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주님바라보며 2012. 5. 7. 23:06

암묵지

실험실은 과학 지식이 생산되는 장소인 동시에 과학자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자가 되기 원하는 학생들은 대학교의 관련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는데, 보통 이때부터 수년간의 실험실 생활이 시작된다. 실험실이라는 공간에서 대학원생들은 실제 연구에 참여하면서, 교과서나 강의를 통해 배울 수 없었던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며 과학자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교과서나 강의를 통해 배울 수 없는 지식과 기술이란 무엇일까? 실험실에 갓 들어간 학생은 논문에 제시된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실험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대한 책만 읽으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실제 실험의 과정은 교과서나 논문의 학습을 통해 배우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식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 외에도 암묵지(tacit knowledge)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빙하의 아랫부분처럼, 암묵지는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뜻한다.

 

 

책이나 논문의 학습이 아닌 과학적 실행으로 체득되는 암묵지

암묵지란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명료하게 공식화되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뜻한다. 정형화되고 문자화된 지식인 형식지와 달리, 암묵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책이나 논문을 통해 습득될 수 없다. 실험 계획을 세우는 방법부터 실험 장치를 설치하고 실험 기구를 다루는 방법, 실제 실험 과정에서 시약을 혼합하는 시점이나 속도 등 다양한 조건을 조절하거나 중간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노하우, 실험 데이터를 취사선택하여 해석하고 표나 그래프와 같은 시각적 자료로 전환하는 작업 등, 교과서나 강의에서는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실험에 성공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정보와 기술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암묵지는 실험실에서 동료들과 생활하면서 실제 실행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관찰하거나 직접 수행하는 경험을 통해 체득된다. 우리나라 실험실에서는 선배와 후배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중요한데, 이 때 전수되는 대부분의 지식은 책이나 논문에는 담겨있지 않은 암묵지인 것이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려면,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는 것보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전거 타기를 경험해 봐야 한다. <출처: gettyimages>

 

 

과학적 발견은 개인적, 암묵적 지식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암묵지 개념은 헝가리 출신의 물리화학자이자 철학자인 폴라니(Michael Polanyi, 1891~1976)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폴라니는 과학 교재나 이론에 담겨 있는 명시적인 지식 이외에, 과학자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는 개인적이고 암묵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칭했다.

 

헝가리 출신의 물리화학자이자 철학자인 폴라니는 과학적 발견에 있어서 과학 이론에 담겨 있는 명시적인 지식 외에, 과학자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는 개인적이고 암묵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암묵지라 칭했다.


폴라니에 의하면,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은 탐침으로 어두운 동굴을 탐사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동굴이 인식의 초점(목표)이라면, 우리는 동굴의 여러 부분을 탐침 끝으로 더듬어 탐사한다. 이 때, 우리는 탐침을 잡고 있는 손과 근육의 느낌이라는 보조적 인식에 의존해서 동굴이라는 대상을 알게 된다. 즉, 앎의 과정은 보조적인 세부 내용들을 핵심 목표에 통합하여 전체의 패턴과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중심에 대한 보조 부분의 관계는 서로를 통합하려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형성된다. 과학적 발견은 이러한 암묵적 통합을 이루어내는 개인적 인식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폴라니의 설명에서, 지식은 주체와 대상이 명확히 분리된 채 주체가 대상을 수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대상을 신체 내부로 통합하거나 대상을 포함할 수 있도록 신체를 확장하는 능동적인 참여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마치 자전거를 타는 법을 한 번 배우면 세월이 흘러도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처럼, 과학자는 자신의 감각과 기술을 활용하여 과학적 발견에 이르는 과정을 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 바로 이러한 개인적 지식(personal knowledge)과 암묵적인 과정에 의존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라 설명했다.

 

 

암묵지는 어떻게 전해질 수 있을까?

