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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육적인 구별됨"이 중요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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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사항(필독) *

2021. 4. 23.

마지막 때, "육적인 구별됨"이 중요한 진짜 이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5-16)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니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거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15절은 

“모든 행실에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해야 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이 말씀이 인용한 원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바로 레위기 11장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위기 11:44)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니

그 백성들 역시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는데..

 

거룩하기 위한 본질적인 행동이 바로

우리 몸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는 부분은 

잠시 후에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 말씀하는 구별됨의 영적원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당시부터 

적용되어지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에덴동산에 살게 하시면서

그들에게 명령을 주실 때

동산의 다른 열매들은 다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열매를 먹게 되면 

"너희가 죽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열매를 먹지 않으면..

 

거룩함을 지켜내면서

그 곳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사탄(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게 됨으로써.. 

하나님앞에 거룩함을 잃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그 거룩한 공간 안에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분리되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별됨의 원리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상태라면..

거룩한 곳에 함께 거할 수 없기에 분리되어지고..

 

거룩한 상태라면..

거룩하지 못한 곳에 함께 거할 수 없기에 분리(구별)되어지는.. 

 

거룩한 구별됨의 영적원리. 

 

이 구별됨의 원리는 

그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진행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

 

잡다한 우상들이 가득한

본토, 친척 아비집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이 명하신 거룩한 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수 24:2-3)

 

또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우상들을 섬기던 애굽땅에서 구별(출애굽)시키신 후

그들을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거룩함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해

육을 먼저 구별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52장에 보면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거룩하지 못한 곳에서 나와 구별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이사야 52:11)

 

이처럼 성경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앞에 거룩함을 지켜내는 본질적 자세는 바로

거룩하지 못한 곳에서 나와 구별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한 가지는..

 

구약에서는 율법의 준수여부가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에

육적인 차원의 구별됨이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신약 이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섭리에서는

육적인 차원이 아닌 영적인 차원의 구별됨만 

이루어지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맞는 말 같지만

아닙니다.

 

신약 이후에도 

하나님앞에 거룩함을 지켜내는 구별됨의 원리는..

 

육적인 구별됨이 선행되어질 때 

영적인 구별이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먼저, 고린도후서 7장에 보면

우리가 어떤 거룩함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1)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선

육과 영의 더러운 것들에서 구별되어 

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구별이 이루어지기 위해

육적인 구별이 동반되어야함을 의미합니다.

 

또 마태복음 16장과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6:19, 18:18)

 

여기서 땅은 육적인 차원을,

하늘은 영적인 차원을 말합니다. 

 

문제에 따라

육적인 차원은 비본질로써 

영적인 것과 별개로 적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적인 문제의 경우

육적인 차원과 영적인 차원이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 그대로 

영적으로 구별되기 위해

우리 육이 먼저 구별되지 않으면

그 안에서 영적으로 혼합된 상태가 

되버리는 것입니다. 

 

그외 신약 곳곳에 보면

육적인 구별이 곧 영적인 구별임을 

증거하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 이하에 보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하시면서..

 

17절에 보면

앞서 본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함으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믿지 않는 자란,

첨부터 믿지 않는 불신자 뿐 아니라..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불순종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과 함께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일도 함께 도모(연합)하지 말고

그들 중에서 나와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클릭해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VafxAJ2E6MI

 

그리고 계시록 18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 18:4)

 

거기서 나오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그의 죄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 머물러 있으면서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거기서 나와 거룩히 구별되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다..

육적인 구별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영적인 구별이 이루어지게 됨을 

의미하는 말씀들입니다.

 

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말씀 그대로 지켜내기 위해선 반드시

거룩하지 못한 곳에서 나와 구별되는 일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구약을 막론하고 

이 구별됨의 영적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구별되는게 본질이지

왜 자꾸 육적인 구별을 강조하냐”고 하면서..

 

성경이 어떻게 구별됨을 말씀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

또 수십년간 그런 교회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씀이 증거하는 이런 구별됨에 대해 

정말 겸비한 마음으로 분별해보려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이런 얘길 하면 대부분 부정해버리고 

자기가 옳다 하는 생각만으로 

쉽게 결론내려 버립니다.

 

그러면서..

"교단이 WCC 가입하고 WEA,카톨릭과 연합한게,

우리 교회와, 또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당시엔 대놓고 육적으로 

이방신들을 우상으로 섬기던 곳들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선 구별되야 하는게 맞지만..

