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에 러시아에도 '통계 논쟁' , 현실을 제대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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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따 러시아

2019. 4. 17.

최근 몇년간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국제 유가 하락에 서방의 경제제재까지, 서민경제는 경기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연금수령 나이를 높이고, 부가가치세까지 올렸으니, 일반 서민들은 '죽겠다'는 소리가 나올만하다.
다행히 메르세데츠 벤츠 자동차 등 외국인 투자가 일부 다시 살아나면서 푸틴 대통령 등 국정운영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벤츠 자동차 현지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

벤츠자동차 준공식에 간 푸틴 대통령 /사진출처 크렘린

그는 준공식에서 "내 주변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품질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는 벤츠 자동차를 운전했거나 여전히 운전하고 있다"며 "벤츠는 러시아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인기를 끌 것"이라고 공장 준공을 축하했다. 누가봐도 벤츠의 러시아 투자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립서비스다.

그러나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이런 기사를 날렸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3일 모스크바 인근의 벤츠 자동차 공장 준공식에서 '러시아의 소비력'을 과시했지만, 러시아인 대부분은 벤츠는 커녕 매년 두 켤레의 신발을 살 여유도 없다"고.
권위있는 신문인 만큼 가짜뉴스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서울 근처에 벤츠자동차 공장이 세워졌다고 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준공식에서 비슷한 축사를 했다면, '헬!조선'운운하는 외신 보도가 나왔을까?

한국과 러시아 여건이나 돌아가는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정부의 공식 통계(통계청 자료)를 갖고 언론과 크렘린(정부)이 다투는 현상도 벌어졌고, 통계를 다루는 통계청장도 이유없이 경질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통계청은 지난 3월 가계동향 조사를 통해 러시아인 35%가 1년에 한 켤레의 신발을 여분으로 더 살 여유가 없으며,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가구가 전체의 13%라고 밝혔다. 또 국민의 절반 이상(53%)이 집 수리나 병원치료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돈이 부족하고, 1년에 1주일의 휴가를 낼 여유도 없다고 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

2년에 한 번 발표되는 이 조사는 지난해 9월 러시아 6만 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결과를 현지 언론들도 놓치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에게 "많은 국민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통계청 발표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고 요청했다.

외신에 따르면 페스코프 대변인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신발을 한 켤레 더 살 수 없는 국민이 3분의 1을 넘는다고요? 대체 그 숫자가 어디서 나온 건지 통계청이 설명 좀 해주면 좋겠군요"라고 답변했다.
크렘린이 이 통계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경제적 어려움에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지지율이 떨어지고 반정부 시위가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크렘린은 또 정부에 불리한 통계가 연거푸 나오자 작년 12월 통계청장을 교체했지만, 통계 자료는 바꿀 수 없다.

지난 2월에도 러시아 통계청은 국민들의 실질 가처분소득(세금 등을 낸 뒤 실제로 손에 쥐는 소득)이 작년까지 5년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인의 평균 월급(지난 1월 기준)은 4만1220루블(약 72만원)에 그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가가 회복되고 원자재 시장이 다시 활황기를 맞았지만, 러시아 경제는 지난 5년간에 걸친 서방 제재 등으로 아직 유동적"이라며 "더 큰 경제적 위협이 러시아의 재정지출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돈을 풀지 않으면 서민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러시아의 빈부격차도 커졌다.

러시아 국영 대외경제개발은행(VEB)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최상위 3%가 전제 금융 자산의 89%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 1분기에만 러시아 부자 23명의 재산이 무려 223억달러 늘어났다. 이에 반해 서민들은 연금 수령 나이를 5년 올리고, 부가가치세를 20%로 상향조정하면서 더 어려움에 처했다. 전국에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이 통계청 자료에 불만을 갖는 것은 러시아 고위 공직자들이 서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 외신은 "크렘린이 공개적으로 통계 신뢰도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러시아에서 '통계 조작'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어디선가 많이 접했던 것 같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