가공동체를 끌어간다. 그런데 정보화 시대의 부작용인 확증편향이 강해지고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지금까지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전세계적 현상이다.

 

어느 나라든 유력 정치인들이 만나서 합의문을 발표하고 악수하는 장면을 보기 힘들어졌다. 여야가 툭하면 서로를 고발한다. 정치적 사안을 법정으로 끌고 간다. 법원과 검찰이 그 틈새에서 사법권력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의 후유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부의 정죄와 형량은 확실히 좀 지나친 데가 있다. 대통령의 이른바 통치권을 법원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과거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앞으로는 대통령의 직권남용 범죄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대통령 재직 중에는 공소시효가 중지된다. 재직 중의 정치 행위로 퇴임 이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겁하다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의 사법화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정치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 여야가 대화하고 타협하고 합의해야 한다. 정치적 합의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고소·고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정치인이다.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고 합의해야 한다. 여야 관계를 풀어야 정권 내부의 리더십도 회복할 수 있다.

 

잊으면 안 된다. 법률가는 경세가(經世家)가 아니다. 사법국가(司法國家)가 위험한 이유다. 법원과 검찰이 국정을 좌우하면 나라가 망한다./성한용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0-12-23

 

 

사법쿠데타에 의한 브라질 민주주의의 전복

지금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브라질 민주주의 위기의 특징은 검찰과 사법부의 법 기술자들이 법적 수단과 장치를 동원하여, 보이지도 않고 의식할 수 없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야금야금 민주적 제도와 규범을 침식하여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사법쿠데타라는 것이다.

 

브라질의 사법쿠데타를 주도한 법 기술자는 세르지우 모루라는 브라질의 엘리트 연방판사였다. 모루의 사법쿠데타 작전명은 세차작전’(Operation Car Wash)이었다. 2014년 모루는 이탈리아의 정치부패를 소탕한 깨끗한 손’(Mani Pulite)을 모델로 한 세차작전의 수석 판사가 되어 브라질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의 대규모 돈세탁, 거대한 반부패 스캔들, 뇌물과 공금유용 사건 수사를 지휘하여 수많은 선출직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구속시키고 사법처리하여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모루의 세차작전 수사는 방법과 목적에서 깨끗한 손과 달랐다. 모루는 예비구금제도를 이용하여 구속을 유도하고,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켜 용의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을 공격하였다. 이탈리아 마피아 조폭과 부패 정치인들 간의 연결 고리를 깨려는 반부패 수사를 목적으로 하였던 깨끗한 손과는 달리 세차작전은 민주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법쿠데타였다.

 

모루는 세차작전을 통해 브라질 집권당인 노동당(PT)과 정부 인사들을 구속시켰고, 모루와 야당은 2016513일 룰라 대통령의 후임인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를 예산작성 규칙 위반이라는 정책적 실수 혐의로 탄핵시켜, 노동당 정권을 붕괴시켰다. 모루는 사법쿠데타를 멈추지 않고, 차기 민선정부로 표적을 옮겼다. 사법쿠데타 세력인 호드리구 자노트 검찰총장은 호세프를 계승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을 2017626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였으나, 테메르는 하원의장인 호드리구 마이아의 도움으로 탄핵 소추는 면할 뿐 식물 대통령으로 남은 임기를 마치고 차기 대통령에 출마하지도 못했다. 모루의 최종 목표는 세계적 민주화 지도자인 룰라 전 대통령이었다. 모루는 당시 지지율 80%의 룰라에 대한 사법 공격에 들어갔고, 2017년 돈세탁과 간접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시킴으로써, 룰라의 2018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모루의 사법쿠데타로 2018년 과거 군부독재 시절 대령 출신인 우익 포퓰리스트 보우소나루가 룰라가 지명한 후임자 페르난두 아다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모루는 사법쿠데타의 공으로 2018년 법무장관에 임명되었으나, 2020년 보우소나루가 연방경찰청장을 해임한 데 대해 항의하면서 법무장관직을 사임한 뒤,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부패한 우익 포퓰리스트라고 공격하면서, 2022년 보우소나루에 대항해서 대통령 선거에 나설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브라질의 신흥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권력과 법률지식을 동원한 검찰과 언론에 소리 없이 스텔스적인 방식으로 전복되고 있다.

임혁백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2020-12-24

 

대통령 결정 뒤집은 사법부와 안철수의 선거 참여

독주하는 집권세력과 무기력한 야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이 보수야권에게 역동성의 기폭제로 기능할지, 반대로 후보 단일화 과정 등 단기적 이해에 매몰되어 패배의 원인으로 남을지가 선거 승패의 관건이다. 분명한 것은 안철수의 출현은 정당들 내부는 물론 여야 선거경쟁의 프레임을 바꾸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점이다. 이는 여야의 선거경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 대표는 기득권 정치 청산과 정치의 새 지평을 기대했던 유권자에게 희망의 상징이었던 때가 있었으나, 지난 대선과 총선 패배 등으로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정치의 축이 집권연합에 일방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보수야권에게는 역동성을 제고하고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5·18 민주화운동과 전직 대통령 탄핵 사과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지율과 이미지에서 정체를 벗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의 탄핵 반성이 보수세력의 합의의 과정과 역사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은 사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극우 강경세력과의 결별도 담보하지 못한 사과 표명이 유권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고 시기를 놓친 기본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1야당의 무기력은 집권당 독주와 인과관계로 얽혀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정치실종을 증폭시킨다.

