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이야기

프로메테우스 2008. 5. 28. 23:32
어렴푸시 듬성듬성 당아래 가족분들 소식은 접하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 하시지요?
이해도 어느새 1달 남짓 밖에 안 남았습니다. 명퇴하면 꼭 하고픈 일 두가지를 실천 해 보겠다고 설치던 것이 바로 올 초였느데...., 결국 두가지중 한가지만 실천하고(삭발과 지하철 역에서 세상 모르고 잠자기중 삭발만 실천했음. 앞으론 취업 인터뷰도 필요없고 이발비도 아끼기 위해 현재도 삭발하고 있음) 말았지만.
전 지금 보스턴 근교 콩코드란 동네에 있는 치기공소에서 주 7일,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보스턴 근교는 교육도시라서 그런지 돈좀 있다는 넘덜이 많이 삽니다. 평균 연수입이 10만불이 넘는 전형적인 중산층 백인타운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기공 수가도 높고 보수도 초보자 수준으론 잘 받고 있습니다. 주급 1천불 정도로요....
그리고 제가 현재 숙식하고 있는 동네는 서드베리라는 동네로 옛날 전설적 강타자 베이브 루스가 살았던 곳으로 가까이에 피아노를 던졌다는 연못이 있습니다.
여기 고등학교 축구경기(미식축구가 아닌 사커)를 구경간 적이 있습니다. 여긴 제 멋대로 룰을 적용 합니다. 수시로 선수를 교체 가능 하고요, 어떤 때는 심판 둘이 경기 진행을 하기도 하고요, 승부차기에선 한팀에서 골키퍼 둘이 번갈아 가면서 보기도 하고요... 좌우지당간에 꼴리는 대로 입니다. 어째든 너무나 좋은 환경에 혀가 내 둘려 집니다. 사립 고등학교가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 보다 낫고, 링컨-서드베리 고등학교(공립)는 잔디 축구장이 4면, 미식축구장이 1면, 야구장이 1면, 그리고 초현대식 건물이 즐비...(학생은 몇백명에), 이건 한국 구가대표 훈련장 보다 나아 보입니다. 한마디로 쓰펄 소리가 절로 납니다. 한국 아그덜 생각하면. 허긴 뉴욕 시티만 해도 철조망 안에 운동장도 없이 컨크리트 바닥에... 개판 이지만.
아마도 이 미국넘덜 빠르면 2010년 아니면 그 다음해엔 월드컵 축구 우승 할 겁니다. 중남미계 넘덜은 허구헌날 축구를 하고 이 백인 넘덜도 이젠 축구를 즐기니, 게다가 시골 동네도 잔디구장 두세개는 기본으로 있으니. 개자석들 인디안(원주민)들 동물 사냥하듯 내 몰고 폼잡는 꼴이란..
각설하고, 아직은 처자식은 뉴욕에 저는 보스턴 근교에서 서로 또다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팔자가 아직은 같이 사는것이 시기상조인 듯 합니다.
새벽 일찍 기공소장과 같이 출근하고(소장집에서 기거하고 있음; 7시정도 기공소 도착) 저녁 10~11시 사이 퇴근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아직 옛날 전화모뎀 방식으로 느리고 또 컴퓨터가 영문전용으로 이멜 조차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답답하기 이를데가 없지요. 멜도 못쓰고 수신도 확인 못하고..., 덕분에 은행 및 카드 확인하고 이체를 할 수 없어 카드 연체자가 되었던 적이 최근에 있섰습니다.
지금은 그동안 휴일도 없이 일 한 노고로 땡스기빙 특별 휴가를 받아 뉴욕 집에서 이 글을 띄웁니다. 우리 철없는 큰넘 지윤이는 아빠 가지말고 2년 있다가 가라 합니다. 그리고 여기 뉴욕보단 보스턴 쪽이 낫고 정통 영어를 배울 수 있다 하니까 이넘 왈 "그럼 아빠가 배워서 날 가르쳐 줘" 합니다. 이넘 그래도 미국은 뉴욕이 고향이라 생각 되는지, 그리고 여기 분위기가 유색인종 중심이라 그런지 계속 뉴욕에서 살자 조릅니다. 허긴 저도 거기로 이사가면 그 수준에 못미쳐 서로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걱정도 됩니다. 어짜피 그쪽에서 터전을 잡아야 하지만..., 둘째넘 준명이도 말로 표현은 못 하지만 좋은가 봅니다 게속 붙어 있으려 하고 같이 놀아달라 몸짓으로 조릅니다. 애엄만 말할것도 없이 좋아하고 없는 솜씨지만 반찬도 마련하고...
늘 일에 파묻혀 있다 보니 짧은 기간이지만 몸에 배었나 봅니다. 노는 것이 더 불편해 졌네요. 어쩜 3년정도 고생하면 제 비지니스를 함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원 바랍니다.
참 오늘은 안골 할머니 외손녀(봉희 아줌마 막내딸) 선경이를 만나 봤습니다. 미국생활 5년인가 6년인가에 고생해서 이젠 완전히 자리잡고 가족과 같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롱 아일랜드 좋은 동네에서.., 걔도 역시 한국인이라(허긴 모든 민족이 그렇지만) 애들 교육땜에 특히 신경 쓴 것 같습니다.
그럼 담에 크리스마스 새해 인사로 다시 소식 전할까 합니다. 건강하시고요 남은기간에 못다한 일 성취 하십시오.
출처 : 당아래사람들
글쓴이 : 프로메테우스 원글보기
메모 :

