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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쭉정이(가라지)가 이제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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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1. 2. 19.

알곡과 쭉정이(가라지)가 이제 가려졌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후 거듭났으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됩니다.

 

그래서 영적으론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육적인 현실은 여전히 

사탄이 공중권세 잡은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됐더라도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사탄마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에 힘입어 

마귀를 대적하며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사탄을 대적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9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선..

 

야고보서 4장 7절 말씀처럼

하나님께 복종, 즉 하나님께 순종할 때

믿음이 굳건해지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고..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굳건해지게 되면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영적인 기반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됐을 때.. 

우리의 믿음이 강력한 방패막이 되어

사탄이 우리를 쉽게 건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도 이에 대해 말씀입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로마서 16:19-20)

 

하나님께 대한 순종함이

우리 중심에 전제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은혜로 역사해 주셔서..

 

우리가 사탄을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 마음의 빈틈을 파고듭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리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으면

그걸 간파하고 역사하기 때문에..

 

에베소서 4장 27절에 보면 

"마귀에게 절대 틈을 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날마다 자신을 겸비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직 이런 사람들만이

마지막 때에 우는 사자처럼 다니며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려는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게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 보면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6장 16절에 보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들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번역본(개역개정, 개역한글, 킹흠정)에서는 

"모든 것 위에.."라고 되어 있지만..

 

표준새번역에 보면

"무엇보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16절 전체 의미는 

표준새번역을 통해 보는게

이해하기가 제일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드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으로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6:11_표준새번역)

 

여기서 보면..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악한 자가 쏘는 모든 불화살을 

막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 위에.. 즉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손에 들고 있어야만

사탄마귀가 역사하는 모든 공격들을 

능히 막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의 여러 전신갑주 가운데

이 믿음의 방패가 

악한 세력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내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내 중심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나아가려는 중심이라면..

 

그 중심이 믿음의 방패가 되어 

우리를 보호해주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의 틈을 맘대로 

파고들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잘 헤아려서

그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마음이 전제되어 있을 때

주님께서 친히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우리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원수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믿음의 방패막이 되어주십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데살로니가후서 3:1)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그 중심에 맞게 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에

결국은 그 은혜가 우리 믿음의 

강력한 방패막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약 4:6)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요한계시록 22:11)

 

이 구절이 배치된 

순서상으로만 놓고 보면

예언된 마지막 환란이 끝난 뒤에

기록되어져 있지만..

 

이 말씀을 받는 실질적인 대상은

환란이 임박한 때를 사는 이들과

환란 속에서 환란을 겪는 이들입니다.

 

즉 환란이 임박한 지금 세대가

마지막 환란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각자의 중심의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환란이 임박한 지금부터 

환란에 들어간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하나로

미혹을 이땅에 풀어버리시는 때입니다.

 

살후 2장에 보면..

이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그래서 이 심판의 때에는

합당한 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알곡으로 구별하시고..

 

합당치 못한 자들은 

쭉정이와 가라지로 분류되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미혹의 일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모양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불의한 중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그 중심의 상태에 맞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미혹된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걸 내버려두심으로

결과적으로 그들이 심판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를 사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여기서 보면..

말세에 사람들에게서 

이런 악한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불의한 중심을 가진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5절에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말씀합니다.

 

겉으론 경건해보이는

그리스도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불의한 중심을 가진 자들이고.. 

 

마찬가지로..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불의한 중심을 가진 자들이 

마지막 때에 결정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디모데후서 3:6)

 

여기서 보면

불의한 중심을 가진 자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할 때

미혹에 넘어가는 자들을 여자로 지칭하고서

그 특징에 대해 말씀하는데.. 

 

그들은 죄에 매여 있고

자기 욕심에 이끌리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겉모습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성경공부도 하고 종교적 열심도 있지만..

 

실상은 진리되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해

진리를 아는 지식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선 분명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했는데..

 

돌아서기는 커녕,

자기 욕심 때문에 분별력을 잃고서

사람의 미혹에 쉽게 걸려들게 됩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 역사하는 

온갖 미혹에 걸려드는 이유는..

 

이미 그 중심이 변질된 상태이기 때문에

미혹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광명한 미혹이 풀어지는 때에

비록 미혹된 것처럼 보였으나

그 내면의 중심이 변질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앞에

바로 서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중심이 변질되지 않고 

하나님앞에 합당한 중심이었기에..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미혹에서 벗어나도록 역사하신게 아니라..

 

겉으론 잠시 미혹된 것처럼 보였으나 

그 중심의 상태에 맞게 

다시 온전한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중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얘기하고 또 얘기해도 

도무지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맞지만..

 

그로 인해 

과도하게 신경을 쓰면서 되려

자기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단지 영혼들을 향한 

불쌍하고 애통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으니 낙심되고 우울해지는 것은

의미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부분과

모든 일의 주관자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을 잘 구분하고 분별해서

하나님 뜻대로만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또 어떤 분들은..

 

"그럼 이제 알곡과 가라지가 가려지고 

심판이 확정된 때이니까

불신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겠네"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구원의 섭리는

때에 따라 아주 강권적인 역사로 임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중의 마지막 때인 지금도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는..

