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태양/*파란태양*

태이자 이재운 2015. 7. 2. 00:25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국어, 사회 등 교과서에 표기된 한자어마다 토를 달도록 하겠다고 나선 모양이다. 한자한문에 한글 토를 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한글로 적은 한자어)에 한자 토를 달겠다는 것이다.


일부 보수 인사들 중에 한자를 꼭 가르쳐야만 하고, 한자어의 경우 꼭 한자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박근혜 정권의 지지세력인 이들이 마침내 한글전용정책을 버리고 한자교육에 나서자고 뜻을 모은 모양이다.


허핑턴포스트에 이를 반대하는 글이 한 편 올라왔는데 타당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듯하여 내가 굳이 글을 쓴다.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이 철회되어야 하는 이유>


이 블로그에 쓴 내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한자어를 많이 안쓰는 편이다. 우리말로 고쳐쓸 수 있는 한자어는 반드시 고쳐쓰고, 나중에라도 글을 다음을 때 굳이 쓸 필요가 없는 한자어가 발견되면 꼭 우리말로 고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이 부족해진 것은, 오로지 복잡한 언어생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우리말 이해력이 너무 떨어졌다. 1980년대나 1990년대에 발표된 역사소설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20년 전에 쓴 소설을 재판(재발행)할 때마다 다시 읽어보는데, 굳이 안써도 되는 한자어가 발견되어 그때마다 일일이 다듬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내가 쓰는 정도의 한자어는 굳이 한자 표기를 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는 수준이다.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발음만 갖고 뜻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이라고 적으면 되지 굳이 科學이라고 한자 토를 달 이유가 없다. 이것은 Science를 사이언스라고 써도 뜻이 통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 두뇌는 이 정도 언어체계 정도는 거뜬히 처리할 수 있다.


최근에 모 시인이 쓴 화가의 평전을 읽었는데, 솔직히 말해 더럭 겁이 났다. 독자들이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글이 난해하다. 한자로 적든 안적든 오래도록 한문을 익혀온 나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한자한문을 안배운 40세 이하 젊은이들이 이런 책을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독서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원인 중에 실제로 이해를 못해서 못읽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 평전에서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부분을 가려본다. 물론 한자한문을 배운 세대는 읽는 데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한글로 적은 한자어라도 그 한자가 뭔지 연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40세 이하라면 어려울 것이다.


- 그런 농촌이면서도 고도이자 개화 도회지인 평양에 종속됨으로써 그곳의 농민들은 신속하게 개화에 침윤된 흔적이 있다.

- ... 그의 타고난 목청으로 염불 송주를 유자 현묘하게 읊어댄다.

- ... 그의 초점이 닿아서 몸 전체를 부동존으로 정체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천장만 응시하다가 그대로 명목함으로써

- ...그런 소리와 점점 격절되고 있었다.

- 부산은 모든 것이 가정형으로 이뤄진 항구였다.

- 그는 현실을 지식인의 우수나 의식의 굴절로 만나지 않고 현실의식이나 역사 감각을 무의식의 초대형으로 방기한 것이다.


이 평전은 2004년에 첫 발간된 것인데도 문장이 이러하다. 아마도 젊은이들은 조선시대 가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우리말과 한자어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를 강조한다.

나는 한글, 한자 논쟁에 앞서 한자어를 줄여쓰는 노력부터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어려운 한자어를 단지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서 쉬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 독해 관점에서 보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노력은 안하고 오직 <한글로만 쓰기>를 주장하거나 <한자 섞어쓰기>만 주장해서는 안된다.


1. 한자어를 줄여 쓰고, 웬만하면 우리말로 고쳐쓰자.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자어를 그냥 쓰자는 주장만 하지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2. 어려운 한자어는 한자로 토를 달거나(병기한다는 말보다는 토를 단다는 게 훨씬 이해가 쉽다.) 괄호 안에 한자를 써줘야 한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한자어라도 한글로만 적는다. 이 또한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합의해야만 바뀔 수 있다. 정 한자 토를 달기 싫다면 쉬운 우리말로 고쳐써줘야 한다. 희토류, 이안류 등이 그런 말이다. 주로 공무원들이 이따위 말을 즐겨쓴다. 공무원들은 한자어로 말을 만들지 못하면 아예 영어를 한글로 써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확포장개보수란 우스운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우리말과 한자어에 관해 쓴 글들>


육이오전쟁 놓고 장난하는 참 나쁜 언론들

나이를 가리키는 한자어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70%나 된다고?


한자어 털고, 일본어 잔재 씻으려면 앞으로도 백년 더 걸릴 듯


글쓰기가 힘들다


허핑턴포스트 / 글 잘 쓰는 비법 9가지

이재운의 소설 문장은 너무 쉽다고 불평하는 분들께



기자들의 한국어 실력 / 동아일보 "미 기자 처형당해"


2014 수능 생명과학 8번 문제 / 교수가 고등학생들을 지식폭행했다


한글날에 찬물 끼얹는 박근혜 대통령의 페이스북


등극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기자할 수 있구나


양말을 한자로 안써서 불편하다는 성균관대 이명학 교수에게


한자 교육 안해 나라 망해간다는 분들에 대한 내 입장


녹색과 푸른색은 서로 다른 색깔이 아니다

   

간질이 간에 걸리는 병인가?


우리말 망치는 공무원들


희토류라니, 기자나 국어학자나 배알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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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글을 지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