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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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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0. 11. 30.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고린도전서 2장을 보면

육에 속한 사람에 대해 말씀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그런데 보통 이 말씀을 볼 때

육에 속한 사람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는 육에 속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믿지않는 불신자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입술로 고백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해당이 됩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영에 속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여러분에게 할 수 없어서,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1_표준새번역)

 

여기서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지만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지칭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은..

 

마태복음 18장 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 아이처럼 자기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또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말씀처럼

믿은지 얼마 안된 초신자를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어린 아이 같은 사람들은 누구이고..

이들이 왜 육에 속한 사람들인지에 대해..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전서 3:3)

 

그들이 육에 속한 사람들인 이유에 대해

“시기와 싸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이런 시기와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사람을 따라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사람의 방식으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사람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람을 따라 사람의 방식대로 행하는 이들은

서로 당을 지어놓고 싸움을 벌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파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파다" 한다면, 

여러분이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전서 3:4)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배의 모양도 갖추고 있지만..

 

이들의 영적인 실제는

영이 아닌 육에 속한 자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방식으로 

사람을 따라 행하는

육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했느냐

교회 직분이 무엇이냐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수십년을 하고

장로, 권사,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얼마든지 이런 육에 속한 어린 아이같은 신앙인으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 보면..

 

당을 짓고 사람을 따르면서 

진리되신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불의를 따르는 자들"이라 말씀하고..

 

이런 자들에겐 

진노의 심판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로마서 2:8)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진노의 심판 중 하나가 바로

미혹이 역사하도록 허용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상황에 대한 말씀인데..

 

하나님이 이런 미혹의 역사를 

불의를 따르는 이들에게 보내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보내신다는 의미는.. 

 

원수마귀가 조장하여 퍼트리는 

미혹의 일(역사)을 막지 않으시고

활짝 열어서 다 허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귀가 광명한 모양을 가장하여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미혹시키려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닌다고 말씀하는데..

(고후 11:14-15, 벧전 5:8)

 

진리되신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따라 행하는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미혹을 대대적으로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말씀처럼 

이런 사람들은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기에

영적인 분별을 할 수가 없고..

 

이렇게 되면 오히려 

진리를 가장한 거짓에 쉽게 미혹돼 버립니다. 

 

다시 말해, 그 중심이 

미혹이 틈탈만한 변질된 중심이기 때문에

미혹이 파고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미혹되어 멸망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자신의 불의한 내면을 돌아보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이처럼 육에 속한 자들은

처음부터 믿지 않는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진리되신 하나님이 기준되는 삶을 

살지 않는 모든 자들이 다 해당되기에..

 

한번 거듭난 체험이 있는 신자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지 않는 모든 자들,

 

그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인본적 기준을 세워놓고 

사람을 따라 행하는 이들에게는..

 

거짓이 더욱 광명한 모양을 

가장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미혹의 깊이는 그만큼 더해지게 됩니다. 

 

사탄이 조장하는 미혹의 역사는 

대부분 사람을 통해 역사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통로삼아 미혹을 뿌릴 때

표적과 기사를 보이게 되면..

 

진리되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사람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자들을

한 큐에 다 낚아버리는..

 

아주 강력한 미혹의 도구로 작용하게 됩니다.  

 

또 눈에 보이는 표적과 능력은 아니더라도..

 

인본적인 감동(?)을 주는 메세지,

내가 듣고싶어하는 말을 해주며

자기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해준다면..

 

그 이후부턴 

사람에게 마음을 사로잡히게 되고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마지막 때는..

미혹의 일들이 정점을 찍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해 작정하시고 

미혹을 풀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보면.. 믿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따라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종교적 의의 기준으로

경건해보이는 종교적 틀을 만들어 놓은 후

자기 기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종교적 기준에 맞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나누게 되고..

 

자기가 만든 종교적 기준에 의해 

스스로 당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외적으로만 보면 

하나님께 열심이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올바른 지식, 

즉 위로부터 부어지는 지혜로 인한

행함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하신 섭리는 알지 못한 채,

자기 종교적 기준대로 행하려 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9절 말씀처럼 

"자기 지혜로 말미암아 자기 꾀에 빠지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을 보면..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내가 지식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든간에..

 

영이신 하나님께 속한 자들만이

성령이 주시는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성령의 일을 받을 수 없으면

무조건 미혹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중립이란 애초부터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 뜻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자신 or 타인)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를 통해..

 

내가 육에 속한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기자신에 대한 분별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그 어떤 미혹의 역사도 허용하지 않으시고

대적의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왕하 17:39)

 

그 어떤 광명한 모양의 인본적 가치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해도..