 

지금의 정당체제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가 아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집권을 통해 정치엘리트로서 권력을 향유하는 것만이 최선이 된 정치문화에서 사회 갈등을 제도권에 반영하고 최소한의 상식과 보편이 관철되기 위해서 특정 정치세력의 독주는 막아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징계 집행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상황은 집권세력에게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강고한 지지층은 위기의식으로 더욱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진영 이익에 함몰된 집권세력은 권력 재창출을 위해 중도 확장보다는 지지층 결집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지고 국정 최고권력자가 성역화 되는 순간 정치적 퇴행에 직면한다. 남미에서 출현한 위임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결된다. 총선의 압도적 승리를 합의제 민주주의를 망각하고 다수결로 밀어붙여도 된다고 착각하는 현상이 위임민주주의의 전형적 행태다.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다른 나라 일이 아니다.

 

선거정치는 정치권력을 위한 쟁투라는 현실정치에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선거 결과의 불가측 성을 전제함으로써 정치권력이 국민에게 복무하고 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얼개로서의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지금의 집권세력은 강고한 팬덤 정치를 기반으로 과장된 자신감에 기반하고 있다. 자신감과 오만의 경계는 애매하다. 그 결과가 윤석열 집행정치 신청의 법원에 의한 인용이다.

 

선거가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의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선거가 정권심판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민주주의의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의힘 등 보수야권이 승리해야 한다는 명제와는 별개의 얘기다.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장치인 선거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 지금의 일방적인 여권의 우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안 대표의 선거정치 복귀는 여야 모두에게 경계와 자기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야권의 후보결정 과정에 역동성과 유권자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출마선언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야권의 후보단일화 과정이 역동성과 절제로 감동을 빚어낼 수 있느냐가 선거승패를 가를 것이다. 이념적 경계가 모호해진 정당체제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서울시장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은 정권이 유발한 무리한 검찰총장 징계의 법적 쟁송 과정의 진행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청와대와 여당은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레임덕은 의외로 빨리 찾아올 수 있다.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정치적 우위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권의 시도는 무너질 것이다. 이미 사법부는 대통령의 결정이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심대한 흠결이 있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선거공학이 어떠한 형태로 발현되어 나갈지 예단할 수 없으나, 사법부의 행정부 견제와 안철수의 선거참여가 퇴행의 정치를 멈출 수 있을까.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프레시안 2020.12.25.

 

민주노총 바라보는 시민사회 눈빛이 더 힘들다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13

노동계에 진보정권은 믿을 수 있는 친구인가, 아니면 정권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하는 5년마다 바뀌는 권력의 하나일 뿐인가. 우문처럼 보이는 이 질문엔 노동운동이 바라보는 진보정권의 상이 담겨 있다.

 

어차피 정권은 5년 유한하지만 노조는 지속돼야 한다, 그러니까 (정부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진보정권이라도 정권과 가까워지면) 조직의 개량화, 체제내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런 연장선에서 사회적 대화, 사회적 교섭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 저항이란 화두에서 모든 걸 배치해온 오랜 역사적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진보정권이 만든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실용적 접근을 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7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를 추진했던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진보정권을 바라보는 노동 쪽의 시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 사회협약은 김명환 전 위원장의 제안으로 시작됐지만, 합의문까지 작성하고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급 인사는 진보정권도 1~2년 지나면 결국 자본의 요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런 경험이 노동계와 진보정권이 협력할 수 있는 토대를 허물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또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인데, 예외 없이 (집권) 1~2년을 지난 시점에서 보면 노동정책이나 법·제도 개선 문제가 거의 다 후퇴한다. 처음엔 노동친화적 정책과 제도를 내세웠다가도 정권 중반기부터 후퇴하니까, 충돌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에 대한 기대는 아주 높았다. 조합원 설문조사를 하면, 역대 정권 중 가장 노동계와 호흡할 수 있는 정권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1년 정도 지나면서 (노동존중은) 통과의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노조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정치권력은 언제든지 진보에서 보수로 바뀔 수 있다.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운동이 명분과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노동운동뿐 아니라 다른 시민·사회운동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노동조합 운동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순혈주의로 흐르는 순간,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의 차이를 너무 협소하게 여기는 쪽으로 빠지기 쉽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계는 대화와 타협의 길이 막혀 투쟁 외엔 다른 길을 찾기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에선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10개의 요구사항 중 핵심적인 2~3개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른 6~7개를 얻는 건 무의미하다는 순혈주의는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렇게 5년이 흘렀을 때, 보수정권 5년이나 진보정권 5년의 차이는 없게 된다. 결국 진보정권(자유주의 정권)이나 보수정권이나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선 나온다.