 

지금은 대놓고 우상을 섬기지도 않고

경건한 예배당에서 하나님, 예수님 부르짖으며

예배 잘 드리고 있는데..

거기서 나와 구별돼야 한다는게 말이 되냐는 

주장을 합니다.

 

만약 우리 눈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본질이라면..

하나님 말씀은 그 자체로 거짓이 되버립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내며

제사드리고 율법 잘 준수하던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앞에 지옥 자식으로 판결받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는 

명분을 가지고 양과 소를 잡아왔던 사울왕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여호와는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지 않으시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사무엘상 15:22)

 

다시 말해, 

아무리 하나님,예수님 이름으로 거룩한 모양의 예배를 드리고

성가대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찬양을 부른다 해도..

 

본질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헤아려서

그 말씀 그대로 행동하는 삶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 눈에 보이는 예배의 모양이 어떠하든

하나님 앞에 전혀 거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가 끝난 후, 로마 카톨릭이 

부패와 우상숭배, 반성경적 교리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나아가자..

 

이에 대항하여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신교가

카톨릭 안에 그대로 머물면서

그들의 개혁을 위한 저항운동을 한게 아니라..

 

그들 중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

하나님앞에 구별되어진 후,

거룩한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영적인 구별이 이루어지기 위해

육적인 구별됨이 선행되어야 하는건 

당연한 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인 지금은..

 

거룩함을 지켜내기 위해 

떨어져 나와 구별되었던 개신교가 

그런 카톨릭과 다시 혼합하여 

배도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 안에서 거룩함을 지켜내려는 

중심이 서 있는 이들은 반드시

그 안에서 나와 구별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처럼..

 

"그렇다고 거기서 떨어져 나오는건 

너무 극단적이야"라고 주장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섞여 있는 상태로

그들이 다시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 보기엔 정의롭고 옳아 보이지만

처음부터 성경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인본적 관점의 자기 의일 뿐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52장 11절과 

신약의 고린도후서 6장 17절에 보면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의미를

요한2서 1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요한2서 1:10-11)

 

여기서도 

거룩한 구별됨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는데..

 

거룩한 곳에 

거룩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오려 한다면

절대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만약 그에게 인사하면 

그 악행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인사를 한다는 의미는 

그를 공동체 안에 정식으로 들이진 않았더라도

어떤식으로든 그와 계속 교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계속 교제를 하게 되면

그가 행하는 악행에 대한 "인식이 무뎌지다가"

점차 그의 악행을 "큰 죄가 아닌 것처럼" 여기고..

 

그러다 결국 그 악행을 "죄가 아닌 것"으로 

합리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벌어진 틈을 타고 들어와

점차 그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5장 6절과 

갈라디아서 5장 9절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고 말씀합니다.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내지 않으면

반드시 그 누룩이 퍼져서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육적으로 구별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영적 전이"입니다.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이 영적 전이에 대해 말씀하는데..

 

인사만 해도 그 악행에 참여하게 된다는

이 요한2서 말씀이 바로

이런 영적 전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은 율법을 통해 

영적 전이를 말씀하고 있는데..

 

레위기서에 보면 

곤충이나 부정한 짐승의 사체를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진다고 말씀합니다.

 

초반에 레위기 11장 44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땅에 기는 길짐승 때문에 스스로 더럽혀지는 것이

바로 이 영적 전이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율법을 통해 

직접 몸으로 행하는 그 구체적 행위로 인해

영적 전이가 일어나게 됨을 말씀하고 있고..

 

신약 이후에는 

구약처럼 율법에 의한 영적 전이가 아니라..

 

요한2서 말씀처럼

공동체라는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교제 또는 연합"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의식의 흐름을 바꾸고 

영적 전이가 일어나게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도 

교제와 연합에 의한 영적 전이를

말씀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출애굽기 34:12)

 

여기서 보면,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을 때 

너희에게 올무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언약을 세우는게 올무가 되는 이유는

영적 전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그들과 연합하고 교제함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을

함께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올무에 걸려

하나님과 우상들을 겸하여 섬기는 

가증한 배도행위를 저지르게 됨으로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교회와 목회자, 그리스도인들은

"교제와 연합"이라는 단단한 올무에 걸려

전교회적(교단) 차원의 가증한 배도를 자행하면서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무슨 배도를 했냐

우리는 한번도 하나님을 떠난 적 없다"고 여기며

심판의 장작을 더 쌓아가고 있습니다. 

