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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헌 2013. 4. 20. 16:49

     

     

     

    4.19혁명 제53주년을 맞아 4.19묘지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이곳을 방문하지만, 올때마다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워지고 또 한편으론 많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워 아스라히 사라져간 그 분들의 영전에

    과연 나는, 우리는 고개를 떳떳히 들 수 있나 하는 물음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더더욱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가슴 한켠을 채웁니다.

    언론 장악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심지어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당인 출신이 방송통신위원장직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가 떠오르는건 왜일까요..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장악을 통해 자국의 썩어가고 곪아들어가는 환부를 철저히 감추고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내용들로 방송을 채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희망을 가집니다. 어떤 탄압과 강압에도 민주주의는 발전해왔으며, 권력에 절대 굽히지 않는 민중의 힘이 우리를 앞으로 전진하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저또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힘껏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되새기며,

    4.19혁명 당시 불과 15살밖에 되지 않았던 진영숙 열사의 유서와 제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옮깁니다.

     

     

     

    -진영숙 열사 유서-

    "어머님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김수영 시인,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

    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은 곳이 없는

    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

    동회란 동회에서 시청이란 시청에서

    회사란 회사에서

    ✕✕단체에서 ◯◯협회에서

    하물며 술집에서 음식점에서 양화점에서

    무역상에서 개솔린 스탠드에서

    책방에서 학교에서 전국의 국민학교란 국민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놈의 사진이었으니

    아이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

     

    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

    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유중사도

    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무서워서 편리해서 살기 위해서

    빨갱이라고 할까보아 무서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

    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신주처럼 모셔놓던 의젓한 얼굴의

    그놈의 속을 창자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

    타성같이 습관같이

    그저그저 쉬쉬하면서

    할말도 다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

    흉악한 그놈의 사진을

    오늘은 서슴지않고 떼어놓아야 할 날이다

     

    밑씻개로 하자

    이번에는 우리가 의젓하게 그놈의 사진을 밑씻개로 하자

    허허 웃으면서 밑씻개로 하자

    껄껄 웃으면서 구공탄을 피우는 불쏘시개라도 하자

    강아지장에 깐 짚이 젖었거든

    그놈의 사진을 깔아주기로 하자......

     

    민주주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자유는 이제는 상식으로 되었다

    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아무도 붙들어갈 사람은 없다

    군대란 군대에서 장학사의 집에서

    관공리의 집에서 경찰의 집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군대의 위병실에서 사단장실에서 정훈감실에서

    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교육가들의 사무실에서

    4.19후의 경찰서에서 파출소에서

    협잡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

    관공리의 집에서

    역이란 역에서

    아아 그놈의 사진을 떼어 없애야 한다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영숙아 기환아 천석아 준이야 만용아

    프레지던트 김 미스 리

    정순이 박군 정식이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다소곳이

    조용하게

    미소를 뛰우면서

    극악무도한 소름이 더덕더덕 끼치는

    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있기에 절망적인 현실을 그나마 버텨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