 

그러나 진보정권의 책임 못지않게, 노동계 역시 운동의 기반 확대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남신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진보정권 집권 기간엔 노-정 사이에 긴장이 있더라도 서로 협력할 건 협력하면서 파트너로서 일정 부분 진전을 이뤄내는 게 필요하다. 핵심 현안에서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사안까지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거부해서는 노조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말 아픈 부분은 정부와의 관계가 아니다. 진보정권과의 대립은, 비록 얻는 게 없어도 원칙과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여지라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와 타협에 소극적인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이 차지해온 영향력의 감소와 함께, 노조의 고립으로 나타난다. 1995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민주노총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기에 국민연금 개혁이나 사회안전망 확대 같은 정치·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며 시민사회 진영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민주노총은 다른 부문과의 연대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눈길은 예전과 같지 않다. 김명환 전 위원장은 그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면서 보니까, 시민사회 인사들이 정규직 해고를 막기 위해 그러는 거 아니냐는 눈빛을 보내더라. 다른 부문과의 연대나 결합도가 (예전에 비해) 확 떨어졌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한국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로서 민주노총을 바라보고, 진지한 토론과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냐는 싸늘한 시선, 지금 민주노총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여기에 있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586세대와 닮은 지점이 있다. 민주노총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어용노조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자주권과 단결권을 확대하는 민주노조 운동을 통해 성장했다.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 또는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자본의 횡포를 제어하고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 민주화와 궤를 같이했다. 민주화 운동과 민주노조 운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이런 역사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은 지금도 나이 든 민주노총 핵심 조직원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민주노총을 향한 외부의 시선을 산별노조 간부들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대한민국에서 노동에 우호적인 시기가 어디 있었나, 그걸 뚫고 하는 게 노동운동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와 타협하지 않아도 노동운동은 계속 갈 수 있고 또 가야 한다는 믿음, 1987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을 하면서 거둔 성과에 대한 평가가 그런 인식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과거의 성과와 자부심이 지금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 586세대가 비판받는 그 지점과 일맥상통한다.

 

진보정권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이 근거 없는 건 아니다. 출발점은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의 정리해고 시행이었다. 1998년 정리해고 즉각 도입과 노조 정치활동 허용 등을 담은 2·6 사회협약은, 최초의 노사정 대타협이란 평가와 달리 그해 224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 하나로 수많은 노동자가 거리로 내쫓기고, 때론 목숨을 잃었다. 노동조합 운동의 성격도 바뀌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지낸 권재철씨는 아이엠에프 시기의 정리해고 허용은 대량 실업으로 이어졌고 이후 (노동조합에서) 비타협적인 운동노선이 뿌리내린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정리해고는) 생존의 문제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이 (노사정 대타협인) 2·6 사회협약을 승인하고,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과 사회안전망 확대에 매달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이후 진보정권 집권 기간에 (노동 문제에서) 좀 더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민주노총의 구호는 세상을 바꾸자였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는 동안, 정작 스스로를 바꾸는 데엔 소홀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민주노총 출신으로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노동 업무를 기획했던 주진우(현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대표)씨는 박원순 시장이 첫 임기를 시작할 때 서울시 본청 공무원 11천명 중 노동을 전담하는 담당자가 딱 한명이었다. 그게 점점 커져서 지금은 노동권익센터를 비롯해 다양한 조직이 있다. 분명 (진보정부와 보수정부의) 차이는 있다고 말했다. 주씨는 “(진보정권 아래서) 노동계가 전국민 고용보험 등을 매개로 사회적 대화에 적극 참여한다면, 그렇게 미조직 노동자들과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까지 도움을 주고 조직화를 한다면, 나중에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노총은 새 집행부를 선출했다. 새 집행부가 문재인 정부와 대면할 시간은 14개월여밖엔 남지 않았다. 갈등과 대립의 시간이 흐른 뒤 또다시 진보정권도 다를 게 없다고 말하는 건 쉽다. 정말 어려운 건, 노동과 사회 현안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그건 사회적 대화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변화의 물꼬를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 쪽이 먼저 여는 게 진정 세상을 바꾸는 행동은 아닐까.

