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참 비교육적인 “내빈 여러분”(20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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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논단

2011. 1. 20.

수백 명의 교사·교장들이 운집한 대형 연수회장,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 곧 교육감 혹은 고위직이 입장한다는 안내방송이 반복된다. 분위기를 정돈하고 정중한 예를 갖추어 달라는 뜻이다. 교직생활을 웬만큼만 한 교원이라면 어느 지역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드디어 그 교육감이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호기롭게 나타나 단상으로 올라가면 연수회장의 앞좌석까지 가득 차게 되고, 그때까지의 지루했던 기다림의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국민의례와 교육감 인사가 일사불란하게 이어진다. 때마다 그렇다고 했으므로 바쁘지 않을 때가 있을 것 같지 않고 그 날도 여러 가지 일로 너무나 분주한 가운데 특별히 시간을 마련했다는 그 교육감이, 교육의 지향점과 자신의 교육관을 역설하고 단상을 내려오면, 입장할 때 뒤따르던 그 인사들이 우르르 튀어나가 다시 도열하게 되고 일어서는 연수생들을 사열(査閱)하듯 훑어보며 퇴장하게 된다. 뒤이어 등장한 강사는 주요인물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썰렁해진 분위기에서 연수생들의 마음을 다잡아주며 강의를 진행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나타났다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사라져 분위기만 흔들어 놓는 것일까?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교원들을 불러놓고 인사를 하지 않으면 비방을 듣는다고 여기는 걸까? 그런 자리에서 훈시를 해줄 사람이 있긴 하지만, 모두들 너절해 보여 자신이 아니면 교육방향과 강조점 같은 걸 분명하게 제시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놓고 얘기하기는 난처하지만 차기 교육감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 놓기 위해 마치 개선장군 같은 위용을 드러내고 싶은 걸까? 그러나 아무리 긴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분명 그것도 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교육감은 그 지역 교원들에게 과시하기에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직위라는 것. 더구나 교원들은 그런 행태가 비합리적인 걸 인식한다 해도 그 시퍼런 서슬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할 수 없는 게 교육계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더욱 비합리적인 ‘내빈(來賓)’도 있다. 고위직의 그런 행태쯤은 대체로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교육적으로 당장 큰일 날 일도 아니었다. ‘우리 교육이, 학교들이, 학생과 교원들이, 저 교육감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교육감이 우리 교육을 위해, 학교와 학생, 교원들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속으로만 새기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모든 게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건 아니다 싶은 ‘내빈’은 학생들의 행사장에 나타나는 그 사람들이다.

 

멋지게 꾸며진 단상을 서열까지 꼼꼼히 따져 앉아야 하는 그 내빈들, 무슨무슨 의원들, 지방자치단체장들, 기관장들, 하다못해 조합장까지 등장하여 두고두고 문필가들의 조롱을 받아왔다. 그 조롱의 대상들은 ‘추억 속의 내빈’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학생들은 잠시 후면 전혀 기억되지도 않고 기억할 필요도 없을 인사말, 축사, 격려사를 다 들어야 하고, 단상을 가득 메운 그 인사들이 하나하나 호명될 때마다 박수를 보내주며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쑤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그들은 교육을 하려고 그 행사장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행사에 초대한 기관장이나 교장, 학부모들을 만나러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내빈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지위 고하를 따져 일일이 호명해주어야 하고, 초청한 사람은 그 수가 많을수록 영향력 있는 기관장으로 치부된다. 겸연쩍지만 그것이 관습이 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건 교육이 아니다. 이젠 그 내빈의 초대 권한을 학생들에게 맡겨야 한다. 내빈으로 참석하는 사람은 그 시간의 교육활동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적어도 행사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비교육적인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이젠 학교에서 전개되는 모든 교육활동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졸업식이라면 학생들이 구상하고 준비하고 ‘내빈’을 정해 초대하는 졸업식, 교장·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전개하는 졸업식이 돼야 별도의 ‘알몸 졸업식’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