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 *

성경의 예언과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와 분별, 한반도 정세 관련 자료 총모음!

환란 전 휴거, 왜 감춰졌을까?

댓글 0

* 공지사항(필독) *

2021. 5. 9.

환란 전 휴거, 왜 감춰졌을까?

 

 

 

지난 2년간 채널을 운영해오면서

특정주제로 가장 많이 다뤘던 부분이 바로 

배도와 휴거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휴거에 대해선

너무나 강권적으로 말씀해주시고

또 성경을 통해 조명해 주셨기에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영상들을 통해

휴거가 총 두 번(환란 전, 환란 중)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드렸고..

 

이 두 번의 휴거에 대해

성경에 감춰져 있는 예표가 무엇이었는지도 

충분히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아직 못보신 분들은

아래의 추천영상 링크 클릭!

https://www.youtube.com/watch?v=hVwu4wufU9s&list=PLSji-__ajD7FULtQZxtm5QyXRFLbglGqX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휴거의 예표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에녹'인데..

 

사실 에녹은 그 자체로 

휴거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휴거는 마지막 때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경륜) 중 하나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섭리를

예표하는 에녹이라는 인물에 대해 

성경이 다루고 있는 분량은 매우 적습니다.

 

성경이 에녹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부분은

창세기, 유다서, 히브리서를 비롯하여 총 8구절인데 

그 중 에녹이란 이름만 들어간 구절을 제외하면

6구절이 전부입니다. 

 

여기서 조금 의아한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휴거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데

왜 에녹에 대한 언급이 이렇게 적을까? 

 

물론 '에녹서'라는 외경이 존재하긴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에녹서가 공식적인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에녹이 휴거를 상징하지만

그 언급이 적은 이유는..

 

에녹은 철저히 감춰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인

환란 전 휴거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즉 실제 환란 전 휴거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자체가 철저히 감춰져 있기 때문에..

 

그 환란 전 휴거를 상징하는 에녹에 대한 

언급도 적은 것입니다.

 

그럼 에녹이 왜 환란 전 휴거를 상징할까요?

 

창세기 5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말씀합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그냥 하늘로 데려가셨다는 것입니다.

 

에녹의 이런 동행에 대해

그 앞구절인 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세기 5:22)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단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언급만 있습니다.

 

에녹이 일상의 삶 자체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300년이란 기간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구체적 행위를 하며 동행했냐에 

초점이 맞춰진게 아니라..

 

300년이란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의 삶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에녹의 부분을 보면

특정 기간 속에서의 구체적인 행함을 나타내는게 아니라

그의 일생 자체를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에녹에 대한 언급이 환란 전 일상의 삶를 사는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예표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반면,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창 6:9)

 

에녹처럼 그의 삶 전체를 내포하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 기간과 상황 속에서의 구체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음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4)

 

이처럼 노아는..

구체적인 행함(순종)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했음을 말씀합니다.

 

에녹과 노아가

똑같이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그 동행함에 대한 언급이 다른 이유는..

 

에녹과 노아는 

다른 상황 속에서의 동행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에녹은 환란이 임하기 전 상황을..

노아는 환란 속에서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환란 전 휴거를 의미하는듯한 구절들에 대해선 

하나님께서 철저히 감추어진 의미로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4절에 보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50절에 보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만약 환란에 들어간 상황이라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온다는 의미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미

적그리스도가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음으로써 

환란(타임라인)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 시점에 제3성전도 함께 세워져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환란은 말 그대로 환란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던 일상의 삶을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이를 증명하는 구절이 

그 앞구절인 40-41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24:40-41)

 

여기서 두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하니까

아주 단순하게 50%가 휴거된다 생각하는 분은 

없을거라 믿고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환란에 들어가서도 얼마동안은 

이런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밭에 있다는 의미와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한다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왜 주님이 이렇게 표현하셨는지를..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70이레 중 69이레가 끝나고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됨으로써

벌어질 환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단 9:24-25)

 

그런 예수님께서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을 때

부엌(?)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때

둘 중 하나를 데려가신다고 하신 이유는..

 

이 일들이..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되기 전 

우리가 일상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그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신다는 말은

환란 전, 아직 일상의 삶이 유지되는 그 때에 

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환란 전, 주님이 공중강림하시고

당신앞에 합당한 자를 데려가시는 것인데..