박찬수 | 선임논설위원 한겨레 2020,12,28

 

윤석열의 법치 vs 윤석열의 정치

잔물결과 큰 물결을 파란(波瀾)이라 한다. 구불구불 꺾인 일엔 곡절(曲折)이 서린다. 현대사에서 이렇게 길고 독한 싸움은 흔치 않았다. 꼬박 1년을 달린 ·윤 대전이 윤석열의 판정승, 추미애의 KO패로 일단락됐다. 파란과 곡절 끝에 직무정지·징계를 놓고 세밑에 충돌한 두 사람이 연승·연패로 갈린 것이다. 그 열흘 사이 대통령은 검찰총장 첫 징계에 송구한 맘, 사법부 판결 후 사과 말씀을 국민에게 전하고 검찰권 행사의 절제를 지시했다. 윤석열의 판정승엔 송사에서 이기고 국정 최고책임자와 척진, 결코 순탄치 않을 앞길이 절충돼 있다.

 

얘기를 들어볼수록, 고검장부터 일선까지 검찰개혁 대의에 끄덕이는 검사는 적지 않다. ‘윤석열 특수사단의 벼락출세와 독주에 부글부글한 검사도 많고, 묵묵히 격무에만 몰입하는 검사도 많다. 힘 빠지던 검찰수장의 영()을 살린 것은 욕심만 앞선 추미애의 무디고 헐거운 징계였다.

 

검찰당이란 말이 생겼다. 복권된 총수는 탄탄대로를 디딜까. 그럴 리 만무해보인다. 윤석열의 관성, 팬덤의 화환, 보수의 손짓, 거여의 공격이 그를 정치에 태울 것이다. 스스로도 취임 한 달 만에 인사청문회를 앞둔 조국 일가를 강제수사하고, 1월 인사 불화 뒤끝에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고, 10월 국감 때 미래 선택지로 열어두며 달려온 정치의 길이다. “당신이라면?” 물었을 때 여러 전직 총장이 시점이나 방식을 달리할 거라고 한 검을 윤석열은 휘둘렀다. 라임검사 술접대가 사실로 드러났어도 그는 약속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밖으로만 닥공하고, “정치하지 않겠다는 단언이 없는 한, 윤석열의 공정한 칼과 꽃길은 검찰에 남아 있지 않다.

 

윤석열은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다투는 3, 보수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2·8월 추·윤 갈등 격화 때 반짝 주목받은 지지율은 12월 직무정지 충돌 후 상승세다. 국민의힘 지지자·보수·TK·60대 이상에서 지지율이 높고, 비호감도 같이 부풀고 있다. 일순간 반문(反文) 세력이 몰린 것이다. 보수정가에선 제3후보로 거명되고, ‘차차기로 눈 돌리는 야권주자도 보인다. 정치할지 모르는 윤석열이 야권에 먼저 일으킨 나비효과다.

 

그도 알 것이다. 정치는 다르다는 것을. ‘강골검사로 살면서, 오르는 지지율을 보면서, 정직된 날 반려견과 산책하면서도 수없이 되뇌었을 말이다. 대권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대선주자는 “999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대선은 빛의 반사체가 아니라 빛을 내는 발광체(發光體)가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직무에 복귀하며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가 지목한 헌법정신은 인간의 존엄성과 3권분립일 수 있고, 법치주의는 기본권 제한과 징계는 법률로 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리라. ‘국가 운용 질서이고 그의 구명줄이 된 법치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통제해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법치 그 이상이다.

 

정치인은 좋아서, 필요해서, 상대가 싫어서 지지한다 윤석열의 지금도 그럴 것이다. 보수야당과 검사들은 필요해서’, 반문세력은 상대가 싫어서쏠릴 수 있다. 정치인 윤석열에겐 검사 윤석열도 넘어야 할 벽이다. 대선에 나선 대쪽판사, ‘인권변호사들이 있었다. 검사는 어둡고 악한 것만 쳐내온 인생이다. 윤석열이 정치한다면, 대한민국 미래를 말하고 같이할 사람도 보여줘야 한다. 그 소통을 못하면 정운찬(전 서울대 총장반기문(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제3후보로 뜨다 끝난 세번째 총장이 될 수 있다.

 

뿔난 여당에서 탄핵을 거론한다. 공수처 수사1호를 윤석열로 하잔 말도 나온다. 검찰개혁을 인치(人治)로 좁히고, 공수처를 화풀이 도구나 늪에 처박는 하지하(下之下)의 발상이다. 대통령의 이른 사과가 쿨하다. 집토끼·산토끼보다 들토끼를 보고, 여도 야도 민생과 큰 개혁을 경쟁해야 한다. 국론만 분열시키는 윤석열 페이지는 넘길 때가 됐다.

 

‘Be Calm and Strong(침착하고 강하게).’ 법무부 감찰위가 열리기 전날 윤석열이 쓴 카카오톡 프로필이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자신보다 큰 청새치와 싸우며 노인이 읊조린 이 말은 암중모색·정중동 할 윤석열의 2021년을 예고하는 복선으로 읽힌다. 선택과 착점이 운명을 가를 해다. 신년사부터 눈이 더 갈 해다. 검사일까 정치일까, 명예일까 승부일까, 꽃길일까 가시밭길일까. ‘윤석열 대 윤석열1년이 시작된다.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20.12.29

 

반문 감정이 추동하는 윤석열 정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정직 2개월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제4부와 제12부가 각각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부실한 징계 추진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 검찰총장이라는 법률 관료에게 부여된 막강한 권력, 과도한 보호 장치, 빈약한 통제 장치를 돌아보게 된다.

