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19 2022년 07월

19

내가 만난 세상

라디오 쇼 진행자 피터 트립은 호기심 많은 디제이였습니다. 1959년, 서른두 살의 트립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싶은 욕심으로 8일 동안 잠을 자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이트 스쿨》이라는 책에는 그의 기행이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66~67). (전략) 며칠 더 잠을 못 잔 트립은 몽롱한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튜디오에 생쥐들이 돌아다니네, 신발에는 거미가 가득하고, 책상은 불에 타고 있어"라며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그즈음 한 의사가 와서 그를 검진했죠. 그런데 트립은 이 의사가 실제로는 자신을 땅에 묻으러 온 장의사라고 확신한 나머지, 반나체인 채로 스튜디오 룸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습니다. 자청한 잠 안 자기 고생이 끝나갈 무렵, 기진맥진한 이 라디오 쇼 진행자는 자신..

17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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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세상 인간의 역할

나는 자주 미래의 모습들을 가지고 장난을 쳤고, 내게 배정되어 있을 역할들, 시인이나 어쩌면 예언자, 아니면 화가 등의 역할들을 꿈꾸었다.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문학작품을 쓰거나 설교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그런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곁다리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안인희 옮김, 문학동네 2013, 154) 나 자신에게로?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누구지? 나는 언제 인간의 역할을 하게 되지?

14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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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3 신화가 인류의 기원과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는 세계관과 그렇지 않다는 세계관을 서로 화해시킬 수 있을까? 솔직하게, 그리고 짧게 대답하자면, 아니다. 둘은 화해시킬 수 없다. 둘의 대립은 과학과 종교, 경험주의적 태도와 초자연적 존재를 믿는 태도의 차이를 정의한다.(17) 이것이 전제다. 호모 사피엔스를 이 수준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늘어난 장기 기억, 특히 꺼내어 작업 기억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직전과 이후에 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복잡한 문화의 문턱까지 밀고 간..

댓글 책 이야기 2022. 7. 14.

12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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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야기 유선혜 「아빠가 빠진 자리」

아빠가 빠진 자리 유선혜 흔들리는 이는 밤사이 빠졌고 아침이 되면 그 이를 뱉어냈다. 세 번 나는 이는 없다는 사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젖니를 모아두던 상자가 있었다. 밤마다 상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새 이가 영원하라고 빌었다. 어린것들은 하얄수록 쉽게 변하는 법이다. 이가 모두 자라자 더는 아빠와 함께 잘 수 없었다. 사전에 의하면 충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내 입으로 처음 세균을 옮긴 사람을 찾아낸 뒤, 온통 책임지라고 하고 싶었다. 이를 닦으면 거품이 흘러나왔고 입을 헹구면 끝도 없이 구역질이 났다. 치과에 가는 날들이 늘었다. 아빠는 돈을 냈으며, 썩어버린 이를 고쳐주었고, 나는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빠를 상자 안의 젖니처럼 그렇게 두 번째 아빠가 생기고 세 번째 아..

댓글 詩 이야기 2022. 7. 12.

07 2022년 07월

07

내가 만난 세상 아내가 나를 부르는 말

내 아내는 나를 수십 년간 "봐요!"라고 불렀다. 그게 못마땅할 때도 있었나? 그건 아니었다. 무덤덤하거나 고맙게 여겼다. 그렇게 부르는 마음을 헤아리곤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였더라? "할아버지!" 더러 그렇게 부르더니 이제 그렇게 확정되었다. 그건 이렇게 둘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곁에 있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둘이 있을 때도 "할아버지!"이고 자다가 잠꼬대를 해서 깨워줄 때도 "할아버지!"다. 나는 "여보!"하고 부르는데도 내내 "봐요!" 하다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바라보고 있다. 여건이 세상에서 가장 좋지 못한 집에 시집온 데다가 내가 못할 짓도 많이 하고 해서 고생이란 고생은 도맡아놓고 했는데도 시종일관 "봐요!" 하다가 마침내 "할아버지!"하고 부르는 걸 인간이 어..

05 2022년 07월

05

내가 만난 세상 나의 독자 "따뜻한"

따뜻한 2022.07.04 21:06 얼마 만에 온 걸까요. 십 년도 넘었나 봅니다. 그 시절의 제 목소리는 제법 날이 서 있고, 결기도 느껴집니다. 젊은 제가 나이 든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 힘으로 오늘 1학기 말 교육과정 평가회 3회 차 중에서 첫 날을 이끌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학교교육과정에 대한 그 시절 그 생각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셈입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생각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제 생각이 논리와 명분이 제대로 담긴 글과 실천으로 펼쳐진 이곳이 참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존경스럽고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분발했고,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 말이 남아있는 이 블로그에 오래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선생님의 최근 글을 읽습니다. 쓸쓸합니다. 거..

04 2022년 07월

04

詩 이야기 김보나 「러시아 거리」

러시아 거리 김보나 눈이 내리는 오후, 나는 한 남자와 샤갈의 전시회에 갔다. 젊은 샤갈은 그림 안에서 아내를 안고 마을 위를 비스듬하게 날았다. 평생 사랑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는 샤갈의 해설을 보며, 나는 곁에 선 남자에게 말했다. "로맨틱해요." 남자는 단조로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예전에 본 그림이라고 했다. 나는 스무 살이고 그는 교수였다. 우리는 '바니타스의 이해'라는 교양 강의에서 만났다. 죽음을 그린 명화를 탐구하는 시간, 프랑스에서 유학한 그는 파리의 카타콤을 거닌 이야기를 꺼냈다. 도심 아래에 숨겨진 지하 묘지가 있고 그곳의 벽은 해골 600여 구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괴테의 말을 불어로 읊기도 했다. "밭도 나무도 정원도 내게는 그저 하나의 공간이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당신이 ..

댓글 詩 이야기 2022. 7. 4.

02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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