 

미혹되지 않고 본질을 바로 보며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친히 역사하셔서 도우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시편 25:12)

 

원래 이해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며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본질을 바로 보고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그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을만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변치않는 섭리입니다. 

(출 33:19, 롬 9:15)

 

마지막 때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있는 자는 받아서 더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영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게 됩니다.

(마 13:12)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더 깊은 은혜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대대적인 미혹이 풀어지는 심판의 때에

더 깊은 미혹의 늪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에 보면,

"의의 길을 알고난 후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한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않는 불신자들은 처음부터

진리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이기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지만..

(요 3:18)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계명)을 져버리고

자기 뜻대로 나아간다면 이들이 받게 될 심판은 

더 엄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미혹의 역사를 보내시는 일은..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지 않는 이들을 

심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처음부터 이미

사탄의 지배하에 미혹된 삶을 살고 있기에

더 미혹시킬 것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강하게 책망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3절에 보면

"너희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15절에 보면..

"너희가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처럼 

예수님께 지옥 자식으로 판결받은 이유는..

 

말씀을 읽지 않아서도 아니고

기도를 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누구보다 말씀을 탐독하고

기도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예수님께 

지옥 자식으로 판결받은 이유는..

 

잘못된 중심으로 말씀을 대하고

잘못된 중심으로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39절 이하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겉만 깨끗하게 해놓고

속은 불의함으로 가득찬 그들을 향해

강한 책망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 자신을 겸비하게 돌아보려는 마음의 태도가 

반드시 중심에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며

그 뜻대로 나아가려는 

중심의 태도가 확립되어 있다면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말씀(묵상)과 기도라는 신앙의 행위가 

하나님의 마음과 섭리를 더 깊게 이해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해주는 

본질적인 수단이 됩니다. 

 

초반에 얘기한

육에 속한 어린 아이같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말씀과 기도 행위에 열심을 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결국 그런 중심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과 기도라는 외적 행위에 열심을 기울이면..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종교 교리와 자기 지식에 매몰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말씀 읽고(묵상하고) 기도하는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본질인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또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지혜를 주시는 분도..

기도를 들어주시고 역사해 주시는 분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신데..

 

다른게 아닌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앞에..

(롬 8:27, 계 2:23)

 

온전치 못한 중심으로..

말씀을 하루에 몇장씩 꼭 읽고

몇시간씩 꼭 기도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종교적 열심만 낸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나아가기 위해 

진리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동행함은 반드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할 때에 가능합니다.

 

그런 마음이 전제되어 있을 때,

기록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과 

기도 시간을 갖는 것은.. 

 

주님과 온전히 동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인 촉매제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장 본질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임박한 마지막 때는

알곡과 쭉정이가 철저히 가려지는 때이기에..

 

은혜 아래 거하는 자는 구원을 받고

진노 아래 거하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보통 주님 오심이 임박했으니

우리가 더욱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깨어서 준비한다는 것은

이런저런 외적인 행위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중심을 바로 세우고

날마다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며

그 뜻대로 나아가길 힘쓰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엔 어떨까?

 

지금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게 옳을까? 

라고 하며 하나님을 의식하게 됩니다.

 

즉 내 삶의 모든 기준점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이 바로 세워져 있을 때 

말씀과 기도를 통한 은혜를 더욱 부어주심으로 

주님과 실제적인 동행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주님앞에 합당한 신부가 되기 위해

늘 깨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외적인 수행들을 통해

더 나은 종교인이 되려는 그런게 아닙니다.

 

회개 역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본 후..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우리 주님이 

싫어하시는 마음을 품고, 말을 하고, 행동을 했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마음과 행동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이유는 오직 이것 뿐입니다.

 

단지 천국가기 위해.. 휴거되기 위해..

지옥가지 않기 위해.. 

 

이러이러한 죄를 나열하면서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주문 외우듯

‘회개’라는 종교행위를 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진짜 회개는

자기자신을 겸비하게 돌아봄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온전한 중심으로 

하나님만을 삶의 모든 기준점으로 두고 사는지..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앞에 나아가 그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만 의식하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 그 은혜를 구할 때

주님은 우리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히 4:16, 약 4:6, 벧전 5:5)

 

부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을 겸비하게 들여다보고

주님앞에 나아가 은혜를 구하며

주님과 온전히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어..

 

주님 다시 오실 때 거룩히 구별된

첫열매의 신부로 주님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로마서 2:4-8)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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