 
 
 

좌충우돌 이야기

프로메테우스 2008. 5. 28. 23:29
막연한 포부만을 갖고, "가족과 살게 된다면 뭘 못하랴..." 지금 생각하면 똥배장으로 디민 미국생활도 벌써 3개월을 넘겼습니다. '야 그래도 준비한 것은 많으니 뭐 하나 걸리겠지' 하면서 도착한 그 주말 부터 신문을 뒤지기 시작 했습니다. 오호라 여기 '치기공 배우면서 일할분' 찾네. 올커니 하면서 전활 했는데 이넘(아마도 기공소장 인듯) 신분 과 나이를 묻더군요. 그래 '방문 신분에 나이는 사십대 중반....' 아 근데 이넘이 왈 '그 나이면 노안이 오는 나이라 않된다'나요. 허참 기가막혀 전 전혀 안그런데 노안이라니.... 햐 정말 심각한데, 다시한번 곰곰히 되씹어 보니 정말 저도 신문을 멀리 보고 있더라고요. 어메메, 그 허탈감. 그리고 야 이거 취직은 다 글렀나보다...
몇일을 충격(?)속에 지냈습니다. 다시 맘 고쳐먹고 다음주 신문에 난 이발소. 그 사장님 왈 경력이 일천하고 다양한 커트가 않되서 채용할 수 없다고...
주변 이발소 보니까 별 볼일 없은 실력으로도 밥 먹던데.., 제길
세탁소는 카운터 및 딜리버리를 많이 찾으나 아직은 영어가 짧고, 정식 운전면허 없어 딜리버리도 힘들고, spotting을 배웠는데 스파터는 자리가 없고...
그럭저럭 지내면서 이력서는 여기저기 많이 이멜로 보냈습니다 만, 미국사회가 경력중시 사회다 보니 일반회사에선 전화가 없고 그나마 경리부서 또는 무역부서가 있는데서 두세군데 전화가 왔섰지만 역시 신분문제로 탈락. 에그그 은행다니기 싫어 때려 쳤는데 결국은 은행뿐이 없구나 생각에 한국계 은행은 모조리 이메일 접수...
이력서만 보고 신분을 짐작 했는지 역시 전화 무, 그나마 bnb bank에선 신분문제로 아웃. 천상 형에게 매달려 우리아메리카를 쑤셔 스폰서 내락까지 받았으나 2006년 비자쿼터 소진으로 물거품. 애엄만 좋다가 헛물키고 한동안 실망하고...., 쿼터 소진 이후로는 스폰서 찾는 것도 중단하고 칩거...
그 와중에 조그만 집 구입 클로징 하고 돈 아낀다고 미니밴으로 이사를 혼자 하다 너무 힘들어 길거리 스패니쉬를 불러 완결하고, 애엄마 카펫바닥 싫다 우겨 카펫 걷어내고 하드우드 마루를 사다가(홈 디포 직원이 마루 300스퀘어피트를 당장 내놓라 하니 날 미친넘 처다보듯 했음, 간신히 재고를 무조건 줏서와서) 3일에 걸쳐 혼자 시공하느라고 허리가 부러지는 고통도 맛봤습니다. 미국 땅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목수도 있었는데, 함 해보고 나서는 못수 직업은 안 갖기로 했습니다.
업친데 덥친다고 미국생활 돈좀 아낀다고 2층 세를 놓을 수 있는 집을 구입 했는데, 이 이 세입자 넘이 나가서(사실 딱한 사정으로 중간에 나감), 세줄 2층 청소 페인트 칠, 씽크대가 더러워 씽크 바꿔주고 플러밍 까지...