 

사람을 통로 삼지 않으시고

예수님이 직접 사람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섭리에 의해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게 된 후,

그 중심이 하나님앞에 온전케 되는 일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섭리의 스펙트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합니다.

 

성경을 통해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2절에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로마서 14:2)

 

로마서 14장 2절과 문맥적으로 상통하는 말씀이 

히브리서 5장 14절에 보면 나옵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14)

 

로마서 14장과 히브리서 5장을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고 

믿음이 장성한 자는 단계를 거쳐서

단단한 음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단계에 머무는 때가 있고

그러다 서서히 믿음이 성장하는 단계를 거쳐

장성한 믿음으로 도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성한 믿음이 되면..

지각(깨닫는 능력)을 통해 선악을 분별, 

즉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온전히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섭리의 방식 중 하나가 이처럼..

 

때에 맞게 성장시키고 변화시켜서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방식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가장 일반적인 섭리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또 반대로..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는 

마태복음 3장 9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얼마든

강권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면

처음 거듭나게 됐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

이것저것 배우고 양육받아야만

믿음이 성장하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어제까진 믿지 않던 불신자가

합당한 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전혀 어렵거나 문제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의 경우,

그리스도인들을 때려잡던

아주 악랄한 유대종교인 중 한명이었지만..

 

순식간에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가 임하여  

사람들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합니다.

 

사도행전 9장 18절 이하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강권적인 능력의 섭리가 

단시간에 바울에게 

어떻게 임하였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하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도행전 9:18-20)

 

'즉시' 사울에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다'고 말씀하고

얼마후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 머물고 있을 때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실제 변화되는 과정에서 

시간의 경과가 어느 정도 있었다 하더라도

그 기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을

이 말씀이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그 전부터 이미 

구약성경엔 정통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퍼즐만 맞춰지면

이미 가진 지식으로 설교할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거듭난 이후 

그 믿음 자체가 미성숙한 단계에서 

서서히 성숙의 단계로 나아간게 아니라

곧바로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됐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보면

바울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강권적인 

능력의 섭리로 단번에 변화되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믿음이 서서히 성장하면서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얼마든

강권적인 그 능력의 섭리로 

당신이 뜻하시는대로 역사하셔서

단번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중심을 

다 아시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일은

우리에게 허락된 날까지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준점으로 두지 않고

인간의 기준과 방식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무조건 이렇이렇게 역사하신다"는

자기 종교적 기준을 고집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독단적인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은 주님오심이 매우 임박한

마지막 중의 마지막 때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하나님앞에 합당한 중심을 가진 

알곡 성도가 구별되고

알곡과 쭉정이(가라지)가 나뉘어지는 때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논리적인 말로 사람을 설득시켜서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성도라면 반드시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여

때를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맞게 나아가야 합니다.

 

4복음서 곳곳에 보면

"있는 자는 받아서 넉넉하게 되지만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합니다.

(마 13:12, 25:29, 막 4:25, 눅 8:18, 19:26)

 

이 말씀들과

계시록 22장 11절 말씀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한 상태에서..

 

불의한 자는 

그나마 있던 분별력마져 빼앗긴 채 

미혹에 빠져 불의함이 더 깊어지게 되고..

 

거룩한 자는 

분별의 지혜와 은혜가 더해짐으로

하나님앞에 더 거룩하게 

구별되어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스스로를 겸비하게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중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에 은혜를 더해 주시기에

그 은혜로 인해 믿음이 굳건하게 되고..

 

그 믿음의 방패로 인해

사탄이 역사하는 그 어떤 공격(미혹)에도

요동하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확정하시고

당신의 마음에 합한 

신부들을 구별해내실 때..

 

거룩한 자를 알곡으로 삼으시어

은혜를 더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환란이 임하기 전,

미혹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은.. 

 

결국 환란 속에서

믿음을 몸소 증명해 보여야만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환란의 때"를 다른 말로

"시험의 때"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계 3:10)

 

환란이 임하기 전,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굳건한 믿음으로 중심을 지켜낸 이들은..

 

그 믿음이 증표가 되어

예정된 시험의 때를 겪지 않고 

구별된 신부로 들림받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과 문제들을 맞딱드리게 될 것이고.. 

 

이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이 기준되는게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 경험, 지식 등 

자신의 어떠함이 기준이 되거나

또는 자신이 따르는 사람(타인)이 기준된 자들은

더욱 더 깊은 미혹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기준점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만드는

만만치않은 현실적 상황 앞에 굴복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임하게 될 환란의 타임라인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모든 불의한 자들에 대한 심판 기간입니다.

 

그런데 환란이 임하지 않은 지금..

 

자기 종교적 기준대로,

사람에게 마음의 적을 두고 

그렇게 나아가기로

중심을 확정지어버린 분들이

너무 많아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이런 경우..

본인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

본인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앞에 합당한 중심을 가진 이들을

찾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되

주님보다 앞서는 것 또한 옳지 않기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해야 합니다.

 

환란이 임하기 전,

은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이 마지막 때

이 메세지를 보고듣는 분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자신을 겸비하고 돌아본 후,

온전치 못한 마음의 여지가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합당한 중심으로 

주님앞에 구별된 신부로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성전에 계신다. 

주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주님은 불꽃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굽어보시고, 사람을 살펴보신다."

(시편 11:4_표준새번역)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30)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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