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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짜고치는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는 법!

댓글 1

* 공지사항(필독) *

2021. 2. 2.

사탄이 짜고치는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는 법!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사탄을 이 세상 공중권세 잡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흐름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탄이 지배하고 컨트롤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아주 정적인 태도로 

세상으로부터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들을

그대로 흡수하며 살고 있다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사탄이 사람의 내면을 타락시키고 미혹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바로 미디어입니다.

 

그런 사탄의 컨트롤 하에

주류언론과 미디어가 내뿜는 것들이

우리 눈에 보여지고 귀로 들려질 때..

 

그런 것들이 과연 

건전하고, 정의롭고, 공정과 사실만 전달하면서

우리에게 아무런 영적인 영향도 

미치지 않을거라 생각하는 것은 

지당한 생각일까요 아님 순진한 생각일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은

내 눈으로 보여지고 귀로 들려지는 것들을

아무 생각없이 보고 들으며 다 흡수해 버립니다. 

 

이 미디어를 통한 사탄의 전략은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내면(정신)을 타락시키는 것이고..

 

주류언론 미디어를 통해 

거짓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사실인 것처럼 주입시킴으로 

완전히 미혹에 젖어들도록 만듭니다.

 

이처럼 우리 내면을 타락시켜서 

실상은 하나님에게서 

끊어놓고자 하는게 목적인 사탄이

미디어를 통해 우리 눈과 귀를 자극하는데..

 

그냥 내 눈에 보여지는대로

내 귀에 들려지는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과연 하나님앞에 합당한 중심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진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에 나의 영혼육을 내맡기며

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세상의 것들을 분별하여 

그 흐름을 담대히 거슬러가는 이들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 눈에 들어오고 내 귀에 들려지는 것들을

아무 생각없이 흡수하는게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봐야 할 것을 찾아서 보고

들어야 할 것을 찾아서 들음으로

바르게 알고 분별하는 일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 흐름 한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세상 것 다 끊고 오직 말씀과 기도(행위)에만 

올인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런 마음(결단)을 갖는다 해도..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들을 

일절 내 눈과 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없기에..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가치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것 다 끊고

말씀과 기도에 전력을 다하며

주님께만 집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정작 세상(주류언론, 미디어)에서 

일방적으로 뿜어내는 

광명하게 위장한 거짓에 대해선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그런 거짓된 흐름에 휩쓸리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나아가는 이들은..

 

세상 것 다 끊고 

말씀과 기도행위에만 올인하는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들을 거슬러

봐야 할 것을 보고 들어야 할 것을 듣게 됨으로

바르게 분별하고 미혹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볼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즉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주류미디어를 거슬러

능동적으로 찾아서 보고듣는다 하면서

더 큰 미혹된 것들을 흡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하나님의 일에 올인했다는

사역자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세상 흐름에 자기 존재를 

완전히 내맡겨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역을 한 후,

집에 와서 티비를 틀어놓고

공중파 뉴스에 몰입하면서

미디어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듣고 흡수해 버립니다.

 

또 세상의 자극적인 문화들을 

당연하다는듯이 보고들으며 

그런 문화에 쉽게 젖어듭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사탄이 짜고치는 프레임에 

걸려있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찾아서 보고 들은 것들을 

누군가가 말해주면.. 

 

그것을 되려 미혹됐다 여기며

사탄이 짜고치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본인들이 이런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사탄의 전략이

그대로 먹혀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라면 더더욱..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들로부터 

눈과 귀를 철저히 관리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온전히 실현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본인이 맹인이 된 것도 모자라

다른 이들까지 맹인으로 만들어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도 그렇고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는 이들 상당수가

사탄이 짜고치는 프레임에 걸려들어

내 눈에 들어오는 현실에만 국한된

근시안적 사고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만 나아가려는

100%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중심에 맞게

보이는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영적인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는 

분별력과 사고력을 허락하십니다.

 

2020년이 시작하자마자

7-80년을 사신 어르신들조차 

태어나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는 일을

지금 전세계적으로 겪고 있는데도..

