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편지

................. 그 "엄마들"이 지어준 이름

어느 교사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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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013. 7. 4.

  선생님.............

  가슴이 터질 듯한 답답함 때문에 잡은 책 몇 권을 완독하고 나서, <미친 독서>프로젝트를 계획하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독서 멘토가 필요한데, 제 마음대로 음…. 선생님을 나의 독서 멘토로 정해야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북 치고 장구치고 난리법석 떨다가, 학교에 급한 일 떨어져서 마무리하다보니, 또 흐지부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휴~~

 

  선생님, 막내 녀석이 올해 여덟 살입니다. 우리 학교 1학년에 데리고 다니죠. 남편 말로는 혈액형이 AB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여덟 살 남자아이입니다. 어제 할머니 밭에서 캔 감자를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만 원에 팔았으니까요.

 

  하지만 감자 캐러 가기 직전,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걸려 와서 긴 긴 이야기로 해 주신 결론은, 학습 능력이 저하되며,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인간관계에서 올바른 의사소통이 안 되고, 개인 주변 정리정돈을 전혀 못하고, 화가 나는 감정 조절 능력이 제로이고, 어휘력 부족이 심하므로 그림책을 읽어주기를 권하며, 필체도 안 좋은데다가 글을 쓰려는 의욕 자체가 없다고 하시면서,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조심스레 권유하시대요.

 

  제 자식을 이따위로 키우면서 제가 우리 반 학생들 앞에 선생의 모습으로 서서 개 짖듯이 짖어도 될까요? 참담한 마음에 아이를 향해 비난도 해보지만, 독특한 이 녀석은 기가 죽지도 않고 땀박땀박 따지고 덤빕니다. 오늘 교통봉사 해주시는 우리 반 학모님께 아침에 인사드리면서, 그 중 한 녀석은 PC방 다니는 것 때문에 저랑 계속 실랑이 벌이고 문제 많은 녀석이지만,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안심시켜 드리면서, 담임의 할 일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제 반 아이의 모든 것을 덮고, 속으로 삭히고, 참으며 아이와 학부형을 다 안심시키는 게 담임의 도리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는 어째서.…. 물론 담임선생님이 용납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어서겠지만….

 

  선생님, 제게 어려운 시기가 닥친 것 같습니다. 제 한 사람 앞가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아무리 처신에 조심해도 자식이 나가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은, 저로 하여금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좌절감을 맛보게 합니다. 이깟 직장 생활은 해서 뭣하나… 내 아이가 엉망인데, 교사가 언감생심 말이 되나… 나는 왜 이리 보잘것없는 사람인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습니다.

 

  오늘아침, 문득 비타민 두 알씩 입 안에 털어 넣어주면서 어쩜 오늘 하루도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오히려 지적받고 꾸중 들어야 하는 날들의 하루겠지만, 그래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는 자라 달라고 기도하면서, 두 녀석을 앞세워 학교로 씩씩하게 걸어왔습니다.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얼굴이 밉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게는 아직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인 것을, 가슴으로 슬프게 느끼면서 교실로 들여보냅니다. 제 교실로 올라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우리 반 아이들에게 오늘 화를 덜 내자! 아이들을 좀 더 사랑해주자! 시험 앞두고 힘들어하면 유머로 기분전환을 좀 해주자! 간단한 게임으로 오후 수업을 시작하자! 등등 다짐하는 말이 많아집니다. 이 아이들도 그 부모에게는 가슴 절절한 자식일 테니까요….

 

  선생님, 지금보다 제가 나이가 더 들면, 제가 더 늙어지면 지혜가 생기나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나요? 아니면 아직도 제가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 이런 번뇌가 있는 건가요? 더 겸손하게 낮아지라는 글귀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가 아직도 꼿꼿하다는 뜻일까요?

 

  여름이 가기 전에, 선생님하고 시원한 것 먹으면서 마주 앉고 싶습니다.

 

 

 

  됐네, 그만하면. 새 학교에 적응하고, 희한한 풍조대로 전입교사에게 맡기는 6학년 담임(에이, 골 빈! 그 좋은 학년을, 그 어려운 학년을!), 그것도 그 학년 부장 일도 다 처리하고. 그만하면 됐지.