 

4부 조미연 부장판사는 총장의 2년 임기 등을 보장한 법 정신에 비춰, 직무배제는 예외적으로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12부 홍순욱 부장판사도 총장의 법적 지위, 임기 등을 고려하면 2개월 정직은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봤다. 법적 보호 장치와 산술적 법 해석 아래서, 총장은 이제 대통령조차 손댈 수 없는 언터처블이다. 두달 정직도 회복 불능의 손해다.

 

1988여소야대국회가 총장 2년 임기제를 담아 검찰청법을 개정했다. 첫 수혜자는 김기춘이었다. 마음대로 총장을 갈아치우지 못하면 권위주의 정권의 검찰 장악도 웬만큼 차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때문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도 있다. 권위주의 정권은 총장 임기제 따위에 구애받지 않은 반면, 독립성을 준 정권은 검찰 폭주라는 난국에 봉착했다.

 

인신을 속박하는 형벌권은 가장 강력한 국가 권력이다. ‘수사와 기소양대 형벌권을 독점한 검찰을, 총장은 제왕적으로 지휘한다. 일단 임명되면 임기 중엔 인사권을 쥔 대통령조차 떨게 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과 장관에겐 설령 총장이 매우 부적절한재판부 분석 문건을 만들거나 감찰 방해 혐의가 일응 소명되었다고해도 정직 2개월을 내릴 재량권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기우뚱한 특권이 야기하는 건 관료권력의 통제받지 않는 일탈 가능성이다. 총장이 수사·기소를 통해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행보를 하더라도, 누구도 쉽게 제어할 수 없다. 독립성의 역설이다.

 

윤 총장은 지난 113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진짜 검찰개혁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틀 뒤 대전지검은 기다렸다는 듯 월성1호기 폐쇄 과정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살권수는 메타포이지, 법률가의 용어가 아니다. 정권, 야당권력, 검찰권력 모두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 제대로 된 법률가적 정의이다. 메타포를 쓰며 정권 수사만이 정의인 양 강변하는 것이야말로 윤 총장이 법률가 아닌 정치인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살권수는 수사를 통한 정치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현직 총장의 수사 정치에 대한 반향은 거세다. 리얼미터 12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23.9%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대구·경북, 보수, 대통령 국정평가 매우 잘못함을 택한 응답층, 60대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강렬한 반문 감정이 이들을 묶는다.

윤 총장은 리얼미터 7월 조사에서 보수 진영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에 오르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당시 지금은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것이 부각되다 보니까 (보수층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서 이분들이 박 대통령을 감옥에 넣은 사람에게 표를 던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봤다.

 

지금은 반문 감정이 윤 총장에 대한 보수층의 악감을 뛰어넘게 하는 단계로 보인다. “친박은 그가 박근혜 정부를 넘어뜨린 원인 제공자라며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윤 총장으로서는 (모든 정권에) 같은 잣대를 들이댄 원칙론자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지난 22일치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그를 반문 연대라는 중간 지대를 통해 야권에 합류시키는 모양새 ()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를 흔들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 잡겠다야말로 윤 총장 지지율을 밀어올리는 저류의 감정일 것이다. 역으로 윤 총장의 살권수는 복수 실현의 기대를 키운다. 관료권력과 적대적 대중의 결합이다.

 

반문 감정이 추동하는 윤 총장의 정치 행보는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함정으로 눈길을 이끈다. 법치 외관이 감싼 강한 관료권력과 취약한 선출권력의 불균형이다. 대통령의 능동적 노력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힘은 국정 성과, 그리고 소통에서 나온다. 부단히 국민 이해를 구하며 관료권력의 질주를 제어할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손원제 논설위원 한겨레 2020.12.29.

 

 

석과불식

코로나19로 시작한 한 해가 코로나 속에 저물고 있다. 아직도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봄과 여름철의 대유행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겨울에는 더욱 센 기세로 번지고 있다.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을 오르내리고 있으며 하루에 10~20명이 숨졌다. 코로나19의 창궐이 다른 사건은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코로나19는 모든 이슈를 잠재우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빚문제다.