 

왜 신약성경인 고린도후서 6장 17절이..

 

구약의 구별됨과 영적전이를 의미하는 

레위기서와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해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했는지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말씀하는 이 구별됨과 영적전이가

신약에서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되기 때문에

고린도서 저자가 구약의 이 말씀들을 인용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단이라는 조직이

교회적 차원에서 최상위 공동체이고..

 

이 안에 구성원이라 할 수 있는

개교회들과 교인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대 교단이라고 하는

예장합동 홈페이지에 보면.. 

 

교단현황이라는 카테고리에 

년도별 교회수, 교인수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단이 최상위 공동체로써 

교회과 교인들이 

그 아래 공식적으로 소속(연합)되어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교단이 벌인 배도 행위가 당연히 

개교회와 교인들에게 영적 전이 되는게

성경이 계속 말씀하는 영적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자신들의 소속 교단이 

가증한 배도행위를 자행했음에도..

 

그러한 사실에 대해 

통탄한 마음을 갖기는 커녕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고..

 

교단과 교회(교인)는 무관하다는 

꼬리자르기식 주장만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영적 전이가 일어남으로 인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되는 

의식의 흐름이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거룩한 구별됨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그래서 왜 거기서 나와 구별되야 하는지를

헤아릴 마음 자체를 갖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어떤 분들은

대한민국도 하나님과 공식 언약을 맺고 

세워진 나라인데..

 

교회가 하나님을 배도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에 심판이 쏟아지고..

 

그러면 우리가 구별되기 위해

이 나라를 떠나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대한민국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에 대해

무슨 쌩뚱맞은 소리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아래 링크영상을 클릭해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o_WJDnvbNDg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택정하셔서 언약 맺은 민족입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민족 자체가

하나님께 제사(예배)드리는 공동체 개념이 

먼저 본질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공동체의 개념이

이스라엘 민족 자체에 적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 제사드리기 위해 

우리 민족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출 8:1,8,25,28,29)

 

즉, 이스라엘 민족이 맺은 언약은 

그 민족 자체가 하나님과 맺은 직접적인 언약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공동체적 개념이 들어있었기에..

 

민족 자체가 행해야 할 본질적 일들이 바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절기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한 일은.. 

 

지금으로 따지면 전교회가

하나님을 배도하고 범죄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하기 때문에..

 

여러 선지서에 보면

그 민족(교회) 전체에 

심판(전쟁/디아스포라)이 그냥 

쏟아부어지는 경우가 나옵니다.

 

그럼 이런 언약에 대한 이해를

대한민국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교회가 주체가 되어 

하나님과 언약 맺고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이 이스라엘과 다른 사실은..

 

이스라엘은 그 민족 자체가 교회적 개념이 되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예배(제사)하고 섬기기 위해 

맺은 언약이지만..

 

대한민국은 

교회가 주체가 되어 국가적 언약을 맺음으로써

그 범위가 국가적 차원에 적용되어진 경우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직접적인 언약의 당사자이고..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그 교회와 맺은 언약의 확장범위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적용되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의 섭리가 

대한민국 영토내에 적용되어지지만.. 

 

본질적인 하나님의 섭리는 

언약 맺은 교회들에게 적용됩니다. 

 

70여년 전, 교회들의 신사참배(배도)로 인해 

이땅에 내려진 심판(6.25)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경남노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가 

다 신사참배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도했습니다.

 

 

교회가 언약의 당사자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언약의 확장범위로 적용되어졌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토가 언약의 범위안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심판의 보응이 대한민국 내에 쏟아지지만..

 

하나님의 본질적 섭리는 

철저히 교회들에게 맞춰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난 6.25 당시

대한민국 전 지역이 초토화됐지만..

유일하게 경남지역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반대한 

교회의 거점이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론..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적용된 것으로 보여지지만..

 

신사참배를 찬성한 교단의 지역들은 초토화되고

신사참배를 반대한 교단의 지역은 지켜주셨다는 것은..

 

이땅 교회들에 대한 본질적 섭리에 따라

배도하지 않고 구별된 교회에겐 

구원의 섭리로 역사하신 것이고..

 

배도한 교회들에겐

그에 따른 심판의 섭리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본질적인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섭리가 

언약의 당사자인 교회들에게 그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그 자체로 

이스라엘 민족처럼

교회공동체적 개념이 적용됐다면.. 