 

이 일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때에 

일어난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환란 전에 일어날 휴거는  

철저히 감추어진 상태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말씀만 놓고 보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맷돌을 갈고 있는데

한 사람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천지가 요동하는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난게 아닙니다.

 

그냥 일상 가운데 이런 일이 

아무도 모르게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 환란 전 휴거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인지를..

 

그래서 성경은 

환란 전 휴거의 예표인 에녹을 언급할 때도 

삶 자체를 의미하는 "300년간 동행"이란 언급만 있지

어떻게 동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사복음서를 비롯한 여러 성경에서

우리가 일상 가운데 어떤 삶을 살면서

구주되신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지를 

충분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란 전에 일어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선

몇몇 구절들에서 내포하고 있을 뿐

더 자세한 언급이 없더라도..

 

이미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이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당한 사람이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환란 전에 일어나는 휴거 사건이

비밀리에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환란이라는 특정 기간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선

성경에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구약인 다니엘서나 에스겔서에도

마지막 7년의 환란 기간을 예언하고 있을 정도로

환란의 기간은 비밀에 부쳐진게 아니라 

어떻게 진행되어지는지를 공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란 중 휴거를 예표하는 노아가

환란 전 휴거를 예표하는 에녹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특정 기간에 어떤 구체적 행함을 했는지가 

예표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환란 속에서

어떤 심판을 행하실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란에서 구원 받게 되는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과 

이방인 무리들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계 7장)

 

이들은 환란 중에 휴거된 자들과

환란에서 순교한 자들 모두를 말씀하는데..

 

환란이라는 특정 기간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구체적인 행함을 드러내야만

구원 받게 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예정해놓으신 마지막 환란 기간은..

 

죄악으로 물든 인류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회복, 

그리고 남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위한

총체적인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요엘서 2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려니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니 

주가 말한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구출이 있으며 

또 주가 부를 남은 자들에게도 구출이 있으리라."

(요엘 2:31-32_킹흠역)

 

마지막 때 하나님이 행하실 섭리는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섭리입니다.

(마 16:27, 계 22:12) 

 

그런 보응의 섭리에 의해

마지막 환란에서 이뤄질 심판과 구원의 섭리를

훨씬 더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환란에 들어갈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9-30)

 

여기서 보면

알곡과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두신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을 환란이 임하기 전

우리 일상의 삶을 사는 때를 

의미한다기보다..

 

마지막 환란에 

함께 거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 구절들에 대해

38절 이하에 보면 

주님이 그 의미를 풀어주시는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마 13:38)

 

그리고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마 13:39)

 

그리고 가라지를 불태우는 작업은

세상끝에 천사들을 보내어 불법한 자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는 일을 의미한다고 말씀하는데.. 

(마 13:42)

 

이는 계시록 21장에서

환란이 끝난 후에 모든 불법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넣는 그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그리고 이런 가라지와 함께 있던 알곡들(천국의 아들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게 된다고 말씀하는데..

(마 13:43)

 

이는 계시록 21장 3절 이하에서

모든 의인들은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면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그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

 

정리해 보면..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자라는 때는 

환란 속에서의 때라는 것을 의미하고.. 

 

여기서 말하는 알곡 추수는

환란 전에 비밀한 섭리에 따라

첫추수(휴거)로 선별되는 

그 알곡 추수를 말하는게 아니라..

 

세상의 종말이 완전히 실현되고 난 후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 이뤄지는 

총체적인 추수 작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2018년 10월 어느날 하나님께서 

휴거는 두 번 일어나고

환란 중 휴거가 "메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환란에 들어갈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래서 성경은 

환란 전 휴거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비밀리에 일어남을 말씀하는 것에 반해..

 

환란 속에서의 상황(심판과 구원)에 대해선 

비교적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도 보면

환란 중에 성도들의 (두번째) 휴거가 일어난 후

불법의 아들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후 2:6-8)

 

이렇게 되면,

마지막 환란이 임박한 때를 사는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섭리는 

환란 전 휴거될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는게 아니라..