 

한국 사회가 빚에 중독된 듯하다. 가계부채는 주요국 가운데 최고다. 지난달 국제금융협회 발표를 보면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이 명목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비율(100.6%)100%를 넘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로존 등 주요 국가들은 60~80% 정도다. 증가속도도 빠르다. 저금리 환경 아래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영끌’ ‘빚투 열풍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 대출도 급증했다. GDP110.1%에 달한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합한 민간신용은 통계작성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가계부채는 1682조원, 기업부채는 2112조원이다. 폭증한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미래에 짐이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건 급증하는 대출이 투자를 위한 게 아니라 버티기 위한 대출이라는 점이다. 이는 투자와 소비를 어렵게 만들면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지금은 저금리라는 특별한 상황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인상이 시작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가계와 기업 부채의 위험은 탄탄한 국가재정으로 보완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는 큰 정부를 말하며 확대재정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에는 명분마저도 생겼다. 확대재정으로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는 올해 43.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4년에는 54.6%에 달하고 여기에 지방정부 부채까지 더하면 GDP 대비 60%에 이른다. 유럽국가들의 국가부채관리 수준까지 급등하는 것이다. 한번 상승탄력을 받는 부채를 단기간에 줄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속으로 달리던 트럭이 브레이크를 아무리 세게 밟아도 일정 거리를 간 뒤에나 멈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을 풀어야 한다. 그래서 자영업자와 같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는 서민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100% 공감한다. 그렇다고 방만하게 써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안갯속 신기루를 향해 10만발의 화살을 쏘아 제갈량에게 헌납했던 조조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초선차전·草船借箭). 신기루를 향해 재정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정부도 국가부채의 급증이 문제라는 알고 있다. 그래서 재정준칙을 도입해 계획적으로 부채관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운만 띄워놓고 시늉만 냈을 뿐이다. 재정준칙의 적용을 2025년 뒤로 미뤄놓은 것이다. 이미 부채가 늘어날 대로 늘어난 뒤에 관리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 일은 다음 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정부를 감시할 국회는 의무를 해태하고 있다. 국회는 정부가 낸 예산안을 심의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512조원)보다 8.5% 늘어난 내년도 예산안(555조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쓸데없는 예산은 줄여야 한다. 돈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오히려 558조원으로 늘렸다. 상당수 지역민원 해소용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사업이다. 여기에는 여당·야당이 한통속이다. 그러면서 국회는 6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이뿐인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사전 검증작업을 벌이는 예비타당성조사도 흔들리고 있다. 예타조사는 낭비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각종 예외 사유가 만들어지면서 찢어진 그물망이 됐다. SOC 사업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곳곳이 철도, 신도시 건설로 공사판이 될 것 같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동안 추진했던 일이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 SOC 사업을 줄이자고 했던 게 지금 정부다.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큰 과일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碩果不食·석과불식). 자기 욕심을 버리고 자손이 복을 받도록 염려하는 뜻에서다. 큰 파도가 지나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일은 막아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곤핍하다 해도 앞날을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박종성 논설위원 경향 2020.12.30

 

대통령님, 명복을 빌어주세요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받는 불이익이 적다면, 기업의 철저한 안전관리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74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최초로 입법발의하며 밝힌 입법취지다.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20명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로 처리조차 되지 않은 억울한 노동자 죽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노회찬 의원안이 통과되었더라면, 몇십명, 몇백명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국회 앞마당에선, 산재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단식농성하며 자식을 죽이고 그 부모까지 거두려는 잔인한 세상을 향해 호소한다. “다시는 우리같이 고통받는 가족이 있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죽지 않아야 한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계속 누군가는 죽을 겁니다.”

 

노동자들은 하루 6명꼴로 죽어 나간다.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부딪혀 죽고, 깔려 죽고, 백혈병으로 죽고, 이름 모를 병으로 죽는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은 하나다. 노동자의 목숨보다 자본의 이윤을 더 중시하는 기업 경영방식 때문이다. 이윤극대화 경영방식을 제재하고 노동자 희생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절실하다는 점에 이견이 없기에 21대 국회 들어 다수의 법안들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1228일 발표된 정부법안은 노회찬 의원안과 강은미 의원안은 물론 민주당 박주민 의원안보다도 훨씬 더 후퇴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은 하급 관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최고경영진이 포괄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는 공장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지시와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작업시간, 휴게시간, 작업량, 작업속도, 운전 기계설비, 작업도구, 작업방식 중 어느 것 하나 노동자의 자율성에 온전히 맡겨진 것은 없다. 노동자가 직무수행 과정에서 혹은 그 결과로 사고를 당하게 된다면 경영책임자의 포괄적 안전·보건조치 의무 불이행을 의심하게 되고, 특히 반복적 사고 발생의 경우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사회과학 질적방법론의 기초를 이루는 일치법과 차이법의 접근법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부법안은 인과관계 추정조항들을 모두 삭제하고 법인 이사들 가운데 안전보건 업무 담당 이사에게만 책임을 묻도록 했다.