 

지금이 성경적으로 어떤 시대인지조차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사고와 분별력이 얼마나

편협해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교회 중 

세 교회(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는..

 

하나님을 위한 이런저런 열심과 

의로운 행위들이 많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실 거라는

무서운 책망의 말씀을 듣습니다.

 

단지 그런 선한 행위들 자체가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기준이었다면..

 

세 교회는 하나님께 책망 받을 순 있더라도

천국에 대한 보장은 해주셨을 것입니다.

 

허나 주님이 내리신 그 책망은

단순한 책망을 넘어서..

 

회개하지 않으면 "토하여 내치겠다"

"촛대를 옮겨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계 2:5, 3:16)

 

즉, 그들이 아무리 이런저런 행위를 많이 했더라도

하나님앞에 불의한 중심을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무서운 말일까요?

 

그들은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져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와 동일한 상황이

마태복음 7장에도 보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이들이 주님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그들 나름대로 억울한 면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자신들은 분명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행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지옥 심판을 받습니다.

 

그들의 행위 자체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앞에 어떤 중심이었냐가 

본질이기 때문이고..

 

결국 그들의 중심이 하나님앞에 

합당하지 않은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표면적 행위가 아닌 

그 온전치 못한 중심에 의해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디모데전서 4:1)

 

여기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육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 차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 4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4:3)

 

여기서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는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드러납니다.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할 때..

 

대놓고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다른 것들을 섬기게 만드는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예수님을 믿는 겉모양을 한 채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게 만듬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뜻을 거스르는 가르침으로

그들을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즉 대놓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걸 섬기라고 가르침으로써 

믿음에서 떠나게 만드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옳다 여기는 것들을 금하고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는 것을 허용하는 등 

선악의 기준을 멋대로 정의해 버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들의 겉모양은 다

하나님을 믿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마음은 전혀 없이

자기 교리에 의한 종교적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혹의 일들은

중심의 변질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이런 일이 결국 

하나님의 기준, 즉 영적인 차원에선 

믿음을 져버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그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속이는 영, 미혹하는 영에 의한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중심이 변질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거짓된 얘기를 쏟아낸다 해도

결코 휩쓸리지 않겠지만..

 

이미 중심이 변질돼 버렸기에

그런 미혹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도 

이와 동일한 내면(중심)의 변질에 대해 말씀합니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디모데전서 6:20-21)

 

거짓된 지식을 따름으로 

믿음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디모데전서 4장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것은 한번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느냐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성경은 한번 거듭남으로 받은 구원은 

절대불변하다고 말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목사님이

예수님을 뜨겁게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한 후 

주님이 사명을 주셔서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면..

 

그 목사님을 인도하신게 하나님이시니

그 목사님은 절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심판받지 않을까요?

 

이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대단한 일들을 많이 행했다면..

 

그로 인해 그 목사님은 천국이 보장된 걸까요?

 

그 시작이 아무리 주님께로부터 시작됐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사역을 통해 

실제 드러나는 육적인 열매가 많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판단 기준과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주님께 불법을 행한 자들로 

판결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이 계속해서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주님께 칭찬 받을만한 이런저런 의로운 행위를 하고

거짓을 분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아주 분명하게 

"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고

"회개치 않으면 네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시간순서적으로 

주님께 의로운 행위를 하면서 합당한 길로 가다가

돌변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을 져버렸다는게 아닙니다.

 

같은 존재에게서 드러나는

내면과 외면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외적으로는 

이런저런 의로운 행위를 많이 하면서..

 

동시에 그 내면의 중심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져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주님과의 뜨거운 첫사랑의 체험이 있지만

그 첫사랑을 잃어버리고도 얼마든

경건해보이는 행위에 열심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고전 1:30)

 

그리고 이 구원의 시작이라는 것은

주님과 동행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이고..

 

이 여정의 시작은 

우리안에 임하신 성령께서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요 16:7-8, 13)

 

이렇게 되기 위해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 스스로를 날마다 겸비하게 돌아보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게 안되면..