 

환란을 맞이할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란 전에 휴거될 자들은

삶 자체를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 시점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

이미 가려져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녹처럼 삶 자체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주님앞에 그 합당함을 증명해보였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대적인 배도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그런 배도한 교회를 나와 구별되어..

 

개인적 삶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룩함을 지켜내는 자들이 

첫추수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거룩히 구별된 (극)소수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시각에 

비밀리에 첫추수로 휴거되어 

주님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누가 될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그래서 환란이 임박한 지금 시점에 

하나님이 초점을 맞추고 계시는 섭리는

말씀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환란 속에 들어갈 자들에 대한 섭리이고..

  

환란 속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가늠하는 일들이

환란이 임박한 지금부터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란에 남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지금부터 어떤 믿음으로 환란을 이겨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ㅋㄹㄴ라고 하는 

전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게 하시고..

 

ㅇㅈㅈ를 변형시키는 ㅂㅅ을 

강제적으로 접종케 하려는 이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사회로 이끌어갈지를

지금부터 드러나게 하심으로써..

 

환란 속에 거해야 할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아직 그 환란이 임하지 않았고

첫추수 휴거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엔

하나님께서 그에 맞는 섭리도 병행하십니다.

 

그래서 저같은 경우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고 열어주셔서 전하게 하신 부분이 바로 

휴거에 대한 부분과 배도에서 구별되는 문제였습니다.

 

즉 휴거가 언제 몇번 일어남으로 인해

하나님의 섭리도 그에 맞게 일어나게 됨을

전하게 하신 것이고..

 

환란이 임하지 않은 지금,

왜 배도에서 거룩히 구별되야 하는지를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에겐 철저히 환란 전에 구별되어

하나님앞에 알곡으로 첫추수될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경륜(섭리)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환란이 임박한 지금,

하나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역사하시는 섭리는

환란 속 상황에 놓이게 될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환란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마태복음 24장을 놓고 보면

4절부터 31절까지가 환란 속에서 차례로 벌어질 일들입니다.

 

환란 속에서 여러 재난들이 시작이 되고 

환란 중간쯤에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 비로소

끝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그런데 환란 중에 전파되는 이 복음에 대해

계시록 14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거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선포할 영존하는 복음을 가졌더라."

(요한계시록 14:6_킹흠역)

 

여기서 보면 

천사가 직접 복음을 선포하는 것처럼 나와 있는데

실상은 사람들을 통해 선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9장 15절에 보면.. 

천사가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

이라고 나오지만..

 

실제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 이들은 

천사가 아닌 2만만(2억)의 군대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계 9:16-17) 

 

즉 천사가 사람에게 영적 능력을 더해줌으로써

환란 속에서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전해지는 

복음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분들은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복음과

계시록에서 말하는 복음이 

다르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환란 중에 전해지고 완성되는 복음이기에

저는 같은 복음으로 봅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분들은

이런 전무후무한 환란 속에서

사람을 통해 복음이 전해질 수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이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전무후무한 환란일지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대로 

반드시 진행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경륜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마지막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이

환란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들 가운데 세계 각지에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이 

그 중추적인 사명을 감당할 것으로 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부터 

교회가 언약의 당사자로써

국가적 차원의 언약을 맺고..

 

국가적 차원에서 마지막 때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언약을 파기해 버림으로 

국가적 차원의 언약은 파기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이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명을 이어가기 위한

언약의 기반을 완전히 거두진 않으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때에 맞는 하나님의 섭리는

환란 속에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마지막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것이..

 

감추어진 (환란 전) 휴거의 섭리와는 별개로 

환란 속에서 행하실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배도함으로 국가적 언약이 파기된 상태에서..

 

개별적 차원의 교회가 그루터기(남은 자)가 되어

환란 속에서 그 사명의 바톤을 이어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섭리 중 하나가 바로

"사명의 바톤터치”인데..

 

마지막 환란 속에서 이들이

복음 완성을 위한 마지막 주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휴거의 또 다른 예표라 할 수 있는 엘리야와 

엘리야의 사명을 이어받은 엘리사가 그 예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래의 링크영상을 클릭해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wERHj843iRM 

 

여기서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공평하신 분이라면..