에고 진짜 노안뿐 아니고 기력도 떨어지는 나인가 보다(죄송) 하고 인젠 직업의 범위를 좁혀 이발사를 하던지 치기공사를 하던지 둘중에 하나로 결판을 내야 겠다 생각하고 다시 본격적으로 직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천우신조로 조상님이 보우하사 치기공소를 운영하는 한국 분을 알게되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공소는 뉴욕이 아니고 보스턴 근교 콩코드란 곳인데 그래도 일 할 기회를 준다 하는 사람은 그분 밖에 없으니 기러기 정리 3개월 만에 다시 기러기 하기로 했습니다. 신분 유지를 위해 애엄마는 뉴욕에서 당분간 학교를 다니면서 사정을 보기로 했고요 저는 바로 직업전선으로 뛰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안이 오는 나이에 일을 새로이 시작 할 수 있다는게, 그것도 일을 익히면 평생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요 조상님들의 음덕이라 생각됩니다.
막상 보스턴으로 일하러 혼자만 떨어지자니 처자식 볼때 가슴이 좀 아픔니다, 큰넘은 큰넘대로 동생과 엄마하고만 살 때는 엄마가 작은넘에게만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어 서럼을 받다가 아빠가 오니까 대화상대도 생겨 생기가 있었는데 실망하는 눈치고, 작은 넘은 그넘대로 아빠노릇을 하다가 다시 떨어뜨리려니 가슴 아프고(이넘 첨엔 아빠를 피하더니 몇칠 지나서 겨우 친해졌는데), 애엄만 애엄마대로 혼자서 힘들게 살다 남편에게 기대어 좀 여유가 있으려나 했다가 다시 떨어지려니 내색은 안하지만 좀 서러운가 봅니다. 그 와중에 최근 뉴욕일원에 비가 많이 내려 85년된 이집 주변에 방수공사를 많이 했는데도 지하실에 물이 조금씩 차기 시작하니, 저 역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네요. 이제 낼이면 다시 떨어져야 합니다. 누구 말대로 태평양을 넘고 미 대륙을 넘어서 떨어져 있었는데 몇백킬로 정도 뭘 그리 마음아파 하냐고..., 그래도 자동차로 허벌나게 쉬지안고 쏴야 3시간 반 이상 걸리고 휴게소 두군데 정도 들리면 4시간 이상의 거리니 쉽지 않지요.
창박에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물새는 것도 걱정되고, 아엄마 학교간사이 빨래해서 건조기에 넣고 그 시간 이용 넉두리를 해 봤습니다. 당아래 가족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요, 행복하세요. 그리고 姪行(질항;조카항열)여러분 사회 진출하신 분들은 능력 발휘 하시고 학생 분들은 학업 성취하세요!!!
참 연락처는요
뉴욕 : 1-718-961-3247(집) 주소 : 146-48 23rd Ave, Whitestone NY 11357
1-718-359-3454(애엄마 핸드폰)
1-347-204-7235(제 핸드폰)
콩코드 기공소 주소 290 Baker Ave RM# 105, Concord MA 01742
임시숙소 33 Brimstone Lane, Sudbury MA 01776
출처 : 당아래사람들
글쓴이 : 프로메테우스 원글보기
메모 :