 

개인적으로 구별될 사람에겐

한국을 떠나라 말씀하시고선

대한민국 전체에 진노를 쏟으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심판 받을 때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6.25 당시 하나님이 나가라고 하셔서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섭리는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끝까지 구별된

경남노회가 있던 그 지역을 보존해 주심으로..

 

언약의 당사자인 

교회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행하신 것입니다. 

 

당시 경남노회는

산사참배 반대만을 가결하고 끝난게 아니라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과는 교제하지 않는 등,

철저히 구별된 실제적 행함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실제적으로 배도에서 구별된 교회에 대해

하나님은 그에 맞는 구원의 섭리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심판을 피한 극소수를 제외하고

민족 전체에 가차없는 진노를 쏟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구별될 사람만 

어떻게든 한국땅을 떠나게 하시고

나라 전체에 일방적 진노를 쏟으셨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대한민국 전체를 그냥 갈아엎으시고도

얼마든 당신의 일을 다시 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도에서 온전히 구별된 교회들을

이렇게 보존하시고 지키신 것은..

 

언약의 당사자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세세한 구원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의 섭리가

주님오심이 임박한 지금 이 시점엔

적용되지 않을까요?

 

아니요, 더 뚜렷하게 적용되어집니다.

 

당시 행하셨던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섭리는

지금 교회들을 향한 섭리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단 차원에서

신사참배보다 더 악독한 배도를 

자발적으로 저지른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보응의 섭리는 당연히 

언약의 당사자인 교회들에 대한 섭리이고..

 

그 언약이 국가적 차원의 확장범위로써 

대한민국 영토내에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 마지막 때

주님 오시는 시점과 정확히 맞물려서..

 

언약 맺은 이땅 교회들에 대한

당신의 섭리를 행하고 계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환란과 맞물리는 이 시점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섭리가

이땅 교회들에게 적용되어진다는 것은..  

 

더욱 세세한 하나님의 섭리가 

교회들에게 적용되어짐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더 큰 심판이 예비된 대한민국땅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섭리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때에 맞는 하나님의 섭리(휴거/환란)에 의한

구원과 심판의 보응입니다.

 

신사참배로 인한 6.25 당시엔

지역교회(교단) 차원의 구별됨이었고..

 

무엇보다 

마지막 때의 시점과 맞물리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도 그에 맞게

심판 속에서 지켜주시는 보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들의 배도는

지역을 초월한 총체적 배도이기 때문에..

 

성도 개개인이 교회가 되어 

하나님앞에 거룩히 구별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심판이 임하기 전,

구별된 주님의 교회(신부)들을  

첫추수(휴거)로 데려가심으로

심판을 피하도록 보응하시는 것이고..

 

배도한 대다수 교회들은 이땅에서

전쟁이 됐든, 다른 재앙이 됐든 

환란 속에서 더 큰 심판의 보응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배도한게 아니라

언약 맺은 교회가 배도했기 때문에 

그런 교회를 벗어나 구별되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이들에겐 

유일한 본질적 행동입니다.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임박했으니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21:20-21)

 

참고로 이 말씀은..

A.D 70년에 이미 성취되었고

대환란에서 또 한번 성취될

중복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그 민족 자체가

하나님께 제사(예배)드리기 위한 

하나의 교회공동체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하고 있는 땅이 곧

하나님께 예배(제사)하는 공간이 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교회당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에워싸이고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예배공동체 자체에 

심판이 내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렇게 되면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듣고 

그 땅에서 나와 구별되는 것 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서 나와 구별된 이들은..

 

예수님과 실제적으로 동행하던

그리스도인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예배공동체 개념을 가진 

유대 민족 땅에서 도망쳐 나와 구별됐다는 것은..

 

언약의 당사자인 교회가 

하나님을 배도했기 때문에

그런 교회를 빠져나와야

하나님앞에 거룩히 구별되어짐을 의미하고..

 

그런 이들을 구원의 섭리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표면적인 상황만 그대로 적용시켜서 

우리도 심판이 임박한 한국땅을 벗어나야만

구별될 수 있다는게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할 때..

성령 안에서 다른 본질적 이해가 필요없는 

표면적 의미만을 담고 있다면

당연히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의 표면적 의미가 아닌

우리에게 적용되는 진짜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를 본질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기본이 되야 합니다. 