환란 전에 복음전파가 다 마무리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환란 전에 휴거될 기회를 

주셔야 하는게 맞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우리 인간이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80평생을 도박과 불륜을 저지르고

아내와 자식들을 괴롭히면서 

더 나아가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며 살아온

B라는 노인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병들어 죽기 며칠 전에

자기가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죽게 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살아온 시절 죄가 아무리 많았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다면

그는 우편강도처럼 주님 나라에 거하게 됩니다.

 

반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착한 심성을 가진 

18살 C군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죽게 됩니다.

 

비록 18년간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지옥에 가게 됩니다. 

 

간단한 예를 들은거지만 

우리 현실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예입니다.

 

이 두 케이스를

사람의 기준과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이 전혀 공평해보이지 않습니다.

 

80평생 타락한 삶을 실컷 살다가 

막판에 구원받은 B라는 노인에겐 

너무나 과도한 하나님의 자비가 허용된 것 같지만..

 

18살 C라는 학생에겐

하나님의 자비가 일절 허용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기준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살펴보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던 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모세나 사무엘같은 선지자는

자기 년수가 다해서 하나님 나라로 갔지만..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그냥 하늘로 데려가십니다.

 

반면 이사야는

자기 년수가 다해서 죽은 것도 아니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데려가신 것도 아니요,

톱으로 몸이 썰리는 끔찍한 죽음으로 순교를 당합니다.

(히 11:37)

 

성경 속에서 이사야가 

다른 선지자보다 뭘 특별히 잘못해서

그런 순교를 당한게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는 그냥 데려가시고

이사야는 끔찍한 순교를 당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헤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한

마지막 환란 심판을 계획해 놓으셨지만..

 

그 속에서 당신의 뜻을 받들어 

마지막 사명을 감당할 이들과 

그들을 향한 구원의 계획까지

세세하게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환란에 남겨질 크리스찬들이 모두 다

세상과 벗하며 살던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신앙생활 하고 사역을 하며 

일생을 보낸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적인 모양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고..

 

그렇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만이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즉 첫추수로 휴거되어 주님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은 더욱 세세하게 당신의 일을 행하실 것이고

남은 자들을 통해 마지막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환란은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 심판처럼

단기간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심판을 쏟으시고 끝내는 차원이 아닙니다.

 

전무후무한 환란이지만 

왜 하나님이 7년이라는 긴 기간을 

환란의 때로 정해놓으셨는지..

 

그리고 왜 예수님의 초림의 때보다

재림의 때에 관한 예언이 더 많은지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이 기간을 전후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구원과 심판의 섭리가

세세하게 진행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다 끝나고 나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우리앞에 도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백성과 거룩한 도성에 

일흔(70) 이레의 기한을 정하셨다.

이 기간이 지나가야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 거룩하게 구별하실 것이다."

(다니엘 9:24_표준새번역)

 

그래서 앞서 잠깐 얘기한 것처럼..

 

ㅋㄹㄴ 사태를 계기로 

곧 일어날 환란 속에서 어떤 일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인지에 대해

이미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심으로..

 

그 상황을 본격적으로 맞이해야 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부터 계속 깨닫게 하시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다고 하면서도

지금 서서히 드러나는 이 환란의 전조가 

어떤 상황으로 이어지게 될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렇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실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환란에 그대로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 정확한 날과 시는 알 수 없으나

거룩히 구별되어 주님과 동행하던 이들에 대한 

감추어진 (휴거) 섭리가 이행되고 난 후..

 

이제 그 대대적인 환란의 타이밍이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휴거가 언제 일어날지..

마지막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무리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

그분과 실제적으로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거에 대해 이런 메세지를 전하는 것도

단지 휴거에 대한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에 맞는 섭리를 온전히 헤아려서

우리의 초점을 더욱 주님께 맞추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16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육안으로 보이는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적인 현실이 아니라

시대적 현실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런 시대적 현실을 말씀 안에서 잘 분별해야 

때에 맞는 하나님의 섭리(경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동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휴거되기 위해.. 휴거에 꽂혀서.. 

이런저런 열심을 내며 종교행위를 하는게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심으로 친히 나를 살리신 

우리 주님만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 되고..

 

그런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중심을 속속들이 살피시는 우리 주님은

누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지를 알고 계시기에

그런 사람들을 데리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치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40)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6)

 

 

- 엘샤다이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