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영화를 찍고 돌아온 '브조프' 제작팀이 털어놓은 우주 생활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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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2.

"촬영시 립스틱과 마스카라가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접착제로 붙여야 했는데, 지금도 내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자꾸만 손으로 꼭 쥐게 되요."

12일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상업 영화 '브조프'(도전)를 찍고 지구로 귀환한 주연 여배우 율리야 페레실드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브조프' 제작팀은 무중력 상태에서 심장 수술을 하는 여성 외과 의사의 도전에 관한 장면들을 ISS에서 촬영하고 돌아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브조프' 제작팀이 19일 재활훈련을 하는 유리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주 생활및 영화 촬영의 뒷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특히 주연 여배우 페레실드는 여성으로서 한국의 첫 우주인이 된 이소연 박사를 떠올릴 정도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러시아에서는 우주비행을 한 한 첫번째 민간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비행사 노비츠키, 우주 영화촬영에 따른 우주 경쟁 촉발 가능성을 배제/얀덱스 캡처


ISS에서 헤엄치듯 이동하는 페레실드/로스코스모스 동영상 캡처

 


클림 쉬펜코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ISS에서 촬영하는 모든 과정이 그야말로 하나의 큰 '도전'이었다”며 "촬영 스탭들과 함께 제작하는 지상과 우주에서는 나 혼자였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페레실드도 혼자서 메이컵을 하고, 소품을 챙기는 등 촬영 준비를 해야 했다"며 "그녀가 소품과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또 "제작팀을 ISS로 데려간 우주비행사 안톤 쉬카플레로프에게서도 연기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했다.

쉬펜코 감독은 "앞으로 관객들이 평가하겠지만, (이번 촬영에) 150점을 준다고 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영화 '리조프'는 2022년 말까지 제작을 마치고, 개봉을 결정할 예정이다.

제작팀을 데리고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 올레그 노비츠키는 기자회견에서 "처음 영화 제작 이야기를 듣고 비판적이었다"며 "제작팀이 ISS 생활에 잘 적응하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임무 외에 다른 일(영화 촬영)에 참여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만족해 했다. 이번 영화 촬영으로 '우주 경쟁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지구로 귀환한 여배우 페레실드, 딸들과 찍은 셀카 공유/얀덱스 캡처

 


주연 여배우 페레실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러시아 언론에 의해 '타고난 배우'라는 평을 들었다. 귀환용 캡슐을 타고 카자흐스탄 초원지대에 착륙한 뒤 현기증을 느낄 만도 했지만, 엷은 미소를 띠고 카메라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진짜 훌륭한 지휘관들을 만났"며 우주 비행사들을 치켜주었고, 몸 상태에 대해서도 "참을만 하다"고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녀를 지구로 데려온 우주비행사 노비츠키는 ISS에서 191일을 지내고 내려온 베테랑 우주인이다.

그녀는 ISS에서 남자들 사이에 끼여 생활하면서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연기했다. 스스로 한 메이크업도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우주공간에 함께 모인 러시아와 미국 등 ISS체류 우주인들/사진출처:로스코스모스


지구로 귀환한 여배우 페레실드. 입가에 연한 웃음을 띠고 있다/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페레실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외국(미국) 우주비행사들과의 저녁 만찬인 것 같다. 페레실드는 "ISS에는 매주 한번씩 서로 저녁 식사를 초대하는데, 그 자리가 그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며 "미국측 생활 공간으로 초청을 받았을 때 통조림을 갖고 가 공중에 띄워놓고 서로 돌아가며 숟가락질을 했다"고 소개했다. 미국측이 제공한 디저트의 달콤한 맛을 상기하면서 "그들과 함께 떠들고 재미있게 지내다 보니, ISS는 하나의 우주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추억은 우주 생일잔치. 노비츠키 우주비행사의 50세 생일날인 지난 12일 ISS에선 생일 파티가 열렸다. '브조프' 제작팀은 그를 위해 나름대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는데, 외국 비행사들은 아예 ISS를 풍선으로 장식하고, 축하 편지를 써 놀랐다고 했다.

ISS에서 꿈꾸는 것은 지상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은 생활 패턴이다. 페레실드는 "지상에서처럼 차나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고 말했고, 요리를 좋아하는 쉬펜코 감독은 "지구로 귀환하면 바로 해먹을 요리를 꿈꿨다"고 털어놨다. 쉬펜코 감독은 귀환후 가장 먼저 자작나무 수액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아내에게 '벨로루시 베이컨' 요리를 부탁할 것이라고 했다.


12일간 동고동락한 ISS 우주인들과 포옹으로 작별인사하는 페레실드/현지 언론 캡처


지구로 돌아와 두 딸과 함께 지긋이 눈을 감고 셀카를 찍는 행복한 한때/사진출처:인스타그램

 


지구로 떠나는 심정을 어땠을까? 페레실드는 솔직히 돌아오기 싫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주의) 인상은 너무 강렬하다. 안팎에서 뭔가 번쩍인다. (당신들도)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내일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제 이 모든 것을 볼 시간이 없구나 하는 절망감(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서 가장 큰 발견은 역시 사람이었다. 간단치 않는, 함께 한 남자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우주 생활은 첫날부터 편안했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ISS에 도착했을 때 의사의 조언이 생각났다. 뭔가 필요한데, 그게 잠이라면 아무 생각말고 그냥 자라고 충고해 줬다. 너무 피곤해 배정된 개인 캡슐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잠은 4시간이면 충분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무리하면 잠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녀는 "외국(미국) 우주인들이 우리(러시아) 공간으로 올 때마다 우리는 뭔가를 촬영하고 있었다"며 "처음에는 그들이 우리(촬영)를 염탐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미국 우주인들과 함께 러시아 영화를 감상하는 기회도 가졌다. 쉬펜코 감독은 ISS를 떠나기 전, 2017년에 개봉한 자신의 영화 '살류트-7'를 상영했다. 영어 자막이 붙어 있어 미국 우주인들에게는 불편이 없었다. 미국 우주인들도 신이 나서 프로젝트와 스크린을 설치, 조정했다고 한다.

영화 '살류트-7은 국내에서 '스테이션 7'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됐다. 1980년대 동서냉전 시절, 소련의 우주정거장 '살류트-7'이 고장나 궤도를 이탈하자, 이를 되살리기 위해 나섰던 우주인들의 도전 과정을 담은 영화다. ISS에 머무르고 있는 우주인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는 줄거리다.


쉬펜코 감독은 기자회견 말미에 "우리는 이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는 ISS에서 성능 좋은 카메라로 지구의 모습을 촬영했다. 영화를 보면 누군가는 거꾸로 매달려 있고, 또 앞으로 누군가가 거기에 있더라도 더이상 이상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하나의 장면을 서너개 각도에서 촬영하는, 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ISS에서는) 가능하다는 게 영화적인 발견이었다"며 "이제 촬영 감독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이 지구상에는 없으며, 우주도 이제 실험의 대상이 됐다. 이번 실험이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두 사람은 앞으로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로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현지 언론은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