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 *

성경의 예언과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와 분별, 한반도 정세 관련 자료 총모음!

“일어나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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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추수 '휴거'   

2017. 9. 26.

오늘 본문 말씀을 여러번 읽으면서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늘보좌를 떠나
이 땅에 다시 오고 계시는
주님의 발자국 소리를...

이 발자국 소리는,
세상에 취하여 죄악 속에 파묻혀 사는 
불신자들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이 발자국 소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여
뜨뜻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에게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며...
못견디게 사모하며 그리워하는
주님의 신부들에게만 들리는 소리입니다.

다시 오실 신랑의 발자국 소리에
민감하게 귀기울이며 
기름과 등불을 양 손에 들고 
신랑을 마중하러 나가봅니다.


(신부)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아 2:8)

지금까지 신부는 늘 신랑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멀리 있었던 신랑이 신부에게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지금껏 신부와 함께 있었던 신랑은 성령하나님이셨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극진한 사랑과 은혜의 품 안에서 주님 주시는 영혼의 단잠을 자고 있었던 신부를 깨우는...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이 소리는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여기서 '밤중'은 영혼의 깊은 밤입니다. 이 밤에 주님의 신부들은 신랑의 사랑에 푹 빠져 있는 <사랑의 잠>을 자고 있었고, 불신자들과 깨어있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취하고 찌들어 아무런 감각도 없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생각하는 <사망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신부를 깨우는 이 목소리는 누가 외치는 소리일까? 여러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아가서의 문맥상으로 보면 신랑이 깨우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아 2:7)에서 내 사랑(신랑)이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라고 고백하는 신부의 말 속에서 신부를 깨우는 주체는 신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취하여 잠든 신부를 신랑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이 말은 성령하나님이 신부를 흔들어 깨우시는 소리입니다.

"맞으러 나오라!"
이 말은 성자하나님이 신부를 멀리서 마중나오라고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맞으러 나가라'가 아니라 '맞으러 나오라'이기 때문에)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아 2:8)

이 말씀은 재림의 긴박성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주님의 신부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은 긴박하고 절박했습니다. 절대로 더디 온다고 생각되어지지 않고, 당장 오늘이라도 오실 것처럼 신부들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사도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들 시대에 반드시 예수님이 오신다고 믿으며 살았고, 로마황제의 대박해시대 성도들도 다시오실 주님을 믿는 마라나타신앙으로 기꺼이 순교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중세시대에도 흰 옷 입고 더럽혀지지 않은 신부들은 주님 오실 그날을 고대하며 신랑의 발자국소리에 귀기울였고, 종교개혁 이후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 또한 마라나타의 복음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부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재림은
멈출 수 없는 심장박동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레임> 그 자체였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아 2:9)

신랑이 와서 문밖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신랑을 노루와 어린 사슴에 비유하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노루와 사슴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참으로 온순하고 사랑스러우며 낭만적인 동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신부에게 있어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갑자기 문을 쾅 열고 들이닥쳐 신부를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들거나 몰아가는 맹수같은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과 동행하는 신부의 집 벽 뒤에 가만히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고 창살 틈으로 엿보면서 신부단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매너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신부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신랑의 품 안에서 단잠을 자다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신부의 모습으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흐뭇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창가에서 엿보며 서성이는 노루와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0)

신부를 향한 신랑의 시선은 언제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부를 향하여 부르는 신랑의 한결같은 호칭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사랑의 단잠을 자다가 깨어난 신부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속삭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를 말해 주지 않고 그저 '함께 가자'고 합니다. 신부와 신랑은 그런 관계입니다. 신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저 따라가는 존재가 신부입니다. 신랑을 믿고 신뢰하기에...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를 말해 주지 않아도 그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따라가는 것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 2:11-12)

노아의 방주가 오버랩이 됩니다. 방주 안에 수개월을 지내는 동안 계절이 바뀌고 비가 그쳤습니다. 물이 감하여 방주 바깥으로 나갈 때쯤 되어서 비둘기가 감람잎을 물고 왔을 때에 드디어 방주 안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이 노아의 가족들에게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 때의 예표입니다.
신부가 들림을 받아 공중에서 신랑과의 황홀한 허니문의 시간을 갖는 동안, 땅에서는 혹독한 겨울, 비같이 내리는 일곱인,나팔,대접 재앙이 쏟아질 것입니다. 꽃이 피지 않는 사랑이 식어진 땅, 노래를 잃어버린 죽음의 땅에 새로이 꽃(사랑)이 피고 비둘기(신부들)의 노래소리가 다시 들려 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과 영원한 새 예루살렘에서 울려퍼질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가 온 땅에 충만하게 들려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계 15: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3)

신부가 망설이고 있습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는 신랑의 속삭임에 지금껏 성령하나님과 누렸던 친밀한 동행을 떠나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겪는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의 감정입니다. 지금껏 신부가 누렸던 삶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완전한 실체로서 신부의 눈 앞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는 순간인 것입니다. 떨고 있는 신부에게 신랑이 참으로 자상하게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무화과나무에 푸른 열매가 익었다고... 포도나무에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한다고 말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32-33)

무화과나무에 푸른 열매가 익었다는 건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무화과가 푸른 열매가 되는 건 여름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을부터 새로운 한해가 시작됩니다. 그러기에 여름이 되었다는 건 끝이 임박했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포도나무에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한다는 것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포도나무되신 예수그리스도께 접붙임이 되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음으로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온 땅에 진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전도종족이 거의 없는 세계복음화의 완성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제 신랑의 손을 잡고 일어나 신랑과 함께 미련없이 이 땅을 떠날 때가 임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에 하던 일 다 내려놓고 미련없이 신랑의 손을 맞잡고 올라갈 수 있는 자는 참으로 복된 신부입니다. 더이상 이 땅에 남아있을 이유가 조금도 없는 주님의 참신부로서 언제나 신랑을 기다리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꽉 차있는 그 신부!
땅의 것을 조금도 움켜쥐지 않고 오로지 하늘의 것으로만 가득한 그 신부!
죄악덩어리인 육신을 입고 있지만, 성령덩어리인 영혼으로 충만한 그 신부!

지금도 나의 왕, 나의 신랑이 문밖에 서서 다정하게 부르고 계십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곰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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