 

6.25를 통해서 

언약을 배신한 교회들이 어떻게 심판을 받고 

구별된 교회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우리가 이미 예표로 확인한 것처럼..

 

심판이 일어나는 표면적 공간은 

대한민국땅이 맞지만..

 

하나님과 언약 맺은 주체는 교회이고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배도한 교회를 벗어나 구별되는 것이

우리에게 본질인 것이고

그런 이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은..

 

한국을 나가야 한다는게 아니라

배도한 교회를 떠나 구별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한국이 가라앉고 있는게 아니라

언약 맺은 교회들이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정말

한국을 나가라고 하셨다면

그런 사람들이 몇명이 됐든

그렇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또 다른 섭리의 차원에서 

사람들을 그렇게 인도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현실적 핑계를 대며 불순종한다면

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이땅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 해당되며..

 

그런 음성을 듣지 못해

한국을 나가지 않는 이들이 다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없고

하나님앞에 구별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어느날 누군가에게 

"5에 포함되는 수는 1,2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시고선..

 

왜 1,2가 5에 포함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선 5에 포함되는 수가 1,2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걸 들은 사람들 가운데

그 섭리 안에 거해야 할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걸 들은 사람들 가운데

본인이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굳이 비난하거나 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하는 메신져가

있는 그대로, 받은 그대로 전하면 되는데

말씀의 표면적인 상황을 무리하게 끌어와서 

전해야 할 것 이상을 전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섭리 안에는

5에 포함되는 수인 4,5가 있었고,

이 섭리안에 거하게 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깊은 섭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입으론 4도 5에 포함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강조하는 건 

5에 포함되는 수는 오직 1,2일 뿐이고

1,2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전한다면.. 

이는 매우 엇나간 주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음성을 들려주셨든

꿈이나 환상을 보여주셨든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주신 섭리의 

(극히) 일부일 뿐이지..

 

그것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섭리의

전부로 받아들여선 안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세세한 섭리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음성을 듣고.. 꿈이나 환상을 보고..

내가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 경험안에 말씀을 끼워넣은 후

그 경험을 절대진리화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괜히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

말씀하신게 아닙니다.

(요 20:29)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는게 아니라

하나님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얘기였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그냥 말씀드립니다.

 

작년 1월 중순경 하나님께서 저에게

"너는 첫추수로 휴거될거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음성을 듣기 1년 3개월 전쯤에는

어떤 상황에서 (첫번째) 휴거가 일어날지를

비유적인 꿈으로 보여주신 후.. 

 

휴거에 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고

또 성경으로도 조명해주셨기 때문에..

 

휴거가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음성을 들었다고,

"아~ 난 휴거 확정이구나"라고 생각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 음성이 주님이 주신 음성이라 해도..

 

그 이후 제가 

하나님 경외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아니라 휴거에 꽂혀서 

빗나간 방향으로 나아가 버린다면..

 

에스겔 33장 1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그 음성이 

제 마지막을 보증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그때 주신 하나님 음성이 지금도 유효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더 경외함으로 내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그에 맞게 보응해주시고..

 

어떤 음성을 들었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그에 맞는 보응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본질은..

 

교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우리 개인적 삶에서

육과 영을 온전히 구별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설 수 있느냐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가장 본질적인 구원의 섭리가..

 

거룩하지 못한 것들로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신부들을

알곡으로 구별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지는..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말씀안에서 온전히 분별하여 

그 뜻대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거룩하지 못한 곳에서 나와 

소수의 구별된 공동체로 서거나..

 

아님 혼자서든 둘이서든 가정에서 예배드리며 

온전한 중심으로 주님앞에 구별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거룩한 구별됨과는 전혀 상관없이

어떤 예배당에서 어떤 예배형식으로

공동체 예배를 잘 드리느냐가 아니라..

 

거룩히 구별된 상태에서

어떤 중심으로 예배하는 삶을 사느냐가..

 

내가 영원히 어디서 거하게 될지를 좌우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종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기에

이 본질을 놓치고 있고..

 

마지막까지 이 본질을 중심에 두지 않은 채

스스로 멸망 길로 내달립니다.

 

하지만.. 

현실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우리 육과 영을 거룩히 구별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지키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다시 오실 주님앞에 서게 될 

주님의 신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데살로니가후서 2:13_킹흠역)

 

 

-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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