 
 
 

좌충우돌 이야기

프로메테우스 2008. 5. 28. 23:28
저 임희입니다.
지난 2월말경 16년 반을 다니던 국민은행을 고민끝에 그만두고(사실은 그간 취급한 대출의 부실율이 만만치도 않아 언제 불똥이 튕길줄로 모르고...) 새 인생에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분들 중에 금융기관에 재직하시거나 하셨던 분들이 많으시지만 사실 금융기관에 재직한 경력을 갖고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전혀요...
그냥 은행내에서 풍족하지는 않지만 적지않은 급여, 가끔 업체 사장 불러놓고 우월적 지위에서의 강박.. 등등 폼잡다가 막상 여러가지를 실제로 부딪혀 보니 사소한 일에서부터 브레이크가 걸리더라구요..., 부실업체를 살리냐 마느냐 하는 고민끝에 어금니가 빠져 나가는 고통으로 제명대로 살아 보려고 그만 두었는데, 또 역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더군요.
밥만 먹으면 된다 하는 심정으로 나이가 먹어도 내 수족만 놀리면 먹고살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얼까?? 생각끝에 내린 기술교육이 1순위 자동차 정비, 2순위 용접, 3순위 보일러, 4순위 제과,제빵, 5순위 한식조리 등등을 계획하고 추가로 봉사 및 가족만족용으로 이(미)용을 추진하다가 노동부 이직확인서 지연 등으로 다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이발 3개월, 세탁 2개월 덧붙여 치기공 1개월, 중장비 등을 배워 봤습니다. 정말 하나같이 쉬운일이 없더군요. 그중 겨우 이발 기능사 시험에 도전 했다가 면도 과정에서 실수로 그나마 물거너간 것 같습니다. 마음만 바빠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려니 나중엔 지쳐서 모든 것이 귀찮아 지기만 하고..
아시다 시피 제 둘째 딸년을 위해 함 미국맛을 보고 나서 기러기 생활을 시작하고, 그 맛본 세월이 누적될 때 마다 점점 나는 이나라 보단 살기 힘들어도 그 넘을 위해선 거기서 사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 하게 되더군요. 그걸 실천하기 위해 그만두고 또 다른 밥벌이를 위해 발버둥 쳐 보는데..
결국 2년전 목조건축 목수일을 시작으로 병아리감별사, 중장비 운전, 이발. 세탁 치기공까지
배운다고 해 봤지만 이거다 하는 직종이 없더라구요..
결국 결론은 없다! 무작정 들어가서 함 다시 백지상태에 부딪혀 보자..., 그리 결정 했습니다.
퇴직 후 준비과정에서 모든일이 안될때 마다 왜그리 서러운지??..., 내나라에서, 내나라 사람들과, 내나라 말로 애야기 해도 의사소통이 왜 그리 않되는지, 차라리 남의나라에서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이 않되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아, 결국은 도피를 하기로 했습니다, 6월 22일에요.
뭐 좋지도 못한일로 미리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성질의 것도 아니어서 미리 말씀도 못 드렸고요 가족 분들께 일일이 일사 여쭙지도 못합니다. 용서 하시고요, 이 카페를 통해서 자주 인사 드리겠습니다.
모두들 하시는 일 잘 되시고요, 건강하시고요, 우리 당질님들 공부 열심히 하시고 모두가 바라는 학교에 진학 하시고 추후 바라시는 직업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미국내 연락처
주소 : 3425 150st 1st flr., flushing ny 11354 usa(조만간 이사 예정임; why 임차료 줄여야 하니까)
전화번호 : 1-718-359-3454

아~~~ 참, 우리카페 비회원에게도 글들이 공개 되나요? 만약 회원에게만 공개 된다면 자료를 하나 남기고 싶은데..,뭔고 하면은요... 무료강의 소스 이거든요(강의내용 무지 많음;어학, 정보통신, 교양강의, 전공강의 등)...
운영자님 답 주세용 비공개면 자료실로 올리겠습니다.
출처 : 당아래사람들
글쓴이 : 프로메테우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