 

  다만, 21년이면 이제 꼭 반이네, 그렇지? 그러니까 뭔가 이른바 전환점을 마련하는 것이 좋긴 하겠네. 그렇다고 그렇게 답답해하지도 말고, 침착하게(‘쿨’하게) 정리하고 계획 세워봐. 그걸 이번 방학에 하면 되겠지? 21년간 한 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아, 나 자신도 하지 않은 짓을 시키네? 그렇지만 그 생각은 나의 '결과'에서 빚어진 거니까 공짜는 아니지. 사적(私的)으로는 '네가 빛나면 "괜히" 내가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독서'는 자칫하면, 더구나 나의 독서를 언급해서 이야긴데, 그게 욕심이 되게 할 필요는 없는 짓이야. 나는 너무나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세상의 그럴 듯한 책을 다 읽지는 못해도 일부분이라도….' 이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그러면서도 그 무모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막내! 셋째? 한 마디로, 그 애는 뭐랄까, 때를 잘못 만난 아이야. ^^ 이건 정말이야. 어느 교사가 4학년에 올라온, 교사들이 즐겨 호칭하는 ADHD를 순식간에 모범생으로 바꿔버리는 걸 내 눈으로 봤지. 교사가 못 고치는 걸 의사가 고치기도 하지만, 의사가 못 고치는 걸 교사가 고치기도 하지.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니? 그러니까 그러지 마. 아이에게도 속상해 하지 말라고 해. 교사에게도 가능한 한 특별히 부탁해서 웬만한 건 참아 달라고 해. 그 어려움 나도 교사라서 너무나 잘 안다고 해 줘. 명심하고 실천해. 나락? 구설수?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괜히 생생한 아이 잡지 마.

 

  <팁> "교사 중심" (듣기 싫지?) "공급자 중심" 학교! 썩어빠진 학교! 아이들은, 세상은 저렇게 빨리 변하는데, 학교는, 교사는 몇 십 년째 그대로인 학교, 그것조차 바뀌고 싶은, 바꾸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학교……. '사랑'도 없는 사람들이, 사랑도 없는 '학교'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현실을, 너는 그 속에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어. 왜 그런가? 생각해봐. 정말 그렇다면, 문제라면, 그 아이는 나중에 대안학교에 보내주는 방법도 있어. 그 이전에 그 아이가 ‘포기’하고 적응해 주는 경우도 흔하지만...…. 적응? 그 생각만 해도 다시 속상해지려고 하네?

 

 

 

  으응… 으응…!

 

  사실은 애교쟁이고, 살갑고,

  눈물 많고, 겁 많고, 마음여리고, 정 많고, 잘 먹고…… 녀석의 장점을 줄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점이 많은 아이입니다. 셋째가 있어서 우리 집이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을 정도이지만, 단지 학교생활 할 때 너무나 특이한 어떠함 때문에 제가 기를 팍팍 죽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쌍한 아가!

 

  메일 제목처럼, 사실은 누군가에게 한없이 어리광부리면서 위로받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처럼 저를 이렇게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마치 자랑하고 싶어서, “으응… 으응…!” 하면서 정말 눈뜨고 못 봐 줄 어리광을 부렸네요. (꺾어진 90인 마흔다섯 살 아줌마가… 헉!)

 

  참으로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사랑 듬뿍 담긴 선생님의 메시지가 주는 힘은 정말 어마어마하므로, 진짜 힘들 때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절주절 편지를 보내곤 합니다.

  나의 영원한 안식처여! 이 비루한 인간을 부디 내치지 마시고 오래도록 아껴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부디…….

 

  그만하면 괜찮네… 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장차 괜찮아질 거라는 예언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구요. 보증수표처럼…. 그럼 지금을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략)…

 

  선생님이 계시고, 저는 그래서 행복한 사람, 그래서 꿋꿋하게 이렇게 21년차 교실지킴이로 오늘 또 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선생님의 말씀 “사랑! 사랑! 사랑!”이 백 번 지당하십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많이많이 사랑합니다.