 

정부안은 산업재해 사망자의 60%를 점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적용 4년 유예 규정에 더해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적용 2년 유예 조항을 추가했다.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 임대·용역·도급을 행한 원청이 부담하는 안전·보건 조치의 공동의무도 시설, 설비 등을 소유하거나 그 장소를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여 원청업체의 책임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결국 원청 대기업은 하청 중소영세기업의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과 처벌에서 벗어나기 쉽게 되었고 원·하청 고리의 말단 중소영세기업의 중대재해는 막기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법 위반 시 부과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5억원 이상 벌금에서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하한제 대신 상한제 방식으로 부담을 경감했다.

 

이쯤 되면 경제단체 의견을 대폭 수용하는 수준을 넘어 가히 경제단체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다른 이름은 기업살인법이다. 살인자처벌법을 만드는 데 살인자 의견을 경청한 꼴이다. 정부·여당의 귀에는 노동자와 산재사망자 유족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걸까?

 

국내 코로나19 희생자가 800명이 넘었다. 정부 책임자는 매일 아침 전날의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를 발표하며 망자들의 명복을 빈다. 억울한 죽음에 정부 책임자가 명복을 비는 것은 올바른 자세다. 노동자들은 매년 그 몇배씩 죽어나가건만 정부 책임자가 산재사망자 숫자를 발표하며 명복을 빌어주는 것, 본 적 없다. OECD 최고수준의 산재사망률 오명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기업의 이윤 탐욕과 정부의 무책임이 빚어낸 인재(人災)’.

 

인류역사상 가장 잔악했던 이반4세도 삶을 마감하기 전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부 시노빅을 만들어 매일 새벽 몇시간씩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그를 위한 기도문을 적어가며 기도했다. 폭군이건 성군이건 최고통치자의 책임은 무한하다.

 

우리의 대통령은 임기 마감 전 산업재해 사망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 한 분 한 분을 위해 명복을 빌어주면 안 될까, 단 한 번만이라도. 산재사망자들이, 곡기를 끊은 유족들이, 내일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오늘의 노동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런 진정성 아닐까?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가톨릭대 명예교수 경향: 2020.12.30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창비 주간 논평] '촛불혁명'을 화두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

2020년은 정말 길고 힘든 한해였다. 유달리 어수선한 정국에다 전에 없던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쳐 살림살이가 극도로 힘들어진 세월이었다. '세상이 왜 이래?'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세상은 늘 이랬고 여러 면에서 더 나쁘기도 했다. 물론 감염병 대유행이 겹친 점이 새롭지만, 이 경우도 주로 예전에 힘들었던 사람들이 더욱 힘들어진 사례가 대부분이다.

 

'촛불'이라는 화두와 표준

따라서 '세상이 왜 이래?'라는 물음도 그냥 탄식에 그칠 것이 아니다. 지난해 신년 칼럼에서 나는 촛불혁명을 섣불리 정의해서 찬반 어느 쪽을 고집하기보다 이를 화두 삼아 연마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관련 기사 : <창비주간논평> 20191230일 자 '[신년칼럼] 촛불혁명이라는 화두'(<한겨레> 동시 게재)) '이런 세상'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욱 그렇다. 민낯들의 드러남이 촛불혁명의 성과인 동시에, 드디어 민낯을 보여준 세력이 이제는 그야말로 '안면몰수' 하고 나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가장 일찍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 거대 수구정당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야말로 가장 크게 변한 집단이다. 국민을 속여서 집권하는 게 목적이었고 2007년과 2012년 모두 그 목적을 너끈히 달성했던 정당이 촛불 이후 국민을 속이는 능력뿐 아니라 속이려는 성의마저 상실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최근에는 2012년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입안했던 분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돌아와 다시 국민을 속일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분투하고 있지만, 그사이 국민의 의식수준이 엄청 높아진 데다 당내에 솔직한 인사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끼리 손발을 제대로 맞춰갈지도 의문이다. 일시적으로 여론의 지지도가 좀 오르더라도 반촛불세력의 지휘부라기보다 누구든 앞장서 정부를 흔들어대는 인사의 써포터즈 역할에 머무는 형국이다.

 

검찰의 민낯도 온 천하에 드러났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을 아는 이들은 전부터 꾸준히 늘어왔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개혁을 추진한 대통령과 정부도 잘 몰랐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윤석열 총장이 이끈 대대적 반항사태를 지켜보면서 철저한 검찰개혁이 수구정당 제압에 못지않은 시대적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또한 검찰처럼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 뿐이지 국민을 죽이고 살리는 최종적 권한을 가진 법관들의 정체도 드디어 국민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 동네야말로 설마가 사람 죽이는 곳인데, 사실 '설마'는 배부른 계층들 얘기이고 돈 없고 힘없는 백성들은 일찍부터 그곳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본고장임을 실감해왔다. 아무튼 학습의 소중한 기회를 얻었는데, 이럴 때일수록 관성적인 개탄이나 옥석을 안 가리는 과격한 공격이 아니라 촛불을 표준삼은 냉정한 형세판단과 착실한 제도개혁으로 대응할 필요가 절실하다.