이렇게 과학 지식에 있어서 암묵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실험이 복제되거나 지식이 전수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학기술학자인 콜린스(Harry M. Collins, 1943~)는 1970년대 초 TEA 레이저(Transversely Excited Atmospheric Pressure CO2 Laser) 기술의 전파 과정을 연구하면서, 과학 지식이 전달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TEA 레이저를 처음으로 개발한 캐나다 국방 연구 실험실은 다른 연구팀에서도 이를 만들 수 있도록 그 설계도를 공개했고, 이후 여러 연구소에서 TEA 레이저를 복제하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구팀들 중에 공식적인 문서에만 의존해서 레이저의 조립에 성공한 경우는 없었으며, 전화 통화나 직접적인 방문을 통해 캐나다 국방 연구 실험실과 비공식적인 “접촉”을 가진 연구팀만이 TEA 레이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비교적 간단한 TEA 레이저를 성공적으로 복제하기 위해서도 문자화된 정보뿐 아니라 사적이고 장인적인 지식인 암묵지의 전승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험실에서 과학자는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암묵지를 체득하게 된다. <출처: gettyimages>

 

이처럼, 암묵지는 문서를 통해 학습될 수 없으며 접촉을 통해서만 전수될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다. 콜린스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다른 과학자들에게 말해지지 않거나 과학 학술지의 공간상 싣기 어려운 세부 내용들도 암묵지에 해당하지만, 때로는 실험에 성공한 과학자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암묵지도 존재한다. 어떤 암묵지는 해당 분야의 과학이 발전하면 인식 가능해지고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또다시 새로운 실험이 실행되면서 그와 관련된 기술의 일부는 항상 암묵적 지식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암묵지 때문에 특정한 실험에 성공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실험에 숙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예상하기도 힘들다.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암묵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내심과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콜린스는 새로운 실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암묵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암묵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나 노력을 인식하는 것이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의 전수를 보다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작용


암묵지는 과학 지식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지식 영역에 대한 연구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직에서의 지식 공유와 증대에 관심을 둔 경영학 분야에서는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일본의 경영학자인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郎)에 따르면, 암묵지는 크게 기술적 기능(technical skill)과 인지적 기능(cognitive skill)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적 기능은 장인의 노하우와 같이 몸에 체화된 전문성을 의미하는데,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얻어진다. 인지적 기능은 사고의 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이나 조직의 관행과 같이 개인의 정신적 틀로 기능하는 특정한 가정이나 관점, 사고방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에서의 암묵지는 주로 현장의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쌓인 경험적 지식이나 '육감'이다. 이러한 개인적 지식이 조직 차원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지식으로 변환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암묵지는 언어와 문서, 몸짓 등 가능한 모든 매체를 통해 전달, 공유되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언어의 형태로 명시화(articulation)됨으로써 형식지로 변환된다. 또한, 형식지의 의미를 내면화하고 현실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암묵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 순환작용을 통해 조직의 지식은 증대된다. 노나카는 이러한 지식창조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조직의 혁신을 이루는 데 중요하다고 보았고, 이후 암묵지는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는 경영학의 한 분야에서 핵심 이슈가 되었다.

 

형식지와 암묵지의 상호작용. 지식 창조의 기본은 암묵지와 형식지의 순환이다. 암묵지에서 형식지로의 변환과정은 표출화(externalization), 형식지에서 암묵지로의 변환과정은 내면화(internalization)라고 할 수 있다. 표출화의 과정에는 메타포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내면화의 과정에는 체험이 중요하다.
 

 

 

 

참고문헌: Collins, H. M., [The TEA Set: Tacit Knowledge and Scientific Networks], Science Studies, Vol. 4, 1974, pp. 165~186; Nonaka, Ikujiro, Managing Organizational Knowledge Creation, 김형동 옮김, [지식창조의 경영], 21세기북스, 1995; Polanyi, M., Personal Knowledge: Towards a Post-critical Philosophy, Chicago, IL: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8; 마이클 폴라니 저, 표재명, 김봉미 옮김, [개인적 지식: 후기비판적 철학을 향하여], 아카넷, 2001.

 

 

 

장하원 /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기술학 박사 과정.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기술학(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udies, STS) 박사 과정. 현재 홍성욱 교수와 함께 하는 STS Collective에 참여하고 있다.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짧은 지혜라 열심히 읽어도 잘 이해가 안가는게 많았어요. 계속 읽어봐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