아무리 시작이 분명했더라도

여정길에서 반드시 이탈하게 됩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주님이 맡겨주셔서 시작된 사역이라 해도

주님과 동행하며 그 인도함 속에 사역을 하는게 아니라..

 

어느새..

그 사역 자체가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버리고..

 

결국 자기 능력, 생각, 교리(지식), 경험, 욕심 등

자신의 어떠함에 의해 사역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시작은 주님과 함께 했더라도

점차 성령의 개입은 줄어들게 되고..

 

그런 변질된 마음의 틈을 미혹의 영이 파고들어

결국 인도함의 바톤이 미혹의 영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선 사탄이 짜고치는 세상의 프레임에 갇혀

그 프레임에 의한 가치기준대로 나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되는게 아닌 

세상 기준에 의한 사랑, 정의, 평화, 긍정, 연합 등의 

왜곡된 가치를 추구하며 그렇게 미혹의 늪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묘하게 속이는 영이

드러나는 모양은 계속해서 

그 사역을 잘 이끌고 있는 것처럼 만들고..

더 나아가 사역 자체를 더 키우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WCC 총회의 한국개최를 주도했던 K 목사의 경우..

 

목회를 시작하게 된 간증을 들어보면..

 

주님이 역사하셔서 죽을 병이 낫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한 후 목회 사명을 주셨다는

부인할 수 없는 체험적 간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회를 시작한 이후에도..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키고

한국교회가 새벽기도에 열정을 쏟도록 이끈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적인 행위로만 따지면

이 분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은 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목사님은 

하나님이 가장 가증히 여기는 배도행위에 

단순 가담 정도가 아니라

가장 앞장서서 한국교회 전체가

이 배도의 올무에 걸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이 목사님은

여전히 악을 선하다 하며 회개는커녕

그로 인해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게 될거라며

엄청난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탄이 짜고치는 프레임에 갇혀서

인본적 기준의 평화, 연합, 사랑, 정의 등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배도행위를 자행하고서도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분이 이런 영적상태로

훗날 주님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은..

당신께서 목사의 사명을 주신거니까..

또 그가 행한 이런저런 눈에 보이는 사역의 성과로 인해

칭찬을 해주시고 상급을 내려주실까요?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자야 내게서 떠나가라고 판결하실 것입니다.

 

제 생각이 아니라 앞에서 계속 얘기한대로

성경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분이 첨에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한 것이

거듭난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한번 거듭났더라도 

우리 중심과 상관없이 성령께서 우리를 

강제로 인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한번 거듭남으로 구원을 받았더라도 

그 한번으로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받은 구원은 다시 말해, 

삶 가운데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겸비하게 돌아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구원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디모데전서 4장 말씀이 적용되는 경우는

한번 거듭난 체험을 하고 나서 

변질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경우입니다. 

 

이 변질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또 다른 말씀이

로마서 10장에도 보면 나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2-3)

 

하나님께 열심이 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지식이란, 

우리가 아는 그런 지식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지식(지혜)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브리서 10:26-27)

 

여기서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는 것은..

 

진리의 성령이 우리안에 내주하심으로

그 인도함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기 뜻대로 나아감으로써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회개할 마음을 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되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뜻을 거스르면서도

스스로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심판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면의 상태가 이러함에도..

 

외적으론 하나님을 향한 열심,

 즉 하나님을 위한다는 일에 매진할 수 있지만

실상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따른게 아닌 것이고..

 

그 일은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믿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관점과 기준으로 

판단하고 분별하기 때문에..

 

중심이 타락하는 이런 과정에 대해 

분별하지 못합니다.

 

요한1서 4장 3절에 보면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 적그리스도의 영은

앞서 얘기한 디모데전서 4장의 

미혹하는 영과 동일한 목적의 영입니다.

 

즉, 대놓고 예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예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나아가도록 

미혹하는 영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들에 대해

요한1서 2장 19절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지만

처음부터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고

마침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고 말씀합니다.

 

이 적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합니다.