 

아직 덜 드러난 민낯들

경제관료들, 특히 예산권을 틀어쥔 관료들의 실상도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양호한 축인데도 코로나사태로 거의 사경에 처한 사람들 도와주자고 할 때마다 '재정건전성'을 들고나와서 한푼이라도 덜 주려고 한다. K-방역이 진단과 추적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내면서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도, 정부관료가 서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속마음으로 재난극복에 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신을 사기 때문은 아닐까.

 

이밖에도 우리 사회의 숨겨졌던 진실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언론계가 정직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대중이 직접 참여한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이 실상을 보도하지 않음을 체득하는 사람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계의 문제가 일부 기자들의 타락, 또는 특정 언론사들의 진실왜곡에 국한되지 않는 현상임을 더 깊이 연마할 시점에 왔다. 이제는 저들의 왜곡보도가 단순한 사실왜곡의 수준을 넘어 촛불정부의 실패를 위한 면밀한 작전의 일환이며 그런 점에서 제1야당보다 대형 수구언론이 반촛불세력의 전략본부로 기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소위 진보신문이 이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는 것이 단지 물적 자원의 부족과 발행부수의 열세 탓이 아니라, 손쉬운 양비론에 안주하면서 포탈의 클릭 수에 누구 못지않게 집착하는 자세에 기인하기에 이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 배경에는 정권보다 금권이 우위에 선 지 오래된 우리 사회에서 언론인 집단 자체의 체질에 일어난 변화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미진한 공부거리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으나 여당에 대한 지적을 빼놓을 수 없다. 민주당이 수구야당과 동일한 수준의 적폐세력은 아니지만 줄곧 우리 사회 기득권구조의 일부로 기능해왔음은 엄연한 사실이며, 의석 180석을 동원할 수 있는 지금도 툭하면 말을 뒤집고 개혁에 발을 끄는 모습은 결코 대충 넘길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자신은 여전히 촛불정부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믿기에 나는 계속 지지를 보내는 축이지만, 촛불혁명의 개념조차 희박한 고위관료와 여권 정치인들을 제대로 통어하지 못하는 책임마저 불문에 부칠 수는 없다. 이는 정치적 개인기의 문제라기보다 촛불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선한 기운을 북돋우는 노력의 문제인 것이다.

 

근대세계와 '중근' 고비

이런저런 민낯들을 보면서 우리가 반드시 할 일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추론해도 세상이 온통 '이런데' 자신만 온전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각자가 스스로 해온 몫이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을 '기후악당' 국가로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기여한 바 있을 것이고, 노동을 멸시하고 생명을 경시하며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무심코 살아왔다면 그것도 반성하고 참회할 대목이다. 나는 분단체제가 괴물이라면 그 속에서 살아온 우리 내부에도 괴물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라는 주장을 펴왔는데, 분단체제를 포괄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괴물스러움 또한 팬데믹시대를 맞아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교화를 받을 능력과 소질을 근기(根機)라 하고 상하 등급으로 나누곤 한다. 물론 하근기라도 수행을 통해 중상근으로 진급할 수 있는데 가장 위태로운 것이 오히려 중근(中根)의 고비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아주 몽매한 상태를 벗어나 분별력이 늘고 더러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자기 기준으로 매사를 재단함으로써 상근으로 못 가고 심지어 하근보다 못한 지경에 떨어지기 일쑤라는 것이다.

 

주변에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언행을 일삼으며 혼자 똑똑한 척하는 '중근병자'들을 식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반면에 자신이 동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부류를 인지하기는 한결 어렵다. 무엇보다 스스로 중근 고개에 걸려 있다는 생각은 중근기일수록 하지 못한다. 이런 때야말로 스승이나 목자, 도반의 일깨움이 필요한데, 우리 시대에는 어떤 스승의 존재보다 촛불혁명의 거대한 흐름을 마음에 모시고 정진하는 것이 중근 고비 넘기의 관건이다.

 

굳이 불교 용어를 빌려온 것은 근대세계체제야말로 중근병자를 대량생산하도록 설계된 체제라는 생각에서다. 교육의 확대와 지식산업의 발달, 특히 디지털정보기술의 극대화로 하근에 멈춘 인구가 대폭 줄어든 대신, 중근 고개를 넘어 상근기로 진급하는 공부는 공식적인 교육과정이나 교육이념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 형국이다. 아니, 자기 몸을 닦아 인간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공부, 스스로 부처가 되어 중생을 건지는 공부, 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공부는 진지하게 하면 할수록 손해 보게 되어 있는 세상이다.

 

촛불혁명을 화두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세상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엄청난 도전이다. 2020년의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이런 작업이 멈추지 않았다는 믿음을 갖는 것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처해온 공동체의 분투, 사회운동, 시민정치, 학문, 예술, 기술 등의 수많은 현장에서 촛불을 화두로 삼은 창의적 노력들이 계속 벌어져왔음을 알기 때문이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프레시안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