 

다시 말해, 이 적그리스도의 영은

선을 악하다 악을 선하다 하게 만드는 영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준을

사람의 기준으로 대체시켜서

사람 보기에 옳고그름의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다 착각하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이 

공산주의를 대놓고 추종하거나

북한 정권은 우리가 품어야 하고 

그들과 연합해서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 정치 이념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실상은 악을 선하다 하는 세상의 가치기준에 의해 

하나님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 동성애자들의 동성간 성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만드셨으니

그들의 성 정체성을 우리가 인정해주고

그들을 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동성결혼을 주례하기도 합니다.

 

초반에 얘기한 것처럼

이 세상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들만 보고듣고 접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내면이 길들여지게 되면..

 

선악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려서

하나님 말씀이 아닌 세상의 기준에 맞춰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시작이 성령으로 시작했더라도

삶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지 않고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음으로

이런 변질의 과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믿고 있으니..

또 나는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그런 경험이 있으니..

 

또 사역자라면..

내가 시작하게 된 이 사역이

하나님이 맡기셔서 하게 된 사역이니..

 

내가 사역을 통해 이런저런 

성과들을 드러내고 있으니..

 

자신은 두말할 것 없이

천국이 보장된 사람이라 생각하는건

미혹의 영이 역사하도록 

마음 문을 활짝 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역 자체가 

정말 하나님이 콜링하셔서 

시작하게 된 사역일지라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런 사역 속에서도

내 분별력과 사고력과 세계관이 

사탄이 짜고치는 세상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당장 내가 육적으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일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만 매여 있는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시대를 바르게 분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고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려는 

중심을 반드시 확립해야 합니다.

 

그런 중심이 주님앞에 바로 설 때..

 

세상의 거대한 미혹의 파도 속에서

우리를 철저히 구별시켜 주시고

때에 맞는 섭리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내가 그런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앞에 나아갔을 때..

 

그동안 나 스스로에 대해

보이지 않던 부분을 

비춰주시고 조명해 주셔서

우리가 당신앞에 합당한 중심이 

되도록 인도해주시지..

 

애초에 그런 마음 자체가 없다면

하나님이 강제로 우리를 잡아끌어서

인도해주시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과 로마서 9장 15절에 보면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중심이 아니라면

그 사람에겐 은혜가 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3장 20절에도 보면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겸비한 마음을 가질 때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음성을 분별할 수 있고

그렇게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본인 스스로 무언가 했다는 그 성취감으로인해..

또 자신은 이런저런 놀라운 체험과 간증이 있기에..

 

그런 것들로인해 눈이 가려져 버리고 

정작 하나님이 보시는 자기 중심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이런저런 행위가 많고 놀라운 체험도 했던

계시록의 세 교회와

주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행위를 많이 했지만

주님이 모른다고 하셨던 마태복음 7장의 경우처럼..

 

결국 주님앞에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는

우리 각자가 죽어서

천국가냐 지옥가냐의 문제도 있지만..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앞에 

첫추수의 신부로 서게 될 것이냐가..

 

어쩌면 우리에게 

더 크게 당면해 있는 때일 수 있습니다. 

 

이런 때라면 우리가 더더욱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안에 거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겸비하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때 

철저히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7, 롬 2:5-6, 계 22:12) 

 

온전한 중심으로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드러난 열매(행위)가 있다면 그에 맞게..

 

그런 중심으로 주님과 동행하지 못해서

드러난 열매(행위)가 없다면 그에 맞게..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중심의 온전함과 상관없는

종교행위 자체를 보시는게 아닙니다.

 

그런 종교행위라면

앞에서 계속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님앞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앞에 

더 가증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 곧 다시 오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내면을 철저히 돌아보고

사탄이 짜고치는 세상의 프레임을 거슬러

더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가 되기 위해

주님 뜻대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사탄이 짜고치는 세상의 프레임이 아닌

하나님의 울타리안에 거할 수 있도록

우리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제라도 본인을 돌아봤을 때

그런 중심으로 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면..

 

돌이켜 회개함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6-8)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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